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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호, 인류의 새로운 희망 [내부링크]

성공시키기 어려운 일일 수록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다시 말해 작은 확률을 뚫고 성공한 일일 수록 많은 에너지를 가진다. 그런데 만일 반대로 그 에너지를 받고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공상과학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위와 같은 우연히 안될 확률을 거꾸로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순수한 마음호’라는 우주선이 나온다.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지만 현실에서는 그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공짜로 받고 시작하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확률을 뚫고 만들어진 물질에는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핵분열이 그런 방식이다. 주기율표에는 100가지가 넘는 원소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에 우라늄은 92번인 만큼 만들어지기 어려운 원소에 속한다. 그래서 우라늄은 그만큼 핵분열 시에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이용하여 핵폭탄도 만들고, 발전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내부링크]

사과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정말 잘못했을 때는 입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인데,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과가 잘 안된다. 그렇다면 잘못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잘못으로 바닥에 넘어졌을 때 그 넘어짐을 인지할 수 있는 근거는 충돌 부위의 통증과 기립 자세의 무너짐이다. 출처: pixabay 이와 같이 잘못에는 결과에 따라 인지 요소가 따라오는데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잘못으로 인지가 안되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인 사과를 요구하면 인지 부조화가 생겨 사과를 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어떤 느낀 바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대부분의 사소한 분쟁이 이와 같은 패턴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정말로 잘못하면 마음부터 졸이게 되어있다. 반대로 상대방이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실제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사과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 만일 누가 다른

Build Up [내부링크]

원석, 첫 경험, 첫 마디, 첫 감정, 첫 웃음, 첫 깨달음… 서툴게 거침없이 뻗어 원초적인 것은 거칠다 까칠한 것 달래며 소중히 키워내 만든 마지막인 것들 막상 달라진 건 없는데 이제야 제법 부드럽다 이제야 제법 운이 난다

탈출은 지능순 [내부링크]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이다. 비싸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싼 때이다. 너무 유명하여 이제는 별 감흥이 없는 문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경쟁 사회에서 이보다 타이밍에 관한 통찰을 주는 문장도 드물다. 무엇인가 행동해야 할 바로 ‘지금’ 이 지나면 다음엔 더 늦어지고, 무언가는 더 비싸진다. 제목에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썼듯이 진입도 탈출도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다. 다만 우리 사회가 ‘1등만 알아주는 거지 같은 세상’이라는 말은 오해이다. 우리 사회는 커트라인이 있는 경쟁 사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커트라인 바로 앞사람보다만 앞서면 된다. 출처: pixabay 될 수 있으면 이노베이터가 되는 것이 좋지만 운도 실력이라는 말처럼 정말 운 때가 맞는 사람들이 이노베이터가 된다. 그렇지만 조금 늦더라도 누구든 얼리어답터는 될 수 있다. 아래 혁신 확산 모델에서 보듯이 얼리어답터만 되어도 13.5% 안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혁신의 전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더글러스 애덤스를 생각하다… [내부링크]

나의 창의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준 공상과학소설이 있다. 바로 더글러스 애덤스의 이름도 거창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다. 3년 전에 읽고 요즘 다시 오디오북처럼 듣고 있는데 그의 글쓰기 방식이 차츰 정리가 되어 적어두려고 한다. 출처: 책세상 1. 사고를 수습하기보다 다른 사고를 치기 2. 체계의 위아래를 넘나들기 3. 절대 물러서지 않는 대화의 대결구도 4. 다른 원인에 대한 같은 결과 이용하기(구름:사람에 의한 그림자) 5. 설명문 형식 많음. 유머 있게 설명해 보려고 시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최초의 플랫폼, 추상화 회로의 탄생. [내부링크]

아주 오래전 살았던 가상의 어느 호모 사피엔스가 있었다. 무려 4-5만 년 전. 죽기 직전까지 허기를 느낀 이 호모 사피엔스가 가까스로 사냥에 성공한다. 그는 생존의 공포에서 막 벗어난 채로 매우 진실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안도감은 감사의 감정으로 번졌고, 처음에는 사냥에서 잡힌 먹잇감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출처: pixabay 이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고, 이 맛있는 고기는 어디서 났는가? 그는 언제까지나 먹잇감 자체에게 감사할 수는 없었다. 내 힘에 굴복한 따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그 위 계층의 누군가를 떠올려야만 했다. 이렇게 인간은 그 위 계층에서 감사 대상을 찾다가 뇌 안에 갑자기 추상화 회로가 생겼다. 여기가 바로 신이 탄생한 순간이다. 그럴 것이다. 신은 추상화의 산물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뇌에서 탄생한 추상화 회로는 또한 인류 최초의 플

거짓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부링크]

거짓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앞선 ‘샌드맨’ 감상 글에서 썼듯이 거짓에 대한 믿음은 향후 진실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단,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샌드맨” 꼭 한번 보세요 진실과 거짓은 사실은 한 몸이다. 진실은 거짓을 말하며 시작된다.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거짓을 믿는 것. ... m.blog.naver.com

인공지능, 놀라운 고급 기술 [내부링크]

