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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의 하늘과, 나의 하늘 [내부링크]

수십번 쓰고 지웠던 글의 꼭지들이 의미를 잃는 것 같다, 그렇게 느꼈다. 당위를 내려놓고 공부하며 겸손히 바라왔던 삶이라 여겼다. 그러나 결과 앞에서 이 역시 나약하고 위선적인 인간의 또다른 모형이었음을 아프게 느낀다. 무엇을 희구하고, 바라고, 열망하고, 도전하는 일이 비록 실패하고, 단념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일로 귀결될지라도. 이 모든 것이 인간만의 시린 아픔이라, 아름다움이라 여기며 그저 다시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나를 이루고 만들었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결과 앞에서 부정하고 싶어지는, 나의 의식과 존재의 가벼움만은 참을 수가 없다. 삶에 지지 않으려 늘 노력한다. 그렇지만, 때로 무서운 것은 어쩔수가 없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받들어온 역사는 환상이라 소리치고 싶지만, 내 안의 어떤 목소리도 남아있지 않다.

흐르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고등부 비전트립 [내부링크]

당신이 주신, 아름다운 순간들 통영, 2022 책장에 쌓여 자리를 차지하는 한 해의 일기는 늘 거슬렸고 불편했다. 그러나 이 젊음의 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을 ‘찰나’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후로는 종이에 꾹꾹 눌러써 하루를 보관했다. 이 글도 그 깨달음과, 하루를 잃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연장선이리라. 오늘 하루가 내 삶의 점이라면 선은 무엇일지 생각해 왔다. 내게 있어, 무수한 점을 이은 하나의 ‘선’은 나의 것이 아니다. 출발의 모양과 관계없이 아름다운 끝이 정해져 있는 선, 때로 거부하고 피할지라도 그 완연한 계획성에 늘 무릎을 꿇게 된다. 20대의 끝을 향해가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의식하는 차원을 넘어 생각의 집을 지어왔던 재료들을 찾아 나선다. 나를 알지 못하면 애써 쌓아 온 경쟁력도, 삶의 장면 속 따뜻함도 동굴 안을 배회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붙잡은 재료는 ‘기억’이고, 올해 교회에서

3월 [내부링크]

어쨌든, 경험이 필요했다. 내게 사람이 더 있다면 좋을까 싶었고 이 바람이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열망과 바람이 있었던 이들, 그래, 나와 같은 방식으로 시계를 보며, 숨쉬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된다, 괜찮다”라고 적었으니 받아들여야 하고, 이왕 받아들인다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즐거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구원(救援)】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물의 길』, 작은 소회 [내부링크]

Avatar_ The Way of Water (2022) 아바타: 물의 길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조 샐다나, 샘 워싱턴, 우나 채플린, 케이트 윈슬렛, 지오바니 리비시 개봉 2022. 12. 14.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 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아바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내부링크]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나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서서히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

스물일곱, 2023년 [내부링크]

막냇동생과, 문제의 등굣길 별것 없는 하루들을 기막히게 웃기고 따뜻한 이야기로 써 내려가는 주변 사람들의 재능이 늘 부러웠다. 그래서 그다지 재밌지 않을 수도, 이제껏 그랬듯이 한없이 진지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자주, 가볍게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에 하루를 담고자 한다. 한없이 나를 더 사랑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부정하고 무너지길 반복했던 나의 하루들을. https://www.youtube.com/watch?v=feePMjLJ794 1月 2021, 2022 시험의 기록 나를 울리고 웃게 했던, 수많은 감정과 깨달음이 교차했던 시험이 끝났다. 2년간의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고대했던 1차 합격을 이뤄냈다. 시험 일정과 맞물려 나를 괴롭혔던 엄마의 병증도 오진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 가족들을 한참 동안 괴롭혔던 아래층의 남자도 구속됐다. 시험을 앞둔 편입 재수생이었으며, 엄마의 검사 결과를 맘 졸이며 기다리던 한없이 연약한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검찰청과 경찰서의 연락을

【구원(救援)】리들리 스콧 『킹덤 오브 헤븐』, ‘삶과 사람’의 가치 [내부링크]

영화 <킹덤오브헤븐>은 신앙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과,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규모와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던 극장판이 혹평을 받았음에도 감독판의 등장으로 세간의 평가가 뒤집어졌던 까닭은 극장 필름이 원본을 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방대하고 첨예한 역사 배경이 짧은 러닝타임에 다 담길 리가 만무하니. 극장판에서는 부자연스러웠던 서사구조의 진행도 감독판에서 더욱 매끄럽고 탄탄하게 이어진다. 그럼에도 신앙 이면의 ‘사람’이라는 가치를 들여다보는 주제의식은 극장판과 감독판 모두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끝없이 생각에 잠기게 되는 영화다. 물적 고증은 훌륭하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 구성을 위해서일지, 당시 시대상에는 맞지 않는 급진적인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고 느낀다. 가치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감독이 택한 방법이었을까. 이러한 전제를 두고 함께 다뤄본다. 리뷰는 극장판을 기반으로, 서사의 공백은 감독판으로 풀어가 보고자 한다. 인간

【공허(空虛)】정희재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삶이라는 농담, 또는 위로 [내부링크]

@Tatiana Colhoun, Unsplash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리커버 양장본) 양장 저자 정희재 출판 갤리온 발매 2020.04.27.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믿는다.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다. 행복에 간한 한, 우린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오랜 기다림의 끝자락에도 바라 왔던 것들은 내게 쥐어지지 않았고, 삶이 유독 나에게 더 박하게 흘러간다 여겼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삶에 공명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이유는, 생이 모두에게 처음이고 난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줄의 글과 그 안에 담겼을 한 권의 인생사 앞에 지난 나의 과오를 인정한다. 삶은 유독 나에게 박하지 않다. 기다림은 완벽을 기하는 담금질이다. 이 글이 당신의 난제들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힘든 삶을 잠시 덮어두고 꺼내볼 수 있는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창작수필】 관성(慣性) [내부링크]

@vesper.lin, Unsplash 관성에 잠식되는, 가만한 나날들이 있다. 젖어든지도 모르고 시간에, 세속에 휩쓸리는 이의 책임일까. 혹은 늘 정답을 제공하지 않는 매정한 세상사의 탓일까. 관성이 타성이 되어 나를 감쌀 때, 이 위태로운 평화마저도 좋아서 때로는 그저 주저 앉고 싶어진다. 날 걱정하는 이들에게 상처주는 것은 그리도 쉬우면서 관성을 벗어나고, 타성을 거부하는 일은 이리 어려울까. 늘 생각한다. 가만한 나에 대해, 절박함이 모든 감각들을 일깨울 언젠가의 나에 대해.

【사랑(愛)】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사람의 모양에 대해 말하다 [내부링크]

@besluk, Unsplash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저자 앤드루 포터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9.05.13. #사랑 #감정 #비밀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늘 인간사를 부유한다. 아마 그 모든 일들의 발생은 '내가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헤더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로버트에게 이끌렸듯이, 우리는 때로 누군가로부터 나의 연원을 찾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결핍 투성이인 인간 존재는 또 다른 결핍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헤더의 남자 친구 콜린은 결핍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 강인한 존재다. 이에 비해 로버트는 젊음의 혈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아내와도 별거 중인 힘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콜린과 비교되는 로버트의 연약한 모습이 헤더에게는 따뜻한 일렁임을 안겨준다. 연약해 보였던 로버트는 헤더와 결핍을 공유함과 동시에 함께 결핍을 벗어나는 동반자로서 존재로 지위가 옮겨진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헤더를 소유하고 싶은

【창작수필】 체념(諦念) [내부링크]

@kylefromthenorth_, Unsplash 1. 누군가 나를 각자의 언어로 무참히 살해해도 별 수 없다, 그렇게 여겼던 날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받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방어 기제 때문이 아니다. 비록 지쳤을지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너머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결단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없다. 당연히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타인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었던 노력을,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스워질지언정 그것은 나다운 것이니까. 그저 나와 타인들 사이에 중간지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사슴이나 토끼가 맹수와도 나누어 쓸 수 있는, 숲 속의 고요한 호수처럼 말이다. 서로를 위해 각자의 야성을 내려놓은 공간이, 평화와 안정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2. 이제껏 나의 야성은, 타인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공격 기제였다. 나를 비껴는 이들과, 그들로 인한 소음에 늘 부딪쳤다

【그대의 ‘시상(詩想)’】 찬란한 ‘생(生)’에 대하여 [내부링크]

@Ray Hennessy, Unsplash 문학과지성사 찬란 - 이병률 시집 저자 미등록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미등록 찬란 이병률(1967~)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 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하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쳐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 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내부링크]

11월의 star벅스 재은이랑 공부하면서, 여러모로 많이 깨닫는다. 내 고집, 아집, 교만, 이외에도 여러 내 불찰들을. 많은 문제들을 이기지 못했던 현실 이면에는 불손한 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가 나만의 탓만은 아니다. 부족한 노력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상도, ‘그래선 안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무수한 일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아무렇지 않게 용인된다. 내 삶이라고 다를 바 없다. 노력의 부족이라 여겼던 실패의 이유는 실상 ‘잘 몰라서’, ‘홀로 섰기에’ 그랬던 측면이 크다. 잘못된 습관을 들여다 볼 여유 없이 노력만 고집했던 나도, 그저 몰랐고 부족했을 뿐이다. 타인에게 나를 맡기는 연습이, 내밀어주는 손을 잡는 겸손과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내가 당신에게 늘 그러했듯이. 더불어 노력하고 있기에, 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괜찮다.

