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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참배 [내부링크]

이 전 총재는 작고하실 때까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국립 4·19 민주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국립 4·19 민주묘역은 1960년 4·19 혁명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국립묘지다. 근조 화환을 기념탑 앞에 놓은 윤 후보는 민주영령들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방명록에는 '4·19 혁명 정신을 늘 잊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겠다'고 남겼다. 윤 후보는 혁명 공로자 묘역에 묻힌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묘역도 참배했다. 이 전 총재는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ㆍ18 고대 의거’를 주도한 인물로, 4ㆍ19 혁명을 일으킨 학생.......

1987, 민주 항쟁의 사진 기록 [내부링크]

컬러로 복원한 1987년, 그 절박한 시대 속으로 "택시운전사"부터 "1987", "남영동 1985" 등 80년대의 상흔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러나 때로 극화된 2시간의 픽션보다 그 당시를 포착한 사진 한 장이 더 큰 울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제는 역사의 기록이 된 사진들은 그 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시큼한 최루탄 내음을 안겨주는 생생한 실화이고 기억이다.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은 온국민이 함께 항쟁한 민주화로 꽃을 피웠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어느 권력에도 독점되지 않는 한국민의 성취이자 권리이다. 한국은 경제적 성공을 정치적 성공으로 결합한 대단한 성공 스토리이다. 민주주의는.......

일민 6주기 추도식 [내부링크]

2016년 2월 20일, 그리고 2022년. 故 이기택 전 총재를 추모하는 '일민 선생 6주기 추도식'이 2월 20일 오전 11시 국립 4·19 민주묘지에 위치한 고인의 묘소에서 열렸다. 정부의 코로나 19 방역지침에 따라 비공개, 비공식 행사로 열렸음에도 일민이기택추모회(회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범시민사회단체연합(상임대표 이갑산)과 4·19혁명공로자회, 4·19일민회, 4·18혁명고대, 일민동우회 등에서 일민과 오랜 인연의 동지들이 참석해 그리움을 달래고 추억을 나눴다. 추도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전·현직 정치인, 4·19동지, 정당인 등 부산, 전주, 울산, 포항, 남해, 거창, 대구 등지에서 50여 명이 참석해 헌화와 묵념하며 고인의 안식.......

2021년 세대교체론에 소환된 일민 [내부링크]

월간조선은 정치권 세대교체 바람에 일민의 정치인생을 되짚으며 현상을 분석했다.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세대교체론이 정가를 휩쓸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0대 돌풍이 실제로 거세게 몰아치며 정계 세대교체론은 더불어민주당까지 영향권에 든 모양새이다. 50대인 86세대가 근 20년간 정계를 주도한 세력이었고, 집권여당의 당대표, 원내대표 등 주류를 형성한 정세에 적잖은 파장으로 대선정국의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충격이 기존 정치사의 세대교체론과 큰 틀에서 궤가 다른,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40대 기수론(1970), 3김 청산론(1993), 정풍운동(2000) 등과 다르.......

1987년 6월 항쟁 34주년 [내부링크]

세번의 독재정권을 겪은 한국 정치사, 그 때마다 민주항쟁의 중심에 있었던 일민.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까지... 모든 독재에 앞장서서 맞섰던 이가 이기택이다. 6월 항쟁의 배경 1985년 12대 총선의 신한민주당 승리로 5공화국은 그 결말로 치닫게 된다. 국민적인 직선제 여망은 신민당의 1000만 개헌 서명운동으로 나타났으며, 결국 여야 만장일치로 1986년 7월 30일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한다. 민정당은 의원내각제를, 신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며 대립하던 시기에 국민의 분노는 전국적인 민주화 투쟁으로 나타난다. 한편, 의원내각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신민당 '이민우 구.......

G20 국가들의 의회 구성 [내부링크]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 유일의 단원제 의회이다. 의원수는 평균 미달이다. G20 주요국들의 의회 제도를 공산국가를 제외하고 적어도 우리가 참고할만한 정치선진국 위주로 비교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단원제, 의원 정원 300석 총인구 5,171만 명 대비 국회의원 당 국민 17만 명 G20 국가 중 상원 · 하원의회의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단원제는 의회 입법부의 상호 견제 체제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며,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낮아 세계적으로 독특한 의회를 갖게된 현실이기도 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양원제는 1960년 '제4호 헌법'에서 채택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의원내각제 제2공화국은 민.......