프로그래머들의 계층적 사유에서는 더 단순한 것일수록 고급이다. 일례로 내가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했을 때 나는 단순히 스파게티를 주문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요리사가 좀 더 복잡한 레시피대로 요리하게 된다. 이처럼 실제 사용자에 가까워질수록 수행해야 할 것이 단순해지므로 그 계층이 고급 계층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가장 단순한 아이폰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가장 고급이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이 사용하기에 더 고급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계가 사람이 되면 될 것이다. 그래서 개발되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트랜지스터와 인간의 계층 간격이 이제 맞닿을 때가 온다. 트랜지스터와 인간, 인간과 트랜지스터. 그 상반된 계층이 양자 단위에서 만나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아니고 실제로는 훨씬 더 멀어져 있지만 말이다. 출처: freepik

회사냐 사원이냐 [내부링크]

전통적인 국가는 민족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졌다. 그런면에서 국가는 국민이 다른 민족으로 바뀌면 기존의 주체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가 먼저냐 국민이 먼저냐 했을 때에 절대 우위로 국민이 먼저이다. 그러나 회사는 어떤가? 특히 주식회사는 주주가 모여서 이루어진 단체이다. 다시 말해 주체가 주주이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와 같은 말로 어떤 단체의 구성원이 곧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져왔지만 회사는 약간 다른 결을 갖는다. 정확하고 엄밀하게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다. 회사의 근로자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지만 주인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국민이 다른 민족으로 바뀌면 존재할 수 없지만 회사는 기존 근로자가 새로운 직원으로 바뀌어도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국가와 회사의 절대적인 차이이다. 국가냐 국민이냐 했을 때는 국민이 우선이지만 회사냐 근로자냐 했을 때는 회사가 우선이다. 이 시대 노동자들은 인권이라는 천부적이고 초법적인 상위 차원에서

성급한 최적화 [내부링크]

성급한 최적화야 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도널드 커누스 이해 충돌이 있거나 간섭되는 사안을 교정하는 일을 최적화라고 부른다. 꼭 필요하여 빨리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이 일은 사실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반드시 위, 아래 체계를 보고 진행해야 한다. 체계를 무시하고 섣불리 결정했다가 더욱 일이 꼬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법 과정에서 만일 개정이나 신규 법이 필요한 경우 절대로 하위법이 상위법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최적화에는 체계의 확립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보면 사회 문제나 정치 현안들이 이 체계를 무시하고 다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넛지로 살아가기 [내부링크]

사람들은 정황이나 맥락에 의해 행동한다. 분위기를 탄다던지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걸 예를 들어 좀 속되게 표현하면 조직 보스가 분위기로 조지면 조직원들은 직접적인 억압이 없어도 알아서 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선택 설계자가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주되 권장 목록을 티 나지 않게 정황이나 맥락에 숨겨서 주는 것이 넛지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설계자의 권장 목록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의 심리적 기전은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이 정황과 맥락이 가리키는 것을 짐작한다. 2. 그것을 비로소 이해 또는 깨닫는 순간이 온다. 3. 스스로 권장 목록을 기쁜 마음으로 선택한다. 선택을 넌지시 강요한다는 점에서 넛지의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우리에게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이로운 점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사람이 유혹에 빠질 때는 대부분 흥분 상태이기 때문에 넛지 설계로 냉정을 찾아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통의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

관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내부링크]

보통 관대함은 왕과 같이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럼 왕은 무엇 때문에 관대해야 하는가? 얻는 것도 없이 관대하기만 해야 한다면 왕은 벌거벗은 임금처럼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https://cartoonmovement.com/cartoon/naked-king 왕이 신하들이나 백성들에 대하여 관대할 수 있는 이유는 왕이 그들로부터 얻는 혜택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우리 일반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위로부터 알게 모르게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 혜택에 너무 둔감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감사함에 눈을 뜬다면 우리는 비로소 관대해질 수 있다. 그렇다. 제목에서 밝힌 관대함은 감사함에서 온다. 그동안 무뎌졌던 감사함에 눈을 뜨면 세상의 부조리에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아 달성 [내부링크]

자아 달성은 자신의 마음을 키우는 일이다. 최근 어느 때보다 개인 단위, 국가 단위 할 것 없이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전쟁이 극심한 요즘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서로의 자아가 소중해 상호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므로. 자아를 찾는 길은 ‘팡차오후이’가 그의 책 ‘나를 지켜낸다는 것’에서 제안한 아래 9단계를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는다. (고요한 마음 가지기) 누구나 흥분 상태에서 내린 판단은 실수의 연발일 뿐이고, 냉정을 찾아야지만 판세를 읽는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2. 습관을 교정하여 마음을 키운다. (Build up) 지식은 좋은 책을 읽으면 생기지만 습관은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좋은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져 좋은 인격 또는 덕성을 키워야 한다. 끝까지, 만족할 때까지. 3. 반성(feedback) 자아 찾기를 수행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4. 멈춤: 불편하거나 우울해지면

도토리 한말 [내부링크]

