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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려시대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 모음 [내부링크]

*찾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게시물입니다. 현재 고려 시대의 건축 양식은 확인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관련 그림도 거의 전해지지 않으며, 남아 있는 건축물도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물은 대부분 사찰 건물이며, 그마저도 얼마 없습니다. 고려시대 그림 자료도 오히려 삼국시대의 자료가 더 많을 정도로 현전하는 수가 적습니다. 고려시대 일반 건축 양식에 대해 글로 된 기록으로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습니다. 동시대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송나라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귀족문화의 영향으로 엄청나게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현어, 옻칠, 금칠, 청기와, 유리 기와, 흑유와 등 다양한 건축 재료들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누각과 2층 이상의 중층 건물들도 매우 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화려한 건축 양식들은 조선 전기까지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유교의 영향으로 대부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조선 중기까지 보존되고

[신라, 일본]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된 신라인, 연오랑 세오녀 설화 [내부링크]

연오랑 세오녀 설화(또는 신화)는 삼국유사와 수이전에 기록된 신라의 설화로, 신라에 살던 연오(延烏)와 세오(細烏)라는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즉위한 4년 정유(丁酉)에 동해의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닷가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혹은 큰 물고기) 하나가 연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일본국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이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하고 이에 옹립하여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다시 그 전처럼 세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면서 왕에게 나아가 아뢰니 부부가 다시 서로 만나고 세오는 귀비(貴妃)가 되었다.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

[신라] 신라의 신궁(神宮), 나정(羅井, 羅乙) 유적 [내부링크]

소지 마립간 9년, 봄 2월, 신궁(神宮)을 나을(羅乙)에 세웠다. 나을은 시조(始祖)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권 제 3 소지 마립간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21대 소지 마립간이 시조가 태어난 곳인 나을(羅乙)에 신궁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시조를 박혁거세로 볼 경우, 나을은 박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나정(羅井)이 된다. 나정은 우물터가 있었다고 여겨졌던 현재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장소로, 2대 왕인 남해 차차웅이 이곳에 시조묘를 세웠었다고 한다. 또한, 소지 마립간을 기준으로 이후 왕들이 더 이상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궁에만 제사를 지냈기에 나정이 신궁이 세워졌던 나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었다. 나정은 성리학으로 인해 시조에 대한 예전이 정비되었던 조선 후기부터 관리되기 시작해[1] 현대까지 유허비와 전각이 남아있었는데, 2002년에 전각의 보수와 함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결과 기존 예상과는 달리 우물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청동

[고려] 영해지방의 수호신, 팔령신(八鈴神) [내부링크]

고려 말 기록에서 등장하는 요괴(妖怪) 혹은 신령(神靈)으로, 고려 말 영해도호부(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모셔졌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팔령(八鈴, 8개의 방울)과 관련된 신으로, 그 형체가 보이진 않지만 '허공에 들리는 방울 소리'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며, 팔령신의 방울 소리가 나면 사람이 병 들거나 동네에 흉년이 드는 등의 재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만, 팔령신의 제사를 지내면 해를 끼치지 않으며, 마을을 지키거나 역신(疫神, 전염병의 신)과 같은 다른 잡귀신을 막아내는 서낭신과 수호신의 성격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wPJ0SrzgM 참고) 청동 팔두령 소리 (팔령신은 팔두령이 아닌 8개의 방울과 관련된 신입니다.) <고려사> 등 고려 말 기록에 따르면, 영해 지방에는 팔령(八鈴)이라고 하는 신사(神祠, 또는 신당이라고도 합니다.)가 있었는데, 백성들이 그 영험을 믿고 팔령신(八鈴神)을 극진히 받들었다고 합

[삼국시대 ~ 조선] 목탑이 존재했던 사찰 목록 [내부링크]

