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네 개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의 피화’라는 의미에 가장 적합한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삼사의 영향력이 대단히 팽창했을 때 국왕과 일부 대신이 그 관서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전격적으로 숙청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서 연산군대 무오·갑자사화의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삼사의 위상은 그만큼 확고해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묘사화는 삼사의 제도적 규정이 현실에 뿌리내리는 마지막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중종 후반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잘 나타나지만, 그 뒤 삼사는 권력자에게 사유화(私有化)되어 그의 정적(政敵)을 탄핵하는 기능의 변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종 초반의 정치적 지형 연산군의 폭정 때문에 중종반정은 쉽게 성공했다(1506년 9월 2일). 왕조 최초의 반정이었기에 대규모의 포상이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반정 직후 그때까지 가장 많은 104명의 정국(靖國)공신이 책봉되었고(9월 8일),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유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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