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 폭동에서의 김달삼


대구 10월 폭동에서의 김달삼

사료를 뒤져도 자세한 행적이 얼마 나오지 않는 제주 최흉 최악의 빌런 김달삼(본명 이승진). 하지만 46년에 무엇을 했는지는 대충 추측할 수 있는데 "해방 후 이승진은 대구의 형집에 임시 기거하면서 1946년 10월 1일의 대구폭동에 깊이 개입했다. 폭동 초기의 소위 시체사건의 주모자로 개입했고, 조선공산당 대구시당 서부지역 세포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경찰의 체포를 피해 연말경 귀향하여 대정면 하모리에 거주하였다.[김영중, 《제주 4.3사건 문과답》 2021.5.31., 478쪽] 여기서 폭동 초기의 시체사건이란 무엇일까? "1946년 9월 하순 한 좌익 선배가 쪽지를 봉투에 넣어 주면서 대구의대 학생 대표에게 갖다주라고 했다. 김계철은 봉투를 들고 가다가 쪽지를 펴 보았다. ‘시체 네 구를 준비하라’로 시작되는 메모였다. 쪽지를 전달받은 학생 대표는 읽어보더니 옆에 있는 학생에게 ‘되는가’하고 물었다. 그 학생이 김계철을 데리고 해부실로 가더니 약물에 담겨있는 시체와 붕대에 감겨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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