【사랑(愛)】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용기 [내부링크]

Unsplash, @rawkkim 불편한 편의점 저자 김호연 출판 나무옆의자 발매 2021.04.20.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참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사실 처음 몇 줄을 접하고는, 이렇게나 당당하게, 대놓고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이런 류의 글에 스스로가 관대한 편이 아니라 느꼈기에 거부감이 컸다. 나도 편의점에 잔뼈가 굵다. 편의점 야간알바생으로 2년 반을 일했고, 오전 알바를 수개월 겪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름의 ‘꼰대력’이 글을 소화하는데 약간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예컨대 업무에 대한 사소한 디테일이 어긋나 있다는 점이나, 지나치게 따뜻한 사장님이 꽤나 어색하다. 물론 타인을 위해 ‘나의 어디까지를’ 내어줄 수 있느냐는 각자의 철학에 따라 다른

굿바이, 2022 [내부링크]

2022, 6월 병점 비로소 한 해를 끝내며, 또 '어떤 바람과 끈질긴 욕망이 뒤엉킨 무엇'과 해후했던 지난 수년을 돌아본다. 생각이 많으나 책임지지 않았던 삶의 짐은 늘 컸다. 그러나 지나 보니,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거나 이뤄져야 하는 신념, 혹은 이념과 진실의 투쟁은 키치(Kitsch)에 불과하다. 내 삶이 다를 리 없다. 신앙인이라고 덧 씌운 수많은 당위성의 진실은 그저 나의 욕망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듯이 나를, 가족들을, 친구들을 사랑해야하고, 그럴 것이다. 흘러가버린 시간과, 붙잡은 기억과 투쟁 사이에서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으리라, 그렇게 스스로에게 위안을 보낸다. 더 이상 한 해의 끝에 계산기를 들고 영수증 처리하듯 내가 살아온 귀중한 순간들의 값을 매기기는 싫다. 잘, 했다. 무엇을 해냈던, 혹은 그러지 못했든 그 모든 순간은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오며가며 함께

【공허(空虛)】백수린 『여름의 빌라』, 자격을 묻다 [내부링크]

당신은, 늘 확신할 수 있는가 Unsplash, @Chris Galbraith 여름의 빌라 저자 백수린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0.07.07. 때가 되면 우리는 옷가지와 부려놓은 짐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린 후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할 거에요. 풍화된 것들은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말겠죠. 그렇지만 나는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 아직 타고 있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신이나 지호처럼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 편지를 쓴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요, 베레나, 이것만큼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어린 딸이 내게 그렇게 말한 후 환하게 웃는 장면이요. 지호에게. 독일인 부부와 함께, 이제는 폐허가 된 바욘 사원을 거닐며 당신

【사랑(愛)】박찬욱 『헤어질 결심』, 마침내 영원에 이르다 [내부링크]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2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 2022. 06. 29. 해일이 덮은 그녀의 죽음은 그와의 사랑을 영속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쉽게 쓰인 시를 어렵게 읽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를 두고 '보편적인 멜로'라 칭했다. 이것이 대중을 향한 그의 변명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일련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영화가 무수한 미장센을 허락하고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미를 갖지만, 본질적으로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은 동의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둘의 사랑은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처럼 묘사된다. 사랑은 상대방이라는 기표를 두고 자신의 언어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타인과 나의 일부분을 나눠가지며 마찬가지로 나의 욕망도 드러나게 된다. 왜 해준은 아내에게 안정을 주지 못했는가

【창작수필】 도리어 무언가를 [내부링크]

해방촌(解放村) 나는 내 삶이 감격스럽고, 도리어 벅차다. 어떻게, 무엇을 희구하고 바라며 무엇을 위한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살아야 할까. 또한 살아내야 할까. 뒤돌아서면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고독이 두렵고, 결국 살아내야 하는 주체가 오롯이 나라는 사실에 외롭다. 사람(人)은 왜 사람인 걸까. 모두에게 각자의 벅찬 삶이 있을 텐데, 어떻게 기대어 견디란 말인가. 우리는, 결국 타인이다. 그러나 타인을 제한 내 삶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이 감정들이 낯설고 아프다. 내 안의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었겠지. 네가 숨죽일 수 있도록 나를 밝게 비춰왔던 무언가를, 이제 놓아버린 걸까. 너를 만날 때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게 된다. 감히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모두가, 언젠가는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도 나도, 이 긴 터널에서 해방되었으면 한다. 타자(他者)의 한계를 넘어서 그렇게 바라본다

【구원(救援)】문유석 『쾌락독서』, 활자를 향한 ‘기필’을 버려라 [내부링크]

@kater_23, Unsplash 쾌락독서 저자 문유석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8.12.12. 한 줄의 문장, 또는 한 단어가 기억에 남아있다면 내게 그 책은 그 한 줄, 또는 한 단어이다. 만약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책을 읽던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면 내게 그 책은 감각이다. . 그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수년 전까지, 출판시장의 흐름을 주도했던 사조는 '인문학'이었다. 특히 고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커지며 '고전 읽는 법'이나 '서양 철학 요약집'과 같은 일종의 참고서들도 덩달아 흥하기 시작했다. 인문학의 수요가 비단 한국에서 늘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 어떠한지에 대해 타국과 비교를 시도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속도가 중요한 나라답게 '참 빠르고 효율적이게 인문학을 소비하고 있다'라고 느낄 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 전문가를 자처했고 유비쿼터스를 활용한 무수한 챌린지들도 젊은 세대

【구원(救援)】넬라 라슨 『패싱』, 운명을 배신하는 방법에 대하여 [내부링크]

Unsplash, @Samuel Branch 패싱 저자 넬라 라슨 출판 민음사 발매 2021.07.30. 바로 그게, 그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거야. 내가 도망가기로 결심했거든. 동정의 대상도 골칫거리도 아니라 심지어 불량한 함의 딸도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살려고 말이야. 그리고 난 정말 많은 것들을 욕심냈어. 내 외모가 나쁘지 않고, 충분히 백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 . 르네, 넌 모를 거야. 내가 남쪽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얼마나 너희들을 증오했는지. 너희는 내가 원했지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가진 것과 그 이상을 손에 넣기로 결심했지. 내가 느꼈던 것을 너 이해하겠니, 이해할 수 있니? *함은 아버지 노아에게 불경한 죄로 인해 그의 자식들이 그 사촌들의 노예가 되는 벌을 받았다. 미국의 노예 제도 지지자들은 이 성경의 설명을 아프리카인들에게 적용하여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운명 #

나를 [내부링크]

2022, 7월의 하늘 나를 계획대로 끌고 가는 일은 늘 힘들다. 애초에 내가, 계획한 만큼의 인간이 못 되서 일까. 그도 아니면 인정을 못한 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늘어놓는 것이, 또 하나의 습관이 된 탓 일까. 부족하고 모자란 하루가 쌓이는 게 겁이 난다.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투쟁 속에서 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비로소 웃을 수 있을까.

【사랑(愛)】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운명의 농담 '키치'를 넘어선 사랑 [내부링크]

@rxspawn, Unsplash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8.06.20. #문학 #운명 #사랑 문학은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난 주관적 사건을 서술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다. 따라서 작가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이 문학을 통해 재현될 때, 이것이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면 이는 설득의 목적을 충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문학은 ‘다르게 보기’를 통해 그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경험과 사실을 전달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주관의 차이를 좁히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다. 따라서 ‘위대한 작가’란 타인의 삶을 가정하고 기술할 때,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를 예측하고 탁월하게 설득하는 자이다. 이에 따라 문학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란,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를 설득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소설은 타인의 경험을 기술하는 것으로 더 깊

그러한가? [내부링크]

2022, 8월의 하늘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가슴을 찾아 헤맬 줄 알아야 한다. 그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 심지어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할지라도. 체 게바라 자유의지를 넘어선 ‘운명’ 또는 당신의 존재를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의심이 대상은 다시 내가 되었다. 당신의 뜻이 하늘같을 지라도, 내가 취한 의지와 그 결과물이 땅의 미물같을까봐. 겸허함을 미끼로 던져 나의 속된 삶을 갉아먹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꿈은 언제나, 어쩌면 영원히 설렐 수 있는 무엇이다. 좌절되었던 꿈이 당신과 공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더욱 그렇다. 나의 실패가 당신의 실패로 비춰질까 두려웠다. 이제 두려워하지 않겠다. 두려움은 내 몫이 아니다.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비록 솔로몬의 뉘우침처럼 헛되다 할지라도, 그와 달리 나는 끝을 안다. 내게 현재는 승리로 귀결될 내 삶의 모양과 깊이를 더하는 담금질이 될 것이다. - 8월 7일, 오

