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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출된 활화지옥 ⅴ [내부링크]

오늘은 오후 4시에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지금은 12시이고, 그 전까지 별다른 계획이 없다. 원래라면 일주일에 나흘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해고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게가 망해버려서 할 일이 없다. 어떻게 프랜차이즈 카페가 그리 쉽게 망하지? 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왜 망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10m 내의 동네 카페가 있는데 원두 질이 좋고 행사도 자주해 도시임에도 신기하게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카페는 밤이면 와인 바로 변하는 내 단골 카페다. '현락'이라는 뜻모를 글자가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쓰여진 간판 아래로 나는 들어갔다. 점심 무렵에는 늘 그렇듯이 사장이 아니라 사.......

현출된 활화지옥 ⅵ [내부링크]

나는 잠에서 깨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1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쯤이면 동이는 점심을 먹거나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금요일에 입대했었으니 바로 주말이라 아무것도 안하고 보냈을 거고, 그러면 지금은 일주일이 흘렀으니 사람들과 친해졌을까? 동이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일주일 전 쯤에 동이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야, 나도 너처럼 남들과 부대끼는거 싫어하니 나는 괜찮다만, 다른 애들은 안 그럴거다. 너 고등학생 때도 학교 안에서는 적당히 유머있고 눈치 있어서 재밌게 놀다가 종례 끝나면 항상 조용히 집으로 갔잖아. 마치 원래 몰랐던 사람처럼. 아는 척을 해도 그건 하교길까지만 허용된거 였었잖아." "그렇지.........

대나무숲 [내부링크]

나도 날 잘 몰랐던 것이 그 날의 화나는 일, 불만 따위를 주변인들과 이야기 함으로써 쉽게 감정이 누그러뜨려진다. 혼자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만 난 꽤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차마 남에게 말 못할 이야기는 홀로 글을 썼는데, 그걸 주변인이 알게 될지는 몰랐다. 내가 한 것은 그저 글을 그만 쓴 것이었지만 다시 한번 끼적거려본다.

싸구려 신파극 [내부링크]

깊고 차가운 바다가 어쩐지 포근해 보이면 바다 위 길 잃은 선원은 바닷물로 목을 축이네 터지는 백린탄 속에서 사이렌은 음악으로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여우는 선각자로 모르핀과 카티논도 끊기면 우리가 봐왔던 영화와는 달리 상처만이 떠오를거야

악몽 [내부링크]

꿈을 꾸었다. 아주 어렸을 적, 열 살도 안 되었나 싶던 적.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호랑이, 사자, 표범 같은 무서운 욕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해 잡아먹는 다큐멘터리의 장면을 보았다. 아직 살아있는 동물을 동물이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 눈물은 단순히 잡아먹히는 초식동물의 애처로운 비명이 불쌍해서는 아니었으며, 또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여러 날을 굶어 겨우 먹은데다 사냥 중 상처로 그것이 마지막 식사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나이보다도 긴 세월을 살며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갑자기찾아와 내 잠을 깨웠다. 나는 꿈인 것을 확인하려 일어나 캄캄한.......

마주쳤다. [내부링크]

예상하지 못한 만남. 소문만으로 들었고 나와 더이상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작스런 만남. 가벼운 설렘은 찰나. 슬쩍 올라오는 당혹감과 잊었던 죄책감이 찰나를 묻어버렸다. 그냥 앞으로도 모른 척하자. 혀 끝이 쌉싸름했다.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내부링크]

출근길, 버스를 갈아타려고 뛰었다. 횡단보도 건너 정류장을 향해서. 그 버스를 놓치면 10분 정도를 기다릴테니 뛰었다. 정신없이 뛰어 버스를 올라탄 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휴대폰을 떨어트린 것을 알았다. 다음 정류장에 내려 길을 되돌아 갔다. 되돌아 가며 생각했다. 인도에 떨어져 있는 것이 더 나을까 아니면 차도에 떨어져 아무도 만지지 않은게 나을까 무엇이 더 나을까 지금 출근길이니 누군가가 가져가서 잃어버리게 되면 생각만으로도 답답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횡단보도 위 떨어져 아무도 못 만지는게 나을거라 생각했다. 정류장으로 되돌아왔다. 휴대폰은 횡단보도, 혹은 차도에 있었고 휴대폰을 들어보니 액정이 산산조각 나.......