출처: fixabay 사랑에 빠진 이만이 뮤즈를 알아본다 요즘 엄마는 도토리와 사랑에 빠져 도토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우리 엄마는 사람을 부릴 줄 알아 나 역시 도토리가 보이게 됐다 보이지 않으면 굽히지 않아도 될 것을 나는 자꾸보고 허리를 굽힌다 다행히도 허리가 아파올 때쯤 엄마의 경계가 지어졌다 경계는 침범하면 되지 않는다 한 발이라도 걸리면 결계가 열려 엄마가 알아볼 다음 경계는 또 어디서 나타날 줄 모르니 경계에 걸쳐 허리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한 발 한 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도토리는 장위에 좋고 살을 찌우니 다 줍도록 사랑에 빠질만하다 오늘은 도토리 한말에 만족해야지 나머지 한말은 내일 혹은 내년에

흐르는 강물처럼 [내부링크]

최고의 순간을 담은 예술은 영원하다 인생에도 최고의 순간이 있지만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인생은 모든 순간의 융합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최고를 찍고 폭포수처럼 내려온다 해도 나는 그 도전을 경외하리라 대홍수로부터 이어온 우리네 인생이 그 자체로서 경외로우므로 흐르는 강물처럼 포스터

달러는 안전 자산인가? [내부링크]

달러는 과연 안전 자산일까요? 그렇다면 주식은 안전 자산이 아닐까요? 그리고 혹자들의 "현금은 쓰레기다."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러는 전통적으로 안전 자산이 맞습니다. 하지만 금융 위기나 금리 상승 시기에만 안전 자산입니다. 바로 딱 지금 시기와 맞는 말이네요. 시기에 따라 주식도 안전 자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언제였냐면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직후 저금리와 무제한 돈 찍어내기가 이어지던 시기입니다. 그때는 정말 현금이 쓰레기라는 말이 맞는 말이 되겠네요. 돈을 벌려면 안전 자산의 상대적 가치를 따져 봅시다. 아래 링크에 올린 글 "거시경제는 간단하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산과 화폐는 반비례 관계이므로 그 타이밍을 잘 관찰해 보시길 바랍니다. 거시경제는 간단하다 저금리로 인한 화폐가치의 하락은 소비재의 인플레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리 상... blog.naver.com

언어의 역설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다. [내부링크]

만약 용서할 만한 것만 용서하겠다고 한다면, 용서라는 바로 그 개념 자체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자크 데리다 이 문장은 영화 샌드맨에서도 등장한다. 용서는 용서 못 할 자를 용서하게 하고, 사랑은 혐오스러운 자를 사랑하게 하고, 믿음은 믿지 못할 것을 믿게 하고, 희망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을 품게 한다. 영화 샌드맨 중에서_역설 그러나 저런 해체주의식 논리에 반론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사고에서는 용서 못 할 자는 용서하면 안 되고, 혐오스러운 자는 사랑할 수 없으며, 구조상 영구적으로 안 되는 일은 믿으면 호구가 되고, 시한부적 절망에서는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멈춤 [내부링크]

멈춘 것은 죽은 게 아니고 여건이 안되어 멈춘 것 그동안 무형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다면 굳이 부활이라 말하지 않아도 멈춘 것은 발화를 품고 있다 죽은 것은 무형으로 돌아가 영원해 보여 슬프다 돌아오는 길 요원해 보여 죽음은 말문이 막힌다

진짜 이타주의 [내부링크]

진짜 이타주의자는 주체적인 개인주의자이다. 상호 신뢰는 집단 단위에서 “우리는 동일체다.”라는 맹세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각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는 사실에서 온다. 그래서 운전할 때 마주오는 차가 나를 향해 핸들을 틀지 않을 것으로 믿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각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고 아끼려는 마음이 있다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자신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상호 신뢰의 길이며, 또 다른 의미의 이타주의이다.

우연으로의 입장 [내부링크]

진화는 목적이 없이 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당연히 안된 것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된 것의 흔적이 된 것에 남아있다. 인생도 똑같다. 우리의 자유 의지는 일부 목적이 있는 듯 보이나 뉴런 단위에서는 목적이 없이 확률적으로 결정이 일어난다. 안 되는 일은 없어지고 되는 일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모든 것은 확률이고 우연이다. 인간은 자기 복제의 산물이다. 이 자기 복제 때문에 유사성 즉 문화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문화도 복제된다. 이 문화는 다시 말해 집단의식이다. 확률은 이 집단의식의 범위 안에서 무작위로 나타난다. 이것이 우연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꼭 목적이 있는 듯 보이는 일관성의 우연인이다. 우리는 분명 진보할 것이다. 목적이 있는 듯 보이는 우연으로.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우울과 성공 [내부링크]

우리를 괴롭히고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우울의 감정은 사실은 대단히 쓸모가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사람은 어떨 때 우울해지는가? 우리는 투자 대비 얻는 것이 없을 때 우울해진다. 우울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소용없는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게 행동을 멈추게 된다. 이것이 우울이란 감정의 쓸모이다. 단 이 지점에서 당장은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공하는 사람과 그대로 주저앉아 완전히 포기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의 멈춤은 업무 수행 중에 안 되는 방법을 멈추는 것이고, 두 번째 부류의 멈춤은 그 업무 수행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이전에 시도했던 방법은 실패했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그 업무를 완수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울한 감정이 들 때 모든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전에 실패한 방법만 멈추고, 조금 변형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한다. 이런 멈춤이 바로 성공의 어머니이다. 어떤 일은 되고 어떤 일은 되지 않는 이유에