【구원(救援)】김세희 『가만한 나날』, 가해에 무감각한 나날들 [내부링크]

@kadop, Unsplash 가만한 나날 저자 김세희 출판 민음사 발매 2019.02.15. 가만하다 -1.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2.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다. -3.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 #타인 #기만 타인에게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원하는, 그러나 연약하고 나약한 크리스천인 나는 늘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는 늘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해가 되니까. 돈의 논리 속에서 기계의 한 부품이 되어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우리가 ‘맞물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착상해내기는 어렵다. 그저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다면 다행일 뿐. 그러나 ’경진’의 화신인 채털리 부인은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의 완벽한 가해자가 되었다. 기만이 죽음을 낳는다면, 그리고 그 ‘기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직업의 하나로서 인정받고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엉망인 굴레로 돌아

【창작수필】 경험(經驗) [내부링크]

배곧, 2022 경험은 온전한 재현을 허하지 않는다. 발을 뗀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무수한 감정들과 사건들은 점차 맥락을 잃어 기억의 편린으로 남을 것이다. 나를 짓누르던 선명한 불안과 압박은 형체를 잃었으나 이제는 공기가 되어 나를 감싼다. 지난 날에는, 채워지지 않았으니 비울 걱정은 사치였다. 그러나 가득 채워졌던 경험은 내게 매 순간의 공허를 알게 한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비워내고 덜어내야 내가 살 것만 같았는데. 이제 공허 속에 나를 잃어간다. 늘 두려운 마음으로 무게를 쟀다. 저울이 되어보니 알겠다. 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던가.

【창작수필】 하루살이 [내부링크]

신촌, 2021 어떤 선택도 내게 ‘고작’이었던 것은 없다. “인간은 단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채 무대에 서는 배우와 같다”는 쿤데라의 말을, 내 삶 깊숙이 투과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당시 나는 내 삶을 연습해나가는 중이라고 여겼으므로. 그러나, 고작 일을 그만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랜 시간 괴롭게 고민했다.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시간을 지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스스로에게 관용을 허락하는 일도 늘 어려웠다. 감정을 극도로 몰아붙이고, 이런저런 상황들을 가정하며 수없이 찔려본 이후에야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도 수긍이 된다. 경험은 기만적이다. 경험은 없다. 이미 이루어진 사건과 그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끝난다. 인과도 없다. 사건들을 잇는 시도 그 자체가 또 다른 사건일 뿐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한다. 오늘을 살아내서 남겨야, 이 가벼움에 약간의 무게를 더할 수 있을 뿐이다. 우

【창작시】 불, 당신 [내부링크]

@photografi_chi, Unsplash 불, 당신 도대체 어디를 향하는지, 알 턱이 없는 당신은 허공을 빙빙 돌 뿐 날개가 타는 줄도 모르고, 어쩌면 다시 날 수 없으리란 것도 아는 지 모르는지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은 당신의 탓일까 미련한 당신을 놓지 못하는 나의 탓일까 어느새 불길은 커져간다 수없이 차오르는 말들을 삼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당신의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죠.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네요.

단상(斷想) [내부링크]

내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고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분리될 때,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가짜뉴스를 카톡방에서 퍼나르며 교회에서는 은혜를 구하고, 태극기 집회에서나 인터넷 상에서 저주를 퍼나르는 그런 사람들과 내가 한 데 엮이기 싫다. 언뜻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주위로부터 ‘꽉 막힌 사람’ 취급받는 신앙인들도 편치 않다. 그들이 꽉 막혔다고 평가받는 것이 곧 참된 신앙의 증거나 면류관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여러 불편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다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빛을 가릴 수는 없다. 예컨대 군생활 이래로 계속 이어오고 있는 컴패션 후원을 모종의 이유로 끊는다고나 하는, 그런 일은 차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군 교회 목사님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군종병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따로 또 같

【2021 수원시 장학생 수기공모】 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다 [내부링크]

@john_cameron, Unsplash 2021 수원시 장학생 수기공모, <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다.> #사회 #개인 #삶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삶을 마주한 인간에 대해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와 같다고 묘사합니다. 대본이나 동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극이 시작된다면 배우는 눈앞이 캄캄할 것입니다. 삶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저 또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사는 삶이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교육비를 걱정해야 했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질병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는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크게 느꼈습니다. 거리는 활기를 잃었고 텅 빈 학교는 기나긴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시장가에서 작은 누룽지 가게를 하는 부모

【창작시】 무기력(無氣力) [내부링크]

@johnythesquid, unsplash 무기력(無氣力) 학습되는 것인지, 혹은 본능인 것인지 우리를 둘러싼 무기력은 때로 무서울 만큼 깊다 정처를 알 수 없으니, 원인도 해결도 쉽지 않은 것 누군가 나를 넘어뜨리고자 할 때 도리어 나는 힘을 얻었다 적대적 공생이 그 원천이었으이라 그러나 내가, 나로 하여금 스스로 넘어지는 것을 용인한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심연을 헤매듯이, 깊은 잠에 빠지듯이 가치가 내게 의미가 되지 못하고 의미가 가치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연대(連帶) 속이 새까만, 각기 다른 마음을 지녔대도 같은 띠를 둘러매고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넘어질래도 넘어질 수 없게 된다 배제하지 마라 당신의 안락하고 고고한 삶을 누리고자 당신이 두른 띠를 벗어던지지 말라 무기력이라는 허상을 함정 삼아 타인을 몰아넣지 말라 그러나 두려운 것은, 이미 우리의 눈에 드리운 어둠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상이 어떤 무기력은 아닐까

【공허(空虛)】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삶의 반대말 [내부링크]

Maborosi(1995) 환상의 빛 저자 미야모토 테루 출판 바다출판사 발매 2014.12.15. 환상의 빛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에스미 마키코, 나이토 타카시, 아사노 타다노부 개봉 2016. 07. 07.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죽음 #빛 #삶 내게 영화는 이 대사에서 시작한다.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이끌려 죽음을 택할 수 있을까. '환상의 빛' 같은 것을 본다면 그럴 수 있을 수도 있겠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미야모토 테루의 원작 소설을 충분히 재현해내는 것을 넘어서 이 기막힌 죽음의 당위성을 완성해낸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삶의 대안으로써 죽음이 기능할 수 있는 것인지를. 유미코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편을 뒤로한 채, 남겨진 아들과 함께 삶을 감당한다. 아마 평생을 두고 그녀를 따라다닐 꼬리표는 남편의 자살일 것이다. 남편의 자살은, 도저히 맥락을 설명할 수 없이 그려진다. 남들은 모르는 그만의 사정이 있다기보다,

【구원(救援)】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고찰 [내부링크]

Unsplash, @Jan Huber 목소리를 드릴게요 저자 정세랑 출판 아작 발매 2020.01.06. 메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캐스팅되지 못한 배우, 설계가 채택되지 않아 시공된 건물이 없는 건축가, 선거마다 당선되지 못하는 정치인, 훈련만 하다가 우주에는 나가보지 못하고 은퇴한 우주비행사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 아, 그런 무신경함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람 #공허 #우선순위 좀비물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해도, 예측컨대 코로나19가 좀비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질병의 고통 아래 우리의 일상도 좀비화 되어갔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집단으로부터 우리는 스스로 격리되기를 자처했고 우리 안의 우울과 홀로 채우는 공간에 익숙해졌다. 당연히 문화도 수많은 변화를 허락했다. 원마일 웨어라든가, 혼밥이라든가 우리네의 삶은 더 간소해져 갔고 이는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허례로 이어지던 종잇장 같은

예꿈 캠프(7/1-7/2), 하루를 버는 일 [내부링크]

#장애우 #시선 #사랑 출석하는 교회에서 '예꿈 캠프'를 다녀왔다. 예꿈 캠프란, 예꿈부에 소속된 아이들 혹은 청년들이 함께하는 여행을 뜻한다. 예꿈부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아우르는 부서로 주로 청소년들이 다수를 이룬다. 나는 청년 교사 자격으로 캠프에 참가했으며 '교사 한 사람당 한 명의 친구를 맡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열네 살의 준환이를 담당하게 되었다. 한 달 정도 캠프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목-금의 야간알바를 조정해야 했으며, 장애우를 돌본 경험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이 캠프에 참가하는 것이 너무 벅찼다. 민우가 지나치듯 내게 참가를 권했고, 분명 그것이 무거운 부탁이기에 거절을 개의치 말라는 듯 지은 소탈한 웃음이 잔상으로 남았다. 그래서 윤민영 집사님께서 내게 예꿈 캠프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나는 이미 캠프에 참여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수원 은혜교회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타인으로부터 '격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소모임

【그대의 ‘시상(詩想)’】 ‘시’란 무엇인가 [내부링크]