초승달 [내부링크]

저기 저 하늘을 봐바. 가늘게 달이 떠 있네. 응. 초승달이야. 무슨 소리야. 뭐가. 지금은 새벽녘인걸. 저건 그믐달이야. 나도 알아. 초승달은 오른쪽에 있지. 그래, 그러니 저건 왼쪽에 있으니 그믐달이야. 아니, 저건 초승달이야. 무슨 소리야. 뭐가. 곧 있으면 여명이 올거야. 저건 그믐달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저건 초승달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자러 가자. 내일 나가야 하잖아. 잠을 잘 수가 없어. 왜. 저 초승달 때문에

단시 [내부링크]

사람의 눈을 보기 무서워 시선을 밑으로 내렸어 이 사람이 날 볼까 저 사람이 날 볼까 무서워서 먼 곳을 보았어 무서워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어 무서워서 표정을 숨겼어

갈증 [내부링크]

예전에 아무런 생각없이 여름 날, 지갑을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집에서 적당히 먼 거리에서 일이 있었기에 몸을 가볍게하고 운동삼아 걸어갔었다. 갈 때는 몰랐고 일을 마칠 때도 몰랐다. 10분 정도 후에 집으로 갈 때가 되어서야 지갑을 챙기지 않았음을 알았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 날, 나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뺨이 벌겋게 익었음을 알 수 있었다. 카페 앞을 지날 때,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물을 세 컵을 연속으로 들이켰다. 별거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었다. 그로부터 몇년 후 지금, 나는 왜 편한 집 안에서 심한 갈증을 느끼는가. 더운 여름 날도 아니고 집.......

제발 [내부링크]

제발 저의 알량한 도덕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착한 척하며 사는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발 저의 한심한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버리는 시간을 더 확실하게 바리지 마세요. 제발 제가 폭력럭이지 않다는 믿음을 주세요. 그런 생각이 추호도 안 들게 해주세요. 제발 제가 처음보는 이도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을 향해 한숨을 쉬지 않게 해주세요.

불안의 고리 [내부링크]

도로 한가운데 이유 모르게 멈춰있는 차를 보는듯이 불안한 생각만 들어 하지만 내가 이 생각이란 끈에 매듭을 묶으면 그게 내 목을 죌 올가미될까봐 또 불안해져

현출된 활화지옥 ⅰ [내부링크]

'압도적인 천재'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 나는 죽어갔다. 내 인생 전체가 죽음에 대한 찬가였다. 정신과 육체라는게 동시에 알맞게 맞아 떨어진 적이 없다. 정신이 맑으면 육체가 따라가지를 못하고 육체가 팔팔하면 정신이 흐릿해지니, 원래부터 발이 맞지 않는 존재였나 싶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니코틴도 알코올도 서보았지만 장기판은 펴질 생각조차 않으니 원. 카페인은 나름대로의 효력을 보았으나 밤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무엇을 함께 설계할 이조차 없고, 싫어하는 음식을 다시 먹어도 계속 맛이 없기만 하니 나는 모방하는 일조차 못하는 칠푼이리라. 지금도 원래걸 따라 쓰는 것에 벅차하지 않는가? 1.......

현출된 활화지옥 ⅱ [내부링크]

침대에 앉았던 종훈은 몸을 겨우 일으켜 주방 겸 거실로 갔다. 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있는 이 집은 종훈만의 공간이다. 원래는 원룸을 사려했으나 오히려 여기가 더 싸서 덥썩 계약해 버렸다. 다만 싼 이유는 있었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개미가 기어다니고 겨울에는 동상걸릴듯, 여름에는 열사병걸릴듯 한게 싼 집 값의 나름대로 이유가 되었다. 언제 이 집에 오게되었나는 대학교도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오면서 더 이상의 핑계거리를 찾을 수가 없던 종훈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부모를 설득해 산 것이다. 집안일을 혼자서 해야한다는 사실을 개같았지만 그래도 모든 결정을 나 혼자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종훈에게는 좋았다. 뭐 결정이.......

