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의 <행복한 난청> 중에서


조연호의 <행복한 난청> 중에서

잘 만들어진 음악의 다수는, 듣는 이와 만드는 이 사이의 왜곡을 매개로 한다. 자연음은 음향은 될 수 있어도 음악은 될 수 없다. 연주자와 청자 사이의 규약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야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한 줌이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는 반면, 음반에 담긴 바람 소리만으로는 음악이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왜곡이라는 굴절을 통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쓰기에서도 비슷하다. 보르헤스의 <알렙>처럼 모든 시간, 모든 공간,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설득 매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투명함이 문학의 미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교하게 세공된 왜곡을 나는 그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복수 교차되는 여러 기준 가치들은 세상을 아주 해독하기 어려운 실뭉치로 만들어버리곤 하지만, 해독 불가 문제지의 답변 항목에 가장 좋은 해답을 써넣을 수 있는 수험자는 해독 불가 그 자체를 답변으로 받아들이는 자, 문제를 다시 문제화하는 자뿐인 것이다. 옥타비오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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