Unsplash, @joannakosinskadesign 남강의 시간 저자 조향옥 출판 애지 발매 2021.11.11. 조향옥 「야생차」 나는 있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래를 보는 강가에서 별이 떨어져 모래알이 되었다고 믿는 강가에서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찻잔 속에 빠진 찻잎을 입술로 밀어내면 늘 흐느끼는 무엇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강가에서 달빛 마시고 모래가 그려 놓은 물결을 보며 그냥 있었습니다 시란, ‘언어의 속성을 바꾸는 일’과 같다고 느낀다. 최정란의 시 <프롤로고스>에 따르면 시인은 몰락과 죽음도 실패에서 성공으로 바꾸어 낸다. 죽음은 존재의 종말이라는 점에서 실패이나, 이를 시어로 가둘 때 죽음은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은 ‘끝, 해체’라는 속성에서 ‘시작, 또 다른 조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의의는 ‘시선’에 있다. 시어들의 조합이라는, 내가 창조한 세계에 거주할 이들을 선별하는 것이다. 일제의 폭력에 저항했던 시인들은 ‘순수와

타인의 고통, 그리고 ‘강’ [내부링크]

그가 살아오면서, 타인을 위해 고민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고와 원고로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겁박하며,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아성을 쌓아왔으리라. 그러나 어떻든, 어떤 모습이든 그의 치열했을 인생사는 잠시 덮어두어야 할 때가 이제는 오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용기있게 살아왔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제 숨죽이게 될까 두렵다. 이미 우리는 그런 지옥을 수 년 전에, 그리고 수십년 전에 경험했다. 다만 그들은 이제 보다 더 영악한 모습을 할 것이다. 누구도 쉽게, 함부로 넘어서지 못할 장막을 치고서 말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문화의 토대가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겁이 난다. 타인의 고통에 가슴 깊이 공감하고, 숨죽여 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용기가 요원해질까 겁이 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나의 친구들을 위해 밤새서 기도했던 그 날의 아픈 기억들이 잔상이 되어 떠오른다. 그때와 비슷한 무기력을 느낀

【창작수필】 여적, 호랑이와 나 [내부링크]

@donnieraycrisp, Unsplash 파이 이야기 저자 얀 마텔 출판 작가정신 발매 2022.03.29. #욕망 #삶 욕망은 가장 순수한 자기표현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대한 담론은 자기 자신을 서로에게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창구이다. 단순히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을 넘어, 그 욕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자문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우선 나는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이 존재했고 몇 가지 이유들로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수년 동안 상한 자존심을 움켜쥐어야 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내게 엄습한 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단 한 순간 실패하면 이후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리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원치 않는 삶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벵갈 호랑이와가 처한 현실과 같은 것

【창작시】 너는 아름답다 [내부링크]

@saadchdhry, Unsplash 너는 아름답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후회하고 또 울었을지라도 너 자신으로 살고자하는 욕망이 너를 이끌었음을 안다 무수한 실패로부터 넘어지고 다쳤을지라도 그 욕망은 헛되이 남겨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욕망을 부끄러워 말아라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된다 이미 너는 너로 살았고 그것으로 된 것이니 삶을 붙드는 나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날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루를 더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끈질긴 사람’이고 싶었다. [내부링크]

<나는 누구인가: 나는 ‘끈질긴’ 사람이다.> 예시: 삶을 붙드는 나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날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루를 더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인용: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그 속도가 아니라, 동물의 순수한 자신감이었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힘, 그렇게 한 순간에 집중해서 현재에만 몰두하는 능력.” 생을 향한 동물의 끈질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는 그 끈질김을 닮고 싶었다. 비교: 리처드 파커와 나는 생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 야성이 잠재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차이가 있다. 파커의 의지는 끈질긴 야성으로 가득 찬 반면 나의 의지는 인간적이다. 매우 나약하고 흔들리는. 대조: 물고기 떼를 향한 리처드 파커의 끈질김은 생에 대한 나의 나약한 의지와 비교된다. 파커의 끈질김은 야성에 가깝다. 자연의 본능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눈앞의 난관에 몸을 휘청이며 지레 겁을 먹지

【구원(救援)】토드 필립스 『조커』, ‘저항의 순간’ [내부링크]

순수하기만 한 노력은 필패한다. 노력이 순수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르리란 믿음은 순진하고 어리석다. 당신은 조금 더 철저히 목적을 위해 움직였어야 했으며, 그것이 타인에 대한 걱정보다 우선되었어야 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노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오판, 그것이 당신의 소중했던 삶을 앗아갔다. Joker, 2019 조커 감독 토드 필립스 출연 호아킨 피닉스 개봉 2019. 10. 02.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잠언 6:5 #진실 #저항 당신의 안온한 삶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비록 누군가의 거짓으로 점철된 세계일지라도 나는 슬펐다. 당신의 삶이 무너짐으로 인해 당신의 세계는 순수를 잃어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저 스크린 속에 펼쳐진 세계의 버팀목이었다. 세계의 비밀을 알아챈 <더블유>의 등장인물들이 소멸된 것 처럼, 당신의 각성은 곧 세계의 붕괴를 뜻했다

그리운 날들 [내부링크]

과분한 기회로 여름날의 유럽을 이리저리 활보하던 시절이 있었다. 에코백을 들고 책 한 권 손에 쥔 채로, <비포 시리즈>의 젊은 에단 호크가 된 것 처럼 나는 세상을 설렘으로 떠안았다. 아직도 그때의 여행이 귀한 까닭은 지난했던 나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아직 유효하기에 나는 살아낸다. 내가 몰두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나를 만나고, 다시 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여행의 정의다. 프라하에서 만난 소년 In Prague (2018)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굴렁쇠를 들고 인도의 전통춤을 선보였던 소년이 떠오른다. 하필이면 소년에 앞서 마술 공연을 했던 한국 남자가 나를 반가워하며 이 공연을 통해 얼마를 벌었고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소년의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다소 인색한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다. 나의 여행이 꽤 의미 깊었던 탓에, 지구 반 바퀴를 건너와 한날한시에 마주한 소년에게 나는 한없는 감동을 보낼 준비가 되어

【창작수필】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내부링크]

@ialexavalos, Unsplash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것들이 있다고 여겼다. 숱한 부정의와 부패에 맞서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을 그렇게 느꼈다. 뿌리깊은 일재의 잔재와 기득권의 부패가, 청렴한 그의 원칙과 능력에 의해 단번에 씻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날 수 없다. 빙산도 눈에 보이는 것은 일각일 뿐이라 하더라. 그 누구도 이 국면을 타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한 부분일 뿐이리라. 누구도 조망할 수 없는 역사의 강물에 우리는 함께 발을 담궜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각으로 참는다. 그 자의 참단한 수준을, 방자하고 오만한 태도를, 거짓과 기교들을 참아낸다. 당신도 결국 하나의 점

선택 [내부링크]

2022, 수원 선택해야 한다. 욕망을 줄일 것인지, 노력을 늘릴 것인지. - 22. 04. 29

【창작수필】 회귀(回歸) [내부링크]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인간의 생은 고작 ‘처음’일 뿐이다. 생이 회귀하지 않는다면 하루의 삶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그래서 난 고민한다. 3년차에 접어드는 이 야간 알바가 내게 지독한 리스크인지, 학업과 생업의 절묘한 조화인지를. 생각은 길어지고 하루는 또 늘어진다. 때로는 감상에 젖어 책 한 권을 금새 독파하거나, 누군가의 강연을 찾아 어둠과 함께 잦아든 내 삶의 걱정과 불안을 이겨내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시간이 꽤 많이 주어진다. 그러나 하루의 피곤이 다음날로 이어지고, 환각에 취한 것 같은 졸음은 내게 남아있을 지 모르는 총기를 다 앗아가는 듯 하다. 나는 이곳에서 썩어가는 중인지, 피어가는 중인지 모르겠다. 한 치 앞을 알 수도 없고 타인이 되어 나를 조망해 볼 수도 없는 기막힌 인생사, 혼자만의 싸움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것은 늘 아이러니 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같은 고민으로 회귀한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를 말이다. 어쩌면 이 고민만이 인간사에서 영원히

【창작수필】 분노(憤怒) [내부링크]

@kaleamorgan, Unsplash 시민의 분노는 늘 공허하다. 분노의 대상을 특정할 수 없기에. 공정과 상식을 표방했던 이들의 실상도, 논란을 실어나르기 바빴던 이들의 당연한 침묵도, 주어진 시대정신을 이행하지 못한 채 사분오열했던 집단도, 숱한 부정의와 몰상식의 화신인 그를 그저 인내하기 급급했던 나의 대통령도. 그들에게 다 흩어진 내 분노는 힘을 잃는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로 신음해봐야 그 뿐이다. 우리는 어디에게로 향할 지 모르는 신음을 그저 내뱉을 뿐이다.

