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 [구구]


고영민 [구구]

구구 저자 고영민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5.10.28. 배롱나무의 꽃이 지고 있다 배롱나무의 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녁마다 숱한 꽃다발을 내게 바쳤으나 나는 그걸 다 받아주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꽃다발을 바치는 것 저녁 늦게까지 온몸이 꽃다발이 되어 들고 서 있는 것 그럴 때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갖고 있었을까 꽃들은 지나온 시간의 모든 것을 품은 채 떨어져 있다 밑동을 만지면 먼 가지의 꽃이 흔들리던 나무 바닥의 꽃들은 아직 붉고 바람의 그늘 속에 엎드려 미루어놓은 말들로 중얼거리고 지난 것은 다 진 것일까 나도 한때 누군가를 위해 꽃 한 다발을 들고 오래오래 문밖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빈손의, 어둠에 몰두해 있는 배롱나무에게 꽃다발 전문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첫사랑 전문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돌아...


#고영민 #구구 #꽃다발 #문학동네시인선 #시집 #첫사랑

원문링크 : 고영민 [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