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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 역대 올스타 스쿼드 [내부링크]

Racing Club de Avellaneda 연고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창단일: 1903.03.25. 홈 구장: 에스타디오 프레시덴테 후안 도밍고 페론 별명: La Academia, El Primer Grande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8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인터콘티넨탈 컵: 1회 역대 최다 출장자: 나탈리오 페리네티 (405경기) 역대 최다 득점자: 알베르토 오하코 (244골)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는 아르헨티나 아베야네다에 연고를 둔 클럽으로, 간단하게 라싱 클루브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마추어 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았으며 이 때 7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 중 5번은 무패 우승이며 이 7연속 우승은 아르헨티나 최고 기록이다. 이러한 압도적인 전..

축구 황제, 펠레를 떠나보내며 [내부링크]

Edson Arantes do Nascimento, Pelé 1940년 10월 23일, 브라질의 트레스 코라송스에서 태어난 소년은 15세의 나이에 프로 축구선수가 되고 그때부터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간다. 완벽하고, 모든 인간들보다 우월한 재능.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든지 꺾는 활약. 역시나 완벽하고,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업적. 그것은 신화이고, 축구 그 자체이다.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10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6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 2회 토르네이우 리우 - 상 파울루 우승 4회 인터콘티넨탈 슈퍼 컵 우승 1회 북미 축구 리그 애틀랜틱 컨퍼런스 챔피언십 우승 1회 북미 축구 리그 사커볼 우승 1회 FIFA 월드컵 우승 3회 코파 아메리카 우승 1회 캄페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결산 - 베스트 팀, 개인 수상 [내부링크]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약 한 달간의 여정 끝에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축구에서 월드컵이 가지는 큰 의미를 다시 한 번 보여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대회였다. 나 또한 이 대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을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하나씩 자세히 풀기 전에, 가장 먼저 대회의 총 결산을 할 것이다. 우선 대회 최고의 선수들에 대해 논해보겠다. 월드컵을 빛낸 최고의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상들은 큰 논쟁거리가 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고, 선정 기관의 전문성도 크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뽑는 상들로 카타르 월드컵 결산 시리즈를 시작해보려 한다. 1. All-Star Team (올스타 팀) 대회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한 올스타 팀이다. 포메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4~8위 비교 [내부링크]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들을 줄세워보려 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 vs 프란츠 베켄바우어 vs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vs 푸슈카시 페렌츠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넓게 묶어도 이들이 4~8위라는 것에는 아마 이견이 없을 것이며, 특히 나는 이 5명을 같은 티어로 묶는다. 즉 거의 동급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비교는 정말 어려우며, 특히 이들의 커리어를 분석해보면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위상이 많이 변동될 수 있는 그런 타입이다. 그걸 이제부터 써볼거다. 각 선수들이 비교에서 가지는 우세&열세 포인트들. 요한 크루이프 우세: "토탈 풋볼"을 구현해냈다는 엄청난 상징성, 감독처럼 팀을 지휘하는 필드 위의 사령관, 파괴적이면서 결점이 없는 어빌리티 열세: 비교적 짧은 전성기, 비..

고대 아르헨티나의 축구 수준, 당대 최고의 축구 강국은 어디였는가? [내부링크]

국가별로 역대 최고의 선수 순위를 매길 때 유독 아르헨티나가 고대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 간단하다. 그때 아르헨티나 리그의 수준이 높았으니까. 그때는 축구의 세계화가 덜 진행되어 대부분의 국가가 제대로 리그를 발전시키지 못한 시대였고 아르헨티나는 높은 수준의 리그를 갖춘 몇 안되는 국가였다. 최고 수준의 리그가 비교적 많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여러 리그에 분포하는) 현대와 다르게 고대는 최고 수준의 리그가 적었기 때문에 주로 자국선수들로 리그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보다 한정된 리그에 집중되어있었다. (외국인 선수가 거의 없이 거의 자국 선수들만 있었는데 어떻게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몰려있었냐고? 자국 선수들이 최고 수준 선수라는 집단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니까. 그 시대에는 ..

