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명 압사’ 영국은 어떻게 23년 만에 책임자를 단죄했나 [경향신문]


‘97명 압사’ 영국은 어떻게 23년 만에 책임자를 단죄했나 [경향신문]

“지난 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공식 사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1989년 축구 경기장에서 관람객 97명이 압사한 뒤, 정부가 나서 23년 만에 보고서를 발간해 경찰관의 과실치사 책임을 끝까지 추궁한 영국 정부의 대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압사 사고 ‘경찰 책임’ 끝까지 추궁한 영국, 책임지는 이 없는 한국 1989년 4월15일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컵 준결승에서 96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공식 사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1989년 축구 경기장에서 관람객 97명이 압사한 뒤, 정부가 나서 23년 만에 보고서를 발간해 경찰관의 과실치사 책임을 끝까지 추궁한 영국 정부의 대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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