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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귀향 [내부링크]

잠자리의 귀향 / 하기 davidclode, 출처 Unsplash 유독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서늘한 날에 알록달록 단풍이 나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잠자리는 나무 아래에 있던 허수아비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봉변을 당했다 결국 살아남긴 했지만 잠자리는 지구의 가을을 증오하며 달로 떠났다 짧은 가을과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잠자리는 다시 돌아왔다

봄눈이 가렵다, 진란 [내부링크]

봄눈이 가렵다, 진란 kiyomishiomura, 출처 Unsplash 그대라는 꽃잎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어색하던 첫 만남처럼 쑥스러운, 무성한 그대의 안부가 훌훌 날아온다 뭉텅뭉텅 어디에 숨겨두었던 말인지 손을 내밀면 금새 눈물로 글썽이는 솜눈이 하염없을 것처럼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닿자마자 사라지면서도 무심코 던지던 말처럼 내 어깨를 툭 툭 건들고 가는구나 꽃잎같은 그대 그 날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 간신히, 손 내밀어 잡지 못하던 고요를 뭉치며 주머니 속의 손난로만 만지작거렸었지 두 마리 짐승만 남아 서로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여우 구름 피어오르는 골짜기에 묻히고 싶다던 그 생각이 차갑게 뺨을 때린다 잊혔다고 접어버린 마음 위에 봄눈 흩날린다 산벚꽃 질 때처럼 글썽이는 입술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눈 시린 그대 불투명했던 겨울을 보내는 마지막 인사는 가볍고 차갑고 쓸모없는 잔정처럼 무책임한 봄눈 같았다고 봄눈 날린다 진란 시인 프로필 1959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온리 [내부링크]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온리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며칠 전부터 헐어있던 입안을 달래 줄 흰죽 한 사발이 그리웠던 참인데 아내라고 중얼거려 보면 뜨끈해진 입안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의 아내인 나는 누군가의 뒤꼍인 사람 그러므로 비가 내리는 메가박스 뒷골목에서 꽃무늬 우산을 쓴 아내를 기다려 보았다 아내를 불러보는 동안 누군가가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반쯤 젖은 채 어깨를 부딪쳐 갔다 눈을 감으면 나를 기다리는 무수한 아내 없으면서도 있는, 이마를 짚어주는 아내 누군가의 뒤꼍이 될지언정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녹색으로 바뀐 건널목을 급히 뛰어가는 아내를 붙잡지 않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 박흥식 출연 전도연, 설경구 개봉 2001. 01. 13. 김온리 시인 프로필 부산 출생 2016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야, 부르면' 외 나비야, 부르

절반만 말해진 거짓, 신용목 [내부링크]

절반만 말해진 거짓, 신용목 lycan, 출처 Unsplash 이제 놀라지 않는다 새가 실수로 하늘의 푸른 살을 찢고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나무들의 짓이라고 오래전 내가 청춘의 주인인 슬픔에게 빌린 손으로 연못에 돌을 던졌던 것처럼 공원 새들을 모조리 내던지는 나무들, 서서 잠든 물의 무덤들 저녁의 시체들 가을이 새의 울음을 짜내 신의 예언을 죄다 붉게 칠했으므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그날, 마지막으로 던졌던 반지의 금빛 테를 가진 달빛조차도 손목을 그은 청춘의 얼굴로 늙어가니 집으로 돌아가 최대한 따뜻한 밥을 하고 뭇국을 끓여 상을 차리고 마음을 지우고 나면, 남는 자신을 앉히고 눈에서부터 긴 눈물의 심을 빼내기라도 한다면 구겨진 옷가지처럼 풀썩 쓰러질 자신을 향해 밥그릇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로, 걸어가거나 형광등 빛을 펴 감싸주며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온몸 뜨거운 물에 흠씬 적신 뒤 뿌옇게 김 서린 거울을 훔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

유치환, 행복 [내부링크]

유치환, 행복 artsyvibes, 출처 Unsplash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인 프로필 1908년 경상남도 거제 출생 1931년 문예월간 시 '정적' 등단 시집 '청마시초' 외 청마시초 저자 유치환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23.03

권주열, 고추잠자리 [내부링크]

