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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로스차일드 가문을 막을 수 없다 [내부링크]

나탄 로스차일드의 활약 1804년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나탄은 세계의 중심 런던에 N.M.로스차일드 부자은행(N.M. Rothschild & Sons)을 세웠다. 외국계 은행으로는 최초로 근대의 대형 국제 금융기관이 되었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은 상품거래, 밀수에는 손을 떼고 1810년부터 오늘날까지 돈만 취급하게 되었다. 나탄, 빌헬름 백작을 이용하여 돈을 벌다 나탄은 빌헬름 백작에게 영국 콘솔채(만기가 없어 원금은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지급하는 영구채)투자를 제안한다. 빌헬름은 1809년 2월부터 1810년 12월까지 콘솔채 구입자금으로 55만 파운드 스털링을 투자한다. 나탄은 이 투자에서 작게는 20배, 많게는 150배의 수익을 남겼다. 빌헬름 백작은 나탄에게 콘솔채를 평균 72파운드 스털링으로 ..

로스차일드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다 [내부링크]

빌헬름 9세가 새로운 궁전으로 옮겨간 같은 해 마이어와 그의 가족들도 게토 안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집, 녹색 방패 간판이 달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마이어는 이곳에서 추가로 포목점 운영을 시작했다. 새집에는 마이어의 비밀장소가 있었다. 뒷마당 한편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곳에는 위장용 금고, 벽에는 비밀 선반이, 바닥에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마이어는 이곳에 문서, 계약서, 보증서 등을 보관했고 시간이 지나선 빌헬름 9세와 관련된 중요한 것들을 보관하게 된다.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가족 경영'이라는 원칙이 있었다. 마이어는 10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이 중 5명의 아들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성공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첫째 암셸(미래 독일의 재무대신), 둘째 살로몬(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최..

로스차일드 가문 파헤치기 1 - 부의 서막 [내부링크]

로스차일드와 J·P모건의 공통점은 세계 금융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세계가 유럽을 축으로 돌아갈 때는 로스차일드가가, 세계가 미국을 축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부터는 J·P모건이 금융계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로스차일드가의 영향력은 살아있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물론이고 혁명과 전쟁이 잦았던 시기에 어떻게 로스차일드가는 부를 이룰 수 있었을까? 더 대단한 점은 근대에 형성된 명문 가문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가문은 로스차일드가뿐이라는 것이다. 2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부와 명성을 지켜온 비결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로스차일드 왕국의 시조, 마이어 로스차일드 마이어의 조상은 유대인 게토(ghetto: 과거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거주 지역)에서 ..

제 2차 산업혁명의 발생 배경과 의미 [내부링크]

영국의 앞선 기술을 도입하여 경제성장을 이룬 후발국들 영국 이외의 나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국의 앞선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 : 영국은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꺼렸다. 이를 막기 위해 기계 수출 및 기술자의 해외여행까지도 금지했다. 외국인에게는 공장 견학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 유출을 막기는 불가능했다. 영국 기술이 가장 먼저 전파된 곳은 프랑스, 독일, 미국과 같은 지역들이었다. 이 후발국들에서도 자본과 노동이 농업을 떠나 공업 부문으로 이동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이룩한 직후 공산품 가격 하락과 공업 부문 수익률 악화 등의 탈공업화를 자극하는 문제가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업화를 촉진하는 힘이 더 커졌다. 그리고 프랑스, 미국, 독일은 수입품에 대해..

영국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들 [내부링크]

산업혁명으로 영국 사회·경제에 생긴 변화 영국 산업혁명은 '공장제도'라는 새로운 생산조직을 만들어냈다. : 18세기 중엽까지 주요한 생산 형태는 가내수공업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초기 공장은 본격적 공장으로 발전했고 공장제도가 주요 생산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분산된 가내수공업 방식에서는 증기기관과 같은 대규모 동력 기계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선대제는 자본가가 생산과정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공업자들이 원료를 빼돌리거나 약속한 날짜까지 물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생산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공장제도가 도입되었다. 공장제는 상인이 직접 생산도구와 작업장 등을 소유하고 수공업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 가내수공업 : 거주지와 붙어있..

