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옥


조선의 가옥

조선시대 가옥 -곳간 열쇠 쥔 안방마님의 안채, 바깥양반의 사랑채보다 높게 지었죠- ***성리학 규범 스며들다*** 전남 해남 윤두서 고택의 ㄷ자형 안채. 안방과 대청이 있는 본채는 기단을 높여 중앙에 높게 배치했다. 왼쪽에 보이는 부엌의 측면에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살창을 달았다. 조선시대 나라를 다스리던 사대부는 성리학자였다. 성리학은 통치이념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을 다스리는 규범이나 이념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 관료사회로 전환되면서 사대부 주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가부장적 직계가족 제도로 변화하면서 연령과 세대, 남녀 생활영역의 구분 등을 고려한 주거형식이 도입됐다. 주거의 중심은 여전히 안채 대청이었으나, 가장의 공간인 사랑채가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조선 중기에는 씨족마을이 건설되고 성리학적 생활문화가 정착됐다. 가장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사랑채가 확대되고 기능이 분화된다. 사랑채에 누정을 두고 나무와 화초를 심거나 작은 연못을 만들어 꾸몄다. 사랑채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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