모든 건 “장” 때문이야 [내부링크]

우연으로의 입장 진화는 목적이 없이 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당연히 안된 것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된 것의 흔적이... m.blog.naver.com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대로 모든 일은 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 세상사가 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모두 “장” 때문이다. 이 장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중력장, 자기장, 할 때의 그 장이다. 이 장은 수정 불가능하게 이미 정해진 강력한 규칙을 말한다. 이 “장” 중에 중력장 때문에 강물은 아무리 굽이진 물길이라도 상관없이 흐를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은 일종의 함정 같은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물체가 이 함정에 다다르면 빠지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모든 만사가 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이 “장”의 규칙에 부합하는 것은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투자하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3차 세계대전이 두렵다 [내부링크]

우크라이나, 모든 계획은 3년 전 랜드연구소 보고서에 있었다 [박인규 편집인(=번역·정리)([email protected])]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러시아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두고 '전선'을 뚜렷히 하고 있다는 데에서 '신냉전'의 징후를 읽어내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 국방부 등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과거 '냉전 전략'을 연구해 왔던 '랜드연구소'의 v.daum.net 모든 세계사는 권력장 안에서 일어난다. 아래 링크한 동영상에서 ‘레이 달리오’의 논리에 따르면 세계의 패권 국가인 미국은 이미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의 마지막 발악이 3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질까 두렵다.

거시경제는 간단하다 [내부링크]

저금리로 인한 화폐가치의 하락은 소비재의 인플레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리 상승은 다시 화폐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자산과 원자재의 디플레로 이어진다. 거시경제를 보려면 자산과 화폐와의 관계만 보자. 이 둘은 반드시 반비례 관계이어서 자산에 거품이 끼었다가 화폐에 거품이 끼었다가 한다. 그러니 타이밍을 잘 맞추면 어느 쪽에서든 돈을 벌 수 있다.

사람의 자아는 어떻게 우리를 살게 하는가? [내부링크]

인간은 성인이 되었을 때보다 어릴수록 주변과 더욱 잘 어울린다. 이는 아이의 자아가 약해 주변을 모두 한 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순수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생존에 매우 유리한 약은 전략이다. 아이는 약한 자아를 유지하며 주변 모두를 다 내 편으로 인식해야 생존에 필요한 주위의 자원을 내 것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영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춘기 이후 2차 성징이 일어나면 자아가 강하게 형성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자기 자손을 퍼트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자아는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사람이 노년기에 이르러 손자를 본 이후로는 다시 자아가 약해진다. 그래서 모든 자신의 소유를 자식들에게 상속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자아는 필요에 따라 효율적으로 조절된다. 이런면에서 볼때 종교에서 말하는 모든 우주를 초월하는 자아는 우리의 삶과 맞지 않는다.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링크]

내가 상대방의 어떤 행동으로 기분이 나빠진 후에 그 반작용으로 한 행동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지 다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신비한 현상이다. 어쩌면 상대방이 내 눈치를 보면서도 타고난 기질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내 기분이 상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경우 상대방이 고의로 나를 특정해서 기분 나쁘게 할 셈이 아니고 단지 그 사람의 기질이 그런 거였다면 내가 잠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내 어떤 반작용의 행동이든 그 사람은 눈치챌 것이기 때문에 한 수 앞을 더 내다보고 내 반작용이 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게끔 꾸며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이 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지 않으면 반드시 둘다 섭섭하게 된다.

왜 실망하고 그래 [내부링크]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다만 내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해주길 바라는 사람은 있다. 이 심리 때문에 실망 또는 섭섭함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 나도 안 되는 걸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자.

과학이란 [내부링크]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여러 가지 감상평을 내놓듯이 한 가지 자연 현상을 두고도 여러 사람이 여러 해석을 할 수 있다. 그중에 더 많은 사람이 일리가 있다고 합의한 이론이 권위를 갖는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확률적으로 일어난다. 더 많은 사람이 자연을 연구할수록 정설이 발견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중에 가장 일리가 있는 발견일 뿐 언젠가는 더 일리가 있는 발견이 나올 수도 있고, 같은 현상을 두고 이 발견도 맞고 저 발견도 맞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과학은 어디까지나 합의이지 진실이 아니다.

서방의 형해화된 윤리 의식 [내부링크]

서방 세계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 세계를 리드하면서 그에 걸맞은 윤리 의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의 통치에 명분을 더하기 위한 행위이지 진심은 아니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사고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이어지는 그들의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정확히는 속죄 내지는 대속의 문화에 있다. 이것은 면죄부 발행과 고해성사로 이어지면서 더욱 형해화되었다. 서구 선진국일수록 발달한 해외 원조와 자선 문화는 또 다른 형태의 고해성사다. 이것들은 그들이 사회 환원을 빙자하여 그들의 악행을 상쇄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 국가에 대해 가혹하리만큼의 경제 제재를 일삼을 때에도 나중에 경쟁 국가가 패배를 인정하면 배상 형태가 아닌 보상 형태로 피해를 물어준다. 배상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경제 제재가 법에 저촉되는 행위였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패권국이 국제 입법을 주도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도덕적 해이’이다. 이런 윤리 의식의 형해화나 도덕적

원수한테 권하는 사업 [내부링크]

옛날에는 원수한테 과수원 농사를 권했다고 한다. 과일이 가장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대에 와서는 원수에게 지역 주택조합 아파트를 권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이런 권유를 받고 가입한다면 그 둘은 반드시 원수가 될 것이다.

