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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 [내부링크]

최근 무선이어폰들은 주변소음을 제거하는 노이즈 캔슬링 효과가 뛰어나다. 소음을 차단하거나 상쇄시켜 잡음 없이 통화소리나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보통 외부마이크가 추가로 탑재되어 외부소음을 감지하면 소음의 파형과 반대 파형을 발생시켜 이를 상쇄시킨다. 그렇다면 소음이나 잡음은 외부에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말 많은 소음이나 잡음은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가 통화나 음악 뿐 아니라 대화나 과제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사실 외부소음이 아니라 내부소음에서 비롯된다. 그 내부소음이란 쓸데 없는 생각 즉, 잡념이다. 최근 급증하는 정신질환 중에 하나로 '성인 ADHD'를 들 수 있다. 기존에는 소아청소년 정신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성인들이 주의력 결핍을 호소하고 있다. 이중에는 어린시절부터 ADHD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어릴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성인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대화에도 업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딴 생각에 빠져버리는

자연에 답이 있다 내안에 답이 있다 [내부링크]

2023년 6월 24일 남산에서 첫번째 '네이쳐 위즈덤Nature Wisdom' 프로그램을 가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하루 반나절의 자연속에서의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깨우고 자연과 내면의 지혜에 접속하여 삶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내는 지혜걷기 시간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시나요? 이 프로그램은 지난 7년 동안 별도로 진행되어 온 '치유걷기'와 '걷기상담'의 장점을 살려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번아웃으로 인해 2014년도에 정신과 의원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안식년의 시간 동안 자연속의 캠핑과 트래킹을 통해 번아웃으로부터 완전하게 회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회복을 넘어 몸, 자기, 치유 그리고 인생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대학습(슈퍼러닝super-learning)'이 일어났습니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치유자이며 몸의 감각이야말로 마음의 바탕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통합적 치유를 내걸고, 진료실이

삐딱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내부링크]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어떤 예상이나 기대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나름 추측하거나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에게 "지금이 몇시야?"라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건성으로라도 "미안해, 차가 좀 막혔어."라는 식의 대답을 할 거라고 예상을 합니다. 혹은 일주일 만에 만난 연인에게 "자기야, 나 안보고 싶었어?"라고 물어본다면 나름 "말해 뭐해. 많이 보고 싶었지"라는 대답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상이나 기대에 벗어나지 않는 반응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이 몇 시야?"라고 이야기하면 "뭐야! 조금 늦은 걸 가지고 그러는거야. 내가 잘못했다고 엎드려 빌까?"라거나 "나 안 보고 싶었어?"라는 이야기에 "여자들은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봐. 피곤하게!"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서로 갈등이 있고 기분이 안좋은 상황에서는 이렇게 엇갈린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 기본적인 대화방식

상처받은 감정의 치유 [내부링크]

"도망가지도 마라. 묻어두지도 마라. 뭔가에 매달려서 혹은 감정으로 가는 통로를 삼켜버림으로써 다른 현실이 나타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지도 말고, 헛된 수고도 하지 마라. 손목을 긋지도 마라. 그저 그것을 마주보고 처리하라. 당신이 살아가는한 계속 찾아올 것이므로 고통스럽지만 당신은 계속 살아내야 한다. 그것은 진실로 삶을 만드는 일이다." -도서 <아주 특별한 용기> 중에서 - 치유란 무엇일까요? 치유를 이야기하려면 상처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네요. 상처란 무엇일까요? 상처의 핵심은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감정은 변화합니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비가 오고나면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것처럼 감정은 흘러갑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나 애착손상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감정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 충격과 고통은 신경회로에 새겨진채 마음의 바닥을 차지합니다. 이는 기분은 물론 생각, 행동, 욕구, 대인관계 등 삶의 전반과 마음 구석구석에 영향을

어떻게 복수하고 싶으세요? [내부링크]

지난 봄 <더 글로리>의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보는 내내 실제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이 드라마를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지 궁금했다. 과연 이 통쾌한 복수극을 보면서 위로와 대리만족을 느꼈을까? 아니면 18년 동안 초인적인 노력과 치밀한 계획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동은을 보며 더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었을까? 드라마를 보면 연진이가 동은을 18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 이런 대사를 한다. "나 지금 니가 짠 판에 제대로 들어온 거지? 어이가 없네. 어디서 거지 같은 새끼만나 거지 같은 애새끼들 줄줄이 낳고 거지 같이 살 줄 알았더니 제법이다. 대체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연진이의 이야기가 맞다. 현실속에 동은이와 같은 피해자는 없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평생 그 상처에 짓눌려 자신을 파괴 시키며 살아가거나 치밀한 복수극은 커녕 만만한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 해소되지 못한 울분과 복수심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향하거나 그마저도 없다면 결국 자기에게 향하는 것이