권주열, 고추잠자리 yan_slg, 출처 Unsplash 제 몸에 십자가를 지고도 천당 근처에도 넘나든 사실 없다 하지만 가볍게 이승을 난다 권주열 시인 프로필 1963년 울산출생 2004년 '정신과 표현' 등단 시집 '한 사람들로 붐빈다' 외 한 사람들로 붐빈다 저자 권주열 출판 파란 발매 2022.10.30.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 신영배 [내부링크]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 신영배 benjmater, 출처 Unsplash 애인에겐 문법이 없고, 문법이 없어서 애인에게 닿을 수 없다 달밤이라고 썼다 구두가 나에게 달을 설명했다 바닥에 고인 물은 구두와 춤추는 달 다가갈수록 물은 어두워지고 춤은 환해지고 모자가 나에게 달을 설명했다 벽에 부딪치는 음악은 모자가 흔드는 달 음악이 점점 넓어지고 귀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달은 없고,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구두와 모자 사이에 달 사이에 꽃병을 그렸다 사이에 물송이를 피웠다 달은 보여줄 수 없고,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꽃병 안엔 달이 들어 있다 꽃병을 설멸하기 위해 꽃병은 설명될 수 없고, 달밤이었다 꽃병을 기울이고 달을 썼다 물송이와 구두가 걸어갔다 물송이와 모자가 날았다 애인에게 나는 물송이와 움직였다 신영배 시인 프로필 197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1년 '포에지' 시 등단 시집 '물안경 달밤'외 물안경 달밤 저자 신영배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20.10.30.

호박 보름달, 김영애 [내부링크]

호박 보름달, 김영애 zoltantasi, 출처 Unsplash 21층 베란다에 늙수그레한 손님이 오셨어요 옮겨 앉으시면 속상하신다기에 별빛 잘 드는 곳에 모셔두고 늦가을 여문햇살 초겨울 시린 하늘 흠뻑 드시고 달달한 후생을 주십사 간청 드렸지요 가끔씩 똑똑똑 공손하게 안부를 여쭙는 동안 햇볕은 조금씩 김포공항 쪽으로 비켜서 주었어요 땅기운 깔고 앉았던 엉덩이가 얇아지고 토실토실하던 황금 피부도 푸석해지셨어요 오늘은 햇살 좋은 길일 만고풍상 다 겪은 노파처럼 충분히 달아올랐을까 엄마 엉덩이같이 접힌 골짜기에 심호흡을 대고 거부하는 칼날로 쾅쾅쾅 만삭의 배를 쪼갰어요 두 동강 난 몸 움싹으로 가득한 황금색 자궁 속에서 소름처럼 울컥 양수가 튀었어요 불쑥 내뱉은 어릴 적 생리통처럼 노란별꽃 뙤약볕우레 처서귀뚜리가 뛰어나왔어요 소스라쳤을 태아들, 나는 폐경입니다 달큰한 후각으로 널브러진 조각달을 섬기며 달지 않은 마음 길었어요 첫아이 낳고 해산달이 미워질 때 엄마가 끓여주신 황금 호박죽

럭키슈퍼, 고선경 [내부링크]

럭키슈퍼, 고선경 mumairkhaan, 출처 Unsplash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다시 월정리에서, 유재영 [내부링크]

다시 월정리에서, 유재영 rawkkim, 출처 Unsplash 정강이 말간 곤충 은실 짜듯 울고 있는 등 굽은 언덕 아래 추녀 낮은 집이 한채 나뭇잎 지는 소리가 작은 창을 가리고 갈대꽃 하얀 바람 목이 쉬는 저문 강을 집 나간 소식들이 말없이 건너온다 내 생애 깊은 적막도 모로 눕는 월정리 유재영 시인 프로필 1948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1973년 박목월 시인 시 추천 이태극 시조시인 시조 추천으로 데뷔 시집 '구름농사' 외 구름 농사 저자 유재영 출판 동학사 발매 2022.08.10.

