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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유혹한다. [15분 즉흥쓰기-여행] [내부링크]

마피아, 스킨헤드의 고향? 누군가는 스킨헤드에게 돈을 털리고, 무뚝뚝한 현지인의 불친절로 비호감의 나라로 남아 있을 러시아! 하지만 나에겐 언젠가 밟아 보고 싶은 로망의 여행지. 정확히 내가 러시아에 대한 ‘묻지 마’급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은 한 20여 년 전쯤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소환된다. 19세기 말 한 미국인 발명가의 시베리아 벌목 개발 사업에 러시아 자금줄을 끌어내라는 미인계 임무를 띠고 러시아 땅에 당도한 미모의 미국 여인. 동서로 무려 일곱 개의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기차여행의 끝판왕, 시베리아 횡단 열차 칸에서 사관생도 톨스토이와 운명적 첫 만남을 가진 그녀. 객실 밖을 잠가 버린 짓궂은 친구들의 장난으로 객실에 남겨진 톨스토이는 열차 칸에서 그녀가 권하는 샴페인에 취해 ‘세빌리아의 이발사’ 오페라를 부른다. 둘 사이에서 오가던 심상치 않은 로맨틱한 기운. 그리고, 둘은 운명적처럼 다시 만난다. 다만 야속하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사업 자금줄의 희생양으로

어버버는 이제 졸업하겠습니다 [내부링크]

‘인종차별에 참교육하기!’ 유튜브를 켜니, 바로 보이는 오늘의 영상. 요즘 인종차별을 다룬 ‘뉴욕으로 간 니나’를 많이 찾아본 것 때문이었을까? 역시 알고리즘을 먹고 사는 유튜브답다. 오늘 너 잘 걸렸다 싶은 맘으로 검색창에 아예 ‘인종차별 사이다’를 쳤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그 ‘인종 차별’. 갑작스레 들어오는 당혹스러뭄에 어버버 어쩔 줄 모르고, 분에 못 이겨 감정을 폭발했던 숱한 기억. ‘혹시라도 나의 완벽하지 않은 영어 때문이었을까’ 하며 자신을 자책했던 시간. 그러나, 미국 현지에서 나고 자라 영어를 쏼라 쏼라 자신 있게 하는 현지 아시아인들도 비슷한 수모를 겪는다네. 뭐든 이 모순의 고리를 풀어 보리라. 지나고 보니, 예고도 없이 불쑥 맞닥뜨리는 그 상황에서 난 참 무방비로 당했는데. 그러고는 땅을 치고 몇 날 며칠을 이불 킥했던 시간. 늘 그렇지만 하나 마나 한 뒤늦은 후회가 고구마 몇 개 먹은 느낌으로 버텼던 그때의 기분을 바꿔주진 못한다. 대신

맞 선 [내부링크]

서른이 넘어가기 시작한 딸이 노처녀로 남을까 노심초사한 엄마는 여기저기서 선 자리를 조달해 왔다. 그 딸은 30대 중반까지 ‘내가 그런 걸 왜 봐야 해!’라며 온몸과 마음으로 거부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잘 팔릴(?) 줄 알았던 30 후반의 그녀에게 소개팅 시장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30대 후반의 그녀를 찾는 수요는 현저히 고쿠라 들었다. 딸은 그제야 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엄마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맞선 자리를 한번 두번씩 나가게 됐다. 그러고도 한참 뒤 이 망할 맞선 시장에서는 여자 쪽이 소개비를 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그 철딱서니 딸이 다름 아닌 나고, 서두의 이야기가 바로 내가 겪은 일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처음 몇 번의 소개비는 엄마의 쌈짓돈으로 충당된 것 같다. 돈까지 내가면서 소개받아야 한다는 걸 알면 내가 펄펄 뛰었을 것을 이미 간파한 엄마는 처음 몇 번의 소개비는 나에게 비밀에

그녀의 민낯 [내부링크]

내가 다니는 학교에 최근 정문 담당으로 입사하게 된 S . 전 직장에서 퇴직후 학교 보안 업무로 제 2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분으로, 늘 사람 좋은 미소’와 구수한 사투리로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준다는 평가를 벌써부터 받고 있다. 내가 얼마 전 외부인을 초대해 놓았는데 학교에 새롭게 생긴 외부 손님 출입 통제 지침으로 결국 손님을 모시지 못했던 황당했던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S와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짧지만 서로의 속내를 공유하게 되면서 이후 둘은 어느 틈에 아무에게나 꺼내기 힘든 껄끄러운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곤, 얼마지않아 의기투합하여 퇴근길에 동네 전집에서 막걸리를 걸치는 시간을 가졌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듣자 하니, 얼마 전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S를 자극한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 3년 차로 접어든 학교는 교내 출입을 하는 모든 이들의 체온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출근하는 직원과 등교하는 학생 및 동반 학부모

첫인상은 배신한다. [내부링크]

