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영빈관 -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영빈관의 역사


(정리) 영빈관 -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영빈관의 역사

최근 청와대 영빈관 신축으로 말이 많다. 조선시대와 근대 그리고 현재 영빈관은 언제 지어졌고 어떻게 운영 되었을까? 영빈관(迎賓館)은 외국의 국가 원수나 국가기관의 장 등 국빈을 맞이했을 때 회식이나 숙박 등의 대접을 하는 시설이다. 조선시대에는 규모나 격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한양에 모화관(慕華館)·태평관(太平館)·남별궁(南別宮)·동평관(東平館)·북평관(北平館) 등 주변국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묵을 수 있는 영빈관을 여럿 운영하였다. 새로 모화루(慕華樓)를 서문(西門) 밖에 지었으니, 송도(松都)의 연빈관(延賓館)을 모방한 것이었다. 문신(文臣)에게 명하여 각각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바치게 하니, 성석린(成石璘)이 모화(慕華)로 이름을 짓도록 청하였다. 태종실록 태종 7년 8월 22일(1407) 모화루와 모화관(慕華館) 태종 7년(1407) 8월 모화루를 건립하고 이듬해 태종 8년(1408) 4월 명에서 칙서를 가지고 사신이 오자 백관을 거느리고 모화루에 나가 영접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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