2022 대선 특별기획 세션에서 부각된 5.30 전당대회 비하인드 [내부링크]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그 날'의 무대 뒷이야기 명지대 김형준 교수가 2022년 대선특별기획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세션에서 5.30 전당대회의 의미를 짚었다. “1979년 5월 30일 그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신민당 전당대회가 마포 신축당사에서 열렸다. 전부들 이철승 당수가 선출될 거라고 했지만 결과는 YS가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장을 지나다 보게 됐지만, 막판에 이기택 후보가 YS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바로 거기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2016년, 연합뉴스TV 역시 이 날을 박정희 정권의 전환점이었다고 보도한다. "1차에서 3위를 기록.......

1980 군사반란 직후, 한미 상황에 대한 일민의 회고 [내부링크]

12.12. 사태 직후, 미국을 방문해 군사정권 재집권을 경고한 일민의 회고 이기택 전 총재는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사태 직후인 1980년 1월에 미국을 방문해 버클리와 워싱턴 DC, 보스톤에서 주요 외교안보 인사들을 만나 한국의 급박한 상황을 공유하고 군사정권 재등장에 대해 경고했다. 1980년 초,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기 직전의 한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이다. 일민의 2013년 월간조선 인터뷰 중 당시 미국 조야의 분위기를 회고한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여기에 싣는다. 10·26사태 이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때.......

이기택에 69% 지지를 보낸 목포 [내부링크]

"이기택 목포 출마 땐 68.7%지지" [시사저널, 1990년 8월 9일] - 평민당 김대중, 민주당 이기택의 지역구 교차 출마론 - 부산은 김대중 26.5%, 목포에선 이기택 68.7% - 시사저널, 코리아리서치센터와 공동 여론조사 1990년 7월 21일, 야권통합을 추진하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보라매 집회에서 이기택 민주당 총재와 지역구 교차 출마를 전격 제안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지역감정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 무슨 수로 남북통일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이 이기택 총재의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구에서 출마하고, 이총재는 호남 지역에서 출마하자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30년을 넘긴 이 기사가 정치사에 적잖은 함의를 갖는.......

추석을 앞둔 가을의 민생현장 방문 [내부링크]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세상의 중요한 바탕,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힘 1993년 추석을 앞둔 9월, 당시 이기택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경기도 강화군 망월평야를 방문해 냉해 실태를 파악하고 농민들을 격려했다. 이기택 대표는 냉해와 병충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할 수 있도록 그해 추곡 수매가와 수매량은 농민이 희망하는 수준에 가깝게 책정되도록 세세히 챙겼다. 이 보름 전에는 국회 대표실에서 황인성 국무총리의 예방을 받고 정부가 추진 중인 농지기본법안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농의 경우 30만평까지 농지소유가 가능하도록 부재지주의 기득권을 지나치게 인정해 영세농과 소농의 생존을 위.......

일민의 한가위 [내부링크]

1990년대 초반까지 여의도 정계는 명절마다 정객들이 당수의 자택에 모여 덕담을 나누곤 했다. 상도동, 동교동, 북아현동 등이 북새통을 이뤄 정치면 기자들에게는 정국을 조망할 수 있는 취재의 현장이었다. 2000년대, 노정객이 된 이기택 전 총재는 가족과 함께 직접 제를 올리고 형제를 찾아서 인사를 하는 조용한 명절을 지냈다고 한다. 추석을 전후하여 성묘를 하는 것 역시 절대로 빼놓지 않은 연간 행사 중 하나였다고 한다. 손녀에게 제사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를 가르치는 모습은 예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정치 인물 부문 스테디셀러 "우행" [내부링크]

정치 인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70위를 유지하는 '일민 회고록 우행' 대선 정국이 다가오면 대권 후보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 서적의 인기가 높아진다. 이 시기에도 주요 현역 정치인들과 함께 이기택 전 총재의 마지막 저서인 회고록, "우행"이 정치 인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70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영면 6주기가 다가오는 지금도 이기택 전 총재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일민은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경의 여사가 여전히 소장하고 있는 일민의 유품은 6주기를 맞이하여 박물관과 도서관에 기증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유품 기증은 2021년 5주기 기일에 예정되었으.......