내 슬픔은 고양이 자세 / 이미영 [내부링크]

내 슬픔은 고양이 자세 / 이미영 magict1911, 출처 Unsplash 늑골을 말아 쥐고 숨을 뱉습니다 잔뜩 동글린 등이 안쪽의 급소를 감춥니다 비만은 빠르고 다이어트는 멉니다 사람들은 자꾸 내 인생이 휘었다고 말합니다 치사량의 기대감을 수혈하듯 슬픔을 폭식했습니다 나는 왜 쉽게 슬픔을 허락했을까요 하루에 세 알씩 두통약과 수면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아직 갈라진 벽 틈에 숨어있는 몇 인분의 눈빛이 남아있으니까요 들숨보다 날숨이 더 중요한 거라고 모니터 속 날씬한 여자가 말을 하네요 나도 앙큼한 고양이가 될 수 있어 떠난 남자에게도 발톱을 세울 수 있어 릴랙스의 최면이 필요한 밤입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거울 밖에서 본 고양이 자세는 서글픕니다 문득 눈동자에 블랙홀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는 늘 전화기 밖에 있습니다 제발 그 누구도 주사위를 던지거나 거울속을 엿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어둠 속 이명은 걸핏하면 복식호흡을 하며

꿈속에서 [내부링크]

꿈속에서 / 하기 photo_tanbir, 출처 Unsplash 오늘도 잠 속 깊은 꿈에 빠져있는 나 그곳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나를 아는 듯 모르는 나 그동안 날 잘 아는 줄 알았던 나 꿈속에선 그것이 모두 착각인 것을 깨닫는다 깨어나 빠져나가고 싶지만 뻘에 다리가 잠기듯 점점 더 빠진다 진정한 나를 아는 날이 오는 날 꿈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황동규 [내부링크]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황동규 cartega, 출처 Unsplash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뒤 숲이 보이고 안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종기 엎어져 있는 항아리, 동그랗게 누워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 한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시인 프로필 1938년 평안남도 숙천 출생 1958년 현대문학 시 '시월'로 등단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저자 황동규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1978.09.01.

김소월, 진달래꽃 [내부링크]

김소월, 진달래꽃 markpisto, 출처 Unsplash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마야 진달래꽃 Live 2004.03.28 마야 진달래꽃 라이브 2004.03.28 www.youtube.com 김소월 시인 프로필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20년 시 '낭인의 봄' 으로 데뷔 시집 '진달래꽃' 진달래꽃 저자 김소월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23.03.25.

불안한 상속 / 조창규 [내부링크]

불안한 상속 / 조창규 kiwithompson, 출처 Unsplash 초승달은 지구의 공전이 깎아 놓은 손톱 할아버지는 매해 굴속에서 자식들을 낳았다 그의 핏줄을 따라 가계의 불행은 대물림되었다 갑상선암이나 탈모 같은 불안한 의혹들이 쑥쑥, 나의 안쪽에서 자란다 볼록한 허물은 누군가 잠시 머물다간 집 나는 긴 장화 속에 새알을 숨기고 입구를 나뭇가지로 덮어 놓는다 알 속에 구겨진 부리는 바깥을 여는 열쇠 아비의 출신은 자식에겐 신분증이었다 지구에도 이상한 상속이 있다 붉은 사막에 내리는 하얀 폭설 代가 끊기지 않는 지진, 전쟁 떠도는 계절의 종자들은 어느 기후의 혈통을 잇고 있다 아프리카의 겨울이 추울까, 시베리아의 여름이 더울까 나는 지구의 공전 방향과 반대로 도는 사람 죽은 할아버지는 내게 땅꾼인 아버지를 물려주었다 부어오른 목에서 부화한 새의 울음 1월에 낙엽이 지는 적도의 나무들 깨진 유리창을 X자 청테이프가 붙들고 있는데, 알 껍질만 버려져 있는 불안한 그늘 삐-익, 나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김영랑 [내부링크]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김영랑 micheile, 출처 Unsplash 내마음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 곳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시인 프로필 1903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 1930년 시문학 동인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데뷔 시집 '영랑시집' 영랑 시집 저자 김영랑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23.03.25.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 어맨다 고먼(Amanda Gorman) [내부링크]

우리가 오르는 언덕, 어맨다 고먼 wsanter, 출처 Unsplash “날이 밝아오면 우리는 자문한다. 끝없이 드리워진 이 어둠 어디에서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짊 지어진 상실 어디에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바다 어디에서? 우리는 야수의 탐욕에 용감히 맞섰다. 침묵이 항상 평화가 아님을 배웠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 자체의 규범과 개념이 항상 정의가 아님도 터득했다. 하지만 새벽은 우리의 것이고 이를 알아차리기 전에 어떻게든 우리는 견뎌냈다. 어떻게든 우리는 지켜냈고 또 증언하게 되었다. 부서져 망가지지 않는 국가, 다만 미완일 뿐인 국가를. 우리들 미국인은 한 나라와 한 시대의 계승자들이다. 야윈 한 흑인 소녀가 노예의 후손인데다가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된 한 흑인 소녀가 대통령이 되는 꿈을 꿀 수 있게 된 나라와 시대의, 어쩌다 그 흑인 소녀가 한 분의 대통령을 위해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서게 된 바로 그 나라와 그 시대의 계승자들이다. 또한 그렇다. 우리들은

피아노, 전봉건 [내부링크]

피아노, 전봉건 laura_paraschivescu, 출처 Unsplash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 시인 프로필 1928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1950년 '문예' 시 등단 시집 '백개의 태양' 외 백개의 태양(전봉건 시집) 저자 전봉건 출판 깊은샘 발매 2008.10.25.

