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왕의 최후"를 밝히며, 모두 사라지기 전에 발굴해야합니다.


"궁예왕의 최후"를 밝히며, 모두 사라지기 전에 발굴해야합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20대부터 18년간 궁예에게 충성하는 장군 혹은 시중, yes맨, 2인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런 그가, 군부구데타를 통해,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끝내 왕건으로 인해, 궁예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필자는 평소 불분명한 궁예의 죽음에 대해 최후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진지 오래이다. 왜 반란이 일어났는가는 수많은 자료와 추정이 많지만, 도대체 어떻게 죽었을까? 어디서 죽었을까? 최후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에는 답을 못찾고 잇는 실정이다. 현재 남아 있는 2개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있는데, 고려의 신하인 김부식이 제대로 기록했을까? 조선에서 다시 정리한 고려사를 믿을 수 있을까? 필자가 나름대로 공부한 결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이에, 왕건측 반란군이 분명 덮을려고 했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 진실된 기록을 남기고자한다. 이제. 918년 7월 24일(음력 6월 14일) 궁예왕이 왕으로서의 마지막 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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