*찾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게시물입니다. (창건 시대순 X) [고구려] 청암리사지(금강사?) 팔각 7층 목탑 / 1탑 3금당 배치 상오리사지 팔각 목탑 / 1탑 3금당 배치 토성리사지 팔각 목탑 / 1탑 3금당 배치 정릉사 팔각 7층 목탑 / 1탑 3금당 배치 정릉사지 배치도 (左), 정릉사지 8각탑 평면 복원안(中) 및 7층 복원안(전제헌 안) (右) [백제] 미륵사 9층 목탑 / 3탑 3금당 배치(1탑 1금당 배치) 왕흥사 3층(5층) 목탑 / 7세기(600 ~ 643년) / 1탑 1금당 배치 왕흥사 목탑 복원 평면도 (左), 왕흥사 목탑 복원 입면도 및 단면도 (中), 왕흥사 목탑 층별 상세도 (右) 부여산성 서복사 목탑 / 1탑 1금당 배치 군수리사지 목탑 / 1탑 1금당 배치 능산리사지 목탑 / 1탑 1금당 배치 [신라] 사천왕사 쌍 목탑 / 2탑 1금당 배치 망덕사 13층 쌍 목탑 / 2탑 1금당 배치 황룡사 9층 목탑 / 1탑 3금당 배치 영묘사 팔각 쌍 목탑 /

[삼국시대 ~ 조선] 금강산 4대 사찰, 고성 유점사(楡岾寺) [내부링크]

일제강점기 불교 31본산이자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로, 서기 4년(유리왕 23, 남해왕 원년 *불교 전래 전에 사찰 건립?)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왕조의 억불 정책에도 왕실의 원당으로써, 왕실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하였습니다. 6.25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40여동의 건물과 석탑, 석등 등이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유점사 전경 (左, 中), 유점사 대웅전 (右) 대웅전의 경우, 다포 양식과 맞배지붕의 7량가 건물인데, 조선시대 양식인가요? 잘 모르겠네요. 유점사 능인보전(能仁寶殿) 능인보전 역시 다포 양식이며, 팔작 지붕을 올렸습니다. 내부 천장(우측 그림 좌측 하단)에 스님? 세 분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유점사 능인보전 미타불상(能仁寶殿 彌陀佛像) (左), 보타전 목조해수관음보살상(寶陀殿 木造海水觀音菩薩像) (中), 수충사(酬忠祠) 헌종 필 현판 (右) 유점사 구층 석탑 (상륜부가 남아있는 것이 특이하네요) (左), 유점사 옹정7년개주 범종 (雍正7年改

[고려] 팔령신(八鈴神)을 모신 신당, 영신각 [내부링크]

팔령신을 모시는 풍습은 경상북도 영덕군의 민간 신앙으로, 고려시대 기록에 나타납니다. 현재까지 영덕군에 팔령신을 모시는 신당인 영신각이 남아있습니다. 영덕군 영신각 (참땅님 블로그 (右)) 팔령신에 대한 내용은 전에 올린 팔령신 블로그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hyxnck&logNo=223003864094&redirect=Dlog [고려] 영해지방의 수호신, 팔령신(八鈴神) 고려 말 기록에서 등장하는 요괴(妖怪) 혹은 신령(神靈)으로, 고려 말 영해도호부(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 blog.naver.com

[백제] 백제의 왕성, 부여씨 (扶餘氏) [내부링크]

부여씨는 백제의 국성으로[1][2], 백제의 시조이자[3] 초대 어라하(왕)인 온조를 시조로 합니다. 흔히 부여씨(扶餘氏)를 줄여 여씨(餘氏)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g) 부여창(扶餘昌)(위덕왕) → 여창(餘昌) 부여씨는 백제 멸망 이후 사라진 성씨로,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백제의 마지막 왕자인 부여풍(扶餘豊)을 시조로 삼는 의령 여씨(宜寧 余氏)와 부여 서씨(扶餘 徐氏) 등의 성씨가 남아 있습니다. 부여씨(扶餘氏)의 분파(分派) ① 흑치씨(黑齒氏) : 본래 부여씨였으나 흑치(黑齒, 어디인지는 불분명)라는 곳에 봉해져 흑치씨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흑치상지(黑齒常之)가 있습니다. ② 귀실씨((鬼室氏) : 본래 부여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씨로, 일본측 사서인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귀신의 감화를 받아 귀실씨가 되었다고 하며, 대표적인 인물로 귀실복신(鬼室福信)이 있습니다. ③ 억례씨(憶禮氏) / 억뢰씨(憶頼氏) : 대표적인 인물로,<신찬성씨록>

