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태릉선수촌 자리인 묘동마을은 무덤이 많은 묘산(廟山)과 태릉·강릉의 능제(陵祭)를 준비하던 곳이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 왕의 장례나 제사에 쓰는 궁중 요리법은 이곳을 통해 민간으로 전래됐다. 왕릉 옆에 살면서 귀한 고기 맛을 본 사람들이 알음알음 갈비 요리법을 익혔다. 여기에서 ‘태릉갈비’가 시작됐다. 다른 왕릉 근처의 ‘홍릉갈비’ ‘삼릉갈비’도 이렇게 탄생했다.태릉에 갈비촌이 집단으로 형성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인근의 먹골(묵동)에는 배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흰 배꽃이 만발했다. 꽃놀이꾼들이 몰려들자 배꽃 그늘 아래에서 갈비를 구워 파는 사람들이 늘었다. 1972년 푸른동산이라는 놀이공원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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