현출된 활화지옥 ⅲ [내부링크]

습관처럼 킨 노트북을 역시 습관처럼 닫은 종훈은 태블릿은 소파에 그대로 둔채 일어나서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의 일정을 원래보다 일찍 수행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아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늘 의도하지는 않지만 종훈은 이렇게 누워 있을 때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종훈을 찾은 생각은 종훈이 과거 좋아했던 록밴드의 라이브였다. 유럽 출신의 록밴드인 그들은 꽤 유면한 편이었지만 상업음악만이 판치는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면한 밴드가 아니었다. 그러다 데뷔한지 10년이 넘어서야 겨우 내한해는데, 예매가 여유로우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사람이 많이 몰렸고 결국 표를 구하지 못했다. 하.......

파편 [내부링크]

내게 멀어져 그냥 어서 도망가 내게 떨어서 제발 아무 말 말고 나는 이미 이런 것에 익숙하니 굳이 눈물을 너도 흘릴 필요는 없잖아 널 위해 너의 심장이라도 부셔지지 않도록 너도 언젠간 이런 내 마음 이해해주길 날 위해 - 2020년 10월 5일 작성

실 - 가느다래 [내부링크]

온 세상이 실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사람과 실로 연결된 세상. 가까운 이들일수록 실은 두꺼워 밧줄이 되고 먼 이들일수록 실은 얇아져 거미줄이 되는 세상 나와 너를 연결하는 실은 너무 가느다래. 실을 타고 눈사람들이 만들어지고 놓쳐버린 나침반에 향방을 알 턱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총을 들어야 했다. 아무리 실을 뭉쳐도 실타래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작아서 민망하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건 겨우 가느다란 실 한가닥.

사람을 먹는 자 [내부링크]

그 부드러운 피부, 나이에 비해 매끈한 피부는 부드러운 포르말린. 깊은 눈, 흰 이, 붉은 입술 그 모든 것에 사로잡혀서 뛰고있을 심장이, 근육이, 혈관이 숨겨진 곳은 날 궁금하게 했어. 난 분명히 너에게 내가 사람을 먹는다고 말했는데 그럼에도 넌 나에게 다가왔어. 너는 그 흐름을 아니 너는 그 이유를 아니 난 식칼을 가벼이 쥐고 기쁨을 잘랐어. 행복은 잘게 다지고, 남은건 냉동실에 넣었어. 고통은 약불에 졸였고 무감정은 가니쉬로 썼네. 그리고 난 너가 이미 떠나간 이불에 남은 너의 잔향을 맡겠지. 난 분명히 너에게 내가 사람을 먹는다고 말했는데 그럼에도 넌 나를 안아 주었어. 너는 그 책임을 아니 너는 내 마음을 아니 너는 아.......

위로 [내부링크]

때로는 뻔한 말에 위로받는다. 너는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다 잘될거야. 아무도 널 비난하지 않아. 뻔하디 뻔한 말을 싫어하기에 이런 말에 위로받지 않을줄 알았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질 때가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 자체에 위로받은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진심어린 눈과 부드러운 목소리의 위로 받은 듯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내부링크]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이미 일이 잘못된 후에 손을 써도 소용이 없다. 이런 뜻이다. 요즈음에는 뜻이 조금 바뀐 거 같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것보다 이미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참으로 옳은 말 아닌가? 우리는 소를 잃어도 이미 잃었다며 내버려두니 또 소를 잃었다. 수많은 소들이 되태어나고 외양간을 살아갔지만 결국 헤진 외양간에 수많은 소를 잃었다. 수많은 소들이 죽거나 사라졌다. 너무나도 많이 사라져 더이상 눈물조차 흘리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단순히 소를 아닌 희망을 잃었고, 단순히 외양간이 아닌 미래를 아니 고치지 않았는가? 하루하루 소를 잃을까봐 불안한 이들이여, .......

봄이 오려나보다 [내부링크]

나에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온화해지는 날씨도 아니고 얇아지는 옷도 아니고 슬슬 솟아나는 새싹도 아니다. 저녁에 환한 전등이 가득한 건물에서 나왔음에도 하늘이 어둡지 않을 때, 붉지도 않고 푸르를 때. 이제 곧 봄이 오려나보다. 하고 속삭였다.