아르세니오 에리코에 대해 오해하는 이미지 [내부링크]

아르세니오 에리코가 참 희한하게도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알려졌다. 이건 엄연히 잘못된 정보다. 그의 플레이를 묘사한 정보들은 그를 매우 기술적인 선수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리코를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 말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에리코에 대해 "크랙"이라는 다섯 글자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묘기를 부리는 사람, 예술가 등의 단어도 언급했다. 이런 표현은 디 스테파노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를 찬양하는 어록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그를 테크니션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그의 여러 별명 중 하나인 "비르투오소"는 뛰어난 기교를 가진 거장 음악가를 뜻하는 단어이다. 이래도 그가 박스 근처에 머무르며 신체적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전방으로 오는 공을 받아..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골키퍼 TOP15 [내부링크]

*아르헨티나 국적의 골키퍼로 분류되는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선수 15명을 뽑아 순위를 매겼다. *클럽 활약과 국가대표팀 활약, 선수의 위상과 순수 실력, 활약상 등을 모두 반영한 종합적인 평가이다.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했다. *선정 주체는 본인이며, 객관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한 주관적인 평가이다. 15위 Julio Cozzi 훌리오 코찌 생년월일: 1922.07.14. 활동 기간: 1941~1961 주요 소속팀: 플라텐세 A매치 스탯: 6경기 1940~5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골키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194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당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40년대 플라텐세에서 9시즌간 활약하며 헌신하였..

역사상 최고의 윙어, 가린샤의 드리블 (feat. 조지 베스트) [내부링크]

가린샤의 플레이를 보면 고전적인 윙어의 정점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가린샤의 플레이 스타일이 어떻게 알려져있는가? 클래식 라이트윙, 드리블러, 굽은 다리를 이용한 드리블 등 몇 가지 수식어가 통용된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리블을 했나? 굽은 다리가 어떤 이점으로 작용했나? 이걸 지금부터 말해볼 것이다. 그 전에 잠시 주제를 바꾸어 드리블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보자. 드리블은 공을 몰고 전진하는 것이고 상대 수비가 있으면 제치고 가야한다. 이게 드리블의 본질이다. 이것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전진과 추월이다. 전진은 문자 그대로 앞으로 가는 것이고, 추월은 보다 발전된 개념으로 상대보다 앞으로 가는 것이다. 전진은 드리블의 목적이고, 추월은 상대 수비를 제치고 그..

CA 인디펜디엔테 역대 올스타 스쿼드 [내부링크]

Club Atlético Independiente 연고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창단일: 1904.08.04.(비공식) 1905.01.01.(공식) 홈 구장: 에스타디오 리베르타도레스 데 아메리카 -리카르도 엔리케 보치니 (舊 라 도블레 비세라) 별명: Diablos Rojos, Independiente de América, Rey de Copas, Orgullo Nacional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6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7회 (최다 우승) 인터콘티넨탈 컵: 2회 역대 최다 출장자: 리카르도 보치니 (714경기 출전) 역대 최다 득점자: 아르세니오 에리코 (304+득점) CA 인디펜디엔테는 줄여서 인디펜디엔테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최고의 명문 팀 중 하나이다. 코파 리..

CA 보카 주니어스 역대 올스타 스쿼드 [내부링크]

CA Boca Juniors 연고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창단일: 1905.04.03. 홈 구장: 알베르토 호세 아르만도 스타디움 -라 봄보네라- 별명: Xeneizes, Azul y Oro, La Mitad Más Uno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6회 인터콘티넨탈 컵: 3회 역대 최다 출장자: 로베르토 무조 (426경기 출전) 역대 최다 득점자: 마르틴 팔레르모 (236득점) CA 보카 주니어스는 줄여서 보카 주니어스, 간단하게 보카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최고의 명문 팀 중 하나이다.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 컵 등 여러 권위있는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냈다. 또한 국제 대회가 출범하기 이전에도 남미를 대표하는 구단 중 하나로..

CA 리버 플레이트 역대 올스타 스쿼드 [내부링크]

CA River Plate 연고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창단일: 1901.05.25. 홈 구장: 에스타디오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 -엘 모누멘탈- 별명: Los Millonarios, La Banda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7회 (최다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회 인터콘티넨탈 컵: 1회 역대 최다 출장자: 레이날도 메를로 (563경기 출전) 역대 최다 득점자: 앙헬 라브루나 (317득점) CA 리버 플레이트는 줄여서 리버 플레이트, 간단하게 리버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최고의 명문 팀 중 하나이다.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역대 최다 우승 팀이며, 가장 권위 있는 국제 대회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냈다. 또한 저 두 대회가 출범하기 이전에도 남..

