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가을날..


이른 가을날..

이른 가을날 곡식이 채 여물지 않은 들판에 여름이 우두커니 서 있다 뜨거운 햇볕이 아직 나뭇잎을 달구고 그 너머로 늦여름 하늘처럼 뭉게구름도 피어 오른다 지난 여름은. 그저 눈 비비며 졸음을 매단 채 전철에 오르고 하루를 여는 구호를 외치고 평가준비 서류를 뒤적이고 농지거리를 하며 하루를 밥알처럼 씹다가 가끔씩은 멍한 표정을 하고 알맹이 없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간간이 창 너머를 넋없이 바라보다가 가방의 지퍼처럼 하루의 끝을 채워버리곤 했다 다시 전철 손잡이에 흔들리며 소설 책장을 넘기고 젊은 날을 그려보다가 이만큼 멀리 떠나온 내 나이에 흠칫 놀랐다 늘 살면서 새롭게 살자 다짐하면서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를 보면서 생각대로 삶을 바꿀 수 없는 안타까움에 머리를 저으면서 이른 가을에 흔들리는 허수아비처럼 망연히 서 있다 결심하지 못하는 사람은 회한의 씨앗을 떨구고 떠나지 못한 사람은 못내 아픔 한 그루를 키운다 계단을 오르다가도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추다가도 한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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