현출된 활화지옥 ⅳ [내부링크]

"윽..."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펴며 얕게 소리냈다. 시계는 5시 10분을 가리키고 았었다. 의자에 앉은 있은지 벌써 1시간이 넘으니 몸이 피로하고 찌뿌둥하다. 내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윤이는 눈 앞에 문제집을 집중해서 풀고 있다. 나는 나윤이의 그런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아유, 윤나가 얼만큼이나 풀었을까? 궁금하네~" 내가 일부러 장난치듯 말했다. "...거의 다요." 나윤이는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내향적인 나도 이런 장난같은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왜인지 이렇게 해야 할 거 같고 하게 된다. 나윤이와 만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나는 나윤이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했겠지만, 지.......

초당진동수 [내부링크]

세차게 흔들렸다. 그의 눈이. 그러면 안되지만 너무 신기해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흔들리는 눈이 나를 목격해, 나는 모르는척 시선을 돌렸다.

빨래 下 [내부링크]

집 안에 빨래를 널면 어디 날아갈 걱정도, 옷이 날씨에 의해 더러워질 걱정도 없어 맘편히 있게된다. 그러다보면 빨래는 어느새 다 말라 그냥 옷이 된 듯하고 옷장의 품으로 들어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나의 귀찮음에, 내 목숨도 삼킬 내 귀찮음에 빨래는 다음 빨래할 때까지도 계속 걸려있다. 그 빨래는 어느순간 집 안의 풍향계, 또 친절한 환영자가 된다. 어머니는 빨리 치우라며 성화를 내시지만, 빨래를 치우지 않고 계속 놔두면 어느새 집의 체취가 베긴다.

흙, 눈, 입 [내부링크]

몸이 잘린 지렁이가 꿈틀대는 흙. 짓밟혀서 더이상 포슬거리지 않는 눈. 말의 의미를 잃어 말라버린 입. 그 흙에는 사람이 스몄고 그 눈 아래에도 사람이 스몄지만 그 입은 사람이 스미지 못하였다.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내부링크]

내가 전에 살았던 집은 골목길 맨 끝 주택이었다. 여러 세대가 사는 주택에서 나는 2층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문 앞에 바로 나무들이 우거져있었다. 군부대와 이미 떠난 공공기관이 있던 자리로 하나의 숲같았다. 하지만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그 숲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항상 현관문 앞에서 바라보았다. 그 곳은 내게 막힌 무림이었다. 봄이면 파릇파릇한 새싹과 여리여리한 잎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푸르고 환하여 더운 날에 청량을 주었다. 가을이면 붉게 노랗게 물들어 조금씩 떨어지는 잎을 보았고, 겨울이면 앙상했던 가지에 소복히 눈이 쌓였다. 이러한 볼거리에 내가 어떻게 그 무림을 싫어할 수가 있을까? 벌레가 많다는건 꽤 큰 단.......

그루잠 [내부링크]

수천년의 시간은 흘러 곶을 천천히 조각했고 수천개의 단어가 지나가 나는 슬며시 입을 뗐으며 수천명의 죽음이 새로운 싹을 발아시켰다. 꿰메어놓은 상처가 덧나고 강물은 계속 굽이치며 흘러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나을거야.

100 [내부링크]

'100'이라는 숫자는 큰 숫자인가 아닌가. 사실 오래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숫자라는건 한계가 없기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0'이라는 숫자마저 위는 당연지사, 아래로도 끝이 없다. 하지만 숫자라는 개념과 정의를 넘어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100'이라는 숫자는 기준점일 때가 많으니 많은 이들이 큰 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큰 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조차 적지 않은 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뭐, 당신이 천문학적인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한다면 예외겠지만. 결국 100은 엄연히 큰 수가 아니지만 큰 수일 수가 있다.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의 기록이 적지 않다 생각하리라. (100번째 기록글)

용산에 있던 망루 [내부링크]

세상에는 참 개같은 일이 많아. 아주머니가 중얼거렸다. 아주머니는 병원 로비에 텔레비전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용산에 한 철거될 건물 위, 망루에 불이 난 모습과 하늘을 떠다니는 컨테이너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그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심지어 환상같이 보였다. 현실이 아닌거 같았다. 그때 아주머니가 중얼거린 것이다. 세상에는 참 개같은 일이 많아. 아주머니는 막 입원해 중환자실에 간 남편을 두고 병원 로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 쓰러지셨고, 공사업체는 바로 병원에 보내지 않아 거진 두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에 오셨다. 정확히 왜 쓰러지셨는지 난 알지 못한다.......

