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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와 성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계 [내부링크]

1. 호세아서와의 관계 예레미야서와 호세아서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두 책은 많은 동일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로 묘사한다는 것도 유사하다(렘 2:2-3, 20-25; 3:1-5; 호 2:7 등). 또한 두 선지자는 선지자로 살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불행한 결혼을 해야 했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하며 언젠가 나라가 다시 회복될 것을 내다보고 있다. 두 책이 유사한 이유에 관해 일부 학자들은 두 선지지가 위치했던 지역이 가까웠기에 예레미야가 호세아의 전승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지역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레미야가 성장해 온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예레미야는 성막을 지키고 있었던 엘리 제사장

1일. 신명기 1:1-5 [내부링크]

[한글 음역] 1. 엘레 / 하데바림 // 아쉐르 / 디베르 / 모세 // 엘-콜-이스라엘 // 베에베르 / 하야르덴 // 바미드바르 // 바아라바 / 몰 / 숩 // 벤-파란 / 우벤-토펠 // 베라반 / 바하체로트 // 베디 / 자하브 // 2. 아하드 / 아사르 / 욤 // 메호레브 // 데레크 / 하르-세이르 // 아드 // 카데쉬 / 바르네아 // 3. 바여히 // 베아르바임 / 샤나 // 베아쉬테-아사르 / 호데쉬 // 베에하드 / 라호데쉬 // 디베르 / 모세 // 엘-베네 / 이스라엘 // 케콜 // 아쉐르 / 치바 / 아도나이 // 오토 / 아레헴 // 4. 아하레 / 하코토 // 에트 / 시혼 // 멜렉 / 하에모리 // 아쉐르 / 요셉 / 베헤쉬본 // 베에트 // 옥 // 멜렉 / 하바샨 // 에쉐르-요셉 / 베아쉬타로트 // 베에드레이 // 5. 베에베르 / 하야르덴 // 베에레츠 / 모압 // 호일 / 모세 // 베에르 // 에트-하토라 / 하조트 // 레모

2일. 신 1:6-8 [내부링크]

[한글 음역] 6. 아도나이 / 엘로헤누 // 디베르 / 엘레누 // 베호레브 / 레모르 // 라브-라켐 / 쉐베트 // 바하르 / 하제 // 7. 페누 // 우스우 / 라켐 // 우보우 / 하르 / 하에모리 // 베엘-콜-쉐케나브 // 바아라바 / 바하르 // 우바쉐펠라 / 우반네케브 // 우브호프 / 하얌 // 에레츠 / 하케나아니 // 베할레바논 // 아드-한나하르 / 학가돌 // 네하르-페라트 // 8. 레에 // 나타티 / 리프네켐 // 에트-하아레츠 // 보우 // 우르슈 / 에트-하아레츠 // 아쉐르 / 니쉬바 / 아도나이 // 라아보테켐 / 레아브라함 // 레이츠하크 / 우르야아코브 // 라테트 / 라헴 // 우르자르암 // 아하레헴 // [개역 개정 | 필자의 번역]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선지서의 문학 장르 [내부링크]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같은 놀라운 주제를 전하되 문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고유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 때 역사비평학의 영향으로 보수학계에서는 성경의 문학적 기법을 연구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학계 분위기는 성경의 문학 장르를 구분하고 그 장르에 따른 고유한 문학 기법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점에 어느 정도 일치를 이루었다. 따라서 선지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선지서에 사용된 문학 기법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선지서는 크게 산문(이야기)과 운문(시)라는 두 가지 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은 자서전이나 전기적인 기록을 위해 사용되었고 운문은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 문학 방법들을 보다 세분화하면 보도(accounts 또는 reports), 예언의 말씀(prophetic speeches), 기도(prayers)와 같이 세 가지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지혜 말씀과 같은 더 세부적인 장르도 있지만(겔 18:2; 12:22

선지서의 역사적 배경 [내부링크]

선지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별히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왕이나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지형을 보면 서쪽은 지중해, 동쪽은 사막으로 동서로는 비교적 안전을 보장받고 있었다.[1] 하지만 남쪽은 이집트, 북쪽은 앗수르, 시리아(아람), 바벨론이라는 강대국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늘 위협이 되었다. 이 국가들이 남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요시야 왕이 일찍 죽음을 맞이했던 이유도 북으로 공격해 오는 애굽 왕 바로를 막기 위해서였다. 반면에 주변국들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이스라엘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북왕국 여로보암 II세와 남왕국 웃시야 왕 때 나라가 부강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선지서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 하에서 기록되었다. 백지 상태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지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배경들을 파악하는

대선지서의 서론 [내부링크]

