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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상- 감사한 마음 [내부링크]

매스컴을 통해 문명의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이나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소위 후진국의 주민들, 그리고 여전히 사회 정세가 불안하여 쿠데타나 폭동에 의해 잔인한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국가의 주민들을 보면, 과연 저들이 살아생전은 고사하고 머나먼 미래에도 자각이 깃들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생깁니다.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지구상에는 나라와 지역 인종에 따라 다양한 영적 분포도가 펼쳐져 있다고 했습니다. 대략적 유유상종의 법칙이 적용되어 자신과 비슷한 진화 노선을 갖는 인종들과 사회와 사람들이 어울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 문명의 시각에서 보면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사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인간의 정체성마저 의심이 들 정도로 극히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적인 성장을 논하면서 우리는 그 비유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를 들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었습니다. 인간 육체의 시원(始原)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세한 크기의 정자와

삶의 실상 - 무책임한 생명경시 [내부링크]

죽으면 그만이다, 모든 게 다 끝이다,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안 들 것이다. 그러니 난 편안해질 것이다…. 사는 게 괴로워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나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자살을 하게 되지요. 죽으면 그만이다. 왜 사람들은 이렇듯 괴로우면 생각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자신의 무의식에 자신을 맡기 버리려 할까요. 그렇게 죽을 각오가 되어있으면 왜 의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왕 죽을 것이라면 이미 나는 죽은 목숨이다는 전제만을 가지고도 얼마나 많은 살아생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나요. 이런 죽은 자의 마음을 가졌다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들이 어디 있나요. 새로 태어난 나로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요. 이미 과거의 나는 죽었는데, 실제 자살자와 이렇듯 자살을 가정한 전제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어차피 둘 다 자신의 현재의 삶은 포기하는 것이 되는데, 살면 안 되고 꼭 죽어야만 한다는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삶의 실상 - 부인할 수 없는 진실 [내부링크]

부인할 수 없는 진실 우리에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는 것이며 이승이 있기에 저승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탄생이 진실이듯 죽음 또한 진실이며 탄생 후의 삶이 진실이듯 죽음 후의 삶 또한 진실입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에 관한 책들의 내용이 아닌, 죽음 그리고 죽음 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나의 인생은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깨우침의 시간과 공간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브라모이언-

삶의 실상 - 사라지는 것들 [내부링크]

사라지는 것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과 늘 같이 사시는 건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요. 영원히 나는 살 것 같고 전혀 나한테는 그런 죽음이라는 거 그런 관심조차 내 머릿속에는 없는 그런 분들처럼 사시지 않나요. 남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남들의 죽음은 그 사람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은 비상식적으로 사시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 강박관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초현실이라는 엄정한 현실로 보면 육신은 금방 언제 어느 때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초현실주의자죠. 그러면 ‘당장 내가 사라질 거면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롭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게 슬기롭게 사는 것인가?’ 돈 더 벌고 더 명예 얻고 더 권력 얻는 게 그게 슬기롭게 사는 거 같습니까? 그런 것은 사라질 거라는 거 뻔히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가장 여러분한테 중요한 초현실을 여러분이 무

삶의 실상 - 생각의 세계 [내부링크]

생각의 세계 영혼이 육체에 머물러 있을 때도 그렇고, 육체를 떠나도 그렇고, 생각은 육체가 아닌 영혼이 하는 것이지요. 세상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생각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평화롭고 육체가 편해도 생각이 괴로우면 그 사람은 그 괴로움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생각의 세계가 가장 당면한 현실인 겁니다. 과거에 한 우울증 걸린 왕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신은 밤마다 거지가 되는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인데 꿈에서 거지가 되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꿈속에서나 꿈에서 깨어나도 괴로워 우울증에 걸린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을 다 가진 왕이라도 생각이 괴로우면 마음 편한 거지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있으나 없으나 생각이 괴로우면 이승에서 괴롭고 이승에서 꾸는 꿈도 괴롭고 저승에서도 괴로운 것입니다. 꿈은 비록 생각의 작용이라 할지라도 영혼이 육체에 머물러 있는 관계로 다분히 물질적이고 육체

집착과 두려움 [내부링크]

두려움은 나의 의식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 아닌 장애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어법을 쓰는 이유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실 외부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 마음 안에만 존재하고 있는 내부적인 허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두려움을 상징하는 어떤 대상을 만들어 예를 들면 악마 사탄 귀신 악한 존재들이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두려움은 그런 것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스스로가 두려움을 안 만들어 낸다면 악마, 사탄, 귀신은 그 존재마저도 의미 없는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 낸 두려움의 이름들일 뿐입니다. 그럴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이러한 것들에 내가 피해를 보았다면 그것은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나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입니다. -브라모이언-

죽음의 길목 [내부링크]

