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은 왜 "해동증자"에서 "타락군주"가 되었나?


의자왕은 왜 "해동증자"에서 "타락군주"가 되었나?

무왕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 33년) 정월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41년에 무왕이 죽자 뒤를 이었고, 당으로부터 주국(柱國) 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왕으로 책봉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우애가 깊어서 중앙귀족에게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렸다 하고, 그의 아들 부여융의 묘에도 의자왕을 가리켜 “과단성이 있고 사려 깊어서 그 명성이 있었다.”라고 적혀져 있다. 그러나 즉위 전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즉위 후에는 실정을 거듭하면서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의자왕을 ‘타락한 군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왜 타락했다고 평가 받는 사연을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연산군은 모친의 억울한 죽음이 원인이였다고 치지만, 도대체 의자왕은 칭송에서 비난으로 변절된 이유가 멀까? 앞뒤 정황을 모두 봐야겠지만, 우선 이것을 밝히기 위해,해결해야할 미스테리가 2가지 있다. 첫째. 어머니가 누구인가? 둘째 .의자왕을 시절, 갑자기 비리와 전횡을 일삼은 부인이 누구인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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