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황제 무측천


여황제 무측천

【 최초의 여자황제 】 순조롭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무측천은 미신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여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형성해 나갔다. 예를 들면 그녀의 조카 무승사(武承嗣)는 사람을 시켜 "황제의 모친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니, 황제의 업적이 영원히 번성하리라(聖母臨人, 永昌帝業)"라는 글귀가 새겨진 흰돌을 낙수(洛水)에서 가져왔다고 하면서 바치게 하였다.

그것을 본 무측천은 매우 기뻐하여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하였다. 당 고조 이연의 11번째 아들 이원가(李元嘉)의 반발이 있었지만 무측천은 즉시에 그것을 진압하고 황제의 등극을 향하여 순조로운 행보를 계속하였다.

이로부터 더 이상 그녀의 권세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690년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을 기하여 무측천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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