앞서 말한 대로 현재 인류의 대부분이 저승에 가서도 그곳이 저승임을 인식하지 못해요. 살아생전 죽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지요.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 모든 게 없어진다, 모든 게 사라진다, 모든 게 멈추어진다. 모든 게 잊힌다는. 이런 식의 선입관 때문이지요. 그러나 막상 죽음이 찾아오면 정신을 잃는 순간은 마치 잠에 잠시 빠지는 것처럼 찰나지간 입니다. 곧이어 다시 의식이 들어오게 되지요. 의식이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살아생전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개념조차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살아 존재하는 자신을 보게 되니까요. 그러므로 과거와는 약간 다르다. 뭔가 약간 바뀐 것 같다는 생각만 겨우 할 뿐이지 누구도 지금 내가 죽어서 현재 다른 세계에 와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 이러니 살아생전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후에 대한 개념의 정리와 이에 대한 자각하나가 나의 물질적 삶 나의 영적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비록 살아생전 유체이탈

삶의 실상 - 인간적인 삶이란? [내부링크]

인간적인 삶 여러분들은 이번에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위기의 사태를 보면서 깊이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신념과 사상과 관념과 이념, 이 부질 없는 것들은 모두 한 생각에 불과한 것인데 무슨 대단한 것인 양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서슴없이 남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또한 본인 스스로는 그것을 위해 목숨을 저버리겠다고 자처하고 주위에서는 그러는 것을 숭고한 행위인 양 부추기고 격려하고 이러한 미련한 짓들이 모두 자각이 모자란 생각 속에서 나오는 한심한 행동들입니다. 저들을 보세요. 인간의 지성, 이성, 감성, 이따위 것들은 있으나 마나 한 것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종교, 철학, 인문, 사회, 모두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오로지 자각을 통해 인간은 제대로 된 정신과 정상적인 사고와 성숙한 의식을 갖출 수 있습니다. 자각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또한 인생의 뜻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산책길에서 나에 대한 자각 [내부링크]

오늘 아침 너른 들녁으로 산책을 나갔다. 고요한 나와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바로 찻길에서 부터 정적이 깨져버린다. 차소리가 빠~~앙하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놀란 가슴이 두근두근 하며 뛴다. 한동안 진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걷는다. 그 놀람은 나를 완전히 포위해 버린다. 놀람에 모든 것이 집중된 상태다. 감정도 일어나고, 핀잔하는 생각들도 계속 연달아 일어난다. 나의 고요를 깨버렸다. 나의 기대를 빼앗았다. 나의 위대함을 까내렸다. 이런 생각들로 나를 더더 흥분시킨다. 그리고 산책길을 반을 걸을 때 까지도 그것에 싸여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런 것의 주인이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지속하고, 내가 보태고 있는 것이다. 다 내가 하고 있고 이것은 내가 만들었다. 그럼 찻길에서 멀어진 나는 내가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도 있구나. 나는 지금 무엇을 만들 수 있나? 나는 그 무엇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지금

자각의 중요성 [내부링크]

자각의 중요성 천 번, 만 번, 천만번을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후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의아한 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어떻게 삶에 있어서 죽음의 이야기가 삶의 이야기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진실입니다. 삶은 오로지 죽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죽어서 지옥을 가지 않기 위해서 살아생전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 죽어서 천국과 극락을 가기 위해서 살아생전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말에서 보듯이 초점은 삶이 아닌 죽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삶은 죽음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당면한 초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법칙과 규칙과 공식과 논리와 원리가 있습니다. 하

진심(眞心) [내부링크]

어제 친구가 진심이냐고 반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겪는 갈등과 대립. 나는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친구에게 억울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진심은 그렇지 않는데 친구는 내가 한 행동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쏘아부쳤습니다. 나는 슬펐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내게 말했습니다. 진심이냐구요.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관조했습니다. 나의 진심이란 것을 관찰했습니다. 친구에 대한 나의 짐심은 무엇이었나. 알고보니 나의 진심은 그동안 계속 경쟁심이었습니다. 내가 친구보다 우월해야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친구를 경계하게 만들었고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가식이었습니다. 대립과 갈등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대립과 갈등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네요. 나의 진심은 친구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구요. 그것이 나의 진심이었고 내가 만든 것이었다구요. 그리

또다른 시작 [내부링크]

사후의 세계 저승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삶의 반대가 아닌 삶의 연장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삶의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각은 바로 이러한 통찰을 갖는 것입니다. 자각은 삶과 죽음 전반에 모두 걸쳐 펼쳐져 있는 생각의 법칙 마음의 세계의 이치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과제는 삶에 있어서 죽음이 있어서 문제가 아닌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과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브라모이언-

내 마음에 대한 자각 [내부링크]