숲을 켜다, 조이경 [내부링크]

숲을 켜다, 조이경 jeremybishop, 출처 Unsplash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주먹을 내야겠어요 오늘이 새나가지 않도록 블랙 미러 속 환삼덩굴이 투명한 손을 뻗어오네요 엄지와 검지의 잔뿌리를 싹둑 자르고 포레스트 어플*을 켭니다 여기는 역설의 숲, 숲지기는 가위로 가위를 잘라야 해요 비탈진 모래 언덕에 곰발바닥선인장을 심어볼까요 보송보송한 솜털에는 지문이 닳지 않겠죠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래시계를 샀지요 시간의 나무는 백색소음을 먹고 자란대요 건조한 수요일이 명상을 클릭합니다 함께 심기에 당신을 초대할게요 다달이 선물로 주던 데이터, 이젠 꽃과 나무로 주세요 코인이 쌓이면 낙타의 무릎에도 종려나무를 심어요. 우리 눈을 감고 날숨을 길게 내쉽니다 마른 흙이 빗방울에 놀라 소스라지네요 불모의 한때가 비늘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 내일은 집을 지을 거야 수목 한계선 밖에서 울고 있던 야명조夜鳴鳥 한 마리, 가문비나무숲으로 날아듭니다 가문비나무에선 사철 물소리가 들

식탁 위의 전쟁 [내부링크]

식탁 위의 전쟁 / 하기 danielcgold, 출처 Unsplash 한없이 굴러가는 눈들 쉼없이 움직이는 손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벌이는 전투 눈은 굴러가며 눈치를 살피지만 손은 대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아야 손은 목적을 이룬 듯 느려지지 나를 채워야만 보여지는 것들 그러나 보여지는 건 텅 빈 시선들 쓸쓸하게 남겨진 고기 한 점 그제야 끝나는 이기적인 전투

세월이 가면, 박인환 [내부링크]

세월이 가면, 박인환 marcospradobr, 출처 Unsplash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시인 프로필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1946년 국제신보 시 '거리'로 데뷔 시집 '세월이 가면' 외 세월이 가면 저자 박인환 출판 와이앤엠 발매 2021.05.25.

서정주, 푸르른 날 [내부링크]

서정주, 푸르른 날 tolga__, 출처 Unsplash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시인 프로필 1915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36년 동아일보 '벽' 등단 시집 '화사집' 외 화사집 저자 서정주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19.06.20.

토성의 고리, 조시현 [내부링크]

토성의 고리, 조시현 nasa, 출처 Unsplash 가끔 너는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나는 네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안다 갓 낳은 계란의 따끈함은 한 손에도 쉽게 쥐어지는 거여서 신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가져가며 통증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애도해본다 헐겁게 묶여 기울어지는 것들 별자리는 누구의 제안입니까 정거장이 없어서 어디에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이건 따뜻한 수프 그릇이 있는 저녁 식탁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데 불이 전부 꺼져도 우리는 계속 돌겠지 기민하게 피처럼 도달이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깨달으려고 중력이 은폐의 방식이라면 촛불은 왜 위를 향해서만 타오릅니까 비명이 길어져서 수다쟁이가 되어버렸어 나는 네가 가진 수백 겹의 비밀 마르기도 전에 얼어버리는데 이곳의 날씨를 어떻게 알려주지 부서지고 부서지면서 기도란 떼쓰다의 정중한 말이고 그땐 정적도 응답이 되지 언제나 애를 쓸 수는 없는데 우주를 연재하는 건 거대한 무음 입안에서 촛농 맛이

간절함, 신달자 [내부링크]