“샌드맨” 꼭 한번 보세요 [내부링크]

아직 나타나지 않은 진실은 당연히 처음엔 거짓이다.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거짓을 믿는 것. 그것이 꿈이다. 이 꿈을 이루면 거짓은 비로소 진실이 된다. 만일 세상에 거짓이 없이 진실만 남는다면 세상은 희망이 없는 절망의 폐허가 될 것이다. 거짓이 없는 세상은 공허하고, 여한이 없다. 거짓으로 진실로 이어지는 새로운 문을 끊임없이 열어야한다. Sandman을 보고 샌드맨 : 네이버 통합검색 '샌드맨'의 네이버 통합검색 결과입니다. m.search.naver.com * 운명(Destiny) * 죽음(Death) * 꿈(Dream) * 파괴(Destruction) * 욕망(Desire) * 절망(Despair) * 분열(Delirium) 이 요소들은 일종의 장(field)이다. 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수정 불가능한 강력한 규칙 안에서 인간의 생이 작동된다. 사람이 끊임없이 삶에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살아갈 이유는 차고 넘친다.

삐친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가장 듣고 싶은지 물어보세요. 그러나 무얼 더 해주지는 마세요. [내부링크]

누군가 나에게 삐쳐있다면 그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상대가 나에게 뭔가 더 바라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김경일 교수 그렇다. 그런데 이것을 더 잘해주는 것으로 해결하면 끝없는 늪에 빠진다. 이럴 때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해야 한다. 관계 중시 사회인 한국에서는 서로를 너무 의지하고 종속되려는 심리가 강하다. 관계 속에서만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대와 부양의 사회를 벗고, 자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봄으로써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그렇지 못하면서 이타적인 것보다 낫다. 개인주의는 스스로 자신을 돌봄으로써 타인을 돕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개인주의는 또 다른 이타주의이다. 한국에만 있는 삐치는 심리 때문에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는 푸념을 하게 만든다. 사회생활, 연애, 결혼 생활, 우정 할 것 없이 모든 관계에서 이 삐치는 심리는 백해무익하다. 삐친

배반의 충분조건은 동일시 [내부링크]

우리가 누군가에게 배반을 당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을 지나치게 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동일시’뿐만 아니라 피해 의식을 유발하는 ‘소속감’ 또한 배반을 느끼게 되는 충분조건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심리 상태를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와 동일인도 누구에게 소속된 객체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하나의 주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분이 있거나 혈육 간에라도 누구를 나와 동일시하거나 누구에게 소속되거나 또는 누구를 소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심리가 돌이킬 수 없는 다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주체끼리의 다툼은 서로의 손익만 따지면 되지만 동일인 또는 소속된 집단 내의 분쟁은 돌이킬 수 없는 괘씸죄로 인식되어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용을 부가가치로 [내부링크]

무엇이 사용 목적이 없으면 무용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만 그렇다. 다른 이에게는 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세상은 가합적이라 돌고 돈다. 그래서 삶을 유행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무용에서 유행을 창조하는 사람은 0.1%, 그 창조된 유행을 최대한 빨리 캐치하는 사람은 1%, 나머지는 잉여로서 소비자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필요를 주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부가 편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것을 억지로 분배한다고 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장려하고 모든 사람이 이 원리에 민감해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무용에서 유용의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자본주의 시대의 주체가 된다. (아래 에버렛 로저스의 혁신 확산 모델 참조) 혁신확산 모델- (Innovators 2.5%, Early Adopters 13.5%, Early Majority 34%, Late Majorit

어쩌다 호구 [내부링크]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살고, 다른 사람이 생각해 놓은 대로 사는 사람은 일편단심의 정신으로 산다. 소비자와 공급자는 서로 윈윈 하는 관계인가? 완만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당연히 윈윈이다. 식품회사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라면을 팔고, 소비자는 그들의 충성 고객이 된다. 그런데 만일 요즘과 같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식품 회사가 필요 이상의 가격을 올렸다면 이때 합리적인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그 이유를 추궁하거나 그 회사에 대해 보이콧 선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는 과거의 충성스러운 고객이었으니까 나는 그 충성심을 유지해야 해.”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는 호구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또 만일 공급자의 이런 태도로 충성스러웠던 소비자가 변심을 했을 때 공급자가 오히려 소비자를 향해 “설 추위를 지나 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더니 충성스러운 고객도 다 소용없구먼.” 이러면서 그들을 변절자로 낙인 한다면 이 회사에 무슨