한강 [내부링크]

퇴근길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들어, 내려야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문제는 한강 바로 전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데 버스는 이미 한강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하차벨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강을 넘을 버스를 타면 되지만, 그러히지 않았다. 예전에 몇 번 한강다리를 걸어서 간 적이 있었는데 요 몇 년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아니, 한강 주변을 살면서 한강 둔치조차 몇 년간 걸은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걸어갔다. 어두컴컴하여 다른 대교가 없다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한강인지 구별도 안될 한강을 보며 걸었다. 시원하고도 서늘한 산들바람에 눈을 지긋이 감고 걸었다. 그러다 물소리가 크게나 다리 아래 쪽을.......

자궁 [내부링크]

어머니의 자궁에서 편안히 지내던 그 생명은 꼭 열달이 지나자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생명은 어머니의 얼굴이 궁금하였고, 어머니와 말을 나누는 이들에 말에 세상이 궁금하였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나온 생명은 광명에 눈이 부셨다. 편안한 어둠에서 갑자기 밝은 빛을 보자 눈이 머는듯 했다. 또 처음 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고 있자, 그 생명은 무서워졌다. 그렇기에 그 생명은 울 수 밖에 없었다.

오늘만큼은 눈물짓지마 [내부링크]

은결의 바다가 온 세상에 흐르고 너의 눈은 별이 뜬 하늘을 갈라. 난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어 많은걸 바라지도 않을테니 제발. 별처럼 빨리 내 심장은 뛰고 하늘을 가른 유성은 무대 위 조명으로. 난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어 오늘은 남 눈치보지말고 눈을 감고 막춤이라도 추자. 눈 뜨지마 제발. 나의 전부여.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오늘만큼은 눈물짓지마. 우리가 서로에 눈을 맞추고 우리가 서로에 입을 맞출때 그 순간만을, 그 순간에 둘에만 집중하자 우리가 말의 늪에 빠져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도 결국엔 이겨왔었잖아? 너는 나에게 집중해. 나는 너의 미소와 너의 그 빛을 집중할테니 우리 내일이 아닌 지금에 집중.......

박동 [내부링크]

갑자기 심장의 박동이 느껴질 때, 심장은 평소에도 계속 뛰고 있지만 그 감각이 느껴질 때면 짐짓 두려움에 물들어버린다. 별 일도 아닌 것이 다가오기만 해도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면 심장이 내 편안함을 거부한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그 무섭토록 뜨거운 피가 빠르게 펌프질되고 있음을 느낄 때면, 그 뜨거움에 온 몸이 서늘해진다.

내게는 아름다웠던 [내부링크]

추워서 견딜 수 없을 때 서로를 껴안고 누워 서로의 체온을 난로 삼아 몸을 따뜻하게 데웠었네. 잠에서 깨고 손을 아무리 움직여 더듬어보아도 손에 닿는 몸이 없자 그제야 오래전 떠난걸 기억해내네. 되뇌어보네.

믿음 연산 [내부링크]

대체 무엇을 믿으라는 건가 단순히 가까운, 혹은 가까웠던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으라는 건가 가족이라는 개념은 때때로 제일 멀게 느껴진다. 피곤해서 자고 있는 날 뒤로하고 뒷담을 하는게 가족인가 혼날까봐 마음을 졸여야 하는데 그게 가까운 사이인가 애초에 그런 관계라면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 관계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혼자 살아갈 날을 꿈꾸고 있다.

[내부링크]

연락이 잦은 친구가 아니다. 원체 조용하고 내성적인 친구다. 고등학교 때 친해졌는데 나도 그런 성향이기에 서로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말을 튼 이후로는 꽤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도 그 친구도 성인이 된 후, 원래의 성향에 맞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간혹 다른 친구를 통해 안부를 주고 받았다. 그랬던 그 친구가 아주 오랜만에 메세지를 보냈다. 슥 단 한 글자를. 슥. 무언가가 지나갈때 '슥 지나갔다.' 라고 하지 않나? 그게 무슨 말이지? 그보다 뭐가 지나갔다는거지. 슥. 무언가가 떨어지기 직전에 나는 소리같다. 뭐가 떨어지는데? 대체 무엇을 떨어트리고 마는건데? 슥. 내가 잘 모르는 신조어인가. 오랜만에 생각나 연락을.......