간절함, 신달자 almosbech, 출처 Unsplash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푸른 불꽃이 어른거린다 두 손과 손 사이에 깊은 동굴이 열리고 머리 위로 빛의 통로가 열리며 신의 소리가 내려온다 바위 속 견고한 침묵이 온기 피어오르며 자잘한 입들이 오물거리고 모든 사물들이 무겁게 허리를 굽히며 제 발등에 입을 맞춘다 엎드려도 서 있어도 몸의 형태는 스러지고 없다 오직 간절함 그 안으로 동이 터 오른다 신달자 시인 프로필 1943년 경상남도 거창 출생 1964년 '여상' 신인상 시 등단 1972년 박목월 시인 '현대문학' 추천 시집 '간절함' 외 간절함 저자 신달자 출판 민음사 발매 2019.10.11.

당신의 당신, 문혜연 [내부링크]

당신의 당신, 문혜연 jackez2010, 출처 Unsplash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 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는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

최승호, 대설주의보 [내부링크]

최승호, 대설주의보 thebeardbe, 출처 Unsplash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 시인 프로필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 '비

탑(塔), 이영도 [내부링크]

탑(塔), 이영도 andriklangfield, 출처 Unsplash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이영도 시인 프로필 1916년 경상북도 청도 출생 이호우 시조시인의 여동생 유치환 시인과 주고 받은 연시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시집 '외따로 열고'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저자 유치환 출판 시인생각 발매 2013.07.25. 외따로 열고 저자 이영도 출판 시인생각 발매 2013.06.21.

볼트 / 임후성 [내부링크]

볼트 / 임후성 kreyatif, 출처 Unsplash 코끼리를 보라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 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 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 달라붙어 있지 않고 그것은 끌려다닌다 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 실체는 헐렁헐렁하다 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 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 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 뒤쪽 숲을 보라 나뭇잎들이 가지에 붙어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한다 나무 주위를 맴돌며 탈출이 어려운 바람의 원숭이들을 보라 가장 가까운 붉은색을 볼 수 없는 원숭이의 눈을 보라 저 영특한 종족은 의혹의 못에 박힌 매혹이다 이때 고개를 돌려 완전한 불의 형태로 시간을 태우는 대관람차를 보라 오전의 하품 같은 간격을 보라

외등의 시간, 권갑하 [내부링크]

외등의 시간, 권갑하 odentha, 출처 Unsplash 울렁이는 욕망들이 굽은 등마다 흘러나오는 지워진 먼 길 끝에선 아우성도 몰려온다 허물을 덮어주려면 몰래 별도 띄워야겠지 은밀한 갈증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해진 상처 감추려 지친 바람 분주하지만 실직의 허기진 강은 눈물에도 젖지 않는다 안간힘으로 굴린 공은 어디로 굴러갔나 홀로 깬 기다림은 파도소리로 훌쩍이는데 쓸쓸한 작별의 행방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 제 가슴 속 불을 밝혀 외따로 돌아가는 어둠을 건너는 외등의 경건한 고독이여 아득한 혼잣말처럼 문득 빗방울이 환하다 권갑하 시인 프로필 1958년 경상북도 문경 출생 1992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시조 당선 시집 '아름다운 공존' 외 아름다운 공존 저자 권갑하 출판 알토란 발매 2011.12.05.

도킹, 양안다 [내부링크]

도킹, 양안다 nasa, 출처 Unsplash 빗나갔습니다 대피하세요 인생을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곧 폭발합니다 나는 빗나간 포옹을 사랑해요. 열대야 속에서 온몸은 땀으로 젖었으나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어느 꿈에서는 눈이 내린다. 맞아요. 우리는 환절기였습니다. ㅡ 네가 날 바라보길 기다렸어. 밤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날. 네가 내 목에 놓인 점들을 이으며 그것이 백조자리라고 말했을 때. 네가 영원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을 때. 빗나갔습니다 대피하세요 너는 멀리 가버렸습니다 폭발합니다 내가 양안다 시인 프로필 199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 시 등단 시집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외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저자 양안다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01.30.

서쪽을 보다, 최금녀 [내부링크]

서쪽을 보다, 최금녀 adityapradpt, 출처 Unsplash 남편은 늘 동쪽 벽에 기대어 서쪽 벽을 보고 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액자 속 인물들은 표정을 바끌 생각이 없다 40년 된 소철은 알프스의 소방울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반가운 적이 없는 기억들이 꽃진 화분에서 기어나와 틈새를 찾아다닌다 르노아르의 여자는 그림 속에서도 영양제 같은 시를 쓴다 명품 웨지우드가 정장차림으로 날씨를 읽는 중 쓰다 남은 말들은 가족을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직은 아무도 유언을 말하지 않는다 서쪽 벽은 대답이 없다 망설이는 중이다. 최금녀 시인 프로필 1939년 함경남도 영흥 출생 1998년『문예운동 』등단 시집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외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저자 최금녀 출판 책만드는집 발매 2013.11.01.