10월8일, 오늘의 역사 속 일민 [내부링크]

이기택 민주당 대표는 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6공 비리의 청산을 촉구했다. 오늘의 역사, 10월8일 1908년 영국 구세군 로버트 호가트 정령((正領), 서울 서대문에 구세군 대한본영 설립. 1909년 이화학당 세운 스크랜튼 여사 세상 떠남. 1910년 중추원 부의장에 김윤식, 고문에 이완용이 임명. 37년 총독부, 황국 신민 체조를 제정. 45년 북한 5도 임시인민위원회 조직(위원장 조만식). 51년 휴전회담 장소 판문점으로 변경. 55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음모 적발, 김재호 등 한독당계 8명 체포. 75년 김옥선 의원(신민당), 국회발언 문제로 의원직 사퇴. 75년 외딴집 주민 17명 죽인 연쇄 살인범 김대두, 경찰 체포. 77년 서울대 김정용박사, 바.......

경제민주화, 정치인으로서 일민의 경제 철학 [내부링크]

시대에 앞서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던 일민. 이기택은 근본적으로 선명하고 명확한 안보관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혁적인 경제관과 사회관을 가진 지도자이기도 했다. 특히, 상대 출신으로서 경제개혁 또한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1993년 7월, 이기택 당시 민주당 대표가 전경련 주최 세미나 강연에서 "재벌 그룹들이 권력과 특혜에 의존해서 회사를 늘려온 것이 기업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문민 시대를 맞이해 우리 기업들은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기업 확장에 종지부를 찍고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참석한 전경련 행.......

1994, 시사저널 이경의 여사 인터뷰 [내부링크]

민주당 이기택 대표의 부인 이경의(李慶儀 . 49) 여사가 생명부지인 만성 신부전증 환자에게 자기 콩팥을 기증했다. 그 콩팥의 생명력으로 환자는 지금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여사의 장기 기증 소식이 알려지자 '사랑의장기기증 운동본부'에는 장기기증 서약서를 보내오는 사람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에 10통 정도가 접수되던 ‘기증’이 25~30건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여사는 자신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결과로 장기기증운동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여사를 만나 그의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다. 수술 후 요양중이신데 지금 느끼시기에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김부겸 국무총리와 이기택 전 총재 [내부링크]

청년 김부겸과 일민 이기택의 만남, 그리고 인연 김부겸 총리는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1977년 유신반대 시위 가담으로 제적을 당하고, 그 이듬해에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 실형을 살았다, 1980년에는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 시위를 이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민주화 투사이다. 1960년 이기택의 4.18 고대의거, 4.19 혁명을 연상하게 하는 학생운동의 발자취였다. 김부겸은 졸업 후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그날 [내부링크]

5월 19일, 10:30, 야당, 긴급회의에서 투쟁결의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군부에 의한 시가전 규모의 유혈사태가 벌어졌음에도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에 집권세력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부마 민주항쟁(1979)에 버금가는 민주항쟁이 광주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으며, 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사실 미국 정보당국이 이미 5월 7일에 특수부대의 이상동향을 보고한 것이 미국 정부의 극비문건 공개를 통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고, 12.12 쿠데타에서 이어진 정국혼란으로 민주항쟁은 초읽기에 들.......

스웨덴의 정치체제와 현실 [내부링크]

"북유럽 복지천국"의 가장 익숙한 나라, 스웨덴의 통치제도 스웨덴은 복지천국을 예로 드는 복지주의자들에게 가장 자주 거론되는 나라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주변 국가 중에서도 스웨덴은 북유럽 복지의 대표적인 나라로 인식된다. 따라서 스웨덴의 국가체제를 살펴보는 것은 국내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스웨덴은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6세기, 1523년 덴마크에서 독립한 스웨덴은 강대국의 제국주의가 만연했던 1849년부터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국가체제를 정비했다. 입헌군주제는 1739년 민주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의 영향으로 독일 제국(1871), 오스트리아.......

