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이 왕이 되었다면, 세종은 죽었다.


양녕대군이 왕이 되었다면, 세종은 죽었다.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은 한때 전략적인 양보를 과감하게 실행한, 조선을 위하여 물러난, 아주 선한 이미지로 구축되어 있지만, 연구결과,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의 인성을 밝히고 , 미화된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외가 몰락에서 보이는 양녕대군의 간사한 인성 양녕대군은 1394년에 정안군과 군부인 민씨(뒤의 원경왕후)의 장남으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세자가 되기 전부터 양녕대군은 태종과 원경왕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었다. 사실상 그들의 모든 자식 중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라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태종은 원경왕후와의 사이에서 7남 4녀를 얻었지만, 그 아들 중에서 요절하지 않은 것은 4남 양녕대군, 5남 효령대군, 6남 충녕대군 뿐이다. 실제 장남과 차남과 3남은 이름에 대한 기록도 없이, 겨우 태종의 회고기록 정도에서 그 존재가 확인될 정도인 것으로 보아, 그들은 상당히 어린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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