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엉덩이


비둘기 엉덩이

비둘기의 엉덩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환경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해 동물로 지정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비둘기의 엉덩이 따위에 그 누가 관심을 주겠는가. 하루아침에 기온이 20도 넘게 널뛰기하는 텍사스의 요상한 날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내가 준다. 난간에 기대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중간, 그 애매한 어딘가에 위치한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보다 익숙한 꽁지깃이 내 시야를 방해한다. 웬 비둘기 한 마리가 새똥이라도 싸려는 건지 엉덩이를 밖으로 까놓은 채로 건물 지붕 끄트머리에 앉아있었다. 회색 보라색 초록색 흰색 등 여러 색이 기분 나쁘게 섞여 있는 비둘기 색과는 다르게 엉덩이만은 갈매기의 색만큼 희어 놀랐다. 이 흔하디흔한 조류의 엉덩이가 왜 이리 낯설게 다가오는지 잠시 생각에 잠겨보니 문제는 흔함이었구나. 희소성으로 모든 가치가 매겨지는 이 세상에서 흔하디흔한 것은 안타깝게도 무가치하다. 비둘기 또한 너무나도 무가치해 대놓고 자신의 엉덩이를 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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