집광개토왕비자광고우만천하지사인인 (集廣開土王碑子廣告于滿天下志士仁人) [내부링크]

저희 할머니집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초기의 자료로, 이러한 자료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공유합니다. 현재 중국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자를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발행했습니다. 2장만 발견되었으며, 우측 하단에 기 1(其一)과 기 5(其五)가 적혀있기에, 기 2 ~4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집광개토왕비자광고우만천하지사인인 기 1 (集廣開土王碑子廣告于滿天下志士仁人 其一) 우측에는 집광개토왕비자광고우만천하지사인인 (集廣開土王碑子廣告于滿天下志士仁人)이라 적혀 있으며, 좌측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자로 추정되는 한자 16자가 예서체로 적혀 있습니다. 아래는 좌측에 적힌 한자 16자입니다. 其(그 기) 其(그 기) 帝(임금 제) 赫(빛날 혁) 化(될 화) 勲(공 훈) 子(아들 자) 吾(나 오) 也(어조사 야) 也(어조사 야) 聖(성인 성) 祖(조상 조) 徧(두루 미칠 편?) 大(클 대) 孫(손자 손) 先(먼저 선) 집광개토왕비자광고우만천하지

[백제] 백제의 명문가 대성팔족, 목협씨(木劦氏) / 목리씨(木刕氏) [내부링크]

목협씨(木劦氏)/목리씨(木刕氏)/목례씨(木刕氏)/목씨(木氏)는 백제의 명문 귀족 가문인 대성팔족(大姓八族)[1] 중 하나로, 가문 명이 가장 불명확한 가문입니다. 가문 자체는 백제 한성(漢城) 도읍기 후반인 5세기에 중앙에 진출하여, 서기 475년 웅진(熊津) 천도를 주도하면서 중앙귀족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것으로 보이기에, 한성 이남 지역에 기반을 둔 가문으로 추정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백제 19대 어라하(왕)인 고이신왕 대의 귀족인 목만치(木滿致)와 그의 부친인 목라근자(木羅斤資)[3] , 24대 어라하인 동성왕 대에 면중(面中, 전라도 일대) 지역의 후작(면중후, 面中侯)였던 목간나(木干那) 등이 있습니다. 가문 명은 목씨(木氏), 목협씨(木劦氏), 목라씨(木羅氏), 목리씨(木刕氏), 목례씨(木刕氏), 협씨(劦氏), 리씨(刕氏), 목씨(沐氏) 등 다양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목협씨/목리씨[2]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중국 역사서인 <수서>에는 목씨(木氏)와 리씨(刕氏)로 서로 다른

[조선] 조선시대 그림 속 망새(치미, 용미, 용두, 취두) [내부링크]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게시물입니다. 망새는 한옥에서 용마루 양쪽 끝머리를 장식하는 기와를 의미하며 그 형태에 따라 치미(雉尾), 용미((龍尾), 용두(龍頭), 취두(鷲頭)로 구분됩니다. 한반도에서는 고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궁궐, 사찰, 귀족 가옥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① 치미 (雉尾) : '올빼미 꼬리'라는 뜻으로, 새의 날개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솟대, 조우관 등과 함께 한민족(유목민족)의 새 숭배 사상을 잘 보여주는 요소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백제 왕흥사지 출토 치미 (국립중앙박물관) (左), 통일신라 ~ 고려 흥덕사 출토 치미 (국립중앙박물관) (右) ② 용미 (龍尾) : '용의 꼬리'라는 뜻으로,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송나라 양식의 망새입니다.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간간히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서 복원된 개성 영통사 용미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디지털기록관) ③ 용두(龍頭), 취두(鷲頭)

