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개주(Ⅲ-4)


여성의 개주(Ⅲ-4)

Ⅲ. 서양 여전(女傳) 4. 덕행의 ‘주체(subject)’―‘열녀(烈女)’라는 애국자 앞서 언급했듯이, 『女學雜誌』는 1885년 5월에 편집의 중심인물인 곤도 겐조와 이와모토 요시하루 두 인물을 잃고 일시 휴간에 들어갔다. 2개월 후에 간행된 24호(1885.7.30)는 제호만 있던 표지에 삽화를 넣고, 동시에 새로운 여전(女傳) 란을 마련하여 ‘새로 단장’한 인상을 풍겼다. 다지마(田島象二)가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나라의 도읍(奈良の都)」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여전 란의 취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본·중국·서양의 구별 없이, 여성으로서 용감한 행동을 한 자는 우리나라의 벚꽃에 해당할 터이다. 어찌 和漢洋을 구별하여 벚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난은 고금 각국의 정렬의용(貞烈義勇 ) 혹은 충효인애(忠孝仁愛)로 유명한 여성의 전기를 기술하여, 다소나마 가르침의 재료로 삼고자 한다. (강조점은 필자) 이 취지에 의거하여 연재된 「마거릿전」은 다지마의 『서국열녀전(西國烈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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