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중지


판단중지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데 맞은편 어떤 커플이 보였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슬퍼졌다 어쩌면 나도, 아니 우리도, 언젠가 서로가 아닌, 각자로 돌아가, 더이상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서로의 검은 눈동자가 아닌, 각자의 검은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게 되지는 않을까, 씁쓸한 맛이 났다, 그런데 그들이 웃었다 서로의 화면을 보여주며 소리 내어 서로의 손을 건네 잡으며 세상에 둘밖에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각자의 화면 속에서 서로를 웃게 하기 위한 재미난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잠시 떨어져 시간을 갖던 것이었을까 혹은 함께 만들어 먹을 맛있는 레시피 또는 올 겨울 함께 떠날 여행지를 열심히 찾던 것이었을까 나는 안심하면서도 한심했다 내 시야에 갇혀 내 세상에 갇혀 타인을 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이 판단중지, 조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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