축구인으로서 나의 앞으로의 목표 [내부링크]

나는 축구의 팬이자 축구인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고 축구 커뮤니티에도 올릴 계획이지만 아직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컨텐츠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나는 어떤 방향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가. 나는 궁극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글로 다듬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리는 매개체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정보와 지식을 저장해놓고 나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창작자가 되고싶다. 정보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정보를 근거로 내 주장을 만들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후자가 되려면 전자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보다 정확히는, 내가 만들어낸 산출물 중에서 내 사견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여나가야한다. 내가 지금 거치고 있는 과정도 그 과정의 초기다. 단순히 자료의 짜집기가 아니라 내 사고..

220209) [내부링크]

2022년 2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1. 서론 20-21 시즌 라리가 우승을 거머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21-22 시즌 전망은 밝았다. 핵심 선수들을 지켰고, 로드리고 데 파울과 마테우스 쿠냐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잘 영입해오며 스쿼드를 더욱 강화했다.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는 비록 2년 전 팀을 배신하였지만 실력과 클래스만큼은 확실한 앙투안 그리즈만을 팀에 복귀시키는 놀라운 행보를 보여줬다. 이렇게 거창한 이적시장 속에서 한 젊은 선수가 임대를 떠났다. 그러나 겨울 이적시장이 가까이 다가온 지금, 아틀레티코의 팬들은 그 선수를 간절히 찾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마누 산체스"이다. 2. 프로필 출처: 플레이어스 유저 J.HAZARD 선수이름: 마누 산체스 출생년도: 2000.08.24. 국적..

베르나베 페레이라와 관련된 재미있는 썰 [내부링크]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대포알 슈터였던 베르나베 페레이라. 그가 상대를 벌벌 떨게 했던 방식이 있다. 당시에는 홈 팀이 경기에서 사용할 공을 직접 준비했는데, 리버 플레이트의 홈 경기 전에는 페레이라가 특제 폭탄구를 제작했다고 한다. 공 내부를 일부러 더 무거운 구조로 만들고, 48시간 동안 물에 담가놓고 그것을 경기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스페셜 볼을 가지고 대포알 슈팅을 날려대면 그것은 진짜 폭탄과 같았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나이의 이적에 숨겨진 재미있는 일화 [내부링크]

192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데이비드 잭. 1920~1928년까지 볼튼 원더러스에서 295경기 144골을 기록하며 두 번의 FA컵을 우승했다. 그런 그가 1928년 당시 기준 세계 최고 이적료 신기록을 세우며 아스날로 이적했다. 이때의 이적료는 £10,890 파운드로, 세계 최초로 만 파운드를 돌파한 이적료였으며 기존 신기록인 £6,500 파운드의 약 1.5배나 된다. (정확한 값에 대해서는 £10,000, £10,890, £11,500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이게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였고 만 파운드를 넘어선 최초의 이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할인가라는 것이다. 당시 아스날의 감독인 허버트 채프먼은 볼튼 측 대표와 호텔 바에서 만나 잭의 이..

1939년 인디펜디엔테 - 리버 플레이트의 연합으로 탄생한 드림 팀 [내부링크]

193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최강의 팀들이었던 인디펜디엔테와 리버 플레이트. 이들이 한 팀으로 합쳐서 브라질을 토벌하고 왔다면 어땠을까? 이게 실제로 일어났었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시대의 남아메리카 팀들은 정규 리그 외에도 친선경기를 많이 가졌으며, 유럽으로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는 지금처럼 각 국가의 클럽들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친선경기들이 비공식적인 국제 교류전 역할을 했다.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누가 더 강한지를 판가름하는 자존심은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때의 국제 친선 경기들은 당대 선수들의 기량을 측정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그리고 당시에는 팀 대 팀이 아닌, 여러 팀의 연합끼리 경기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

2201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비대칭 전술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 [내부링크]

2022년 1월 2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I. 지난 칼럼에 이어서 지난 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비대칭 전술이 수비 붕괴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았다. 비대칭 전술로 역사적 성공을 거둔 두 팀이 수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며, 현재 아틀레티코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지를 반성해볼 수 있었다. 내가 제시한 3가지 요소를 고려하며 알찬 이적시장을 보낸다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아이콘인 철옹성같은 수비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을 밝히며 글을 마쳤었다. 이번 글에서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해볼 것이다. II. 비대칭 전술에서의 수비의 3요소에 입각한 현 아틀레티코 수비의 문제 및 해결 방향 II-1, 공격과 수비에 모두 기여하는 수비형 윙어, 일명 토르난테 현재의 아틀레티코에서는..

