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신열에 시달리는 중


밤새도록 신열에 시달리는 중

희랍어 시간 저자 한강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1.11.10. "열이 있어?" 물으며, 손을 뻗어 다정하게 이마를 짚어주는 시절이 있었더라면. 거대한 오류 같은 올해, 가장 아름다운 서사. 심장에 장전된 차디찬 폭약을 향해 타들어가던 불꽃은 없다.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혈관의 내부처럼, 작동을 멈 춘 승강기의 통로처럼 그녀의 입술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여전히 말라 있는 뺨을 그녀는 손등으로 닦아낸다. 눈물이 흘렀던 길에 지도를 그려뒀더라면.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바늘 자국을, 핏자국이라도 새겨뒀더라면.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중얼거린다. 당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희랍식 논증의 방식으로 이따금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인가를 잃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할 때, 당신을 잃음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보이는 세계를 이제 잃음으로써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인간의 모든 고통과 후회. 집착과 슬픔과 나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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