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예지? 예지예정?


예정예지? 예지예정?

스킬더와 패더럴비전의 언약론 오해 [예정에서 언약을 보는가, 아니면 언약에서 예정을 보는가?] 개혁주의는 작정과 예정에 기초해서 언약을 이해하는 신론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신학계는 언약론에 기초해서 작정론을 펼쳐가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1618년 도르트 총회 때 알미니안파가 예정론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시도했던 방식이기에 매우 주의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정통파가 예정론에 기초해서 언약을 다루니까 이를 반대하기 위해서 거꾸로 예정론을 이해하도록 도전한 것입니다. 즉, 너무 예정관점에서 출발하면 신론중심이 되어서 과격해지고 인간의 책임과 의지가 약화되기 때문에 언약적 관점에서 예정을 다루어 언약의 대상자로서 인간의 책임과 선행을 강조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정통파의 “..


원문링크 : 예정예지? 예지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