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3] 백자항아리의 특징과 변천 : 17세기


[백자 #3] 백자항아리의 특징과 변천 : 17세기

16세기 말 부터 17세기 초까지 수차례의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으로 국력은 쇠퇴하였고 대부분의 산업은 침체와 단절의 위기를 맞았다. 도자수공업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여 17세기 초 양질백자의 생산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후, 금, 은, 동과 같은 물자의 조달이 어려웠던 당시에는 왕실에서도 각종 금속기명(金屬器皿, 금속제품)을 자기(磁器)로 대체하면서 도자의 수요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급증한 도자수요에 비해 공급여건이 열악했던 17세기 전반에는 도자기 생산체제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였다. 청화백자는 왕실의 제례기명으로 가장 중요한 기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안료인 회회청을 구할 수가 없어 왕실의 연례제사에 필요한 용준(龍樽, 용을 그린 그릇), 화준(花樽, 꽃을 그린 그릇)조차 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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