다시, 죽음. [내부링크]

사람이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나는 괴로움에 버티기 힘들 때, 철근이 짓누르듯 힘이 들때, 그 때 죽음을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권태로울 때, 더 이상 감정이란 이름의 내 안 타인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을 때에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관문 [내부링크]

그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둠만이 존재하는 집을 봤을 때, 그의 가슴은 텅 비는듯했다. 비어짐으로 가득차자 숨이 막혔다. 마음을 나눈 이도, 대화를 나눈 이도, 그 누구도 없는 그 집에 들어가기 두려웠다. 하지만 집 밖 무심한 이들의 눈이 더 무서워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 어둠 속을 조금 채우는듯 했으나 이내 어둠에 동화되었다. 정말이지 무상이었다.

새해첫날 [내부링크]

새해가 왔다. 새해가 오자 사람들은 서로 덕담을 말하고 다짐을 했으며, 누군가는 선물을 나누었다. 이러한 행위에 사화생활 유지라는 목적 외에 무슨 의미가 존재할까?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새해 첫날은 우리가 지금까지 마주한 다른 날과 큰 차이가 없음을 누구나 알고있다. 새해를 맞이했다고 우리는 갑자기 1년의 나이를 더 먹는게 아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매순간 늙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 다르고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데도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를 돈 것으로 1년의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의 공전을 체감하며 살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새해를 맞이했다고 새시대가 오는건 아니.......

공간 [내부링크]

이 공간이 나의 공간이라고 느껴지자, 이 공간이 나에게 편안함을 주기 시작하자, 이 공간에 모습을 코빼기도 안 비추던 그들은 갑자기 이 공간에 와서 나를 비웃었다. 이 공간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내가 착각한 나의 공간에 갑자기 밀어닥쳤고, 나를 주인이 아닌 그저 나중에 떠날 이용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내 허락없이 마음대로 공간을 변형시켰으며, 그들은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깨고 내가 착각한 나의 공간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는 앞에서 무수히 떠난, 또 앞으로 무수히 떠날 수많은 이용자 중 한 명에 불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언잰가부터 나에게 편안함을 준 이 공간에서 그들은 존재와 위력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고.......

매료 [내부링크]

매료. 내가 가장 동경한 단어, 내가 가장 곱씹어 보았던 단어, 내가 가장 빠져들게 만들었던 단어, 그렇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 매료.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홀리게 한다는 뜻도 좋았으며, 'ㅐ'라는 흔한 모음으로 시작해 '료'라는 흔치 않은 음절로 끝나는 발음도 좋았으며, 무언가에 매료되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사람들의 모습도 좋았다. 누구도 나와 나의 부산물에 매료된 적이 없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매료된 적이 없고, 간혹 부산물에 매료되어도 금방 원래로 돌아왔기에, 누구를 매료시킨 적도, 내가 매료된 적도 없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인 그 매료라는 단어는 나의 제일이었고, 내 사랑의 단어였다. 나와.......

어둠 [내부링크]

그 소년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둠 속으로 가기를 좋아해왔다. 밝은 태양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달과 별이 뜬 밤을 더 즐겼고, 어둠 속이 더 친숙했다. 어른들은 그 소년을 보며 어둠을 좋아하는, 또 즐기는 아이로 정의내렸다. 그런 어른들의 말에 그 소년도 자신이 어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은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자신이 좋아한 것은 어둠 그 자체가 아닌 어둠 속에서도 홀연히 빛나는 그 작은 빛을 좋아한 것이다. 그 소년에게도 어둠은 미지의 공포였으며,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운 어둠 속 가녀리지만 확실하게 빛나는 그 빛에 소년은 빠져들었다. 어렸을 적 캄캄한 장막의 밤에서 자신.......

호랑이 꿈 [내부링크]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어. 거진 1년 만인것 같아. 원래 꿈이란게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이번 꿈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이상한 꿈이라 그런지 흐릿함 보다는 똑바른 이미지야. 꿈 속에서 나는 예전에 살던 집과 비슷한 곳에서 살고 있었어. 다른 점이라면 주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빌라였던거? 그 꿈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어.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사람도 아니고 오랜전 내 친구였던 이에게 쫓기고 있었어. 무슨 연유인지 그 친구는 나를 잡으려고 애썼고 나는 그 친구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어. 그 어떤 의문도 없이. 다만 오랜 친구인건만 기억이 나고 어떤.......