독일의 통치제도와 시사점 [내부링크]

유럽의 가장 성공적인 국가모델이자, 분단의 유사성을 공유한 독일 체제 양원 내각책임제의 독일은 "안정"과 "견제"로 정치체제를 구축해왔다. 16개의 주가 각자 헌법과 주정부, 사법기관을 두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며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각책임제가 그렇듯이 연방수상인 총리가 내각의 실권을 장악해 국가를 통치하고 대통령 권한은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 권력 분산의 상징, 연방 대통령 5년 중임제 독일 연방대통령은 국제조약 체결권, 외교관 임명권, 법률·시행령의 승인권, 국무회의 배석권, 총리후보 제청권, 총리 임명권, 각료 등 연방내각 임면권, 사면권, 의회 해산.......

프랑스의 정치제도와 의미 [내부링크]

혁명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대통령 결선제로 완성한 나라, 프랑스 프랑스 정치제도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근대 유럽,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논하는데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적인 전환점으로 공히 인정된다. 고대 로마 공화정(BC 510) 이후 세계사적으로 절대왕정이라는 구체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을 사회혁명으로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해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마련한 이 대사건으로 정치 권력이 왕족과 귀족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옮겨졌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시민계급이 봉건적 특권계급인 절대왕정에 저항해 승리를 쟁취했으며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사회.......

G20국가들의 정치제도와 개헌 [내부링크]

결국 개헌은 필연적. 문제는 어떻게? 모두가 고쳐야 한다는 법, 헌법 현재의 제6공화국 헌법은 1987년에 제정된 것으로 이미 개헌 논쟁이 화두가 된 것도 30년이 넘었다. 1990년에 이미 의원내각제에 대한 민자당 지도부의 합의문이 공개되었고, 1997년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으며 2005년에는 참여정부에서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 권한 이양"이라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로도 2007년 "4년 중임제 개헌", 2010년 "4년 연임 정ㆍ부통령제 개헌"에 이어서 2016년, 2018년에도 개헌은 뜨거운 감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모든 집권세력에서 예외없이 개헌을 주장했는데 1987 헌법 체제가 과연 유.......

[현충일] 민족·민주열사 순례길 행사 [내부링크]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해 일제에 항거하고, 이승만 독재와 싸운 민족ㆍ민주 애국지사 16위가 계신 수유리에서 참배의 시간을 갖는 뜻깊은 순례길 행사가 열렸다. 코로나19 시국의 방역지침에 따라 일반 참여는 후일을 기약한 채 정치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이 참여하여 의미를 되새긴 자리였다. 이시영 부통령, 신익희 의장, 신하균 의원, 이 준 열사 김병로 대법원장, 김창숙 성균관장, 양일동 총재, 서상일 의원, 유림 선생, 안병달 선생, 광복군 합동묘소, 그리고 이기택 총재까지 민족ㆍ민주 애국지사 산소를 참배하고 그분들의 인생을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민족의 광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제와 이승만 독재 정권.......

일민 정치사 평론 (경제풍월) [내부링크]

이기택 정치인생은  3선 개헌 저지투쟁, 양김시대의 독자노선,  3당 합당 불참 및 통합 야권 통합으로  야당의 집권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일민 이기택 추모회장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은 고인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정치적 변혁기 때마다 어떤 타협이나 굴절도 없이 늘 꿋꿋한 외길을 걸어왔노라고 회고했다. 박 전 의장은 고인과 학생운동 동지 사이지만 이기택 총재가 먼저 정치권에 입문하여 그의 비서관으로부터 정치를 시작한 인연이 겹쳤다. 이윤기 전 도산서원 원장은 ‘일민이 걸은 길’이라는 추모 글을 통해 고인이 영천이씨 명문가의 후예로서 유가(儒家)의 엄격한 훈육으로 자라 정계에 진출한 뒤에도 철저한.......

대한민국 정치사 10대 사건 [내부링크]

History is who we are and why we are the way we are. -David McCullough- 대한민국 현대 역사 속의 "정치사 10대 사건"을 정부가 꼽은 '역사 속 10장면'과 학계 논문, 저서, 언론 기사를 토대로 선정했다. 한국 발전사와 정치적 흐름에 있어 사건 이전의 체제 관성을 끊고 이후의 국가 환경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정치사 속 10대 사건들이다. 1. 제헌 국회 출범 (1948) 제헌 국회는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구성된 의회로 1948년 5월 10일 역사상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전국의 지역구에서 선출된 198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제1대 국회는 국호와 헌법을 제정해 한반도의 공화헌정체제의 시작이었다는 의미를.......