【구원(救援)】이동하 『장난감도시』, 소설의 비극은 폭력일까 [내부링크]

@monohont, Unsplash 장난감 도시 저자 이동하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09.12.21. 어머니의 죽음은 내 작은 우주의 붕괴였다. 우리 삶이 지닌 근원적인 비극에 대해 눈을 뜬 것도 바로 그 죽음을 통해서였고, 아직도 코흘리개 중학생의 마음속에 인생의 보다 깊은 곳을 지나온 듯한 느낌을 준 것도 바로 그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동하,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비극 #죽음 #한국전쟁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삶의 붕괴는, 6·25 전쟁 이후로 망국을 향해 치닫는 나라의 죄 없는 국민들이 떠안았던 현실적 고통이다. 누구도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했다. 허우적댈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우리는 절망에 잠식돼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살게 하는 희망은 자라날 아이들의 존재에 있었다. 그들은 이 아이들이 무너져 가는 나라를 재건하고, 오늘의 가난과 비애를 역전시켜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이 힘겨운 생애를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군대 이야기 ①】어쩌다 마주한 [내부링크]

Philosophenweg, Heidelberg 2018년 8월, 나는 하이델에 있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치열하지 못했던 입시 생활을 청산하고 입학했던 대학교는 실망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실망하기로 작정했었을 지도. 교통부터 시작해서 수업, 학과 등 캠퍼스 모든 게 불만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여가며 또다시 '현재'를 살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즈음 불현듯 눈에 들어온 독일 어학연수 공고가 마음을 사로잡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대한 설렘이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경비나 여타 다른 현실적 여건들을 고민해보니 역시 군대가 문제였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곧바로 입영 신청서도 넣었다. 연수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는 날 2주 뒤로. 군대 정도는 희생시켜야 값질 것 같았다. 설렘으로 시작한 이 감흥이 말이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유럽이 열렸다. 정신없었던 군 생활을 끝내고 지난 여행을 돌아보니, 그 여행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내 짧은 시야와 식견을 반성하게 하였으며

【구원(救援)】박찬욱 『올드보이』, ‘복수’라는 성격 [내부링크]

올드보이 Oldboy (2003) 올드보이 감독 박찬욱 출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개봉 2003. 11. 21. / 2013. 11. 21. 재개봉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기분 나쁘도록 완벽한 영화였다. 영화 곳곳에 새겨진 신화나 성경 모티프 때문에도 그러했지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영화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그러했다. 박찬욱 감독이 천명했듯이 <올드보이>는 '어떤 이야기를 서서히 문을 열어간다기 보다, 다짜고짜 어느 순간에 관객들을 툭 들어가게' 만든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관객이 영화에 들어간 순간은 이렇다.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와 사랑이 함께 시작되는, 극적인 절망과 현실이 함께 너울거리는 그런 순간이다. 복수를 관조하는 영화 복수를 논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특히 복수 시리즈를 배출한 박찬욱 감독의 시선은 복수 그 자체보다 ‘복수를 이해하는 과정’에 있었다. 복수를 관조하는 것, 그리고 관조의 대상으로 복수

【감히, 정치평론】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20대 대선’ [내부링크]

20대 대선이 열흘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양당 후보의 지지율이 초접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무수한 분석과 평가들이 뒤틀리지만 현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을 제시하고 싶다. 우선 첫 번째 틀은 기득권에 대한 상이한 이해, 그리고 두 번째 틀은 세대 포위론이다. 먼저 기득권에 대한 상이한 이해란 이렇다. 현 정부와 집권당을 기득권으로 상정하여 이들을 개혁에 실패하고 실정을 초래했으며 ‘내로남불’행태까지 보인 집단으로 바라보는 한 축이 있다. 반면 윤석열을 위시한 검찰 집단과 언론 집단 그리고 그들과 궤를 같이 하는 대표 야당을 기득권으로 상정하여 이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한 축이 존재한다. 임기 말을 향해 가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45%에 다다름에 따라 정권 교체론과 정권 재창출 여론은 전례 없는 박빙 상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정권 교체론이 지표상으로 우세한 점은 사실이나, 40%를 겉도는 정권 재창출 여론에 비해 최근 45%를 넘어 50%를 육박하는 대통령 지

‘공정’이라는 허상 [내부링크]

마음을 다해 응원하던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했다. 많은 날들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왔던 이유는 내가 믿는 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진실하고 따뜻하며, 실력을 갖춘 사람이 결국에 선택을 받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언론과 공론장에 대한 분노를 삭힐 수 있었다. 순리를 좇아가리라 여겼기 때문에. 서슬퍼런 경쟁 속에서 앞서감과 뒤쳐짐을 반복하는 내 삶도, 그래서 선순환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삶이 나를 속이지 않을테니 시간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의해 면직이 확정될 때, 수많은 의혹과 비리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언론은 없었다. 그리고 각종 기관들이 표차를 벌려 결과를 발표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써가며 여론을 형성해왔다. 결국 여론조사는 옳았는가? 공표 금지일을 앞두고 두자리수에 가까운 승리를 예측했던 기관과 언론들은 고작 1%도 차이나지 않는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위세

기만(欺瞞) [내부링크]

너에게 묻노라. 인간의 행위가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참여하여 저 참담한 이를 선택했으면서도 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가. 각종 이권과 욕심으로 배를 채우는 목사들은 차라리 속까지 검어서 화도 나지 않는다. 이리떼처럼 세를 키워 궤변을 늘어놓는 자들은 우습다. 오류의 가능성을 몸소 느끼면서도, 끝까지 한쪽 눈을 뜨지 않는 겁쟁이들에게는 조소도 아깝다.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않으며 판단을 유보하고 부화뇌동하는 당신에게는 너무 화가 난다. 자유의지와 이성의 존재를 망각한 채, 더럽고 추악한 이들의 욕망에 이용당하는 당신의 젊음이 아깝다. 왜 생각하려 하지 않는지, 어찌하여 의심하지 않는지, 당신의 신앙은 방관의 다른 말인지 묻고 싶다. 유대인의 오류와 싸웠던 예수의 투쟁을, 예수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당신이 더럽히고 있음을 당신은 알까. 예수는 약자의 삶에 서서 투쟁의 삶을 살았다. 그는 ‘

양귀자 『모순』, 관조할 수 없는 삶의 모순에 대하여 [내부링크]

@babybluecat, Unsplash 모순 저자 양귀자 출판 살림 발매 1998.07.04.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 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름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지고 마는 거야..... 4. 슬픈 일몰의 아버지, 85p #모순 #삶 #선택 #기필 삶의 무궁한 모순들은 언제나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되, 인식하게 될 때에는 감당하기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이모와 엄마의 운명을 가른 중매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였으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두 사람의 삶이 가진 모순의 무게는 둘 모두에게 버거워졌다. ‘사는 것 같은’ 삶은 바랐던 부자 이모와, 자신의 삶을 비관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삶의 동력을 얻었던 가난한 엄마의 삶은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하여 [내부링크]

@hellocolor, unsplash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저자 앤드루 포터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9.05.13. #사랑 #감정 #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과 감정이 언제나 인간사를 가득 메운다. 아마 그 모든 일들의 발생은 ‘내가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헤더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로버트를 마주했듯이, 우리는 때로 누군가로부터 나의 연원을 찾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결핍투성이인 인간 존재는 또 다른 결핍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혹은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누군가로부터. 헤더가 편안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주는 나이 든 남자에게 끌렸던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헤더의 남자 친구 콜린은 결핍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 강인한 존재다. 이에 비해 로버트는 젊음의 혈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아내와도 별거 중인 힘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콜린과 비교되는 로버트의 연약한 모습이 헤더에게는 따뜻한 일렁임을

한 해를 보내며 [내부링크]

2021, 신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힘들었던 지난 수 년의 시간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보답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잘했다. 열심히 했다. 치열하게 찌질하게 발목 붙들어가며 노력해보고 싶었다. 내가 얻지 못했던 것들이 내 부족한 노력 탓 이라면, 적어도 그 이유만은 앞으로의 삶에 변명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스스로에게 죄 지은 마음으로 살았던 청춘의 한 꼭지를 벗어났음을 선언한다. 아홉 시간의 야간 알바를 마친 뒤 단 한 시간을 자고 학원으로 이동했던 날들, 불 꺼진 건물들 사이를 되돌아오며 느꼈던 매 주의 불안과 기대를 기억한다. 늘 급하게 써서냈던 답안지 한 장에 내 앞으로의 삶이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누구의 위로도 내게 편안함에 이르게 하지 못했기에 그저 이렇게 스스로 기록할 뿐이다. 참 고생 많았고 너의 노력에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겸손과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자고 말이다. 지난 한 해를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고, 특히 이

관계들 속의 '나' [내부링크]

@mischievous_penguins, Unsplash 자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하는 방식, 이러한 ‘각자의 철칙’이 바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 #행복 #삶 #가치 애덤 스미스 원저의 <도덕 감정론>을 해제한 이 책은 삶에 대한 직선적이고도 풍부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책을 덮기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이 숙제로 다가왔다. 언젠가 해왔던 삶에 대한 고민들이 군대라는 공간까지 이어졌고 이곳에서 더 무거워지던 참이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들 말이다. 잡다한 상념들이 나를 괴롭힐 때쯤 문득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가.’ 나는 항상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갈등을 겪어왔고 비슷한 이유로 문제 가운데서 표류했다. 문제와 타인들을 탓하기 전에 내 삶에서 반복되었던 문제적 습관과 관성을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이 이러한 답답함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신에게 철칙이 있다면

