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롭던 귀족 자기...만인의 그릇이 되다 '고려후기 개성의 도자기'


호화롭던 귀족 자기...만인의 그릇이 되다 '고려후기 개성의 도자기'

호화롭던 귀족 자기...만인의 그릇이 되다 '고려후기 개성의 도자기' [2018 경기천년, 경기 역사 문화의 전개] (3) 고려후기 개성의 도자기 고려 후기 개성에서는 어떤 도자기가 사용되고 있었을까? 당시 정치적 격동기의 변화는 도자기의 제작과 사용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개성은 생산의 중심지가 아니라 소비의 중심지였으며, 최신의 청자부터 각종 청자들이 모여드는 집결지였다. 원래 고려시대 청자의 제작은 관영(官營) 수공업 체제로 강진의 대구소(大口所)에서 생산돼 중앙에 공납되는 시스템이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보아도 청자는 고려에서 매우 귀하고 일부 귀족들만이 향유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렇지만 고려 후기 개성의 청자 사용의 기록들과 그곳에서 사용됐던 청자들을 살펴보면 드라마틱한 변화를 알 수 있다. 청자상감국화절지문정릉명접시 먼저 고려 후기의 역사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문화적으로 고려 후기의 기점이 되는 것은 1260년 원나라와 평화조약을 맺은 후 충렬왕(忠烈王...



원문링크 : 호화롭던 귀족 자기...만인의 그릇이 되다 '고려후기 개성의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