여론조사 1위의 이기택 전 총재 [내부링크]

여론조사 1위 했다가 사라진 사람이 한둘인가 일민 이기택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김시대 이후 차세대 선두주자 중 한명으로 손꼽혔다. 1991년부터 4년간 시사저널의 "한국을 움직이는 10인"에 선정되었으며, 1994년 1월의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대권후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실제로 1991년4월25일자 시사저널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기택 전 총재의 3자 대결을 여론조사한 결과는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당대에 양김의 대항마로 부상한 정치인은 이기택이 거의 유일했다. 아래는 해당 기사의 발췌 내용이다. “만약 다음 선거에서 민자당에선 김영삼, 신민당에선 김대중, 민주당에선 이기.......

KTV 인터뷰, "4.19 정신과 새로운 미래" [내부링크]

이기택 전 총재 영면 2년 전, KTV 인터뷰 예고편 KTV는 2009년과 2014년에 일민의 인터뷰를 방송한 바 있는데, "정치사의 산증인"과 "4.19 민주혁명의 의미와 정신"에 대한 주제로 이기택 전 총재의 육성을 화면에 담았다.

일민의 큰형, 이기화 前 회장의 인생 [내부링크]

이기화 태광그룹 前 회장 영면 1주기 국내 첫 섬유산업 수직계열화 이기택 前민주당 총재 친형 2019년 90억 장학금으로 기부 이기화 (李基和, 1934~2019) 태광그룹 전 회장 2019년 12월 30일 영면한 이기택 전 총재의 큰형, 이기화 전 회장의 일대기를 일간지 경제면 기사를 토대로 정리했다. 경북 영일 출생인 이 전 회장은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 태광산업에 상무이사로 입사했다. 태광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1950년대 말,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의 아내 이선애 여사는 경리로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었다.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을 찾던 이임용 전 회장과 이 여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신.......

일민 5주기의 단상 [내부링크]

세월은 흐르고 그리움은 쌓인다. 어느덧 5주기가 된 이기택 전 총재의 기일, 2월 20일. 새봄처럼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겨울날이었다. 코로나 사태의 정부 지침에 따라서 공식 추도식은 없이 동지들의 삼삼오오 참배로 일민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했다. 일민 추모회 박관용 회장과 범시민사회연합 이갑산 회장, 4.19 혁명공로자회 일민회 등의 꽃이 가득 메운 산소는 오전부터 일민의 동지들로 줄이 이어졌다고. 가족들 역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조용히 참배를 했다고 한다. 이경의 여사와 자녀들, 손주들은 일민의 산소를 찾아서 고인을 그렸다. 한편 고인의 기일에 <중앙일보>는 서울, 부산 재보궐 선거 관련 분석기사에서 이.......

4.19 기념일, 주호영 대표 참배 [내부링크]

“4월 혁명의 정신은 이 땅에 비로소 민주주의와 시민 권력의 참된 의지를 일깨우고 그가 표상하는 민주 이념은 중요한 헌법가치로 남아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은 19일 4.19 혁명 61주년을 맞아 수유동 4.19 민주묘지를 찾아 분향하고, 이기택 전 총재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주호영 대표는 “국민의힘은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이념 토대를 확장해 국민 통합을 위해서 더욱 더 노력해 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도 4.19 민주이념을 올바로 계승하여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고 우리 당 정강정책에 명백히 천명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문재.......

61주년 4·19 혁명 기념일 스케치 [내부링크]

코로나 19 시국 여파로 정부 주최의 4.19 혁명 기념식은 간소하게 진행되었고, 어느 때보다 조용한 기념일을 지냈다. 61주년 "회갑을 맞았다"는 언론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포털과 뉴스의 비중은 근래 확연히 줄어들며 "세계 근대정치사 최초의 민중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높다. 4.19 혁명은 5.18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이며, 1989년 천안문 사태와 2011년 이집트 아랍의 봄,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2021년 미얀마 사태까지 영향을 끼친 세계사의 대전환이라고 외신은 평가한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국회 상임위원장단이 아침 일찍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것.......

