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글


제주도에서의 글

무제 - 지나야 보이는 봄에 대해 나는 언제부턴가 차가운 눈밭을, 바스라 지는 낙엽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정상 없는 등산길, 목적 잃은 길을 걸으며 내 봄은 언제였더라, 혹 아직 오지 않았나.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야 봄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며 그 차가운 길을 맨발로 걷듯 살았다. 걸어도 끝이 없는 길 위에서 나는 가만히 서 보았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숨을 크게 쉬고, 뱉었다. 잠시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봄은 없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눈앞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나. 그 나무는 이리저리 휘고, 상처가 나고, 바람에 흔들리며 잎을 떨구었다. 그래, 제 자리 가만히 지키고 서있는 나무라고 그 시간들이 순탄키만 하겠나. 나는 길을 걷고 있으니 더 순탄치 않은 거겠지. 바람이 불고, 나무는 꽃잎을 떨구었다. 날리는 꽃잎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아, 내가 걸었던 길에 드디어 꽃이 폈네. 내가 봄을 만들었구나. 내가 봄이구나. 내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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