쌈 / 조창규 [내부링크]

쌈 / 조창규 mpetrucho, 출처 Unsplash 나는 쌈을 즐깁니다 재료에 대한 나만의 식견도 있죠 동굴 속의 어둠은 눅눅한 김 같아서 등불에 살짝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낱장으로 싸 먹는 것들은 싱겁죠 강된장, 과카몰레*등 다양한 <쌈장 개발의 기원> 봄철, 입맛이 풀릴 때 나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을 새로운 쌈장에 찍어 먹습니다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 어떤 배설물은 때로 훌륭한 식재료가 되죠 두꺼운 것들은 싸먹기 곤란합니다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에도 누명과 모함은 숨겨있죠 적에게 붙잡히면 품속의 기밀을 구겨 한입에 삼켜요 무덤까지 싸 들고 가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 난 방충망의 경계가 소홀합니다 누군가 달의 뒷장에 몰래 싸놓은 알들 나는 긴 혀로 나방을 돌돌 말아먹는 두꺼비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사각사각, 저 달을 갉아먹는 애벌레들 수줍은 달을 보쌈해간 개기월식 삼킬 수 없는 과욕은 역류하기도 하죠 보름달을 훔쳤다는 나의

데칼코마니, 한이로 [내부링크]

데칼코마니, 한이로 sharonmccutcheon, 출처 Unsplash 내 방엔 거울이 하나 나는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서로 다른 옷을 입을 때 살짝 삐져 나오는 다디단 표정 나란히 서면 자꾸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에겐 곁눈질이 있으니까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학교를 벗어던진 우리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 위로 쏟아진 자동차 사이로 뿔뿔이 흩어진다 반으로 나눠진 마카롱 사라진 쪽이 너라고 생각하겠지 바닥에 던진 우리의 그림자를 지우느라 붉어지는 늦은 오후의 얼굴들 간호사가 건네는 푸른 옷을 얼굴처럼 똑같이 입고 우리는 사이좋게 케스터네츠를 악기라고 말하고 난 뒤 기분을 반으로 접는다 다른 그림찾기와 같은 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내 방엔 거울이 하나인데 두 개 매번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입 꼬리 살짝 올라간다 한이로 시인 프로필 1973년생 부산교도소 복역 중 2023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영남일보 문학상 詩 부문, 장기복역수

카지노에서 감정 다스리기 [내부링크]

카지노에서 감정 다스리기 / 하기 schmidy, 출처 Unsplash 분노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는 해변에서 한 발 떨어져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자 카지노에 시계, 거울, 창문이 없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지 자기의 손목, 얼굴을 때리는 바람과 함께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 일렁대던 파도는 어느새 잔잔한 물결로 찰랑대네 그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참지는 말아 인내가 길어지면 터널의 끝도 멀어지니까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을 한꺼번에 뒤덮을 수 있는 암막 커튼이 필요한 것 낮의 해가 밝을수록 밤의 그림자는 깊어지기에

꽃나무, 김선우 [내부링크]

꽃나무, 김선우 michael75, 출처 Unsplash 꽃이 지고 누운 꽃은 말이 없고 딱 한 마리 멧새가 몸을 튕겨가는 딱 그만한 천지 하늘 겹겹 분분하다 낮눈처럼 그렇게 꽃이 눕고 누운 꽃이 일생에 단 한 번 자기의 밑을 올려다본다 김선우 작가 프로필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 비평 시 '대관령 옛길" 등으로 등단 시집 '녹턴' 외 녹턴 저자 김선우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16.04.11.