영국 산업혁명의 의미와 발생 배경 [내부링크]

19세기는 영국이 세계에서 패권을 장악한 시기이다. 영국이 거의 한 세기 동안 정치와 군사 차원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경제력에서 나왔고 이 막강한 경제력은 산업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산업혁명의 의미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19세기 초(1760년대~ 185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공업화를 말한다. 즉 기술과 생산 조직의 혁신이 지속해서 일어나 생산량과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었다. 영국 산업혁명은 인류가 맬서스의 세계로부터 근대적 경제성장의 세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산업혁명으로 인구 증가와 생활 수준 향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영국은 경제 구조가 농업에서 공업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자본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 [내부링크]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시시피 버블은 17~18세기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3대 버블 중 하나이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프랑스에 화폐 전문가가 나타나다 1643년 루이 14세는 다섯살에 왕위에 올랐다. 1661년 3월 그동안 섭정을 해오던 마자랭이 사망한 후 루이 14세는 자신이 직접 국정을 관장하고, 유능한 재무대신 콜베르가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1683년 콜베르 사망 후 낭트칙령 폐지, 계속되는 전쟁,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 데 돈을 낭비하면서 재정은 계속 나빠졌다. 루이 14세가 1715년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의 채무는 30억 리브르에 달했다. 그 당시 프랑스의 재정수지는 300만 리브르 정도였다. 루이 14세를 이어 그의 증손자인..

영국에서 일어난 투기 열풍 [내부링크]

세계 최초의 버블은 네덜란드에 발생한 튤립버블이다. 이후 1687년 영국에서 두 번째 버블이 일어났다. 영국의 투기 열풍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윌리엄 핍스라는 선장이 에스파냐 보물선에서 각종 보물을 건져 올리면서부터이다. 무역으로 돈을 벌던 핍스는 바하마제도 근처에서 보물을 가득 실은 콘셉시온 호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7년 동안 바닷속을 뒤진 끝에 콘셉시온 호를 발견하고 거의 2달 동안 바닷속에서 고생하여 은괴 32톤, 금괴 11킬로그램과 각종 보물을 건져 올렸다. 핍스가 인양한 보물의 가격은 30만 파운드가 넘었다. 6월 초 런던에 입항한 핍스는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제임스 2세와 선원 목을 뺀 나머지 돈은 후원자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되돌아갔다. 배당..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민간 중앙은행이 탄생하다 [내부링크]

잉글랜드 은행(BOE, Bank of England)의 탄생 네덜란드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 네덜란드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명예혁명이 일어난 영국으로 옮겨갔다. 네덜란드에서 윌리엄 왕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인원이 1만 4000명의 군사를 포함해 3만여 명이었다. 민간인 가운데 반 이상이 유대인들이었다. 이후에도 윌리엄 3세의 종교적 관용 정책(비국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함)으로 유대금융업자들이 대거 이동했다. 사람과 더불어 네덜란드식 사고방식과 금융제도까지 영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대외무역 팽창으로 상인과 해운업자들의 자금 수요가 많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금융기관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전까지 영국의 상인들은 금장에 자산을 맡기고 금장에서 발행한 보관증으로 거래를 해왔다. 169..

'달도 차면 기운다' 금융강국 네덜란드의 쇠퇴 [내부링크]

금융 산업 발전으로 17세기 동안 누렸던 네덜란드의 전성기도 계속되지는 못했다. 너무 일찍 성공을 맛본 부작용인지 투기로 인한 대규모 불황도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겪었다. 세계 최초의 버블이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투자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 투기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만 봐서는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22년 노터스라는 주식이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급등 이유는 주당 8주 무상증자였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주식의 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시작된 금융 산업 발전 [내부링크]

근대 금융의 모든 것이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금융 산업 발전으로 네덜란드는 17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최초의 동인도회사는 1600년도 영국에서 먼저 설립되었지만 근대적 의미의 주식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최초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시작된 주식 거래 16세기 네덜란드 선주들은 동인도와의 무역을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원양 항해를 해왔다. 몇 년 사이 이런 회사들이 산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나친 경쟁으로 무리하게 선단을 보내다 보니 이익은 점점 감소하였다. 스페인과 영국 등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크고 힘 있는 회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부와 의회가 나서서 하나의 회사로 합병을 추진했다. 이렇게 해서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

네덜란드의 부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내부링크]

16세기 말 네덜란드는 가난한 농촌의 집이라도 몇 점의 그림을 소장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부유했다. 16~17세기 전성기를 누릴 때 서구 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 번영의 원동력은 사람에게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사상적·종교적 자유를 인정했다. 16세기 중엽부터 스페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아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었고 가톨릭 세력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한 위그노가 네덜란드로 왔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술을 가졌거나 지식인인 경우에는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1579년 네덜란드는 건국 헌장에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면서 유럽 전역의 종교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금융자본과 인적자본을 계속..