홍상수 &lt;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gt;,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침묵하는 것이 늘 옳을까 [내부링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2) #고독 #주체 #책임 #언어 홍상수 감독의 열 네번째 장편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문제의 역작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화려했던 스캔들 덕택에 그의 작품들 또한 관객들에 의해 재평가되었으며, 그를 잘 알든 그렇지 못하든 그에 대해 한 마디씩은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그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홍상수 감독은 평론계 전반에서 상당히 능력있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주의에 기반한 에세이 필름적 실험 기법은 관객이 직접 영화를 해석하고 해체하는 데 능동성을 갖게 함으로써 불편한 새로움을 선사했다. 위 영화도 2013년 2월 제 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다는 점에서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영화에서 해원은 고독을 마주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죽음과 고독의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해원이 이와 맞서는 형식의 대결구도를 보여준다. 반복해서 꿈을

밤을 사는 사람들의 초상 [내부링크]

#일상 #공병 #폐지 #야간편의점 코로나 19가 휩쓴 일상 속, 잠시 거쳐 가리라 여겼던 편의점 야간 알바는 벌써 두 해째를 맞았다. 여러 불가피한 이유가 존재했지만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밤을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달라서, 익숙한 대면 속에서 뜻밖의 의미를 찾아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어서, 그리고 밤새 공병을 줍는 고된 손에 동전 몇 푼을 쥐게 해드릴 수 있어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일은 고되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대학생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러나 나는 시간을 파는 쪽을 택했다. 나의 고됨은 뜬눈으로 밤을 보냄으로써 밤낮을 몇 번이고 바꾸는 데 있다. 밤이 선생이라 여겼던 탓에 몸은 힘들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업무적 이해도나 규칙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루에 두 번 폐지를 가지러 오시는 할머님을 웃으며 맞이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다른 할머니는 안된다.

&lt;응답하라1988&gt;, 따뜻한 가족 서사 이면에 담긴 학벌주의의 민낯 [내부링크]

@他年, pintereset #학벌 #교육 #추억 #레트로피아 “어마어마한 역사적 일들을 소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경험했을까.”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1988>을 구성하며 던진 질문이다. 이제껏 <응답하라> 시리즈를 모두 성공적으로 연출하며 능력을 입증한 그조차 1988의 시대적 배경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문화적 개화와 고도성장,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중심에 민주화 운동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족 이야기에 너무 큰 정치적 이슈들이 들어서지 않도록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제한했다고 말한다. 드라마의 정체성은 가족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88>이 감추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학벌주의에 대한 열망이다. 학벌주의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줄곧 감추지 못했던 낡은 이상이다. 현대 사회의 개방성을 논하기 이전에 <응답하라 1988>에 담긴 학벌주의는 서사적 측면, 현실적 측면, 그리고 수

서촌, 그리고 정동길을 거닐며 [내부링크]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홍상수 감독은 이제껏 외면해왔던 다른 시선을 대중들에게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노동과 역사의 시간’이다. 여성 산책자로서 그가 내세운 해원은 서촌과 남한 산성을 거닐며 존재의 본질을 희구했다. 이는 이전의 영화에서 그가 여성의 주체성과 역사를 스크린에서 배제했다는 숱한 비판과는 다른 맥락이다. 해원은 그를 욕망하는 남성들 틈에서 죽음이라는 본질을 향해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이 무책임해보이고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라도, 삶의 본질과 근원을 찾는 두렵고 슬픈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영화는 죽음의 이미지를 강조함에 있어 서촌이나 남한산성과 같은 고고한 장소를 선택하였다. 이는 세속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고풍스러운 배경을 두고 선조들의 노동과 삶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해원의 삶은 선조들의 수동적인 노동의 결과물을 통해 위로받고 있다. 맹목적인 노동에 의미없이 스러져갔을 삶들이 후대에 또다른 의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민규동 &lt;간신&gt;, ‘쾌락’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내부링크]

간신(2015) #쾌락 #고통 #철학 영화 <간신>은 연산군 융의 폭정과 성 도착증에 대해 그린다. 이는 군주시대의 왕이라는 절대적 권력과 인간의 본능적 쾌락,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가정사가 얽힌 서사로 전개된다. 이러한 연산군의 폭정은 관객들이 일부 공감할 수 있는 맥락을 제시한다. 공감의 맥락은, 첫째로 상상이다. 욕망하는 무엇이든 다 현실화할 수 있는 신분적 지위를 가졌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때 쾌락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으로서 이해되기 때문에 상당한 자유를 갖는다. 법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인식되기 이전의 것들, 그러니까 자연 상태의 인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쾌락과 무질서 그리고 욕망 같은 것들은 기본값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규범이 없거나 당신이 규범을 초월한 존재라면 당신의 쾌락은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산군의 쾌락추구는 일부 이해될 수 있다. 그가 규범 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신적 고통이다. 자기 연민을 가진

이안 &lt;Life Of Pi&gt;, 이성과 본능이 함께할 수 없다면 [내부링크]

Life of Pi(2012) #이성 #본능 #공존 영화를 두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문외한이었던 어린 나조차도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쯤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느껴졌으니. 그래서 이 완벽한 영화에 남은 아쉬움은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존재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오간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끌었던 것은 그 호랑이가 소년의 본성이고 소년 자신은 이성이라는 해석이다.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쪽은 이성을 갖춘 소년이지만, 정작 발생한 문제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해결하는 것은 본능 그 자체인 호랑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맹수의 표본과도 같은 이 호랑이는 삶과 죽음이 결정될 매 순간마다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는 어떠한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다. 소년이라면 수백 번 넘게 주저했을 결정들을 그는 단순에 해치운다. 호랑이는 겁먹은 소년이 내세운 또 다른 ‘완벽한’

누구도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내부링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2009) #무의식 #초자아 #자기방어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어린 마이클 역을 맡은 데이빗 크로스의 성장에 맞춰 수년 동안 촬영을 이어간 특별하고 실험적인 영화이다. 마치 해리포터 연작처럼, 관객들은 아역배우의 성장과 다른 배우들의 늘어가는 주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단 한 편의 영화에 두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시대성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배경마저 전후 독일을 무대로 한다. 전범 세대에 대한 후대의 책임 추궁과 비판은 전후 독일의 시대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단상이다. 스무 살 이상이 차이 나는 두 남녀의 지위는 전범 세대와 후대의 대표 격이며 그들의 아슬아슬한 사랑은 객관적인 가치 판단을 모호하게 한다. 사랑하는 이가 전범자라는 사실과 문맹이라는 실체적 아픔, 그리고 일반적인 윤리 기준을 상회하는 나이차 등이 그렇다. 한나는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나치 친위대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응답된 하루 [내부링크]

제가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갖게 된 한국 교회에 대한 실망감과 제 안의 여러 물음을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 잊어왔던 것 같습니다. 답하지 못하는 물음들이 자꾸 생겨났고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합리적인 척 신앙과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제게 벌어진 몇 가지 일들이 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이를 홀로 간직할 수 없다고 느껴 몇 자 적어봅니다. 기록의 기쁨을 알게 된 후로 제 책장에 쌓인 가장 많은 기록들은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나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코멘트를 더해 기록에 남기던 것들, 선교나 개인적인 경험들을 기록해온 신앙 일기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떠났던 수련회에서 받아 적은 설교 기록들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기록들은 책장 한편에 잠들어 있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욕망들이 언젠가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

새삼 [내부링크]

언젠가부터, 내가 누군가에게 아픈 손가락이 되길 바랐다. 나는 동정받기를 원했고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었다. - 2021, 1月

최진석 교수, &lt;젊음이 묻습니다&gt; 34회 강연 스케치 [내부링크]

우연한 기회로 강연기획 동아리 ‘젊음이 묻습니다’의 서른 네 번째 강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속에서 치뤄진 올 해 두 번의 강의는 줌(Zoom)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3월 이루어진 상반기 강연에는 제로웨이스트 리필샵 알맹상점 대표님께서 명사로 나와주셨고 이번 8월 하반기 강연에는 최진석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님께서 명사로 자리해주셨습니다. 평소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젊다의 명사로 출연하신다는 소식에 기쁨이 컸습니다. 강연은 지인의 소개로 접할 수 있었고 본인은 ‘젊음이 묻습니다’의 일원이 아님을 밝힙니다. 젊음이 묻습니다(이하 젊다)의 하반기 강연에는 최.......

삶과 사람 [내부링크]

누군가와 같은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무척 설레이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적어가며 언젠가 이루어질 만남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만남을 아주 열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는 그들을 어딘가에서 만났다. 화면에서, 책에서, 혹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는 말들로부터.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저 그들의 존재가 내 삶에 미친 영향과 앞으로 내가 이룰 무언가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그들도 나를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격변의 세월이다. 질병과 함께 온 변화의 흐름에 많은 기대와 불안이 공존한다. 이 불안정 속에서 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 결국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이다. #생각 #일기.......

