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askiwi의 등록된 링크

 texaskiwi로 등록된 티스토리 포스트 수는 14건입니다.

도시의 탄생 [내부링크]

도시의 등장 도시라는 개념은 빙하기가 끝날 때쯤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도시와는 사뭋 다른 느낌이지만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을 낸 1만 1,700여년 전에 기온이 올라가며 매머드 같은 거대한 동물들이 멸종하면서 인류는 야생 작물을 재배하고 수렵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점차 농업으로 발전합니다. 농업이 유리한 지역인 페르시아와 이집트 나일강을 끼고 세상에서 가장 먼저 농업이 시작되며 태초 문명의 시작을 알립니다. 조금 정확하게 말하면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라크, 터키, 요르단, 이란이라는 나일강을 시작으로 페르시아만까지의 어마어마한 지역을 포함하는 초승달 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도시가 시작되었지만 각각의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다르기에 비교하는 재미도 찾아볼 ..

역사를 넘어 신화가 되어가는 레오니다스의 사후 [내부링크]

죽음 이후 신화로 반복되는 레오니다스 전설이 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 이후 그리스에 널리 퍼지게 되며 명성을 크게 얻게 됩니다. 그를 기리기 위한 신전까지 세울 정도로 스파르타의 국민들은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했습니다. 시대가 흘러 로마 시대에도 레오니다스 신전은 운영되었는데요, 이때 파우사나이스라는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 여행자가 스파르타를 여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 스파르타인들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기억하며 당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추모지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그는 레오니다스를 닮게 만든 기념비와 에우리비아데스 장군이 잠들어있는 곳을 보았으며 테르모필레까지 가서 "가서 스파르타에 전하라!"라고 적혀있는 기념비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그들만의 군사 육성시..

전설이 된 사나이, 레오니다스의 생애 [내부링크]

레오니다스의 생애 영화 300의 주인공인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의 이야기는 역사를 좋아한다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며, 그의 용맹함은 후세에도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생존 시에는 그렇게 위용 있는 인물이 아니었는데요 그는 기원전 540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아버지인 아낙산드리다스왕과 그의 첫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레오니다스는 왕위 계승에서 멀리 떨어진 왕자였습니다. 그의 이복형이라 할 수 있는 클레오메네스가 있었기 때문이며 도리에오스라는 형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왕위의 계승은 첫째인 클레오메네스가 물려받게 됩니다. 그는 첫 아내가 아니라 중혼을 한 아내와의 아이로 기원전 520년경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레오니다스는 기원전 490년에 고르고와 결혼하게 됩니..

스파르타 여성들의 이야기 2 (종교, 애국심) [내부링크]

종교 의식을 행하는 스파르타 여인들 고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위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국가의 신화, 신들이 존재하며 특히 스파르타의 경우 신에 대해 굉장히 우상시했으며, 전쟁을 하기 전에도 신탁받고 나가야 하는 의무가 있을 정도로 왕조차 신탁에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중 스파르타 여성들이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겠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국가의 존폐 위기가 걸린 테르모필레 전투에도 고작 300면의 군대만 파견할 정도로 신에 집착했으며 신에 대한 활동을 일상적인 것보다 우선시했습니다. 게다가 미신을 믿는 것과 차이를 모를 정도로 터무니없기도 했으며 그럴수록 더욱더 종교에 헌신을 바치며 중요하게 여깁니다. 헤르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에 열린 제우스 ..

역사를 넘어 신화가 된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2 [내부링크]

테르모필레 전투의 시작 테르모필레에는 연합군이 주둔한 통로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통로가 있었다는 것은 맞지만, 뒤에 조그맣게 통하는 아노파이아라는 조그만 샛길이 있습니다. 레오니다스 왕은 협곡의 지형을 잘 알고 전투에 능숙한 연합군 1천 명을 소집해서 샛길에 봉쇄를 명했습니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 왕은 이 길을 알고선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죽여버립니다. 페르시아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기도 했는데, 이는 무언의 압박을 주려는 그의 작전일 수도 있지만 폭풍우에 항해 속도가 느려 해군의 접근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세피아스 곶에 닻을 내린 그의 함대와 대군은 그리스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그간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레에 방벽..

영광스런 죽음을!, 테르모필레 전투 1 [내부링크]

테르모필레 전투란 무엇일까? 테르모필레는 뜨거운 통로라는 뜻의 협곡입니다. 그리스 본토에 중앙에 있으며 옆으로는 바다를 끼고 좁은 협곡을 이루는 통로인데 북쪽에서 행진하는 페르시아 연합군은 육로로 행진을 했기에 이 통로를 지나야만 그리스 남쪽에 위치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연합군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8월이 되었을 때 그리스는 무더운 여름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뜨거운 토지의 열기에 그리스 연합군들을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요 강력한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두 폴리스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들을 리드하며 페르시아에 영웅적으로 저항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대군은 육군만 1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는데요, 단순 병력으로만 비교하자면 인간에게 덤벼드는 모기와 같은 정도의 ..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의 수장이 된 스파르타 [내부링크]

페르시아 전쟁의 시작 페르시아와 그리스와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맨 처음에 스파르타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로부터 기원한 전쟁이었으며 굳이 참여해서 병력의 손실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는데요 반대로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국군제와 같은 따분한 통치에서 벗어나 완전 자유주의 체계를 꿈꾸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 엄청난 속도로 영토를 확장시켜 말 그대로 대국을 만든 상태였습니다. 여러 아시아, 중동에 이어 그리스의 폴리스까지 점령하면서 다국적으로 뒤섞인 페르시아는 영토가 너무나도 광활해서 그리스 원정길 도중 국경을 넘는 이동만 몇 년이 걸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300에서도 나왔듯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그리스로 전령을 보내 전쟁을..