항미원조, 항왜원조에 깔린 일방적인 시혜자 인식 [내부링크]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임진왜란을 항왜원조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우리가 패전했을 경우 중국 자국이 피해 입을 것을 우려해 참전했으나 겉으로는 우리나라를 전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표현한다. 결국 중국과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스스로 대국임을 과시하기 위해 이와 같은 일방적인 시혜자 인식을 표출한다. 아무리 창조주 신이라도 사람들에게서 잊히면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신이 잊힌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국과 같은 일방적인 시혜자 인식에 있다. 하물며 개인 간 관계에서는 어떨까? 누구도 자신이 얻는 이득도 없이 남을 위해 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너니까 이렇게 해주는 거야.” 라던지 하는 말에 우리는 속으로 혀를 차게 된다. 이런 사람을 겪게 된다면 그 사람 내면의 다른 간절함을 먼저 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제안을 피하고도 다른 곳에서 같거나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세상을 낚는 자, 리더 [내부링크]

세상은 낚는 자와 낚이는 자로 구성된다. 우리는 바다라는 삶의 터전에 있기 때문에 살면서 반드시 낚이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낚시꾼들이 사는 ‘뭍’이란 어떤 삶의 터전인가? 이곳은 가두리 양식장 주인들의 터전이다. 우리가 평생 스스로 열심히 살을 찌워 주인들의 터전에 낚여 올라가면 주인들은 우리를 아주 맛있게 음미한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중력과 같은 법칙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중력을 딛고 날아오른다. 그들의 법칙을 피하는 대신 우리는 오히려 이 부조리를 이용해야 한다. 나 대신 다른 고기를 양식장 주인에게 내어주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식생을 바꾸어야 한다. 과연 생존의 중력을 거스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생태계 구축.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양식장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혹 나도 낚시꾼이 되는 방법은 어떤가? 그렇다 우리도 낚시꾼이 되어야 한다. 낚시꾼은 마케팅 고수이다. 미끼는 아주 품질이 좋을 필요는 없다.

전근대적인 논어 구절 [내부링크]

歲寒然後 세한연후 知松栢之後彫(凋)也 지송백지후조야 공자 * 위태롭고 어려운 때가 되면, 누가 진정한 충신인지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또는 설 추위를 지나 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배신을 암시하며 사람의 양심을 파고드는 이 구절은 개인의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한 나라의 모든 구성원이 ‘천자’인 황제를 중심으로 동일체로 있던 시절, 그래서 그 아래 충성심이 중시되던 시절에 어울릴 법한 설화 같은 구절이다. 현대와 같이 개인의 가치관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중국의 중세시대 ‘천자’와 같은 무오성을 갖춘 고귀한 중심이 되어줄 수 있을까? ‘군사부일체’와 같은 말도 현대와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단 아직도 쓰이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일당 독제체제의 중국 공산당과 검사동일체를 외치는 대한민국 검찰청이다. 아직도 이런 전근대적인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고 조직과 한번 맺은 충성스런 관계의 영속성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맺는 여러 관계들

시간이 돈이라고? 땡!!! 진짜 부자들만 아는 돈의 개념 [내부링크]

시간을 돈으로 환산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확한 의미에서 시간은 돈이 아니다. 사실은 가치 있는 것의 양이 돈이다. 바로 곱하기의 힘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수십조 원, 수백조 원의 부를 가진 부자들을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계량되고 측정 가능한 가치를 생산해 낸다. 생필품, 의류, 가방, 가전제품, 핸드폰 같은 유형의 자산, 멤버(회원), 지적재산 등의 무형의 자산 등이다. 이것들의 가치에 곱하기 수량을 하면 그것이 총 자산이 되며 비로소 수백조, 수천 조원의 가치를 가진다. 이처럼 시간이 돈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들의 개수와 건수가 돈이다. 아무리 시급이 높은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그 돈에 인간의 수명을 곱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절대로 수십, 수백조 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산층 정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부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다면 돈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가야 한다. 부의 창출은 쓸모의 창출이다. 이어서 쓸모의

강연에서 청중이 원하는 것 [내부링크]

사람들은 모범적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범 답안을 듣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일종의 균형 맞추기이다.

아주 정확히 돈이 불어나는 원리(이진우 기자) [내부링크]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 [이렇게 쉽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에도 자신의 경제가 나아지지 못하는 것은 위에 빌 게이츠의 말대로 정말 명백히 본인의 잘못이다.]

블레즈 파스칼 [내부링크]

인간은 "심정(coeur)적 존재"이다. "심정"은 "이성"이 모르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성"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잠재적이고 보편적인 능력이라면, "심정"은 각 개인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직관적 감성과 판단능력이다. 인간은 허영을 가진 심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타인도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인간은 심정적 존재이기에 결국 타인의 사랑을 집요하게 갈구하게 된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 박혀있기에, 자신을 찬양하기를 원한다. 『 허영 (Vanity) : 비어있는 꽃 』 모든 인간은 허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속은 비었지만 겉은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것은 허영이다. 『 허영은 벗어날수 없지만, 선택할수 있다. "피상적관계" 보단 "진정한 관계"에서 피어나는 허영을 선택하자.』 『 "진정한 관계"는 다른말로 "사랑의 관계"이다. 사랑하는 사랑앞에서의 허영만이 행복을 준다. 』 블레즈 파스

