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에는 원찰이 세 곳 (4) - 흥천사에는 세 개의 종이 있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에는 원찰이 세 곳 (4) - 흥천사에는 세 개의 종이 있었다

‘흥(興)’이나 ‘봉(奉)’이 들어간 사찰은 대부분 왕실과 관련이 있다. 조선 초 사대문 안에 있었던 세 개의 사찰 이름은 모두 흥(興) 자를 첫 글자로 사용했다. 조선 첫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정릉의 능침사 흥천사(興天寺) 나중에 원각사가 된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흥복사(興福寺) 태상왕으로 있는 이성계의 명에 의하여 태조가 살던 집터(지금의 서대문구 지역으로 추정)에 지어진 흥덕사(興德寺) 경복궁 바로 옆 지금의 영국대사관 자리에 신덕왕후 강 씨의 정릉을 두었고 능을 관리할 원찰로 정릉 동쪽(지금의 서울시의회 자리로 추정)에 흥천사를 세웠다. 태조는 왕후의 능에 재를 올리는 흥천사 종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침소에 들고는 했다고 한다. 태조 6년과 7년에는 흥천사에 거동했다는 기사가 수시로 나온다. 오죽했으면 "백관(百官)들이 자리에 나아와서 반열(班列)을 정제(整齊)했는데도 임금은 조회를 보지 않고, 흥천사(興天寺)에 거둥하여 사리전(舍利殿)의 건축을 시찰하였다." (태조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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