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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은 해롭다 [내부링크]

제목은 거창하게 써넣긴 했지만, 저 말은 곧이곧대로 본다면 우스운 말이다. 쉬운 길이 있다면 쉬운 길로 가야지, 고행하는 수도승도 아닌데 일부러 험난한 길을 갈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고행의 영역에 있는 험난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나를 좀먹는 '편안해지는' 일에 대한 내용이다. 내 게으름을 강화하는 환경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들의 삶은 점차 편안해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내가 무슨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스마트폰이 나를 대변해 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본연의 목적인 다른 사람과의 연락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시간, 날짜를 확인하고 일정을 기입하는 일정 관리 스케줄러로 이용할 수도 있으며, 무료함을 달래는 게임기, 동영상 플레이어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등 창작의 도구

20년 전 친구를 만나며... [내부링크]

나는 과거와 만났다. 지난 토요일, 고대하던 친구를 만났다. 연 단위의 세월이 무색할만큼, 친구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때깔이 더 좋아졌더라. 친구의 얼굴을 보는데, 잠깐은 어색했다.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낯간지러워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금방 적응되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어색해서 말을 잘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도 재잘재잘 쉽게 떠들었다. 오가는 술잔이 내 입에 물꼬를 틀어준 덕도 적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 공통되지 않았던 세월의 간극을 채우던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그 친구를 닮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두루뭉실하게 멋지다고만 생각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나는 친구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에도 나는 친구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 있는 모습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을 잘하는 모습도. 그 모든 모습들이 부러워서 나는 그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그저 그 정도로만 생각했

불안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부링크]

살다보면 미치도록 불안한 순간이 찾아온다. 나에게는 근 이 주일의 시간이 그러했다. 무엇 하나 이루지도 못했고, 어디론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도 없으며, 그곳을 향하려는 끈기도, 의지도 없는 사람. 내가 내린, 나에 대한 평가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 뿐인데, 왜 나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지. 정처없이 표류하고만 있는지. 이토록 내가 초라하고 미웠던 순간은 처음이었다. 현재는 마음이 진정되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도대체 왜 그렇게 불안해서 죽을 것만 같았는지... 상황이 변한 건 하나도 없지만, 단지 마음 하나 다르게 먹었을 뿐인데 불안감이 들쑥날쑥 요동을 친다는 게 웃음만 나왔다. 결국 불안했던 이유는 내 생각 때문인 것이다. 지금이야 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지난 이 주일, 정확히는 열흘 동안은 내 생애 두 번째로 바닥을 친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쌓아올린 것도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불안

내 사고 방식이 '불안'을 만든다 [내부링크]

내 사고 방식이 '불안'을 만든다. 최근 한 달 동안, 내가 고심하며 내린 결론이다. 지난 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시간을 가졌다. 내 자존감이 밑바닥을 뚫다 못해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오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평온하다. 지금도 환경 자체는 변한 게 없었다. 변한 건 단지 내 생각뿐이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흘러흘러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이제부터 쓸 내용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안의 근원은 막막함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예측할 수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 상황을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미지의 두려움은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에 얼마든지 그 크기를 부풀릴 수 있다. 커진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잡아먹고 점차 거대해져서 결국엔 나를 삼켜버린다. 이 상태에서는

절망은 곧 당신의 성장이다 [내부링크]

jplenio, 출처 Pixabay 아침에만 쌀쌀하고 오후엔 덥기만 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아침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싸늘한 계절이 다가왔다. 완연한 가을이다. 계절의 경계에서 돌아보니, 그 동안 심경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 시간들 또한 내게는 성장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닥까지 무너져 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특히나 나처럼 큰 변화 없이, 또는 그렇게 지내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사람들은 고통 받길 원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발전하고 나아가길 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사람은 현재 상황에서 불만족을 느끼고, 더 크게는 절망해야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자신이 느낀 절망이 크면 클수록 오롯이 현재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내고, 절망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 동안 고민하고 시도하고 고통받던 모든 시간들은 곧 나의 성장이 된다.

