자전거 밀어주는 할아버지


자전거 밀어주는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한데요... 평소에 밝은 조감독의 목소리가 아니다. 갑자기 촬영일정이 변경이 됐다며 죄송하다고 열 번 정도 말하는 조감독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다행이 난 도서관에서 소일을 하고 있었고 현장은 그리 멀지 않아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태양이 옅어진 빛으로 나무들을 길게 비춘다. 그 사이로 빨리 찍어야 한다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조감독,의상팀,조명팀 그들의 발걸음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나는 뛰어다니는 스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 한쪽 툇마루에 앉아 코 밑에 붙인 가짜 수염에서 올라오는 송진 냄새를 맡으며 진짜 선비가 된 양 여유럽게 이곳저곳을 훓어 보고 있었다. 마당 한쪽의 백년은 된 듯한 버드나무를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내 몸을 휘 감싸고 지난다. 다행이 긴 씬 임에도 열심히 뛰어다닌 스텝들 덕인지 해지기 전에 별 탈 없이 촬영을 마쳤다. 촬영후의 알이 꽉 찬 공허함과 알 수 없는 헛헛함은 항상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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