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멸망


백제의 멸망

‘해동증자’라 불리며 성군 소리를 들었고, 멸망하기 불과 5년 전만 해도 신라를 공격해 30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적극적인 정복사업을 벌이던 의자왕(?~660, 재위 641~660)이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는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었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대로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간신들에게 놀아났던 것인가.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해동의 증자’로 불리다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서동요’로 널리 알려진 서동과 선화공주의 유명한 로맨스를 기록한 [삼국유사]는 서동이 백제 무왕이고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이라 했다. 그렇다면 선화공주가 의자왕의 어머니인가? 의자왕이 즉위 초기 정치적 입지가 취약했던 이유가 외가가 적국인 신라이기 때문이고, 유난히 적극적으로 신라를 공격한 것이 그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제외한 다른 기록에서는 진평왕의 딸로 천명과 덕만 두 명의 이름만 기록했을 뿐 선화공주의 존재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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