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아무리 밑줄을 그어도 상처가 남지 않는다


책에는 아무리 밑줄을 그어도 상처가 남지 않는다

한국일보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거나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면 어쩔 수 없이 상처가 남는다. 그 사람들이 내 가슴에 줄을 긋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책에는 아무리 밑줄을 그어도 상처가 남지 않는다.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아무리 다정해도 한계가 있다. 밑줄을 긋는 건 언젠가 다시 펴보겠다는 나와의 약속인데 빌린 책에는 함부로 그런 언약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지금 내 앞엔 밑줄을 긋고 도그지어를 많이 만들어서 지저분해진 책이 있다. 나는 혹시라도 지문이 묻을까 봐 장갑을 끼고 애지중지한 책보다는 (한때의 시인 장정일은 정말 그랬다고 한다) 중철제본으로 완강히 버티는 책등을 힘껏 눌러 펴고 귀퉁이를 접거나 볼펜으로 밑줄까지 친 헌책이 더 좋다. 그 책에는 책과 나만 아는 유치한 비밀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내가 긋는 밑줄은 아프지 않다. 그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독후감 쓰는 걸 돕거나 가난해진 마음을 다시 채워줄 양식이 되어줄 뿐이다. 이제 헌책방에 책 파는 건 포기했다. ...


#내가산책 #도그지어 #밑줄쫙 #빌린책 #산책 #책에는상처가남지않는다 #편성준 #헌책방 #헌책안파는요령

원문링크 : 책에는 아무리 밑줄을 그어도 상처가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