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거와 조선의 일본학


원중거와 조선의 일본학

한일 관계사에 대해 관심을 갖자 원중거라는 인물이 보인다. 원중거元重擧(1719~1790)는 영조와 정조 연간에 활약했던 인물로, 본관은 원주. 원주 원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인조반정에 참여하고, 원당을 이끌었던 원두표元斗杓. 혹자는 원균元均을 거론하기도 할 것 같다. 호는 현천, 물천, 손암. 여러 인물 약전을 확인해 볼 때, 원중거는 향리에 기반을 두고 무반, 또는 생진시 합격자 정도의 수준을 배출하던 향반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중거 본인도 1750년 소과에 급제하며 생원이 되었다. 말직을 전전하다가 시작 능력을 인정받아 계미년(1763) 계미통신사의 일행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높은 계급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통신사 일행의 글을 얻으려 했다는 풍문이 있는 만큼, 조선 정부로서 원중거 정도의 문사를 발탁해 일본으로 파견하는 건 일종의 대외 교류 서비스로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통신사 때의 여정과 경험, 생각을 담아 <승사록乘槎錄>을 저술하였다. 당시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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