새로운 감정단어를 사용해보라 [내부링크]

바리스타는 커피의 맛을 표현하는 단어가 몇개나 될까요? 소물리에는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단어가 몇개나 될까요? 조향사는 향을 표현하는 단어를 몇 개 정도나 가지고 있을까요? 각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해 일반인과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와인을 마시고 향을 맡는 똑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을 깊이 느끼고 잘 표현하려면 세분화된 단어를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지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단지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의미를 넘어 감정을 깊이 경험하고 세분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밀한 감정입자도 emotional granularity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단어 학습이 정서적 건강에 아주 유익하다고 주장하며 그 논거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단어는 개념의 씨앗이 되고, 개념은 예측의 원동력이 되며, 예측을 통해 신체 예

&lt;모집&gt; 6/24 자연에 답이 있다 [내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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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료를 바꿔보라 [내부링크]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조미료나 향신료일까요? 불 조절일까요? 레시피일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일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고 하더라도 형편없는 재료를 사용한다면 음식 고유의 맛이 나지 않을테니까요. 그렇다고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거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철에 나오는 신선한 재료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삶의 맛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미 넘치는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감정입니다. 풍부하고 깊고 신선하고 좋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감정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좋은 감정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감정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를 상황이나 자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똑 같은 상황이나 자극에도 사람들은 다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 올라가서 발표를 하는 상

감정 출납부 [내부링크]

대학생 현우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그의 여자친구는 반대입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다분히 즉흥적이며, 자기표현에 솔직합니다. 이를테면 현우는 미리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게 좋지만 여친은 기분에 따라 당일 만나자고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두 사람의 집은 꽤 멀지만 여친은 종종 그가 사는 집앞으로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현우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거나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현우는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자친구가 기분이 상할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냥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 괜찮을텐데 오히려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척 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현우의 감정출납부에 기록됩니다. 현우는 여친을 위해 당황스러움을 참은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기쁨을 연기했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많은 감정적 에너지를 지출한 것입니다. 여친이 그를 만나려고 집

헤아림을 받은 감정은 차원이 다르다 [내부링크]

건강한 삶과 관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마음 헤아리기mentaliz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음 헤아리기는 표현과 행동 이면에 있는 자기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적 노력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헤아리는 것일까요? 그 핵심은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 헤아리기를 잘 하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행동 아래에 자신과 상대가 어떤 감정상태에 있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하고 이해해나가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감정 헤아리기mentalized affectivity'는 자기이해와 정서조절 그리고 공감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자신과 상대의 감정상태를 살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동적으로 반응하거나 생각이나 판단에 먼저 이끌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정 헤아리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부터 헤아리는 연습이

자기표현에 서툴다면 [내부링크]

만일 여러분이 일하는 곳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소화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실제 화재가 나면 많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 소화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혹은 어디에 있는 지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안전핀을 뽑지 못해서 사용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미리 연습한 적이 없는데다가 순간 얼어붙어 버리거나 도망치기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당황하면 전화기를 들었는데 ‘119’ 번호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화재 대비 훈련을 했다면 어떨까요? 연습때처럼 100% 대처할 수 없더라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실제 훈련이 아닌 가상 훈련도 효과적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능한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화기 있는 곳으로 달려가 핀을 뽑고 불을 끄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상훈련을 반복한다면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좀 더 다르게 행동할 수 있

맥락과 내용 [내부링크]

경훈씨는 할 만만 딱딱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쌀쌀맞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상대방에 특별한 안 좋은 감정이 있다거나 인정머리가 없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대화방식이 그렇습니다. 따뜻하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으면 안타까워하고 기꺼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의 내용만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인 정은씨는 대화중에 상대의 기분이나 마음을 종종 살피고 그 의미를 파악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상대의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기도 하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돌려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는 겉으로 드러난 말의 내용이 아닌 상대의 억양이나 표정들 속에서 무언의 신호를 잘 포착합니다. 이는 상대의 속마음을 잘 읽어낼 때도 있지만 오히려 상대의 의도나 마음을 곡해해서 해석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집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잘 통할까요? 갈등이 생기면 잘 풀수 있을까

상위 기분 경험 [내부링크]

공무원인 당신은 친구 모임에 나갑니다. 다들 술이 몇 잔 돌아가자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누구는 고급차를 사고, 누구는 부동산과 재테크로 얼마를 벌었고, 누구는 자녀가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등 다들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당신은 자랑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고 모아 놓은 돈은 별로 없고 아이들은 아직 취업도 하지 못했습니다. 괜히 자신만 낙오된 것 같아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얼굴 표정도 굳어지고 말수도 사라집니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다가 슬그머니 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잠시 동안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살펴봅니다.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다는 느낌과 친구들에 비해 뒤쳐졌다는 열패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내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공직에서 열심히 살아온 인생입니다. 모아놓은 재산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퇴직하면 연금이 나오고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남들에게 자

