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죽음에서 구한 명문장... 정탁의 신구차..


이순신을 죽음에서 구한 명문장... 정탁의 신구차..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7년 경상도 병사 김응서가 조정에 장계를 올린다. 내용은 당시 조선과 왜 사이에 이중첩자 노릇을 하던 요시라에게서 얻은 일본군에 관한 정보였다. 장계에는 일본군이 다시 조선을 치기 위해 대마도에 많은 병력을 준비중에 있고 날씨를 봐서 다시 침공할 예정이니 조선에서는 수군을 준비해서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당시 조정에서는 거제도와 부산 동쪽 기장에 수군 정찰선을 보내 왜군의 침략을 정찰하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당시 수군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반간계라고 생각하고 이에 따르지 않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이 역모죄에 휘말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이순신장군은 모든 관직에서 박탈되고 조정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극형에 처할 위기를 당하게 된다. 1597년 3월 13일 선조는 이순신 장군의 처리 문제에 대하여 승전원에 비망기를 내린다. "이순신의 죄는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로되, 이제 국문을 가하여 그 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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