기독교 성경에서 대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은 애가서와 다니엘서를 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애가서와 다니엘서를 선지서가 아니라 성문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독교 성경은 칠십인경의 영향으로 대선지서에 편입시켰는데, 애가서는 예레미야가 기록했다는 가설에 의해 예레미야서 다음에 위치를 시켰고 다니엘서는 내용의 장엄함과 중요성을 고려해 대선지서에 편입시켰다. 시기상으로는 다니엘서가 대선지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된 책이기에 마지막에 위치시킨 듯하다. 그러나 대선지서 서론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따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세 권에 대한 설명으로 채우고자 한다.[1] 세 책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따라서 역사적 상황과 함께 세 권의 내용을 살피면 보다 분명하게 각 책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책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차이가

이사야서 서론 및 저작권 문제 [내부링크]

예로부터 이사야서는 매우 위대한 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사야서가 분량으로나 시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앞에 위치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그것보다는 이사야서가 갖는 장엄함과 광휘 때문일 것이다. 이사야서는 다른 어떤 책보다도 신학적 통찰이 깊고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문학적 솜씨 또한 탁월하다. 그는 원대한 신학, 즉 창조에서부터 새 하늘과 새 땅까지, 그리고 철저한 멸망에서부터 영광스런 구속에 이르는 모든 여정을 담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삶을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를 다룰 뿐 아니라 종말에 일어날 일들과 고난의 종 등 심원한 주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사야서는 성경의 축소판이라 불려왔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심판을 강조하는 첫째 단락은 모두 39장으로 되어 있어 마치 구약을 연상시키고 반면 회복을 이야기하는 후반부 27장은 신약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사야서는 시편과 더불어 신약 저자들에 의해 아주 폭넓게 인용되었다. 그만큼

이사야서의 구조 및 주요 메시지 [내부링크]

이사야서의 구조는 학자들 사이에서 일치된 견해를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까다롭다. 하지만 이사야서와 같이 비교적 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어려운 과정이라 할지라도 잠시 이사야서의 구조를 살피도록 하자. 이사야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른 선지서들과 마찬가지로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언한 후 곧바로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사야서 전체 구조를 보여줄 때도 사용된다. 1-39장이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40장 이후는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제 1 부 I. 1-6장. 힐책과 약속(소명기사) II. 7-12장.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 III. 13-23장. 이방나라들에 대한 신탁 IV. 24-35장. 온 세계를 향한 여호와의 통치 A. 24-27장. 세계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속 I B. 28-33장. 이방을 의

신학적인 메시지 [내부링크]

1. 하나님 이사야서의 신학적 주제는 어느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며 그 깊이도 가히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신론(하나님)일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자세히 논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위의 소명기사와 관련 지어 이사야가 그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the Holy One of Israel)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명칭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 용어를 총 25회 사용하고 있는데 1-39장까지 12회, 40-66장에서 13회를 사용하고 있다.[1] 이 외에도 ‘야곱의 거룩한 자(29:23),’ ‘그의 거룩한 자(10:17; 49:7),’ ‘너희의 거룩한 자(43:15),’ ‘거룩한 자(40:25; 57:15)’까지 합하면 총 31회로 증가한다. ‘거

예레미야서 서론 - 표제와 위치 [내부링크]

예레미야서는 구약의 선지서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장수는 52장으로 이사야서(66장)보다 다소 적지만 분량에 있어서는 더 많은 양을 차지한다. 분량이 많은 만큼 전체 메시지도 매우 다채로워서 몇 가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일정한 논리적 흐름이나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도 않기 때문에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예레미야서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선지자의 삶을 직접적으로 전달해 준다는 면에서는 친근감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선지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전해준다. 예레미야는 수많은 고난과 생명의 위협 앞에서 매 순간 죽음의 위기를 직면한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도 선지자로서의 그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쳐야 하는 외로운 선지자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꾼의 삶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

예레미야서의 정치적/역사적 배경 [내부링크]

예레미야서는 유다가 멸망 당할 즈음의 40여년 가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국제적인 정세와 유다의 국내적인 상황(종교적인 상황 포함), 마지막으로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편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국제적인 정세: 앗수르의 패배, 바벨론의 부흥 두 세기가 넘도록 고대 근동 지역을 지배했던 앗수르 제국은 앗수르바니팔 왕(주전 668-627년)의 죽음(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배) 이후 급속도로 축소되고 분열되었다. 이 기회를 틈타 오랜 시간 앗수르의 속국이었던 나라들이 다시 자신들의 야망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바벨론과 애굽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주전 612년 메대는 앗수르를 정복했고 메대인들과 동맹을 맺고 있던 바벨론(나보폴라사르)은 니느웨를 포위했다. 주전 605년 갈그미스에서 앗수르의 남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출정한 애굽(느고)과 바벨론(느부갓네살) 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바벨론이 승리함으

예레미야서에 관련된 논쟁들 [내부링크]