[배경 지식] 한국의 지방 구분 (+ 한반도 지도.ai 공유) [내부링크]

한국의 지역 구분 한국의 전통적인 지방 구분은 조선시대의 것을 따릅니다. 보통 강이나 산맥을 따라 경계가 구분되거나 도(道) 단위의 행정 구역의 경계에 따라 구분됩니다. · 지방 구분 ① 관서 지방 (關西地方) : 관(關, 철령관(鐵嶺關))의 서쪽 지방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되었으며[1], 조선시대의 평안도 일대를 의미합니다. 서북지방(西北地方)이라고도 합니다. ② 관북 지방 (關北地方) : 관(關, 철령관(鐵嶺關))의 북쪽 지방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되었으며[2], 조선시대의 함경도 일대를 의미합니다. 동북지방(東北地方)이라고도 합니다. 더 세부적으로 보면,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 점선)을 경계로 관남 지방(關南地方)과 관북 지방(關北地方)으로 구분됩니다. ③ 관동 지방 (關東地方) : 관(關, 철령관(鐵嶺關))의 동쪽 지방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되었으며[3], 조선시대의 강원도 일대를 의미합니다. 세부적으론, 태백산맥(太白山脈, 점선) 혹은 대관령(大關嶺)을 경계로 영동지방

[삼국시대] 삼국시대 지명 목록 [내부링크]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게시물입니다. (Ctrl + f 로 쉽게 원하는 지명 찾으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삼국시대의 지명 목록으로, 모든 지명 확인 후 지도(이미지 및 사이트)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모든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757년(경덕왕 16) 한화 정책 이전의 지명] ① 관서 지방 ② 관북 지방 ③ 해서 지방 ④ 관동 지방 ⑤ 경기 지방 ⑥ 호서 지방 ⑦ 호남 지방 ⑧ 영남 지방 ⑨ 제주 지방 ⑩ 기타 지역 [757년(경덕왕 16) 한화 정책으로 한화된 신라 지명] 행정 체계 : 주(州) > 소경(小京), 군(郡) > 현(縣) > 촌(村) 9주(*는 소경이 설치된 주) :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웅주(熊州)*, 상주(尙州), 전주(全州)*, 무주(武州), 강주(康州), 양주(良州)* 5소경 : 김해경(金海京, 금관경 → 김해경), 남원경(南原京), 서원경(西原京), 중원경(中原京), 북원경(北原京) 10정(十停) : 9주에 주둔하던 통일

[고구려] 고구려 고분군 벽화 목록 및 그림 [내부링크]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게시물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 목록] 고구려 고분 벽화는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집안권(集安圈)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평양권(平壤圈), 두 권역에 분포해있는데, 집안권에 24기, 평양권에 71기로 총 95기의 고분 벽화가 알려져 있습니다.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집안권(集安圈) ① 집안지역(集安地域) : 1. 모두루총, 2. 하해방31호분, 3. 환문총, 4. 장천1호분, 5. 장천2호분, 6. 장천4호분 ② 통구지역(通溝地域) : 7. 각저총, 8. 무용총, 9. 우산하1041호분, 10. 통구12호분, 11. 산연화총, 12. 삼실총, 13. 통구사신총, 14. 오회4호분, 15. 오회5호분, 16. 절천묘, 17. 귀갑총, 18. 미인총, 19. 산성하983호분, 20. 산성하332호분, 21. 동대파365호분, 22. 만보정1368호분, 23. 마선구1호분 ③ 환인지역(桓仁地域) : 24. 미창구장군묘 2. 평양권(平壤圈) ①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