우리는 소통하며 살아간다 [내부링크]

우리는 가깝지만, 누구보다도 먼 존재이다. 살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나 그 대상이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을 때는 더더욱. 친구를 사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조별 과제와 궤를 같이 하는 다양한 협업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공동체 생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소통하는 법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Ana_J, 출처 OGQ 친구를 사귈 적이라면 내 입맛대로 인간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 애초에 서로 맞는 구석이 없다면 어떻게 그 관계를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의 기초적인 의사소통은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점차 많은 그룹에 속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군상을 발견한다. 내 주변 환경에서 벗어날수록 그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진다. 살아온 환경도, 사고방식도, 행동양식마저도

우리는 과거 속에서 살아간다 [내부링크]

오늘은 과거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정확히는, 우리들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과거이다. 세상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은 지평선 너머 머나먼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쉬면 죄를 지은 것처럼 자신을 채찍질하기까지 한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이끌고 도착한 곳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곳엔 그들의 목표, 그토록 손에 쥐고 싶어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로 향하는가? 사람들은 욕망을 이루려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 목표도 각양각색이다. '나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싶어요.'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이유는 다르지만 그 목표는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노력하고, 지금 이 순간에 불을 지피며 살아간다. 그 목표를 이루고 난다면 우리는 다음 목표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이다.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끔찍한 기억이 되어버린 할로윈 [내부링크]

일요일 새벽, 아무것도 모르고 자다 깨서 새벽에 폰을 켜는데, 인터넷에 난리가 나 있었다. 이태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사망자만 150명에 달하고 부상자도 그와 비슷한 수준에 달하는 사고였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숫자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건물이 붕괴된 것도, 화재가 난 것도 아니다. 단순히 너무도 많은 인파가 모이고, 모여서 생긴 압사 사고였다. 그런데 그 사고의 스케일은 웬만한 재해와 견줄만큼 거대했다. 즐겁게 끝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어야 하는 축제는 이제 비탄에 잠겨버렸다. 모두들 축제를 즐기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일 텐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안타까운 심정이다. 관련 소식들을 접해보면, 당장 지인을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상을 목격했을 테고, 또는 그 참상에 연관되었다. 누군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리고 무겁기 짝이 없는 죽음을 눈앞에서 수차례 목도했다. 그들의 죽음

같은 목표, 다른 생각 [내부링크]

오늘은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느꼈던 점 하나.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하더라도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목표를 향한다는 뜻이 그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나 그 목표에 대해 가지는 생각까지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겠지만, 우리는 쉽게 이 사실을 간과한다. 누군가와 함께 협업하는 일이 잦은 사람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협업이라는 환경에서 더욱 크게 다가온다. 생각보다 서로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느꼈다.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아직은 많이 필요해 보인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부링크]

저번 주에 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이 주제를 깊이 다뤄볼 생각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정말 불가능할까? 나는 이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YES라고 답하겠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정확히는, 완벽하게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생각한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생각 없이, 그저 관성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그건 결국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대로, 그리고 추구하던 대로 행동한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때론 감탄하고, 때론 당황하고, 때론 기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 행동을 하게 만든 사고방식에 동감하거나 반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사고방식은 곧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우리

기적같은 날, 일기를 시작하다 [내부링크]

아주 어릴 적,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 짓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존재했다.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커 가면서 같은 반이 되지도 않고 접점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또한 정말로 멀어진 이유는 내가 그 친구를 붙잡지 못하고 조금씩 밀어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는 탓이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였는데 어째서 밀어냈냐고? 어릴 때의 꼬꼬마가 뭘 알겠는가. 자신 주변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지도 못할 때가 아닌가. 모두가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때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가뜩이나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느라, 나는 주변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사람들 눈도 잘 못 마주치는데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어디있겠는가. 사람들과 함께해봤자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느라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내가 단발적인 쾌락에 빠져들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