1. 역사비평학적인 접근방법들 1) 저작권의 문제 예레미야서는 일정한 연대기적인 순서나 일관된 주제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여러 신탁들이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게 배열되어 있다. 게다가 그 신탁들의 특정한 연대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치 파편화된 글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여호야긴의 석방과 같이 예레미야의 사역 시기보다 훨씬 후대의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1] 따라서 일부 비평주의 학자들은 예레미야와 이 책이 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제3이사야서와 마찬가지로 포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설교를 연대기적인 순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경직되고 단순한 태도이다. 우리는 다각도로 이 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에 관한 또 다른 제안은 바룩이다. 바룩이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 적었다는 기록도 있고 후반부에서 예레미야가 삼인칭으로 기록되었다는 근거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구체적

히브리어 성경 배열에 따른 선지서 읽기 [내부링크]

우리는 흔히 선지서를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성도들은 선지서 읽기를 꺼려하고 상대적으로 읽기 편한 몇 권의 선지서(요나, 호세아 등)에 치중할 뿐이다. 하지만 의외로 선지서의 내용은 간단하며 기록 목적 또한 분명하다.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 순서에 기초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이곳에서는 기독교 성경 순서와 히브리어 성경 순서를 비교하여 선지서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고 선지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독교 성경의 배열 순서가 가지는 의미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율법서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5권 역사서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12권 성문서 시, 지혜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5권 선지서 대선지서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5권 소선지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

선지자, 그들은 누구인가? [내부링크]

선지서에서 많은 오해를 불러오는 것 중 하나는 선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흔히 선지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한자(先知者)를 풀이하면 ‘먼저 아는 사람’이 되어 마치 선지자는 미래를 미리 아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예언자라는 한자(豫言者, foreteller)에 있어서도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의미가 선지자나 예언자의 정확한 의미일까?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올바로 표현한 것일까? 물론 선지자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를 미리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위의 표현들은 선지자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지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이것을 알기 위하여 이 글에서 선지자라는 단어의 어원과 성경에서의 용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어원학적 연구(etymological research) 선지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나비(נביא)로서 구약에서 대략 300회 정도 사용

선지자, 그들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내부링크]

처음 선지자는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 선지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선지자들을 접하지만 사실 그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선지자들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가장 처음 선지자로 불리는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지만(창 20:7) 선지자의 출현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모세 시대로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검토해야만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선지자의 역할과 소명 [내부링크]

1. 선지자의 역할 선지자의 가장 큰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백성들을 계몽하는 일이었다. 제사장이 주로 백성의 편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역할을 했다면[1]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말씀을 전달하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은 늘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사항들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와 같은 선지자들의 정형구문에서 발견된다. [2] 신 18:18-22은 이러한 선지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

시대에 따른 선지자들 [내부링크]

1. 기록 전 선지자 1) 왕정시대 이전: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등 구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선지자로 지칭되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다(창 20:7). 창세기 저자는 여러 곳에서 아브라함의 정체성을 선지자로 그리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임하여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전형적인 선지자적 공식(formula)으로 선지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창세기에서는 이 표현이 두 번 사용되는데, 모두 아브라함에게 사용된다(창 15:1). 게다가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선지자로 소개하신다(창 20:7). 이것들을 종합해 볼 때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은 제사장으로서의 기능도 강해 보이지만 저자가 그리는 그의 정체성은 선지자인 듯하다.[1] 그 후에 선지자로 불린 대표적인 사람은 모세이다(신 34:10).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지자를 설명할 때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하여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모델

선지서의 주제 I. 심판의 메시지 [내부링크]

선지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제의 문제(Subject matter)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What to say). 그러나 동시에 선지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전했는지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은 보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문학기법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지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How to say). 이 곳에서는 이 두 가지 면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선지서의 주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꾸중과 심판의 메시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회복(구원)의 메시지이다.[1] 선지서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과 더불어 회복의 선언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제를 더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제들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먼저 살펴본 후 나머지 주제들을 다루도록 하겠다. 그럼 가

선지서의 주제 II. 회복의 메시지 [내부링크]

언뜻 보면 우울해 보일 것만 같은 선지서에도 늘 비관적인 메시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선지서들은 회복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으며 주로 회복의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1] 선지자들은 늘 심판을 통하여 이루어질 정화 작업과 그 후에 있을 회복을 함께 바라본다. 비록 지금은 그들 앞에 임박한 심판만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오실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심판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심판을 통해 백성들이 정화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신다는 논리이기도 하다.[2] 회복의 메시지는 두 종류의 소망을 내포한다. 임박한 미래에 이루어질 회복과 먼 미래에(종말) 이루어질 회복이다. 보통은 선지자들이 이 둘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선지서 서론 III. 그 외의 주제들 [내부링크]

1. 하나님의 주권, 유일하신 하나님 선지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온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 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과거-현재-미래, 즉 시대를 넘어 온 우주의 역사를 다스리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열방을 포함하며 더 나아가 모든 자연 세계를 포함한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록된 선지서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넘어 온 인류 더 나아가 모든 자연 세계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도, 이방인들의 침략도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임을 인식해야 했다. 그리고 회개해야만 했다. 그렇지 못했을 때의 나라의 운명은 결국 멸망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선지서의 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심판과 회복을 가능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