안 좋은 생각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때 [내부링크]

단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인해 괴로운 이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느낌에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고, 자신의 행실과 상관없이 비도덕적인 생각이나 상상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동적인 생각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생각이나 느낌을 사실화하고 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익숙합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원치 않는 부도덕한 생각이 떠오르면 자신이 실제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맙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을 쫓아버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소음과 정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이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에 늘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실 많은 생각이나 느낌은 그냥 잡념과 같은 뇌의 노이즈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우리 뇌는 24시간 돌아갑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 없을 때에도 뇌는 저 혼자서

관계에서 바운더리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내부링크]

저는 한 사람의 인간관계를 '바운더리boundary'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좋은 관계는 건강한 바운더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바운더리의 특성은 유연함입니다. 자신을 잘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 잘 교류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압니다. 그에 비해 건강하지 못한 바운더리는 너무 희미하거나 너무 경직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교류에 치중하거나 반대로 보호에 치중되어 있고, 마음 헤아리기가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자동적인 생각과 판단에 이끌립니다. 바운더리 심리학을 소개한 <관계를 읽는 시간>을 읽고 상담이나 워크샵에 오는 이들은 '희미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타인의 생각, 감정, 욕구 등에 쉽게 동화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희미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건강한 바운더리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상담이나 워크샵을 통해 진행되는 '바운더리 다시 세

근거 있어? [내부링크]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의학은 특히 근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리 오랜 임상적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해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갖추어 진료를 해야 합니다. 그냥 '내가 많이 고쳐봤어.' '내가 많이 경험해봐서 잘 알아'라는 식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특히 진단을 내리고 치료에 대한 결정을 할 때 의사는 그 근거를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결정에 따른 근거를 설명하고 입증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듯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임상적 경험과 함께 과학적 근거를 고려하는 것을 '근거기반 의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굳이 의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이나 정책수립 과정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거기반의 접근은 너무 근거를 위한 근거를 만드는데 급급한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확보하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적용할 수도

왜 나만 노력해야 해요? [내부링크]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보면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베푼 것을 상대도 고마워하고 되돌려준다면 인간관계는 그래도 할만 합니다. 하지만 어떤 관계들은 기울기가 점점 기울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쪽은 계속 배려하고 이해하지만 다른 한쪽은 계속 배려와 이해를 받는데 익숙해지는 것이지요. 결국 '왜 나만 노력하고 양보하고 이해해야 해!'라는 억울함과 화가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마음헤아리기에 대한 강의나 워크샵을 할 때도 그런 고충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나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되나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은 이미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참고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익숙함을 넘어 지쳐버린 분들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이분들이 관계에서 지친 이유는 마음 헤아리기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마음 헤아리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 심리학에서 이야기하

무엇을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가? [내부링크]

나르시시스트의 대인관계를 한마디로 하면 '착취'라는 말로 압축됩니다. 착취搾取라는 말은 동물의 젖이나 식물의 즙을 비틀어서 짜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시스트들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짜낼까요? 이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우월감'을 뽑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우월감superiority은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말합니다. 즉, 이들은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이러한 우월감 탐닉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자기애의 상처(수치심)에 대한 방어(반동형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어떻게 할까요? 일차적으로 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매력을 끊임없이 어필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드러냅니다. 실제 많은 나르시시스트들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능력(예를 들면 화려한 외모, 탁월한 언변, 많은 지식이나 성취 등)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만성적인 무기력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착각 [내부링크]

경희씨는 몇 년 째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회사에 취업을 한 적은 있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습니다. 상사에게 지적을 받거나 팀원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잘 버티지 못하고 그냥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전부터는 집에서만 생활 합니다. 부모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거의 밖에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방에서만 생활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성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몇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의욕이 생겨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입니다. 에너지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행동은 그 안에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힘이 있어야 행동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행동을 하면 힘이 생겨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부링크]

Johannes Vermeer의 1655년도 작품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이 장면은 루카 복음 10장 38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마르타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집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타는 예수님 일행을 시중드느라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습니다. 여동생 마리아가 좀 도와주면 그나마 나을텐데 동생은 가장 가까이 앉아 예수님 말씀을 듣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언니는 화가 단단이 났습니다. 그 불똥은 예수

나는 마음이란게 궁금해 [내부링크]