스파이크 존즈 &lt;Her&gt;, 당신의 공허함을 누가 채울 수 있을까 [내부링크]

#존재 #행복 #이별 #사랑 인간 존재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 타 종과 배타적인 요소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은 그 이성을 기반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대한 전통적인 담론, 즉 ‘인간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하다.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 전문가인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저서 &#60;행복의 기원&#62;에서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느기는 원천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담론은 불가침의 진리와 믿음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여행, 그리고 삶 [내부링크]

과분한 기회로 여름날의 유럽을 이리저리 활보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쥐고 에코백에 최소한의 짐만 넣은 채로 동네처럼 그렇게 다녔다. 그때의 여행이 귀했던 까닭은 지난했던 나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얻지 못해 애쓰고 괴로워했던 일들 모두가 이 넓은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몰두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나를 만나고, 다시 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여행의 정의다. 프라하에서 만난 소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굴렁쇠를 들고 인도의 전통춤을 선보였던 소년이 떠오른다. 하필이면 소년에 앞서 마술 공연을 했던 한국 남자가 나를 반가워하.......

[군대 이야기 ②] 27사단, 이기자 부대에 가기까지 [내부링크]

언젠가는 꼭 써야겠다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 속을 수 없이 맴도는 말들이 있다. 표현되고 싶은 욕망으로 머물러 있는걸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부채감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독촉받는걸까. 그게 무엇이든 내게서 떠나지 않을 바에는 적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 공간은 그리 주목받지도 않는,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위한 그저 잠시 머무는 공간이니까. 그래서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대하기 한 달 전까지, 나는 독일에 있었다. 입대일이 9월 18일이었고 한국행 비행기가 8월 30일자였다. 당장 머릿속으로 생각해도 꽤 다이나믹한 일정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반복해서 해온 탓인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랬다고. [내부링크]

애매한 노력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유보하면서 난 참 많은 것들을 원하고 바랐다. 후회하는 게 지겹다 못해 감정이 닳고 닳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많이 지치고 답답하냐 묻는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인것을 받아드렸고, 그 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깨달았던 바들을 지금에 와서 부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어설픈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설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작조차 하지 않으며 발을 담금으로써 얻게 되는 초라한 타이틀을 부정하는 것. 그렇게 계속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채 제자리를 맴도는 이를 뜻한다. 그런데, 당신은 정.......

늦봄, 2020 [내부링크]

당신의 존재 위에 내가 세워졌음을 압니다. 나의 오늘이, 당신의 존재한 덕분에 얻어진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 민족의 하나님.” “필생의 염원.” 상고이유서 극한의, 외로운 투쟁 “목사님이 보호자였죠.” #늦봄2020 #문익환목사 #민주화운동

조진모, &lt;비와 당신의 이야기&gt; [내부링크]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강하늘 주연의 로맨스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여자친구와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는데 무언가 몽글몽글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왔네요. 무엇보다 작중 배경인 2000년대 초중반을 둘러볼 수 있어, 코로나로 인해 잠시 묻어둔 과거들이 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시대상이나 배경이 극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영화 시놉시스 처럼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 인것 같아서요. 작중 인물의 경험이 얼마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조금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Synopsis 뚜렷한 목표나 열정 없는 삼수생활을 연명하던 ‘영호’는, 어느날 기.......

지나가는 하루 [내부링크]

비 오는 날은 소방관들에게 위안을 준다. 반면, 농사 짓는 이들에게는 불안감을 안긴다. 현상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읽힌다. 다들 가지고 있는 것들과 속해있는 환경이 다르므로. 그 뿐인 것이다. 현상을 다르게 읽는 나와 다른 이들을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이게 어렵다. 검찰 권력을 남용해 한 가정을 짓밟고 권력을 사유하여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자 했던 이를 ‘구국의 영웅’을 운운하며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예수의 삶을 근거로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스스로 대통령이기를 포기했던 사람을 용서하라 외쳤던 목사님 부부가 8월 15일 누구보다 먼저 광화문을 찾았던 것을 이해할 수.......

변화 [내부링크]

훗날 인생 전체를 조망할 때, 이 또한 작은 변화와 노력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서면을 빌리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전언은 이것이다. 나는 옳은 길을 향해 변화하고 있노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하라고. 지난 몇 년간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꾸는 꿈에 걸맞게 노력하지 못했던 수험생활, 자신에게만 관대하게 굴었던 군생활, 숱한 실패해서 오는 무력감과 학습된 게으름 등. 순간순간 빛나던 때가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역과 동시에 코로나가 덮친 일상의 파괴는 나도 빗겨가지 않았고 내가 택한 대응책은 편의점 야간 알바생이 되는 것이었다.......

2021. 07. 03. 토. [내부링크]

내가 걸어도 되는 싸움인지, 강한 의심이 든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지나갈 1년에 미련을 더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기회와 과정을 담담히 겪어나가고 싶다. 무엇을 위해 싸웠든, 그 과정으로 말미암아 기쁠 수 있는 그런 노력을 하고 싶다. 내가 이루지 못해 늘 전전긍긍하며 아파했던 노력. 열매를 취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하루일기 #일기 #일상 #생각 #글

대학생 청년비서관과 MZ세대의 공정에 대해 [내부링크]

청와대의 거듭되는 인사 난항과 ‘공정’ 정부의 인사 문제가 연일 시끄럽다. 그동안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 인재들을 안타깝게 놓친 경우도 많지만,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자리에 오른 이들도 더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도자기 장관으로 불렸던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생각나고 후자는 단연 윤석열 전 검찰 총장이 떠오른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야당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실책에 선긋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후보자들을 확실히 지켜내지도 못한 수렁에 빠진 격이다. 이번 청년 비서관 임명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스물 다섯 살의 정치 신예를 파격적으로 발탁해 이준석 효과.......

순리 [내부링크]

기합만 가지고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굳이 몇 천 시간, 혹은 몇 만시간의 법칙이라는 휘황찬란한 논리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살다보면 이해가 된다. 수고로이 일한 자들은 그만큼의 삯을 받을 것이고 때로 순리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느껴도 당신의 마음이 당장에 허하진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기만 했다면. 물론 노력의 배신은 우리 삶의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다. 자우림 밴드의 ‘꿈’은 노력의 좌절이 주는 박탈감을 노래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노력 그 자체를 희구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노력을 희구한다’는 말은 물론 목적지가 아닌, 길을 바라보는 일이고 그 자체로 어불성.......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_최진석 교수 [내부링크]

https://youtu.be/58xGxpTBTXc 욕망은 충동이고 욕망은 생명력이다.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자발성이다. 또한 당신을 다른 영역으로 이끌어 낼 의지이다. 집단을 움직이는 이성과 달리, 욕망은 자신만의 것이다. 고유한 영역이다. 지식과 경험의 확장은 당신을 자유하게 하였나. 그렇다면 행복을, 혹은 성숙을 가져다 주었나. 그도 아니라면 창의력을 안겨주었는가. 당신에게 지식과 경험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식으로부터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그대의 신념이나 이념을 이루는 것은 결국 지식이다. 지식의 형태이다. 보편적이고, 객관성을 지닌 힘이다. 존재하지 않으나 지배력이 있다. 당신은 자신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는가. 자신만의 삶을 온.......

일상 [내부링크]

일상에 스며드는 작은 인간관계가 좋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함께 맛있는 걸 먹는 일은 훌륭하다. 이에 못지 않게 즐거운 일은, 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일이다. 전문성을 갖춰 나를 채워넣는 것 말이다. 지금 내 눈 앞에 남겨진 일들은 어떤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내 삶을 무대로 말이다. 무엇으로 그려 나가고 또 어떻게 채색할 것인지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지 그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살아갈 일상을 말이다. 물론 지금의 일상도 존중하며 #일기 #일상 #25

무라카미 하루키 &lt;상실의 시대&gt;,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내부링크]

#무라카미하루키 #상실의시대 #노르웨이숲 #사랑 #죽음 그날 밤, 나는 그녀와 잤다. 그러는 것이 옳았는지 아닌지 나로선 알지 못한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역시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은 한 번뿐이다. 모두에게 그렇다. 밀란 쿤데라의 저서 &#60;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62;은 삶은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던져진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무대 위에 던져진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어떤 선택을 희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하루키가 삶을 기술하는 관조적 태도를 불편해한다. 예컨대 혁명에 대한 비관적.......

리들리 스콧, &lt;킹덤 오브 헤븐&gt; [내부링크]

영화 &#60;킹덤오브헤븐&#62;을 보았습니다.워낙 유명유명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신앙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과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볼 수 있어 특히 좋았어요. 규모와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던 극장판이 혹평을 받았음에도 감독판의 등장으로 세간의 평가가 뒤짚어졌죠. 십자군전쟁이라는 워낙 방대하고 첨예한 역사 배경을 다루다보니 짧은 러닝타임에 다 담기가 어려웠던 탓일까요. 극장판에서는 부자연스러웠던 서사구조의 진행이 감독판에서 더욱 매끄럽고 탄탄하게 이어집니다. 그래도 신앙 이면의 ‘사람’이라는 가치를 들여다보는 주제의식은 극장판과 감독판 모두 선명히 드러납니다. 끝없이 생각에 잠기게 되는 영화, 지금부터 살펴보.......