비둘기는 죽지 않는다 [내부링크]

비둘기는 죽지 않는다 / 하기 sneha_snaps, 출처 Unsplash 어젯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베란다 창문 밖 빈 화분에서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너 너의 무사를 기원하며 나는 창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미동도 없던 너 내일 아침 너의 영결식을 치를 걱정에 나는 오롯이 잠들 수 없었다 아내는 119를 부르자고 했고 딸아이는 가장의 책임을 운운하며 나의 결단을 요구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잠들지 못하게 한 너 나는 밤새 너의 처리에만 몰두했다 두려움에 떨며 행여 남아있을 너의 온기를 차가운 창 밖 저멀리 던져버려야하나 주섬 주섬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종량제 쓰레기로 버려야 하나 쓰레기매립장에서 차마 화형 당할 너의 안위는 먼동이 터오르기전까지 내 안중에는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의 밤이 지나고 베란다에 빛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우리 모두는 블라인드를 열고 창문 밖 그 자리를 응시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았지 너라는 존재의 흔적들 몇 개의 깃털과 배설의

나는 발굴되고 있다, 방윤후 [내부링크]

나는 발굴되고 있다, 방윤후 davidclode, 출처 Unsplash 화석처럼 유적처럼 몇 억 년 후의 눈빛이 샅샅이 훑고 있다 캐릭터들이 화면에서 사실처럼 그려지듯 내 몸은 시뮬레이션 중 얼굴 주름이 점점 사라지고 자라목이 펴지면서 화소로 온전히 박동하고 있다 음악, 집, 자동차, 음식이 매장된 21세기 지층에서 표본으로 떠내는 누군가의 붓질, 멈칫멈칫 계통의 척추가 드러나고 있다 지구 대멸종 전후 살았던 일생이 조사되고 세밀히 분석되는 중이다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긴 속눈썹의 태아들, 조류 곤충들의 돌출은 없었다 처음 수천 년의 변화가 백 년, 백 년이 십 년, 십 년이 불과 몇 달, 그 가속에서 추정되는 대량의 인류 편리는 문명을 채취하여 절멸로 이끌기도 한다 머리카락 혈흔 침만으로 분류되어 1, 2초 후면 다운로드 된다 일망타진되는 진화는 얼마나 덧없는가 인공지능이 현생 생물을 대표할 때 완벽하게 복원되는 사람들이 무릎 꿇린 채 인터넷 공간에서 팝업창으로 분류되고

이해인, 너에게 가겠다 [내부링크]

이해인, 너에게 가겠다 springwellion, 출처 Unsplash 오늘도 한줄기 노래가 되어 너에게 가겠다 바람 속에 떨면서도 꽃은 피어나듯이 사랑이 낳아준 눈물 속에 하도 잘 익어서 별로 뜨는 나의 시간들 침묵할수록 맑아지는 노래를 너는 듣게 되겠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리움이 흰 모래로 부서지는데 멈출 수 없는 하나의 노래로 나는 오늘도 너에게 달려가겠다 이해인 시인 프로필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생 1964년 성 베네딕트 수도회 입회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외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저자 이해인 출판 열림원 발매 2015.02.27.

대숲 아래서/ 나태주 [내부링크]

대숲 아래서/ 나태주 raynertulus, 출처 Unsplash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나태주 시인 프로필 1945 충청남도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내부링크]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sarangib, 출처 Pixabay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황인찬 시인 프로필 1988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 신인상 시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외 구관조 씻기기 저자 황인찬 출판 민음사 발매 2012.12.07.

버터, 박선민 [내부링크]

버터, 박선민 MemoryCatcher, 출처 Pixabay 추우면 뭉쳐집니다 펭귄일까요? 두 종류 온도만 있으면 버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뭉쳐지는 힘엔 추운 거푸집들이 있습니다 마치 온도들이 얼음으로 바뀌는 일과 흡사합니다 문을 닫은 건 오두막일까요? 마른나무에 불을 붙이면 그을린 자국과 연기로 분리됩니다 창문 틈새로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연기를 뭉쳐줍니다 고온에 흩어지는 것이 녹는점과 비슷합니다 초록색은 버터일까요? 버터는 원래 풀밭이었습니다 몇 번 꽃도 피워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들은 집요하게도 색깔을 먹어 치웁니다 이빨에 파란 이끼가 낄 때까지 언덕과 평지와 비스듬한 초록을 먹어 치웁니다 당나귀일까요? 홀 핀이 물결을 반으로 가릅니다 개명 후 국적을 바꾼 귤이 있습니다 노새는 두 마리입니다 한쪽의 양이 너무 많거나 갑자기 차가운 밖으로 밀려나면 두 개의 뿔이 돋아납니다 그래서 당나귀의 울음은 무게를 느끼지 못합니다 저울의 일종일까요? 버터는 뜨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내부링크]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alexb, 출처 Unsplash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서울시, 하상욱 [내부링크]