나는 왜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습니다. 흔히 호기심은 '무언가를 알고 싶은 욕구'를 말합니다. 이 호기심이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알려고 하고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 그리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겠지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먹은 것도 따지고 보면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호기심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강한 호기심을 가졌기에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호기심이 가나요? 호기심의 대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호기심의 대상도 있가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 그릇이 커지는 것 [내부링크]

"어려운 정서는 소금처럼 남아 있지만, 마음의 개방성에 의해 흩어져 버린다. 우리는 더욱 더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거머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중에서- 물이 가득찬 컵에 소금 한 스푼이 들어갑니다. 물의 맛이 아주 짜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물의 맛이 짜다고 물에 녹은 소금만을 꺼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을 더 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물컵이 아니라 한 냄비의 물이었다면 어떨까요? 똑 같은 소금 한 스푼이지만 컵의 물에 비하면 덜 짤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찜통이라면 어떨까요? 똑 같은 양의 소금이 들어갔더라도 짠 맛은 별로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릇에는 종종 지나친 소금처럼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그 불편함 때문에 종종 그 생각이나 감정을 제거하려고 하거나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물에 녹아버린 소금처럼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을 없애거나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

6월 온라인 심리 워크샵 : 바운더리 다시 세우기 [내부링크]

6월 온라인 관계돌봄 워크샵이 6월 7일(수)부터 4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은 4주 동안 도서 <관계를 읽는 시간>을 깊이 읽고 네번의 워크샵과 그리고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기 위한 4주 간의 공동실천을 저와 함께 진행합니다. 이 워크샵은 15명 정원으로 온라인 줌을 통해 5월 자기돌봄 워크샵에 이어 진행됩니다. 1주 (6/7일) 20:00~22:50 왜 나의 인간관계는 힘들까? 우리 자신의 인간관계가 힘들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이유와 개인적 이유를 애착과 바운더리 발달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2주 (6/14일) 20:00~22:30 나는 왜 이렇게 관계를 맺을까? 바운더리의 왜곡된 발달로 인한 자신의 역기능적 관계방식을 이해합니다. 3주 (6/21일) 20:00~22:30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마음 헤아리기mentlaizing'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는지 연습해봅니다. 4주 (6/28일) 20:00~22:30 바운더리

회피는 회복의 한 과정이다 [내부링크]

우리는 누구나 회피를 안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문제와 직면해야 하는가? 힘든 일을 겪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생활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다. 칼에 손이 배었으면 그 아픈 손을 쓰는가? 물에 닿는 것도 피한다. 회피가 꼭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 회피는 엄연한 회복의 한 과정이다. 심지어 부정또한 마찬가지이다. 부정과 회피는 우리를 충격으로부터 진정시키고 회복으로 나아갈 전열을 정비하는 시간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피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직면할 수도 없고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갈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폐차가 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겪은 후에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밤길에 강도를 당하고 난 뒤라면 밤길을 잘 나서지 않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전제가 있다. 고통이 가라앉고 안정을 위해 일정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이중 구속 [내부링크]

A는 연인 B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난 다 괜찮아. 너 먹고 싶은 걸로 해." 그런데 막상 연인 B가 스파게티를 고르자 B의 반응은 "면은 좀 그렇지 않아?"라고 이야기 합니다. A는 이번에 덮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B는 "추운데 국물 생각나지 않아?"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A는 정말 B가 어떤 것을 선택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아니면 국물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을까요? 이런 A의 반응을 보면 B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A의 말에 대해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온 중학생에게 엄마는 화가 나서 소리를 칩니다. "네 멋대로 살거면 이 집에서 나가!" 마치 나가지 않으면 때릴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의 기세에 눌린 아이는 문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면 엄마는 더 소리를 지릅니다. "너 지금 나가면 엄마랑은 완전히 끝이다!" 아이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이렇듯 한

당신은 번아웃이 아니다 [내부링크]

경준씨는 자신이 심한 번아웃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몇 개월째 아침에 회사를 출근하는 게 너무나 싫고, 업무 집중력 저하, 무기력, 의욕저하 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경준씨는 전형적인 번아웃과는 상이합니다. 전형적인 번아웃은 스트레스 과부하 상태로 인해 코르티졸(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신이 피로에 빠진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각성과 활력에 꼭 필요한 정상적인 코르티졸조차 잘 생산되지 못해 무기력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경준씨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단순한 업무에 지쳐 의욕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이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자신의 능력을 상회하여 대처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일을 하는 것, 즉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신이 제대로 자극받지 못해 기능이 쇠퇴하여 일

대화는 그 시작이 중요해 [내부링크]