22012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비대칭 전술이 수비 붕괴에 미친 영향 [내부링크]

2022년 1월 2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I. 배경 현재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위상을 만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부임 이후 근 몇 년 동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흥망성쇠는 그의 철학이 확실이 묻어나는 전술과 함께했다. 4-4-2 포메이션과 두줄 수비라는 컬러는 아틀레티코를 2010년대 중반 유럽 축구계의 신흥 강자로 도약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이내 아틀레티코를 옥죄는 틀이 되어 그 이상의 발전을 막았다.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이후, 아틀레티코는 유럽 대권을 노리는 '컨텐더'의 위치를 굳혀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체'와 '쇠퇴'였다. 리그에서는 준우승과 3위를 오갔고, 챔스에서는 16강 또는 8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심지어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마저 경험했다. 19-20 시..

의외로 역대급 골든보이였던 선수 [내부링크]

1924년의 페드로 페트로네 (19세) 그는 1924년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하자마자 주전 센터 포워드 자리를 차지하였고, 한 해 동안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올림픽 우승 올림픽 득점왕 남미 챔피언십 우승 남미 챔피언십 득점왕 남미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 사실상 1924년 최고의 선수라 칭해도 무방한데, 이것까지 합치면 정말 무시무시한 커리어가 된다. 역대 최고의 골든보이를 논할때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는 매우 위협적인 선택지이다. 오늘날 어떤 선수가 19세의 나이에 리그와 국가대표팀 메이저 대회를 도합 3개 우승하고, 그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호세 나사치의 위엄 [내부링크]

1932년, 우루과이의 나시오날은 리그에서 34실점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고,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35실점을 기록하며 8위에 올랐다. (전체 10팀) 하위권 팀이 상위권 팀과 비슷한 실점을 기록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호세 나사치의 존재다. 그가 있었기에 약한 전력으로도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사치의 진짜 위엄은 바로 다음해에 드러난다. 1933년 나사치는 나시오날로 이적했고, 이 시즌 나시오날은 리그에서 고작 10골밖에 실점하지 않으며 최소 실점 우승을 차지했다. 나사치가 빠진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무려 61실점을 기록하며 최다 실점 2위로 꼴찌의 수모를 겪었다.

인디펜디엔테의 전설적인 트리오, 『악마의 삼지창』 [내부링크]

193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를 넘어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여겨지던 CA 인디펜디엔테. 그 중심에는 "El Tridente Del Diablo (악마의 삼지창)"이라고 불리던 세 선수가 있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안토니오 사스트레, 비센테 데 라 마타, 아르세니오 에리코. 이 3명의 공격진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인디펜디엔테 또한 1938년과 1939년, 2시즌 연속으로 리그, 코파 이바르구렌, 코파 알다오를 모두 우승하는 전성기를 보냈죠. 특히 1938년에 인디펜디엔테는 리그에서 115골을 넣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팀 득점 기록입니다. 이 세 선수의 인디펜디엔테에서의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르세니오 에리코: 325경기 295골 ..

축구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알아둬야 할 것들. [내부링크]

안녕하세요, 축구 팬 여러분. 레드 아카이브입니다. 평소 축구라는 스포츠의 팬, 축구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마니아로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활동해오다가, 이번에 블로그를 다시 만들게되면서 첫 출발을 어떻게 꿰어나가야할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글 이전에 올라온 글이 하나 있지만, 빅 매치 프리뷰의 특성상 경기 시작 전에 업로드를 해야 하므로 부득이하게 블로그 정비 기간에 먼저 업로드했습니다. 그 뒤로 블로그의 기초적인 설계가 마저 이루어졌고, 많은 고민 끝에 이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담긴 공지사항은 추후 올리겠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방면으로 깊게 생각해본 결과, 축구 역사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축구 역..

21-22 CAF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간단 프리뷰 - 위다드 AC 편 [내부링크]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리그는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리에서 유럽 챔피언이 결정된지 이틀 후, 카사블랑카에서 아프리카 챔피언이 결정된다. CAF 챔피언스리그 3연패와 통산 11번째 우승을 노리는 이집트의 명문 알 아흘리와, 홈에서 통산 3번째 우승을 노리는 모로코의 명문 위다드 AC가 한국 시간으로 오는 화요일 오전 4:00에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스타드 모하메드 V에서 맞붙는다. 이 글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간단 프리뷰, 그 중에서도 위다드 AC 편이다. Wydad AC CAF 챔피언스리그 통산 2회 우승, 2회 준우승 이번 시즌 성적 보톨라(모로코 최상위 리그): 24경기 16승 5무 3패 37득점 17실점 (득실차 +20) 승점 53점 1위 (우승) 모로코 왕좌 컵: 8강 진출 (현재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