길 정거, &lt;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gt; [내부링크]

이야기와 사람은 결국 한 시대에 속한다. 90년대 미국 캠퍼스에 펼쳐진 자유와 낭만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그들의 문화, 사람들의 분위기, 청소년의 고민들이 내게 낯설지 않고 심지어 그립기까지 한 것은 이 시대에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때문에. 공감의 미학, 그리고 표현의 예술. 인간의 위대함은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이러한 공감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감정의 촉매이자 영원한 예술의 플롯이다.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보자. 당신의 삶을 이룬 무수한.......

민규동 &lt;간신&gt;, 쾌락에 대하여 [내부링크]

영화 &#60;간신&#62;을 보았습니다. 개봉 전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모았으나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뒀던 영화로 기억됩니다. 다만 2차 판권 시장에서는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고 하네요. 영화 자체의 매력이 있었던 거겠죠. 그저 여배우들의 노출 영화로만 소비되기엔 안타까운 영화인 듯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눈길이 갔던 점은 노출보다는 배우들의 열연과 다채로운 영상미였습니다. 매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수없이 회자되었지만, 연산군 융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몇 없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줄거리 소개와 함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한 역질문으로 글을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차분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y.......

얀 마텔 &lt;파이 이야기&gt;, 이별에 관하여 [내부링크]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 순간에 대한 동물적 집념과, 지나버린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름다워 보일 뿐이다. 하지만 파이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이야기 그 자체로 아름다웠으니까. 망망대해에서 신을 부르짖던 소년이, 허기와 외로움으로 지친 영혼으로 호랑이 한 마리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별과 함께 끝났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렇다면 그가 베푼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사랑’이라는 관계가 성립 가능한 만남이었을까. 살면서 몇 번을 반복해서 마주치게 되는 작품이 있다. 흘려보냈던 누군가가 어느새 다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일처럼, 이 소설이.......

프로스페르 메리메 &lt;카르멘&gt;, 아름다움은 죄를 물을 수 없나 [내부링크]

세비야의 한 군부대, 담배공장 여공들을 흘겨보는 해군들. 그 수많은 여인들 중에 카르멘이 해군들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해군하사 호세. 어느 날 여공들 사이에서의 다툼으로 서까지 오게 된 그녀를 그는 홀린 듯이 놓아주게 된다. 그 일로 해군하사 호세는 영창 신세를 지게 되고, 직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비극적인 사랑에 빠졌음을 시인하며 그녀와 엮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르멘을 사이에 두고 해군 중위와 다투게 되고, 모든 것을 놓아두고 떠나야하는 운명을 부여받게 된다. 일평생을 지켜오던 가치와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는 카르멘과 함께 떠난.......

무라카미 하루키 &lt;상실의 시대&gt;, 단 한 번뿐이라는 두려움 [내부링크]

그날 밤, 나는 그녀와 잤다. 그러는 것이 옳았는지 아닌지 나로선 알지 못한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역시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 은 한 번뿐이다. 모두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다. 밀란 쿤데라가 그의 저서 &#60;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62;에서 밝혔듯이, 삶은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저 던져진 것이다. 무대 위에 던져진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어떤 선택을 희구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는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

나의 20대가 [내부링크]

나의 20대가 이토록 느리게 흘러갈 지 몰랐다. 지나온 발걸음마다 후회가 남고, 그 후회에 감정이 쌓여 하루 하루를 붙잡는다. 문제의 근원을 찾는 일은 이제 생산적이지 않다. 다만 내 선택과 판단으로 이룬 실패가 쌓여 내 감각에 불신이 생겨버렸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어디쯤을 걷고 있고, 지금 이 순간 이 지점은 또 다른 날들에 어떻게 기억될까.

留保 [내부링크]

10대 후반의, 그리고 20대 초반의 나는 각기 다른 이유로 참 힘들어했다. 10대 후반은 지금은 옅어져가지만 부모님에 대한 일들로, 그리고 나에 대한 의문들로 많이 답답했다. 10대의 끝, 그리고 20대 초반은 얻지 못한 것으로 인해서 괴로웠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했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는 자격이 없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할애했건, 아쉬운 순간들이 얼마나 작은 차이로 지나갔건 사실 말할 필요 없는 이야기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한, 실패의 틈에서 단 한 번도 독하게 노력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고 내 선택과 무모함과 게으름을 저주해봤자 결국 제자리다. 그리고 중독이다 이제는. 그래도 살아내야 하니까. 내 자신을 더 이.......

행궁동 맛집, 존앤진 피자펍(JonnJeanPizza) 행궁본점 방문후기 [내부링크]

행궁동 최대 맛집 존앤진 피자펍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화덕피자를 좋아해 자주 가는데요. 오늘은 익숙한 신풍점이 아닌 행궁본점에 다녀왔습니다. 존앤진 피자펍(JohnnJeanPizza) . 존앤진 행궁본점: 장안동 28-2/010-7514-5189 . 존앤진 신풍점: 신풍동 32-1/031-253-5189 . 11:30 ~ 22:00 (브레이크 없음/마지막 주문 21:30) 존앤진 피자펍은 행궁동에 위치한 화덕피자 가게입니다. SNS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풍점의 인기에 힘입어 행궁본점도 개장했는데요. 행궁동이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부상하고 운멜로를 포함해 여러 양식집들이 늘어섰었죠. 하지만 꾸덕꾸덕하고 감칠맛까지 나는 화덕피자는 없었.......

수원 성대 맛집, ‘봉수육’에 가다! [내부링크]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원성대 맛집, 봉수육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웨이팅이 길어 가게 문간을 넘어서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말이죠. 오늘의 동행자는 바로 군 입대를 앞둔 대학 동기입니다. (왤케 늦게가,,) 다 먹고 나서는 군대에서 계속 생각날 거라고 하네요.. ‘예비’군인이 인정한 그 맛, 지금 알아보시죠. 봉수육 . 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전로108번길 11 . 율전동 299-6 1층 . 010-6392-0626 평일 17:00 - 24:00 일요일휴무 주말 17:00 - 24:00 일요일휴무 봉수육은 수원 성균관대 인근에 위치한 수육 전문점 입니다. 가게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SNS 맛집으로도 유명하더라구요. 평소에는 도저히.......

하이델을 떠나오며 [내부링크]

2018. 8. 31. 하이델베르크 무언가에 몰두하는 게, 천착하는 일이 내 공간에 갇혀 나를 가두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경쟁관계 속에 내몰려,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생존 방식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은 내가 돌아갈 곳에서 낯설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들이 나를 이끈 것은, 열망이 아닌 역설적이게도 안정에 대한 욕구이다. 엘리트로 인정받는 유명 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나를 향한 검증과 의문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것. 한 사람을 이루는 것들.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그리고 &#x27;그&#x27;라는 사람의 어떠함까지도. 그 모든 것은 그가 속한 공동체로 설명될 수 없다. 그 당연한 전제를 잊고 살았다.......

두 번째 [내부링크]

생애 두 번째 선거를 마쳤다. 대선, 그리고 총선.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각자의 바람들이 수 없이 엇갈렸던 날들이었지만 덤덤히 한 표를 행사했다. 정치와 사람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끔 했다. 이번 선거는 특히. 무수히 많은 심판론들이 오갔으며 도대체 누가 누굴 심판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난장판 속에 또다시 정치혐오에 빠지게 될까 두려웠었다. 그럼에도 선거는 이루어질 것이며, 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또 국민으로서 붙잡았다. 투표라는 권리를. 정치에 지치고 내가 가진 신앙의 모습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수 없이 실망하더라도, 투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이었다. 오늘은.......

일상을 기록한다는 건, [내부링크]

&#60;H2&#62;의 대사를 옮겨적으며, 오늘 선거의 개표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어떤 자극이었을까, 문득 깨달았다. 지난 1주일간 내가 확실히 게을렀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시간을 선용할 수 있었고 발전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닌, 철저히 하지 않은 것. 매 순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말했듯이 &#x27;고고하게 알은 체 하기 위함&#x27;이 아니라, 내 노력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원했다. 내 주위에게든, 물리적으로 닿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든 말이다. 패배의 관성 때문일까, 좌절된 학벌로 인한 피해의식 때문일까. 노력하기 싫었고 어차피 이룰 수 없.......

민주당 경선을 바라보며 [내부링크]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선되길 바란다. 그의 성미나 다소 저열한 스캔들 파동은 차치하고, 청소 노동자를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점령군 발언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분명한 역사의식과 당당함이 좋다. 그가 불의와 거짓에 타협하지 않고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중심을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실 그가 약점이 많은 후보란 걸 안다. 도덕적 검증과 여러 사건들에 대한 해명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경선시기에 다다르기 전까지 이렇다 할 당내 세력이 없던 그는 누구보다 공격에 취약한 후보였다. 그러나 각종 지표가 보여주듯이 그는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

영화 클립#2 &lt;간신: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그 처량함에 대하여&gt; [내부링크]

주제: 개인이 쾌락을 추구할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부제: 쾌락은 &#x27;온전히&#x27; 개인적일...

독서 클립#1 &lt;역사의 쓸모: ‘삶’에 대한 자극&gt; [내부링크]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