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걷다보면

걷다보면 내가 이 생을 한 번만 산게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들어요 수십 번, 아니 수억 번을 살아왔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몸서리가 쳐지는구나 삶의 진부함에 아득해지는구나 제 곁을,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가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지나가요 전엔 몰랐는데 이젠 알아요 사람들은 견디지 못해서 뛰는 거예요 지긋지긋해서 페달을 밟는 거예요 진부함과 무의미를 떨쳐내려고. 그들 곁을 느릿느릿한 제가 지나가요 사력을 다해 떨쳐내면서. 그냥 걸어요 그래서 결혼을 하는구나 그래서 아이를 낳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요 영원 속을 걷는 기분이에요 그 아이들도 진부함에 몸서리를 치며 제 뒤를 따라 영원히 걷게 되겠죠 이런 생각을 안 하려면 술을 마셔야 되는데 의사가 마시지 말라고 하네요 커피도 끊으랍니다 몸이 건강해지니 삶의 진부함이 더 없이 날카롭게 후비고 들어와 미쳐가는 중이랍니다 안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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