만약 동의할 수 있는 것이 그 뿐이라면, 나는 우리가 모두 인간이고 지금 이 방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할 겁니다. - 이혼 중재자, 패트릭 페어 <다른 의견>에서 재인용- 갈등상황에 있는 상대와 대화가 잘 풀린 적이 있는지요? 아니, 풀리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된 대화를 이어간 적이 있는지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갈등이 풀리기는 커녕 더 갈등이 꼬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미 단정적인 판단과 불편한 감정들이 잠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갈등상황에서 대화의 시작은 평탄치가 않습니다. 대화 전문가들에 의하면 초기에 주고받는 대화만 들어보면 향후 대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상대에게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려는 성향이 뿌리 깊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대화를 들으면 그 내용 이외에도 말투나 표정, 눈빛 등을 통해 많은 신호를 수신하게 됩니다. 아무리 차분히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지닌 불편한 감정들은 대화에 직간접적으로

마음은 원래 방황하는 것이다 [내부링크]

우리는 일상에서 잡념이나 공상에 자주 빠집니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경험이나 과제에 집중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지금의 경험이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을 '마음 방황mind wandering'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에 비해 현재의 경험이나 과제에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마음챙김mindfulness'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자칫 마음챙김은 좋은 것이고 마음방황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판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럴까요?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상대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대화중에 상대가 시종일관 당신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요? 너무 불편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대화는 상대의 눈을 쳐다볼 때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초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하나의 대상에 아주 오래 동안

마음챙김은 삶을 관찰하는 것인가? [내부링크]

당신은 지금 재미있는 영화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혹은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중이다.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새로운 요리를 만드느라 심취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음챙김 상태에 있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분명 의식이 경험에 집중된 상태이지만 온전한 의미에서의 '마음챙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몰입' 혹은 '집중'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마음챙김은 무엇이 더 필요한가? 마음챙김은 '주의에 대한 주의meta-attention' 혹은 '의식에 대한 의식meta-awareness'이 필요하다. 즉, 마음챙김은 '집중'과 함께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자아는 생각, 기억, 느낌, 감정, 욕구 등 마음의 내용물과 자꾸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사실화 하려고 한다. 외부세계와 내부세계가 다름에도 말이다. 자아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왜곡과 갈등 그리고 집착 속에

무엇을 위한 비판단인가? [내부링크]

마음챙김은 특정한 방식으로 주의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챙김이란 '현재의 순간에 의도적이고 비판단Non-Judgement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마음챙김 뿐만이 아니다. 많은 마음훈련과 소통법에서는 비판단(non-judgment)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비판단이 이루어질수록 우리는 현재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고, 상대를 한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비판단'으로 이 복잡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챙김의 목적은 비판단이어야 할까? 마음은 왜 있을까? 마음의 본질은 판단에 있다. 마음은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우리의 경험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분류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안전여부'와 '유불쾌'이다. 즉 이 상황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이 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신호가 바로 감정과 감각이다. 즉, 불쾌한 감정과 감각을 통해 우리는 안 좋은 경험이라는 판단을 하고, 유쾌한 감정과 감각

마음챙김을 위한 혼자말 [내부링크]

상처받은 마음의 작동방식은 건강한 마음의 작동방식과 다르다.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관찰능력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을 사실이라고 단정짓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 같아.'라는 생각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받은 마음은 이를 흘려보내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화 시켜 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쓸모없어!'라는 단정적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인사를 건넨 상대가 표정이 굳어 있으면 왠지 나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나한테 불만이 있는 걸까?' 그런데 상처받은 마음은 이를 사실화시켜 버린다. '저 사람은 나한테 불만이 있어.'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서 떠오르는 느낌, 생각, 판단 등을 바로 사실화시켜버리는 것을 '심리적 융합mind fusion'이라고 한다. 이렇게 융합된 상태에서는 비판적 사고, 거리두기와 같은 의식적 반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융합이

왜 자신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할까? [내부링크]

도훈씨는 이해심이 참 넓다는 평을 받는다. 그도 그런게 자신이 바쁜 때에도 상대가 부탁을 하면 일단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애를 쓴다. 거절보다는 자신이 조금 수고를 하는게 덜 불편하다. 더 나아가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이를 이해하려고 한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어디서든 사람 좋다는 말은 듣고 다닌다. 문제는 정작 자신에게 만큼은 손톱 만큼의 이해심도 발휘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작은 실수나 문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질책과 비난을 많이 한다. 도훈 씨는 왜 이런 불균형에 빠져 있을까? 출생 후 아이는 심리적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쾌와 불쾌라는 신체적 감각만이 미분화된 채 덩어리져 있다. 그러한 원시적 마음에서 아이가 심리적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자신의 내적상태를 헤아려주는 상호관계를 통해서이다. 애착대상은 아이의 표정과 소리 그리고 못짓을 통해 아이의 내