[언론단상]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호시우행의 삶 [내부링크]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서거 1주년 호시우행의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을 돌아보다" [2017년2월]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 눈처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소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을 경구로 삼았던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그는 지난해 2월,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한 이기택. 1967년 정치권에 입문한 뒤 7선을 지내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양김시대를 함께 이끈야권 정당사의 주역이다. 4.19 혁명의 주역 1937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나 부산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1960년 고려대학교 상과.......

역대 대통령들과 일민 [내부링크]

이기택 전 총재가 현대 정치사를 관통한 만큼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 많은 역사를 만들었다. 23세 청년 이기택은 4.19 혁명 직후 대학생 대표로 장면 총리를 만난다. 그리고 일생동안 독재자들을 제외한 많은 대통령들과 여러 기록을 남겼다. 동지였고, 경쟁자였으며 때로 갈등했던 역대 대통령과 함께한 일민의 기록이다.

정치에 대한 명언 격언 어록 [내부링크]

참정권에 대해 "나쁜 관료들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 조지 네이선 (George Jean Nathan, 1882–1958)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가장 큰 벌은 당신보다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플라톤 (Πλάτων, BC 428-348)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 안창호 (安昌浩, 1878-1938) "스스로 말고는 아무도 투표권을 빼앗지 못할 것이며,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선거란 누굴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

60주년 4.19혁명, 일민의 기고문 [내부링크]

"민주열사들을 만나다" 국가보훈처 기고문 이기택 민주당 전 총재는 2016년2월19일, 그의 마지막 육필인 회고록, “우행”을 탈고한다. 그리고 약 10시간 후 운명한다. 4.19 세대 정치인으로 마지막 숨이 담긴 이 “우행”에는 1960년 경자년(庚子年) 4.19 민주혁명을 전후한 급박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그날을 생생하게 남긴 이기택 전 총재의 기억을 여기에 재구성하여 정리해 본다. “1959년11월17일의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선거에서 나는 무난히 당선되었다. 이때 나와 함께 단과대학 학생위원장으로 당선된 이들이 법대 강우정, 정경대 이세기, 문리대 윤용섭, 농대 김낙준 등이다. 나를 포함해 이들 고려대 학생지도.......

'서중석의 현대사' 속 이기택 [내부링크]

"야당에 공작 중, 오만한 청와대의 희한한 고백" 기사 내용으로 현대 정치사의 중대 모멘텀인 1979년 5.30 신민당 전당대회를 담고 있다. 프레시안 : 이때(1979년 5.30 신민당 전당대회)도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지 않았나. 서중석 : 운명의 날 5월 30일, 오후 3시 45분에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이철승 292표, 김영삼 267표, 이기택 92표, 신도환 87표로 어느 누구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서 신도환보다 옛날에 신도환계에 속했던 이기택이 5표나 더 많이 얻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박정희 쪽에서는 신도환 표를 100표 정도로 잡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줄어든 수치였다. 거기서도 박정희 쪽이 조금 오산을 한 것이다. 과.......

4.18 고대의거 60주년, 이경의 여사 기고문 [내부링크]

본 기고문은 고려대학교에서 4.18 고대의거 60주년으로 발행된 "4월의 활화산"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안암골 호랑이로 팔십 평생을 산 이기택   “국민의 알 권리와 자유가 짓밟힌 오늘은 하늘과 땅이 분노하고 있으며, 불법·공갈·협박·사기의 3.15 선거에 분노한 마산 시민의 그 애처로운 참극상을 주권 국민인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   1960년4월18일 12시50분 고려대학교 인촌동상 앞, 23세 청년 이기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19 혁명을 촉발한 역사적 4.18 의거, 고대 시위의 시작이었다. 그날, 고려대학교의 3,000여 학우는 그렇게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배우자로서, 동반자로서 청년 정치인 이.......

5월18일 광주의 일민 [내부링크]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명예회복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광주 민주화의거에 대한 일민의 신념은 확고했다.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끊임없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했으며, 이를 위한 정치권 전체의 각성과 반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계 은퇴 후, 다수의 현대사 증언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야당의 미온적인 대응을 지적한 이도 일민이었다. 10.26 사건과 12.12 사태 직후, 당시 야당 진영이 민주화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빠져 광주 민주화의거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지 못했다는 반성이었다. 때문에 일민은 광주 국립.......

