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무오사화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조선의 역사에서 ‘사화’라는 이름이 붙은 첫 사건이다. 이것은 그 사건이 기존의 문제들보다 그만큼 독특하고 차별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되었다는 방증이다. [경국대전]의 완성(1485, 성종 16년)부터 최초의 사화까지는 1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도의 정비와 정치적 갈등의 폭발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인접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그 제도의 어떤 부분(또는 전체)이 현실에 쉽게 적용되지 못하고 마찰을 빚었다는 측면을 암시한다. 물론 무오사화에는 연산군과 유자광(柳子光)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이 개입했다. 이런 측면은 현대의 이론적 도움을 받아 ‘훈구’와 ‘사림’의 충돌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그 통설은 일정한 실증적·논리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연산군은 그때까지 아직 폭정을 본격화하지 않았고, 뒤에서 보듯이 무오사화의 피화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측면들은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해야할 필요를 알려준다. 성종대의 정치적 유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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