철들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숱하게 많은 만남과 인연을 거쳐 보니, 인터뷰 한 번으로 채용을 확정하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와 같은 세태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새삼스레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의 팽배한 ‘첫인상 결정론’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다름 아닌 나라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훤칠한 신장’, ‘타고난 갈색의 곱슬머리’, ‘어딘가 모르게 순종적이지 않은 반항아의 눈빛과 이미지’. 요즘처럼 헤어와 복장에 대한 규정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10대 학창 시절 당시 난 어떤 그룹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을 과시(?) 했고, 껌 좀 씹었을 법한 좀 놀아본 언니 포스로 학창 시절 새 학년이 될 때면 급우들이 나에게 벽을 허물고 다가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었다. 이런 튀는 외모는 나름 범생이었던 내가 도매금으로 비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던 경험을 숱하게 안겨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사 시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선생님 왈. “얘 좀 봐. 너 머리 파마했네

혼밥 [내부링크]

혼밥, 혼술 등 혼자 하는 일상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딱 십년 전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연남동. 당시의 그곳은 젠트리피케션 영향으로 트렌디한 가게들이 넘쳐나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홍대 상권에서 조금 벗어나, 주택가의 한가로움에 유유자적할 수 있는 동네였다. 나름 자기개발이랍시고 동네 휘트니스 클럽도 다니고 했었는데 주말에 맘 먹고 체력 단련을 마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무엇으로 보답할지 생각한 끝에 동네 고깃집으로 향했다. 오후 3시가 넘어 가는 시각의 동네 고깃집. 혼자뿐이었다. 서빙하는 이모님이 무얼 먹겠냐고 해서 내가 눈치 없이 "등심 1인분이요"하자, 무척 곤란해하시며 "1인분은 힘든데요. 우리도 숯도 피우고 하려면 ,,," "저도 먹다가 더 먹을 수 있으면 추가하겠지만 2인분을 시키기도 좀 애매한데요".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이모님은 고깃집 사장님과 상의 끝에 흔쾌히 1인분을 준비해주셨다. 애매한 식사 시간 덕분에 혼자만의 등심구이 정찬을 오롯이 대접받으

당신이 살았을 법한 그 삶이 당신에게 [내부링크]

‘ 그때 지원한 대학에 떨어지지만 않았더랬도, 지금쯤…’, ‘그때 샀던 로또 번호 하나만 딱 맞았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은?’ 한번 쯤 꿈꿔봤을 이런 가정법 인생을 소재로 다룬 ‘미드나잇라이브러리’ 소설속 주인공 노라. 학창시절 노라는 성적이 우수하고 수영, 음악, 철학 등에도 특출난 재능을 보였지만,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현생에서는 고작 악기상 파트타임 점원신세. 12년 하던 알량한 이 일마저 짤린다. 달랑 1명을 상대로 한 피아노 레슨마저 그만두게 될 위기다. 오랜 시절 함께 한 고양이 볼트까지 로드킬로 죽고나자, 본인 신세를 한탄한 끝에 우울증 약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 한참 뒤 깨어난 노라는 고교시절 아웃사이더로 체스를 둔다는 핑계김에 곧잘 숨어지냈던 학교 도서관으로 공간을 이동하고, 이곳에서 사서 엘름 여사를 영접한다. 친절한 엘름 여사는 노라에게 “이곳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이라며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줄테니, 원하는 삶을 다시 디자

아저씨 [내부링크]

중년층 남성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용어. 보통 40~50대 남성을 부르는 말. 대략 결혼을 한 이후나, 미혼이라도 기성 세대로 치는 40대부터는 이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다. 나무 위키는 ‘아저씨’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 사회가 중년을 넘어가며 여리 여리(?)한 여성성을 잃어버린 여성을 한데 몰아서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다소 낮춰 부른 것처럼, 중년의 남성은 그냥 전체로 몰아서 ‘아저씨’로 부른다. 그 아저씨들은 현대 사회와 신세대들이 요구하는 세련됨과 다양한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하해 ‘아재’, ‘꼰대’도 모자라, ‘개저씨’와 같은 다소 가혹한 별칭을 가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때 나도 그들을 하나의 무리로 몰아 약간은 조롱하며, 나와는 다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니 피터’쯤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나의 이런 시선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나의 물리적 절대 나이가 아저씨와 동년배 수준으로 되어 버린 것. 문득 주변을 돌아

좀 힙한 재래시장입니다만, [내부링크]

재래시장과 힙한 카페가 공존하는 금호동, 미스터리 쇼퍼가 찾아가다 금호역 출구에서 나오니 보이는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혹시 저 럭키는 90년 후반에 사라진 LG의 전신 그 태곳적 브랜드? 뿐만 아니다. 지하철 나온 길목에서 해땅콩을 구웠다며 손사래 치며 마다하는 행인들에게 계속 들이대는 땅콩 장사치도 한몫한다. 완만한 내리막길 양편으로 보이는 상가들도 딱 어느 시골 읍내 장터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높은 건물이라곤 멀찍이서 보이는 대단지 아파트들뿐. 여기가 과연 서울의 중심부 한복판의 동네일까라는 의구심을 한켠에 가지고 계속 발길을 옮겨본다. (좌) 금호역 출구에서 내려 보이는 금호동은 다소 정겨운 시골 읍내 느낌, (우) 90대 후반 사라진 LG의 전신 럭키 브랜드 간판의 상점가 문을 열어놓은 상가 창가에 테이크 아웃 김치전 3,000원이라는 푯말에 눈이 커진다. 오모나. 이거 실화? 조금 더 가니, 엄청 맛있어 보이는 매운 닭발 가게가 보여서 눈을 반짝이니, 인심 넉넉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