기원전 500년의 스파르타 문화 [내부링크]

고대 스파르타의 문화 기원전 600년에서 500년 사이의 스파르타 지역의 문화와 경제 체계는 확립하며 이후에는 페르시아의 전쟁으로 기존과는 조금 다른 형상을 띄게 됩니다. 당시를 기록한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면 스파르타는 내핍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외에도 고고학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세노폰이라는 왕은 기원전 4세기 즈음에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는 항상 사치와 향락을 경계하며 검소한 정신과 마음 가지고 생활하라고 강조합니다. 이때 나타난 티르타이오스라는 시인은 비가 시인으로서 전쟁의 무용담이나 정치를 풍자하는 시를 썼는데요, 그는 후대에도 유명해서 오랜 역사의 기간 동안 군인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입니다. 그들은 공동 식사의 자리, 전쟁을 치르는 도중, 해외 영토 확장을 나서며 모닥불을..

스파르타의 계층 구조 [내부링크]

스파르타의 잡일꾼 헤일로타이 스파르타에서는 기존 정착민들을 지배하고 소수의 계층만이 지배 계층을 이루며 그들은 군사, 행정, 정치를 담당하고 생계를 잇는 산업에 대해서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는데요 이는 기존 농민들인 헤일로티아들이 담당했습니다. 헤일로타이들은 클라로이라고 부르는 농장지에서 곡물 등의 식사를 위한 보리, 귀리 등을 재배하고 올리브유를 추출했으며 포도주를 생산하는 등 농산물의 수확을 했습니다. 이들 헤일로타이는 스파르타의 모든 잡일을 담당하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회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중반쯤에 스파르타를 보게 되면 에우로타스 강변과 라코니아, 이외에 많은 스파르타 지역에서 일하는 헤일로타이를 볼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엄청난 속도로..

강력한 군대를 가진 스파르타 [내부링크]

소개글 스파르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력한 군사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의 혹독한 군사교육,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애국정신, 무엇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스파르타의 군대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스파르타의 전투 방식 스파르타에서는 중무장을 한 강력한 보병의 전투가 주를 이룹니다. 그들의 전투는 굉장히 격렬했으며 적에게는 서로 정면을 두고 단판 승부를 요구하는 백병전을 강요합니다. 아고게라는 혹독하고 신체력의 향상과 정신력을 단련하는 스파르타의 군사 훈련받지 않은 당시의 일반 생활을 하다 군인으로 소집돼 전쟁에 참여하는 그리스 군인이었으면 그 압박감을 버티지 못하고 상당히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패..

스파르타 여성들의 이야기 1 (일상, 결혼 풍습) [내부링크]

스파르타 여성의 일상생활 여성들은 과거에는 온갖 무시를 당하며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인구의 반을 차지하지만 정치, 생활 등에서는 노예처럼 다뤄질 때도 있었죠, 그러나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좀 달랐습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여성들이 꽤 강력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본인의 사유 재산을 가질 수 있기도 했으며 그들의 거친 말로 유명한 책도 있을 정도로 그녀들은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들에서는 남자가 가장의 역할을 하며 가정을 이끄는 모습과는 다르게 스파르타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권위가 더 높은 가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스파르타에서 가장 유명한 왕인 레오니다스의 아내이자 강렬한 말은 남긴 고르고의 어록을 살펴보면 "우리 스파르타 여성들만이 ..

성벽을 만들지 않은 폴리스, 스파르타 [내부링크]

스파르타의 기원 폴리스라는 개념자체가 작은 도시국가들이며 그들은 주변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스파르타는 성벽을 쌓지 않고 어떻게 거대한 폴리스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기원전 1200년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테라프네라는 도시에 미케나이 시대였습니다. 깜깜한 저녁 대저택이 불로 타버리며 흔적도 남지 않게 돼버립니다. 당연히 그 주변에 작은 집들도 같이 불타버려서 소멸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늘도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닌지 한 줄기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기원전 10세기에서 9세기로 추정됩니다. 이 희망은 그리스 에우로타스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신전인 아르테미스에서 ..

헬레나는 사실 스파르타 사람이었다? [내부링크]

헬레나는 실존 인물일까? 헬레나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데요 트로이의 헬레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헬레나는 과연 트로이아의 헬레나일까요? 스파르타의 사람이었을까요?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둘 다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레나는 트로이아 사람이면서 스파르타에서 태어났는데요 틴다레오스의 딸로 스파르타 태생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만물의 신인 제우스의 딸린 헬레나는 레다와의 사이에서 낲은 딸입니다. 제우스가 레다를 발견하곤 백조로 변신해서 교제하곤 헬레나가 태어났습니다. 헬레네의 외모는 무척 뛰어났는데 메넬라오스는 그런 헬레네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미 케나이라는 국가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동생인 메넬라오스는 동시에 클리타임네스트라..

아프리카에서 세계 속으로 퍼져나간 인류 [내부링크]

인류의 기원 모든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 인류의 뿌리는 한 명의 여성일 수도 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루시라고 불리는 여성인데요 인류의 어머니라고 얘기됩니다. 지구의 탄생은 46억 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지구에 생명체가 최초로 나타난 것은 약 30억여 년 전이라고 추측되는데요 그 후에 많은 생명체가 태어나며 지구의 지표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생명체는 언제부터 존재한 것일까요? 현재 학설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의 선조는 1974년에 고고학자 도널드 조 핸슨의 조사대에 의해 에티오피아 북부에서 발견된 '루시'라는 화석입니다. 학자들은 이 초기의 유인원 화석이 인류의 기원에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루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