훈련과 연습의 차이 [내부링크]

이번 5월에 자기돌봄 워크샵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참가자 중에 한 분은 작년에 워크샵에서 만났던 분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워크샵을 통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자기돌봄의 언어도 익숙해졌는데 워크샵이 끝나면서 점점 그 효과가 약화되어 한번 더 신청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효과가 꾸준히 지속되었다면 참 좋았을텐데요. 실제 상담이나 워크샵에서 이런 경우는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효과를 보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연습practice'과 '훈련training'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단어 모두 '능력과 기술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별다른 구분을 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연습은 훈련에 비해 주체적입니다. 훈련은 훈련시키는 사람trainer과 훈련하는 사람trainee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트레이너의 가르침에 따라 훈련이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트레이너가 없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 [내부링크]

팀장이 출근을 한다. 사무실의 두 팀원이 웃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팀장이 온 것을 보더니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 순간 팀장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A라는 팀장은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재미있게 했을까? 그런데 왜 내가 오니까 끝을 내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에 비해 B라는 팀장은 '내가 들으면 안되는 이야기인가? 혹시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C라는 팀장은 '이것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을 보니 내 흉을 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D라는 팀장은 그 장면을 보고도 궁금증이나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D를 제외한 A, B. C의 세 팀장은 팀원이 자신을 보고 이야기를 중단한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어떤 팀장이 마음 헤아리기를 한 것인가? 세 명 모두 팀원이 자신을 보고 이야기를 중단한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판단을 했다. A는 판단

마음 헤아리기 피로는 없다 [내부링크]

정신과 의사를 하다보니 이런 질문을 많이 듣는다. "매일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힘들지 않나요?" 사람들은 안다.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고통의 일부를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다. 굳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거울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인해 정서적 감염이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담 관련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돌보거나 혹은 고객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 ‘공감피로empathy fatigue’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꼭 그런 직업군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주변을 보면 돌봄 직업군이 아닌데도 공감피로에 잘 빠지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걱정이나 고민을 유난히 잘 들어주지만 정작 자신이 힘든 것은 잘 이야기 못하고 혼자 끙끙앓는 이들이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책임과 자신의 책임을 잘 구분하지 못

놀이터의 작은 아이들을 보라 [내부링크]

당신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웃음 소리만 들릴 리는 없다. 어떤 아이가 넘어져서 울 수도 있고, 어떤 아이들은 서로 그네를 먼저 타려고 다툴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기웃거리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좀 더 지켜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뛰어놀고, 잠시 다투다 말고 화해하고, 그리고 머뭇거리다가 같이 어울리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살짝 도와줄 수 있다. 넘어져서 크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많이 아프니?"라고 물어보고 심각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 줄 수 있다. 다투는 아이들이 주먹 다툼까지 가려고 한다면 다가가서 진정시키고 서로 번갈아 타도록 순서를 정해줄 수도 있다. 계속 어울리고 싶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워?"라

왜 뜨거운 감자를 놓지 않는가 [내부링크]

당신의 눈앞에 아주 맛나 보이는 구운 감자가 놓여 있다. 당신은 바로 집어든다. 그런데 오븐에 오랫동안 구워진 감자라서 손으로 들고 있기에는 너무 뜨겁다. 그럴 때 당신은 반사적으로 감자를 던져버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감자가 뜨겁다고 펄쩍 뛰면서 계속 그 감자를 쥐고 있다면 어떨까? 너무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마음의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마음을 아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기대expectation'이다. 그 기대가 과도할수록 괴로움은 커진다.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하고, 내 가까운 이들이 그 고유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할 수 있다면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상당부분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한다.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하고 상대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옭죈다.

그가 지적질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내부링크]

자녀를 심하게 혼내는 부모 역시 그 바탕에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칭찬이나 격려를 하기 보다 혼을 내는 것일까요? 물론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이들은 흔히 혼을 내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착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혼을 내는 것이야말로 자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혼을 낼수록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을 내는 것은 점점 강화되기 쉽습니다. 혼을 내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증표이고, 혼을 낼수록 자녀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혼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은 그대로 자녀에게 전해집니다. 즉, '내가 너를 사랑해서 혼을 내는 것이고, 내가 너를 혼냈기에 네가 이 정도라도 할 수 있게 됐어.'라는 생각이 내면화됩니다. '부모는 나를 사랑해서 혼을 낸 것이고, 그렇게 혼을 냈기에 내가 이 정도라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의 착각을 내면화하게 되면 이

&lt;온라인&gt; 바디풀니스, 마인드풀니스 그리고 라이프풀니스 [내부링크]

