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쿠르베의 관종력


구스타프 쿠르베의 관종력

1853년,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자부심 강하고, 가장 오만한 사람”으로 일컬었다. 그리고 1861년에는 “미술을 아는 젊은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그들의 총사령관”이라고, 또 1873년에 이르러서는 “모든 민주적 정신, 모든 나라의 모든 여성, 모든 외국인 화가들이 내 편”이라고 했다. 게다가 자기의 위업이 “독일 국민 모두의 부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오만함은 그의 천성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을 염두에 둔, 계산된 것이기도 했다. 쿠르베는 스물네 살 되던 해 파리로 갔고, 그로부터 5년 뒤 그의 그림이 처음으로 살롱전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거칠고, 호전적이고, 전복적이고, 촌티를 못 벗은 시골뜨기의 모습을 창조해냈다. 혹은 그 모습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적응시켰거나. 이윽고 쿠르베는 오늘날의 일부 텔레비전 스타가 그렇듯 대중에게 알려진 이미지와 자신의 본성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위대한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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