성선택과 바람 [내부링크]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짝짓기에서 암컷에게 주도권이 있다. 이 이론은 발표 당시 매우 논란이 되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학계에서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어떠한가? 바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륜에 있어서도 여성이 더 많은 노하우와 주도권을 가진다. 여자들이 가진 육감의 근원도 바로 이런 불륜의 노하우에 있다. 불륜의 프로세스를 잘 아는 여자들이 그 육감으로 남자의 불륜을 잡아낸다. 반면에 이런 육감이 없는 남자는 여자가 불륜으로 낳은 남의 자식을 평생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음양의 조화 [내부링크]

#음양 #조화 "음과 양은 왜 끌리는가?" 다르게 표현하면 방향이 다른 것은 왜 끌리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의문을 해결하다 보면 어떤 신진 과학자들이 말하듯이 정말 세상이 코딩으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수학에서 + 기호와 - 기호는 좌표계에서 방향이 반대이다. 그래서 +항과 +항을 더하거나 -항과 -항을 더하면 절댓값이 커지지만 +항과 -항을 더하면 절댓값이 작아진다. 절댓값은 좌표계에서 0과 결괏값 사이의 거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1+1=2나 -1+(-1)=-2는 0에서부터의 거리가 2로 늘어나는데, 1+(-1)=0처럼 음수와 양수가 만나면 그 절댓값이 0으로 작아지는 결과가 나온다. 즉 음수와 양수가 만나면 그 두 항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여자와 남자는 신체구조상으로도 그 모양이 반대여서 그 구조가 가지는 알고리즘에 의해 행동 방식도 반대이다. 그래서 수놈끼리는 경쟁하며 거리가 멀어지지만 암수가 만나면 그 구조에 따라 절댓값의 거리가 0에 수렴하게

진짜 궁합 [내부링크]

음양의 조화 개념에 따르면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 나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못 이해하면 내가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란 나와 구조와 기능이 달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나와 나눌 수 있다면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다. 출처: pixabay 이에 따라 궁합의 정도를 나누어 보면 1.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똑같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나와 경쟁이 되어서 중간이고, 2. 내가 해야 하지만 못하거나 꼭 해야 해서 억지로 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상이다. 3. 반면 내가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최악이다.

여성 할당제와 공정 [내부링크]

생존은 평등해야 하나?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약자는 먹잇감, 강자는 사냥꾼이다. 생존 본능에 의해 강자는 사냥하고, 약자는 무리 지어 다니며 피해를 최소화한다. 이 자연의 현상은 공정한가? 그렇게 보인다.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질서가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자연의 현상은 평등한가? 그렇지 않다. 이 질서에서 강자와 약자의 생존은 평등하지 않아야 지속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성 할당제에서 여성의 고위급 사회 진출은 생존을 위한 것인가? 여성 할당제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생존과 할당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평등은 공정과 달라서 완벽한 평등 추구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흩어 놓아 지속 가능성을 훼손한다. 이와 같이 생존은 공정해야 하지만 평등과는 충돌하는 개념이다. 공정한 생존이 지속 가능하게 질서 있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여성 할당제 주장을 위한 제언) 여성할당제를 주장하려면 평등 대신 다양

엔트로피와 사랑 [내부링크]

엔트로피는 + - 라는 정반대 방향의 에너지가 만나 서로 상쇄되며 그 위상차가 0이 되는 과정이다. 이때 (-) 쪽 위상은 그 허용치가 무한대여서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와 같이 아무리 (+) 방향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멈추면 결국 완전한 열평형에 이르러 위상차가 0이 된다. 이 현상을 전기공학에서도 알 수 있다. 지구가 가지는 충전 허용치는 무한대이다. 그래서 전자제품이나 전기 동력 설비의 겉 케이스를 전선을 이용해 땅 속에 연결하면 누전 시 땅은 아무리 높은 전압과 전류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한다. 하늘에서 벼락이 피뢰침을 통해 땅속으로 흘러가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이런 음양의 관계를 볼 때 혹시 남녀 관계에서는 어떨까?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남자는 여자를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남녀가 만나 가까워지면 반드시 남자의 에너지가 여자에게 이동되다가 결국 에너지 평형에 이르고, 여자는 이 순간을 매우 외롭게 느낄 것이다. 너무 가까워져서 애정이 식는다니 너무 역설적으

일체유심조 [내부링크]

일체유심조에 대한 여러 오해가 있는데,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다름 아닌 일체유심조의 본 뜻 때문이다. 일체유심조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각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두 가지 해석이 있다면 어느 쪽은 잘못된 판단을 한 마음에 속고 있다. 어떤 일이 산으로 가고 있을 때 우리는 “다 엎어버리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라고 말한다. 속고 있는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판단을 보류하고, 본질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속지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경우가 더 많다. 최종 판단은 내가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만일 노래나 춤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이돌에 대한 환상에 젖어 헛바람이 들어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꿈 깨!” 또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보건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두 가지 견해로 판단이 나뉘었을 경우, 거의 100% 확률로 고통과