5월25일, 오늘의 역사 [내부링크]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하게 될 전당대회가 오늘 이틀간의 일정으로 개막이 됐습니다. 대회 첫 날인 오늘은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선 김대중, 이기택 두 대표의 합동연설이 있었습니다. 오늘의역사, 5월25일 1592년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 발발 1855년 한국 최초의 사립대학이자 한국 최초의 기독교계열 신학교인 가톨릭대학교가 충청북도 제천 배론에서 개교 1886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여운형 탄생 1905년 서울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에서 경부철도 개통식 거행(3년 3개월 공사) 1911년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윤석중 탄생 1912년 대한제국의 황녀 덕혜옹주 탄생 1913년 한용운, 『불교 유신론』을 간행 32년 상해 교포들, 안창호를 일.......

5월28일, '오늘의 역사' 속 일민 [내부링크]

김영삼 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오늘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가졌습니다. 5월28일, 오늘의 역사 1787년 오스트리아 작곡가 레오폴트 모차르트 사망 1972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 사망 1901년 제주도 대정군에서 이재수의 난 발생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식 1908년 오세창 등, <대한민보> 창간 1908년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 탄생 1910년 남산 신공원 공사 준공 3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해체 40년 제2차세계대전, 연합군 덩케르크 철수작전 개시 49년 미국무성이 주한 미군을 6월 말까지 철수한다고 발표 61년 최고회의, 부정축재 처리요강 및 부정축재자 명단 발표 68년 제1차 한-미 국방장관회의 종료, .......

연합뉴스 아카이브의 기록 영상 [내부링크]

연합뉴스 기록관, 연합 아카이브에 남아있는 일민의 일생 영상 연합뉴스가 담은 일민의 순간들

[민족통일] 1993, 야당 대표의 유럽 방문 [내부링크]

통일시대의 독일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기택 전총재는 1993년6월, 독일 자유민주당의 랄스돌프 당수의 초청으로 독일·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4개국을 순방했다. 출국장에는 김덕룡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배웅했다. 일민은 순방에서 독일 통일 하의 문제점, 이탈리아의 부정 부패척결·개혁 실상을 둘러보고 4개국 정부·의회 지도자들과 만났다. 특히, 독일 자유민주당(FDP)의 랄스돌프 당수와 클로즈에 사회민주당(SDP) 원내대표를 만나 독일이 당시 북핵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준데 감사의 뜻을 전하며, 북한을 지나치게 고립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생전에 일민은 이 때의 독일 방문이 한반도.......

총선 결과와 인적쇄신의 함수관계 [내부링크]

초선 비율로 분석한 총선 결과와 공천 혁명의 함수관계 총선은 정치권에 가장 중요한 기점이다. 대통령 선거가 결승전이라고 한다면, 총선은 준결승, 4강, 8강, 16강의 모든 중대 과정의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 이는 정국을 결정 짓는데 의회정치, 국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인적쇄신, 소위 물갈이 경쟁에 돌입한다. 사실 정당 개혁에 있어 가장 확실한 대국민 메시지가 "새피 수혈"이라는 것은 역대 총선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이것이 초선 의원 비율로 살펴본 공천 혁명의 함수관계이다. 2000년대 접어든 17대부터의 총선 결과에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상대적으로 초선.......

일민과 언론 [내부링크]

내가 아는 정치인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어색해 한 정치인 일민 이기택은 정치인이면서 언론을 멀리한 인물로 정계에서 유명했다. 언론 플레이나 이미지 메이킹은 그의 성향과 한참 동떨어진 단어들이었다고 동지나 참모들은 입을 모은다. 노정객으로 민족통일과 시민사회에 헌신할 때에도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오랜 인연의 언론인들의 요청에만 겨우 응할 정도로 말 한마디에 신중하던 일민이었다. "카메라에 한번이라도 더 나오려는게 정치인의 습성인데 일민은 현역 때도 기자를 피하더라." - 박계동 前 국회의원 "일민이 기자들을 양김만큼 다룰 줄 알았다면 한국 정치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 정대철 前.......