최근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인지나 감정을 다루어 치유를 꾀하는 전통적인 하향식top-down 치유기법 뿐만이 아니라 몸의 감각과 의식적인 움직임을 통해 치유를 꾀하는 상향식bottom-up 치유기법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바른 마음을 위한 움직임(바마움)'은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소마틱스의 다양한 전통과 뇌과학,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들을 통합하여 바마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6월 6일 저녁에 진행되는 바마움 아카데미에서 '바디풀니스'를 주제로 강의와 실습을 진행합니다. 바디풀니스가 무엇이며 바디풀니스가 어떻게 마인드풀니스, 그리고 라이프풀니스로 연결되는지를 이야기 나누고 경험하고자 합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참석하지만 몸과 마음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열린강좌입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소액의 참가비가 있는 유료강좌입니다. <신청> 제20회 바디풀니스, 마인드풀니스 그리고 라이프풀니스 - 바마움 (bamaum.com)

답은 의식의 증진에 있다 [내부링크]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이야기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이성적인 의식에 의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정신을 의식(consciousness), 전의식(pre-consciousness), 그리고 무의식(unconsciousness)으로 나누었고 그 중에서도 무의식의 영향력을 가장 크게 보았습니다. 이는 지동설이나 진화론에 버금갈 만큼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의식은 말 그대로 뇌와 감각 기관을 통해서 현재 지각되고 인식되는 생각, 감정, 감각 등 모든 정신작용을 포함합니다. 그에 비해 전의식은 과거에 인식되었던 기억이나 경험들 중에서 현재에는 잘 의식되지 않지만 집중하고 노력하면 곧 떠올릴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지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문명과 현실에서 용납되지 않는 욕망이나 생각, 콤플렉스, 트라우마, 억압된 기억 등으로 채워져 있는 정신영역입니다. 바로 의식화할

회복을 원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선사하라 [내부링크]

WHO는 2019년 제 10차 국제질병분류 ICD-10에 번아웃을 포함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만성적 업무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이라고 규정했다. '관리되지 못한 만성스트레스!' 이 말의 핵심은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자체가 해롭다기보다는 이완과 휴식을 거치지 않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해롭다는 의미이다. 즉 좋은 휴식이 이루어진다면 스트레스와 긴장은 오히려 활력이 될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번아웃을 정신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회복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보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휴가 며칠 갔다오거나 일의 양을 줄이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번아웃의 회복은 대개 수개월이 걸리고 심지어 몇년이 걸리는 것도 드물지 않다. 마음이전에 몸이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충전기 자체가 고장난 것이기 때문에 충전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충전기 자체를 수리해야 한다. 번아웃은 엄밀히 말해 정신적 질환이라기보다는 신체적 질

자기가치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 [내부링크]

"저는 반찬봉사를 갔다 오면 에너지를 받아옵니다. 독거 어르신들을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고 포장해서 전달하고 오면 그렇게 마음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봉사모임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기쁜 일입니다. 서로 역할이 있지만 모두 내일이라고 하고 서로 한마음으로 함께 일을 합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돌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따뜻하게 돌보는 것입니다." 혜은씨는 직장 일을 하고 자녀 둘을 키우는 바쁜 생활 중에서도 2주에 한번은 독거 노인들을 위한 반찬봉사 활동을 합니다. 그녀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뒤입니다. 혼자 고생하며 사셨던 어머니를 떠나 보낸데 대한 슬픔이 컸기에 주변에 혼자 사시는 분들을 보면 유독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봉사활동이 그 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봉사활동 자체가 자신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정성껏 준비한 반찬을 전달하고 오면 그렇게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따뜻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

인생 후반에 꼭 필요한 덕목 [내부링크]

'돌봄'과 '치유'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치유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 때, 우리가 애써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돌봄이란 치유하려는 온갖 노력이 실패했을 때도 여전히 해볼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 크리스토퍼 거마 <셀프 컴패션> 중에서 - 삶은 뜻대로 되는 것이 더 많나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나요?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나요?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나요? 우리는 누구나 행복과 성공과 건강을 원하지만 그 기대와 반대로 불행과 실패와 질병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렇습니다. 수입은 점점 감소하고, 몸은 늙고 병들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고, 나를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삶의 양면을 보려고 하지 않고 행복과 성공과 건강만을 원하는 사람은 나이들수록 더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실감합니다. 한해 한해 몸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공감어린 직면 [내부링크]

심리치료에서 직면confrontation은 내담자가 회피하고 있는 문제나 모순된 상태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내담자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당연히 치료적 관계가 형성이 되고 난 후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치료자의 의도와 달리 내담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행해야 합니다. 즉, 몰이해나 비난 등으로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칫 논쟁이나 방어로 흐르거나 치료의 중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치료자는 적절한 시기를 살펴야 할 뿐 아니라 '공감어린 직면Empathetic Confrontation'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공감적 직면'은 무엇일까요? 이는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 기초한다는 것을 공감하고 그 관점과 대처방식이 과거의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관점과 방식이 고착화되고 일반화되어 지금