여한이 없음에서 최초의 질문으로 [내부링크]

정말 앤서니 보데인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지고의 법칙을 깨닫고 생을 마감한 것일까? 하늘 아래에는 정말 새로운 것이 없는가? 당연하다. 하늘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단지 새로운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앤서니 보데인의 삶을 통해 돌아 보건대,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살기 보다 새로운 질문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이미 답이 있는 것을 처음 봤다고 해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아직 답이 없는 질문 그 최초의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뛰어난 언어 구사력으로 유명한 조승연 작가. '조승연의 굿모닝 팝스' 방송도 기억이 난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 '불안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이유?'에 대한 콘텐츠가 올라왔다. (먼저 한번 영상을 시청하길 권장합니다.) 주제는 불안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이고, 요약을 하면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여 뭔가 자꾸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여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 상당수의 인물들이 자신을

권력, 벌을 내리는 자 [내부링크]

"권력 잡으면 경찰이 알아서 입건"... '김여사의 예언' 현실화 경찰, 더탐사·서울의소리·한겨레 등 잇따라 조사... "윗선 의지 반영됐을 것" 지난 6월 16일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를 예방한 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n.news.naver.com 벌을 내리는 자는 무슨 권리로 누군가에게 벌을 내려 권선징악을 이루는가? 후진국일수록 벌은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의 편의가 침해당하면 자신의 룰대로 준다. 힘이 없는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들에게 벌은 일종의 심리 기법이며 그 처벌 대상을 가축처럼 사유화하고자 한다. 처음부터 없던 죄로 꼬투리를 잡아 벌을 내리면 벌을 받은 사람은 용서를 빌게 되고, 용서를 받으면 벌을 내린 사람에게 은혜를 느껴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벌은 소수의 편의가 침해당했을 때 다수가 받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정의가 침해당했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자가 받아야 마땅하다.

잘못은 어떻게 바로잡는가 [내부링크]

치킨과 함께 온 달걀서 ‘구더기’가…가게는 빈정거리기만 달걀서 살아있는 구더기 나와…항의하니 “이틀된 게 왜 썩냐” “이럴 바에는 계란 안 주는 게 나아…치킨도 먹다가 버렸다” 누리꾼들 “식약처에 신고·본사에 클레임” 한목소리로 성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최근 배달 주문 n.news.naver.com #진짜 #긍정적 #사고 잘못된 현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대안을 찾아가는 것과 현실을 부정하고, 긍정적인 포장만 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잘못된 현실을 인정하려면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부터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 인정할 범위가 너무 넓어서 책임 질 요소가 생길까 두렵기 때문. 그러나 어떤 사안의 본질은 좁고 명확한 것. 이때에는 사안의 범위를 좁혀 들어가면 반드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본질이 드러난다.

캐치프레이즈 [내부링크]

이해가지 않던 어떤 표어에 대해 생각하다 비로소 이해가 되면 우리는 갑자기 그 일이 대단해 보이는 착각을 한다. 예를 들어 총선 때 민주당이 “토착 왜구 척결”을 외치며 총선이 한일 구도로 진행될 때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리야 하면서 의아했던 사람들이 “아 우리나라가 아직 과거 청산을 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이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 거기에 매료된다. 그리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그 진영의 논리에 충성을 다한다. 이 지점이 바로 무의식을 조종하는 캐치프레이즈 마케팅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어떤 마케팅이나 마찬가지 이겠으나 의도를 숨기고 접근하는 것들은 진실되지 않아서 그것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한번 더 필터링이 필요하다.

겁먹은 큰소리 [내부링크]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어떤 미래의 일에 갑자기 겁을 먹으면 뇌는 생존에 위협을 받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동시에 생각해낸다. 그리곤 그중에서도 가장 확률이 낮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최악의 경우에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부정성 편향이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들었다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이 급해진 경우에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된다는 식으로 지나친 걱정을 하거나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해내지 못할 일도 다 책임질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두 경우에 모두 이런 모습으로는 주변에 신뢰를 줄 수 없다. 어떤 일에 갑자기 겁을 먹었을수록 생각나는 모든 것을 겉으로 내보이기보다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있을 일, 없을 일을 구분하게 되고 그다음에 행동하면 다른 사람에게 겁먹은 것을 들키지 않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진영과 개인 [내부링크]

자기의 정체성을 집단에서 찾으면 지역감정, 진영논리, 적대국가 혐오, 내식구 또는 패거리 주의에 빠진다. 이럴 경우 누군가 자기가 속한 집단에 공격을 가하면 정작 그 문제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상대가 누구가 됐든 적으로 인식하고 자기 집단을 방어한다. 심지어 그 상대가 부모만큼이나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집단이 곧 내가 되면 나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내 진영의 논리만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정체성은 나 개인에게 있지 집단에게 있지 않다. 나 자신에게서 정체성을 가지면 시야를 좌, 우 어디에 두든지 상관이 없다.

지식을 넘는 지혜 [내부링크]

인생은 다음 두 가지로 성립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_1749-1832)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미 성취한 것을 활용해야 앞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밴드 갭을 돌파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미 성취한 곳에서 나온다. 그것이 바로 지식을 넘는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