2010, 일민의 중국 방문 [내부링크]

일민은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수차례 방중한 바 있다. 때로는 정부 당국자의 초빙으로, 때로는 한민족 교육단체 시상식으로 그리고 서도 등의 문화교류를 위해서 중국을 방문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시안, 칭타오 등 중국 곳곳의 관료과 교류하였던 일민은 특히 연변과 하얼빈을 자주 방문해 중국교민들의 교육지원에 힘을 쏟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를 비롯한 통일 대안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고민의 발로였다. 생전에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민족통일 교육을 강조하던 이기택 前 총재의 모습이다.

2020년 설날 풍경 [내부링크]

2020년, 庚子年의 새해가 밝았다. 설 연휴를 맞이한 4.19 민주묘지는 추운 날씨에도 따스함을 머금고 있었다. 4.19 혁명의 뜻깊은 60주년을 맞이하는 일민은 어떤 심정으로 지금의 나라를 내려보고 있을까. 4.19 혁명의 가치인 "자유 • 민주 • 정의"가 온나라에 펼쳐지는 역동의 새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이기택 전 총재의 가족들은 설 연휴에 산소를 찾아 제사와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 이웃들이 일민의 산소를 찾곤 한다고. 벌써 4주기! 일민이 세상을 떠난지 어언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동지들은 그의 빈자리를 생경하게 느낀다. 배신과 분열로 혼란했던 2019년 기해년, 그를 그리워하는 일민동우회 동지들.......

[추도식] 일민 이기택 전 총재 4주기 [내부링크]

"일민이 여전히 그립다!" 2020년2월20일, 이 날은 일민 이기택 전 총재의 4주기 기일로 4.19 민주묘지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축소해 열린 추도식에는 그래도 100여 명의 동지, 지인들이 모여 일민을 그리며 이경의 여사와 가족들의 곁에 함께 했다. 급박해진 코로나19 상황에 전일 이루어진 일민 추모회의 추도식 축소 결정에 따라, 참석이 예정되었던 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 등은 조화와 추도 메시지로 대신하기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유경현 헌정회장, 조경태 통합당 최고위원, 이갑산 범사련 회장,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박계동, 장경우, 유성근 전 국회의원 등이 함께 자리했고, 특히 4.......

<남산의 부장들>에 나타난 이기택 [내부링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지목한 야당 정치인 15명. 이기택, 최형우, 조윤형, 김상현, 윤길중, 박한상, 이세규, 이종남, 강근호... 등.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인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의 저서에서, 이기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목한 "야당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유신을 앞두고 박정희 정권에 반발하는 대표 야당 인사들을 미리 '정리'하고자 한 것이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후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에서도 재론되지만,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야당 중진 이기택의 중량감과 4.19 세대의 상징성을 내세워 박정희 대통령에게 재고를 요청했다고 한.......

3월10일, 일민과 오늘의 역사 [내부링크]

"민주당 2차 전당대회, 이기택 국회의원 대표최고위원에 선출" 1993년, 민주당은 제2차 조기 전당대회에서 이기택 의원을 대표로 선출한다. 1차 투표에서 이기택 2,743표, 김상현 1,928표, 정대철 944표를 득표했으며, 이어진 결선투표에서 이기택 2,896표, 김상현 2,549표를 기록해 일민은 야당 대표에 재선하게 된다. 앞으로 민주당이 전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국민정당으로 발전하고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는데 당력을 집중하겠다! 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은 김원기, 유준상, 조세형, 권노갑, 노무현, 한광옥, 신순범, 이부영 의원이 선출되었다. 3월10일 오늘의 역사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파면. 2014년 대.......

2020년, 民惟邦本(민유방본) 민본 위민사상 [내부링크]

"민유방본(民惟邦本)"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하면 나라가 안녕하다"는 뜻. 민본사상을 이루는 말이다. 2013년 가을의 어느날, 일민은 이 글을 남겼다. 현실 정치의 답은 역사에 있다고 믿었던 이기택 전 총재가 남긴 이 글귀는 바이러스로 온국민이 고통 받는 2020년의 나라와 세상을 향한 한마디처럼 또렷하다. 전래없던 불안과 공포가 일상을 뒤덮인 이 때에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에게 남긴 조언 같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흉년이 온나라를 휩쓸자, 세종대왕은 "민유방본, 식위민천(民惟邦本 食爲民天)"을 뜻을 알리며, 백성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라의 모든 불행을 자신의 부덕으로 자책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