스페인은 굴러 들어온 복을 차 버렸다 [내부링크]

1492년에 세계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 3가지가 발생했다. 세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1492.1.2. 레콘키스타(기독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 둘째, 1492.3.31. 알람브라 칙령(유대인 추방령 선포) 셋째, 1492. 10.12.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레콘키스타(Reconquista) 622년 아랍인들은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고 8세기 이후 지금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지역인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였다. 11세기 들어 이슬람 세력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3세기 말부터 기독교도들은 에스파냐 땅의 대부분을 되찾았으나 그라나다왕국은 마지막까지 남아 200년 이상 버텼다. 기독교 세력의 승부수는 기독교 왕국 간의 정략결혼에 있었다. 그 당시 이베리아반도에는 3대 기독교 왕..

애덤 스미스 '로마제국 멸망 후 농업과 상업' [내부링크]

농업의 쇠퇴 로마제국 멸망 후 농업은 여러 이유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토지가 생존과 안락한 생활 수단으로 여겨지다가 권력과 보호의 수단으로 바뀌면서 토지를 잘 관리하는 것보다 더 많이 획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영지의 규모가 곧 권력이었기 때문에 장자상속법, 한사상속제를 시행하면서 토지를 분할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토지 전체를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토지가 특정 가문에게 독점되었지만 그 토지를 잘 개량하려고 했던 대소유주는 거의 없었고 자기 영토를 방어하고 권위를 내세워 이웃을 지배하는 데 집중했다. 자산이 있다 하더라도 토지개량에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토지를 새로 구입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대소유주가 하지 않는 개량을 그들 밑에서 토지를 사용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

애덤 스미스 '자산의 분류' [내부링크]

먼저 자산과 자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자산(asset, 「국부론」에서는 stock이라는 단어를 사용) :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 소득을 축적한 것 자본(capital) : 장사나 사업 따위에 기본이 되는 돈,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생산 수단이나 노동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국부론」에서 국민이나 구성원의 자산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수입이 발생하리라고 기대하는 부분 = 자본 이 자본은 다시 1) 유동자본과 2) 고정자본으로 나뉜다. 유동자본 : 이윤을 위해 지출(사용)하는 자산이다. 자본은 재화를 구매·생산·제조하여 거기에 이윤을 붙여 다시 파는 데 쓰인다. 상인의 재화는 화폐를 받고 판매하기 전까지는 수입이나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

미운털 박힌 유대인은 중세시대에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내부링크]

중세 유럽과 이슬람 제국 622년 아랍인들이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 이슬람교가 등장한 지 1백년도 되기 전에 이슬람 왕국은 서양문명을 압도했다. 이슬람 왕국은 기독교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유대인에게는 관대하였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면서 일부 유대인들도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이베리아반도는 상업의 발달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8세기 이후 서부 지중해 위의 섬들은 모두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 지중해는 이슬람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바이킹족이 북해를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 대륙은 해상 진출을 할 수 없어 장원경제 체제에만 의존하였다. 장원 경제에서는 농사 이외의 상업은 기독교 교리에서 탐욕의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 유대인은 농노들과 같은 영토에서 살 수는 있..