갓난아이에게도 마음은 있다 [내부링크]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안정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안정애착을 형성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세심한 반응성sensitive responsiveness,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 등 여러 표현이 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의 양육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마인스Meins E. 와 찰스 퍼니후 Fernyhough C.는 안정애착을 위해서는 '마음헤아리기 양육Mind-minded Parenting'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마음헤아리기 양육은 무엇인가? 이는 '갓난아이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부모와 다른 개별적인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말을 못하는 아이의 행동이나 표정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고 그 기저에 있는 자녀의 감정, 욕구, 흥미에

점점 깊어지는 사랑의 비밀 [내부링크]

어떤 커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이 식어가고 끝내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어떤 커플은 잠시 권태기에 빠지거나 위기를 겪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이 깊어진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간을 오르내리는 커플들도 많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지는 사랑을 하는 이들은 뭐가 다를까? 사회 심리학자 아서 아론Arthur Aron의 '자기 확장 모델self-expansion model'에 의하면 이들은 두 사람이 관계속에서 더 발전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즉, 아서 아론은 좋은 관계의 본질을 '상호확장'이라고 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성장이 일어나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호성장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첫째, 일상의 작은 관심과 반응이다. 존 가트맨John Gotmann 등은 사랑을 연구하기 위해 워싱턴 대학의 한 건물에 러브 랩Love Lab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혼부부를 초대해 24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이들의 생활을 촬영했다. 그리고 6년뒤에 이들의 관계를

모방하지 않는 삶은 없다 [내부링크]

많은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창의성이라고 꼽습니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심리학자인 빅토리아 호너Victoria Horner와 앤드류 휘튼Andrew Whiten의 실험이 있습니다. 이들은 3~4세 어린아이와 침팬지 두 그룹에게 과자가 들어 있는 두 개의 박스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안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박스이고, 또 다른 것은 투명한 박스입니다. 실험자들은 상자를 열어 과자를 꺼내는 방법을 먼저 시연하는데 처음에는 막대기로 상자를 두드리거나 쑤시는 불필요한 과정을 포함시킵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상자로 실험을 할 때 침팬지와 어린아이 모두 실험자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여 과자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것은 속이 훤이 보이는 상자로 실험을 할 때였습니다. 속이 보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면 막대기로 상자를 두드리거나 쑤시는 행동은 과자를 꺼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행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과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내부링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타고난 소망'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타고난 성향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서는 감정과 신체적 감각이다.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충족시키는 활동과 관계에 참여할 때 우리는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도하게 길들여져 있고 지나치게 사회화 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제프리 영의 <삶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열기> '우리는 과연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변화를 원하지만 쉽사리 변화하지 못합니다. 모든 변화는 불편이나 위험을 야기하기에 그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치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유란 지난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기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 만큼이나 변화를 회피하는 마음 또한 강렬합니다. 그렇기

낙원과 현실, 당신의 선택은? [내부링크]

Marc Chagall의 1961년도 작품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 현실이 고될수록 우리는 낙원을 꿈 꿉니다. '늘 행복하세요'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처럼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그런 삶을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에게 낙원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아담과 이브처럼 에덴 동산에서 살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의 삶을 떠올려보시죠. 에덴동산은 모든 게 풍족하고, 일이나 육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생명의 나무가 있어 늙거나 죽지도 않는 불로장생의 삶이 펼쳐진 곳입니다. 도대체 아담과 이브에게 무슨 불편이나 고통이나 걱정이 있었을까요? 가끔씩 삶이 힘들어지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 어떤 책임이나 의무도 없고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습니

나 같은 게~ [내부링크]

대기업 연구직으로 일하는 영훈씨는 늘 한 발 뒤에 물러 나 있습니다. 시키는 일은 아주 잘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모임에서도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의견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자신을 '내성적이라서' 혹은 '소심해서' 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나 같은게~'라는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이런 자기대화의 언어를 갖게 되었을까요?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렇습니다. 말 끝마다 '너 같은 게~' '네까짓 것' 이라며 그를 구박했던 아버지에게서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영훈씨를 키우면서 때리지도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면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냐!' '네까짓 게 뭘 안다고 그러냐!'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 라는 말을 함부로 던졌습니다. 물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야단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

케세라 세라 Que Sera, Sera [내부링크]

도리스 반 카펠호프라는 독일계 미국여성은 어려서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발레리나를 꿈꿨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