서울시, 하상욱 diesektion, 출처 Unsplash 지옥철 / 하상욱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팀장님 / 하상욱 안 보면 맘 편해 연봉협상 / 하상욱 어떻게 내게 이럴수 있니 메뉴선택 / 하상욱 이게 뭐라고 이리 힘들까 다 쓴 치약 / 하상욱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전직원 등산 / 하상욱 일하고 싶어요 일하게 해줘요 야근 / 하상욱 이상 하게 맘은 편해 헬스장 등록 / 하상욱 그순간은 불타올라 연말정산 / 하상욱 뭐가 뭔지 언제 한번 보자 / 하상욱 진실 혹은 거짓 만우절 / 하상욱 거짓 속에 담긴 진실 갑 / 하상욱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을 / 하상욱 당신이 말한다면 당신이 원한다면 가입해제 / 하상욱 쉬운 이별이 어디 있겠니 돈 안 갚는 친구 / 하상욱 다 잊은거니 왜 말이 없니 하상욱 시인 프로필 1981년 서울 출생 2012년 시집 '서울 시' 출간 2013년 시집 '서울 시2' 출간 서울시1 서울시2 외 하상욱 시집 저자 하상욱 출판 중앙북스 발매 2

생각 나무, 윤보영 [내부링크]

생각 나무, 윤보영 95C, 출처 Pixabay 언젠가 햇살 고운 창가에 앉아 네 생각하며 커피를 마신 적 있어 그때, 커피잔에 나는 너라는 나무를 심고 생각나무라 이름 지었지 생각한 만큼 자꾸 자라는 나무! 오늘도 어제처럼 커피를 마시며 생각 나무를 키웠어 나는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행복을 키우고 행복은 나를 키우고 윤보영 시인 프로필 1961년 경상북도 문경 출생 200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캘리시집 '바람으로 왔다가 꽃으로 머무는 봄' 외 바람으로 왔다가 꽃으로 머무는 봄 저자 윤보영 출판 카드들 발매 2017.04.10.

칠월, 허연 [내부링크]

칠월, 허연 iamsherise, 출처 Unsplash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허연 시인 프로필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 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민음사, 2014) 외 불온한 검은 피 저자 허연 출판 민음사 발매 2014.04.28.

피천득, 오월 [내부링크]

피천득, 오월 maddibazzocco, 출처 Unsplash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사랑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부링크]

사랑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luandmario, 출처 Unsplash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오로지 서로에게 사무친 채 향기로운 꽃 이파리들이 늘어선 불꽃 사이로 하얀 자스민 흐드러진 정자까지 거닐고 싶다. 그곳에서 오월의 꽃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마음속 온갖 소망들도 잠잠해지고 피어나는 오월의 꽃들 한가운데서 행복이 이루어지리라. 내가 원하는 그 커다란 행복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년 체코 출생 1896년 '가신봉페' 출간 시집 '릴케 시집' 릴케 시집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4.04.20.

먼지 / 윤보영 [내부링크]

먼지 / 윤보영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너도 나처럼 그리운가 보구나, 창틀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보고있는것을보면. 윤보영 시인 프로필 1961년 경상북도 문경 출생 200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캘리시집 '가슴에 내리는 비' 외 가슴에 내리는 비 저자 윤보영 출판 카드들 발매 2017.05.31.

5월의 장미 / 이해인 [내부링크]

5월의 장미 / 이해인 chulmin1700, 출처 Pixabay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5월의 넝쿨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담장넘어 피는 아름답고 수즙은 넝쿨장미,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5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이해인 시인 프로필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생 1964년 성 베네딕트 수도회 입회 시집 '작은 기도' 외 작은 기도 저자 이해인 출판 열림원 발매 2011.09.14.

사랑의 깊이, 윤보영 [내부링크]

사랑의 깊이, 윤보영 michaelrfenton, 출처 Unsplash 사랑의 깊이가 궁금해 마음에 돌을 던진 적이 있지요 지금도 그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는 걸 보니 그 돌, 아직도 내려가고 있나 봅니다. 윤보영 시인 프로필 1961년 경상북도 문경 출생 200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커피도 가끔은 사랑이 된다' 외 커피도 가끔은 사랑이 된다 저자 윤보영 출판 해드림출판사 발매 201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