애덤 스미스 ' 중상주의에 대한 반론 2' [내부링크]

애덤 스미스는 모든 상업 규제의 근본인 무역차액설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했다. 무역차액론이란? : 세계 부의 양은 일정하기 때문에 인접국이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자국은 부유하게 된다는 시각에서 외국무역에 의한 상업자본의 축적이야말로 국부를 이루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사상가로 토머스 먼(1571~1641)이 있다. 그는 "영국은 타국민으로부터 얻은 증여물이나 취득물에 의해서 부유하게 될지 모르나 이는 매우 불확실하다. 따라서 부와 재보(財寶)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외국무역뿐이다."라고 했다. 무역에 의존할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의 재화를 소비하는 이상으로 매년 외국인에게 더 많이 재화를 판매해야 한다. 그리고 본국 재화의 수출 증가, 외국 재화의 수입 감소..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에 대한 반론 1' [내부링크]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사상은 중상주의와 확실히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중상주의에 대한 내용은 이전 글 참고) 중상주의자들은 국가를 부유하게 사는 주요 수단으로 수입을 제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먼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수입제한 정책에 대해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살펴보자. 「국부론」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하는 것에 관세를 높게 매기거나 수입금지를 한다면 그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산업은 국내시장에서 어느 정도 독점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독점의 효과로 사회의 전반적인 생산활동이 증진하거나 가장 유익한 쪽으로 흘러갈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회의 전반적인 생산활동은 결코 그 사회의 자본이 고용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설 수 없다. 규제한다면 자본의 일부는 다..

애덤 스미스 '상품가격의 형성' [내부링크]

「국부론」 1편 5장~7장에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설명이 있다. 첫째, 교환가치의 실제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상품의 실제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둘째, 실제 가격을 구성하고 만드는 각각의 요소는 무엇인가? 셋째, 상품의 실제 가격(시장가격)과 자연가격간의 차이를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가? 교환가치의 실제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상품의 실제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먼저 「국부론」에 나오는 용어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 임금, 이윤, 지대의 자연율 : 그 시기와 장소에서 널리 통용되는 노동, 자산, 지대를 사용할 때 드는 비용의 통상수준 또는 평균수준 자연가격 : 상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단계까지 들어간 비용(임금, 이윤, 지대의 자연율을 적용)만을 고려한 가격 유효수요 : 실질적으로 돈을 ..

애덤 스미스의 '화폐의 기원과 사용' [내부링크]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 1편의 4장 '화폐의 기원과 사용'에 관한 내용이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거래하며, 교역하고, 교환하려는 공통된 성향이 있어 분업이 일어났고 분업이 확립되면서 자신이 생산한 물건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교환을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필수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결국 모든 사람은 교환하면 살아간다. 지금은 교환수단으로서 화폐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화폐가 없었던 과거에는 어떻게 교환이 이루어졌을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는 정육점 주인, 빵 가게 주인, 양조장 주인을 예로 들었다. 정육점 주인은 본인이 쓸 만큼을 떼어 내고도 고기가 많이 남고 빵 가게 주인과 양조장 주인은 고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빵 가게 주인과 양조장 주인은 각자 자기가 만든 생산물 이외..

중농주의 [내부링크]

프랑스 루이 14세 하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장 바티스트 콜베르에 의해서 수출진흥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그의 주된 목표는 국민들의 부를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대내적으로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나라를 통일하고자 하였다. 그는 한 지역에서는 기근이 다른 한 지역에서는 풍요가 공존하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의 양은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여 한 나라의 이득은 다른 곳에서의 상응하는 손실과 일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즉 프랑스가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손실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고자 했으며 또한 노임의 상승을 억제하여야만 공산품의 국제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견지에서 농업의 희생 위에서 저곡가정..

중상주의 [내부링크]

상업을 중시한 경제정책.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였다. 전제군주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유럽제국이 발달한 항해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이 시대에 어떤 정책수단으로 국가의 부를 증가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이 중상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중상주의는 대외무역을 수단으로 하여 한 나라의 부의 충실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상주의 정책은 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식민지를 찾거나 수출 산업을 진흥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거기에서 이루어진 정책적 제안은 다양했으나 체계적으로 이론이 전개된 것은 아니다. 중상주의는 당시 유럽에서 성립되었던 절대주의적 중앙집권 국가를 유지하고 강화..

애덤스미스의 '분업' [내부링크]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애덤스미스의 저서는 「국부론」이다. 그런데 그가 생존할 당시 그의 베스트셀러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었고 애덤스미스의 경제학 사상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애덤스미스의 경제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감정론」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애덤스미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를 추구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상업 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이기적 욕망이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제한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린 결론이 이 책에 있다. 「도덕감정론」은 도덕적 판단이 근거할 수 있는 기초에 관한 연구, 인간에게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고 사회질서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인 ‘공감'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