기억 [내부링크]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너는 괘념치마라. 나는 그저 너에게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만을 근심하니까. 나의 기억 속 너는 가녀리지만 단단하고, 작지만 알찼다. 나의 기억 속 너는 항상 나로 인해 피폐해 보였으니, 내가 중요한 것은 오직 너의 기억 속 나일 뿐이다. 나의 기억 속 너는 항상 아련함이 떠다니니, 내가 궁금한 것은 너의 기억 속, 나의 질감과 양감뿐이다.

구주의 계시 [내부링크]

그에게 이런 생각은 필연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차마 부모를 탓할 자신은 없어 그는 믿지도 않는 신을 탓했다. 믿지 않기에 오히려 탓할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저를 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저를 왜 잉태시켜 부모에게 고통을 주셨습니까. 신이시여, 제 존재에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제가 알아 차릴 수는 있습니까. 신이시여, 왜 저에게 두뇌를 주셨습니까. 왜 제가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셨습니까. 신이시여, 왜 저에게 심장을 주셨습니까. 왜 제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드셨습니까. 신이시여, 그렇다면 왜 제게 고통을 주셨습니까. 왜 제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셨습.......

[내부링크]

종이에 불이 붙자 종이는 부끄러움에 오글아들었다. 달이 뜨고 사람들이 달을 보자 달은 부끄러움에 모습을 조금씩만 드러냈다. 새벽녘에 어스름은 떠오르는 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빨래 上 [내부링크]

아침에 옥상에 있는 빨래줄에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점심이 지난 오후즈음에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맑고 푸르른 하늘에도 바람은 아주 세차게 불어, 빨래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바람에 빨래가 날아갈 것 같지만 빨래집게는 빨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바람에 빨래는 계속 니일니일거렸다. 워낙 거센 바람에 빨래는 움직일 때마다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가 꼭 빨래가 내지르는 비명같았다. 그 빨래가 내지르는 비명이 날아갈까봐 두려워 내지르는 비명인지, 아니면 날아갈 수 없는 답답함에 내지르는 비명인지 알 턱이 없어 계속 바라만 봤다. 빨래는 여전히 바람에 펄럭였고 또 비명을 질러댔다.

내 이름 석자를 불릴 [내부링크]

내가 내 이름 석자를 불릴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만다. 화난 목소리로, 엄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면 나말고 다른 이들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이름 석자를 부르는 이의 목소리 느낌이 중요치않다. 나는 그저 내 이름 석자를 불리기만해도 긴장하고 만다. 성을 빼고 이름만 불릴 때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지만 성을 붙여 이름을 불리면 누가 부르든 긴장한다. 선생님이 단순히 출석을 부르든, 안내원이 내 이름을 확인하든 말이다. 내가 내 이름 석자를 불리는 순간은 항상 나에게 꾸짖음과 분노에 대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호는 내 가족들이 사용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이 긴장감이 늙어 죽기 직.......

빨래 中 [내부링크]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를 보다 문득 저 빨래는 이제 빨래가 아니라 깨끗한 옷이 된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옷을 널 때만해도 빨래였던 것이 이제는 다 말랐으니 빨래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디서부터 빨래감이고, 어디서부터 빨래감이 아니게 되는지 너무 어려웠다. 내가 분명 옷을 추리고 세탁기에 넣을 때는 그것은 빨래감이었고, 빨래였다. 하지만 세탁기에 동작이 끝난 후의 옷을 내가 건조시킬 때, 그것은 전혀 빨래감이 아니었는가? 옷은 이미 깨끗해졌지만 젖어있으니 빨래인것인가. 아니면 옷이 다 마를 때가지가 빨래인가. 옷이 분명히 다 말랐지만 내가 아직 옷들을 정리하지 않고 빨래줄에 걸려있으니 그것은 아직 빨.......

과거의 익숙함 [내부링크]

과거에 익숙했던 일이라고해서 지금의 내게 편안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불편했지만 지속적이기에 익숙해졌다. 거기에 시간이라는 변형의 추까지 매달리니 그것은 더이상 익숙하다고 할 수 없다. 과거의 나는 이미 변형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