내 마음에 대한 자각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산에서 7년 고행을 하였지만,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설산에서 7년 고행을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어요. 달마대사가 동굴 속에서 면벽 참선 9년을 했지만, 그분 역시 자신의 제자들에게 면벽 참선 9년을 해야 한다고 독려한 적도 없지요. 이 두 사람보다 약간 꾀가 많아 고생을 덜 한 저이고 저 역시 맘고생 8년 만에 자각을 알게 되었지만,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맘고생 8년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답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과거에 자신의 스승이 얼마나 고생을 해가며 얻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스승들이 자신의 고충을 알아달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다만 스승이 쉽게 이야기해준다고 해서 그 가르침마저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전에 제가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전에 사후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 700번 정도 죽어봤다. 이 이야기는 사실

너에게… [내부링크]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힘들게 억누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란다.단지 너의 분노에 네가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란다.상대방이 싫은것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란다.싫어하고 있는 너 자신조차 싫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란다. 마음에 안드는 상대방을 억지로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란다.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너 자신만은 이해해 보라는 것이란다. 무엇이든 내가 다 알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란다.모르고 있음이 너 자신을 불편하게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알면 된단다. 진리는 너를 가두어 놓고 있을 울타리가 아닌,너를 자유로 날려 버릴 바람이란다. -브라모이언

지혜로운 자. [내부링크]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보는 자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자는 자신 외에 다른 것을 보는 자입니다.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보는 데서 생기고,무지는 자신의 유식을 보는 데서 생깁니다. 지혜는 내 안에서 나를 찾은 것이며,무지는 내 안에서 나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다스리려 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남을 다스리려 합니다. -브라모이언-

내 마음의 빛과 어둠 [내부링크]

세상에 빛과 암흑이 존재하고, 세상에 밝음과 어둠이 있다 하나,세상 어느 곳에도 참 빛, 참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오로지 생각으로 빚어낸 암흑이 세상을 어둡게 할 따름이요,오로지 생각으로 빚어낸 빛이 세상을 밝힐 따름입니다.그러므로 내가 밝다 함은 내 생각이 밝은 것이요,내가 어둡다 함은 내 생각이 어두운 것입니다.내가 빛이다 함은 내 생각이 빛인 것이요,내가 암흑이다 함은 내 생각이 암흑인 것입니다.지금도 생각의 어둠속에 빠져 촛불을 찾고 있나요...자각의 태양이 늘 여러분을 비추고 있습니다.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브라모이언

연재-나는 누구인가?(1) [내부링크]

나를 보면 우선 어떠한 내가 보일까요? 삶에 지친 내가 우선 보이네요. 대표적인 나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려고 욕망을 쫓는 내가 보이네요. 그리고 그런 욕망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나의 지친 육신을 달래려고 반복해서 욕망을 쫓습니다. 하지만 지친 육신의 안도는 잠시뿐 궁극적인 해결은 되지 않죠. 다시 또 욕망을 쫓으며 해결되지 못한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욕망에 노예가 되어버리죠. 술, 담배, 섹스, 도박, 마약 등 이러한 것에 심하게 의존하게 되지요. 잘 알려진 이러한 중독증상 외에도 더 심한 중독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만든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심한 중독증상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가지의 생각들로 나의 육신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개개인 마다 아주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지요. 또한 생각들로 다시 해결하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생각으로 만들어지 욕망을 꿈꾸죠. 이것 또한 잠시의 안도일 뿐 우리는 또다시 자신

마음의 휴식 [내부링크]

삶에 지친 우리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휴식방법이 있겠지요. 잠자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 휴양지에 가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음식을 즐기는 사람, 명상을 하는 사람, 모임에 가는 사람, 파티를 여는 사람, 클럽에 가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등등. 그런데, 진정한 휴식 즉 마음의 안식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까요? 어떤 행위를 해보아도, 어떤 휴식을 취해보아도 크게 만족할 수는 없었고, 내가 영원히 쉴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성인들은 말합니다. 진정한 휴식처는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유혹에 따라가서 마음의 휴식을 하고자 하지만 유혹이 가져다 주는 것은 또 다른 분주함을 가중 시킬 뿐이었습니다. 이 점을 자신에게 분명하게 해 두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유혹은 내가 취해 봤자 결과는 또 다른 굴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입

내 마음이 답답할 때, 내 마음이 괴로울 때 그리고 내 마음의 자유를 위해 [내부링크]

내 마음이 답답할 때나 내 마음이 괴로울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남이 나를 괴롭혔거나, 내가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했을 때나, 내가 실수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이러한 내 마음이 답답하거나 내 마음이 괴롭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상대방에게 투쟁하거나 상대에 용서를 구하거나 상대를 용서하거나 열심히 일하여 손실을 만회하려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이러한 방법으로 나의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잊어보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어떠한가요? 우리는 또한 반복합니다. 똑 같은 인생살이를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굴레로 들어갑니다. 내가 원해서 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왜 반복된 삶의 굴레

[산책의 묘미]마음의 고요와 생각 [내부링크]

천천히 걸어갑니다. 혼자서 걸어갑니다.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내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그래도 나는 많은 생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들을 만드는 것인지 의문이 일어납니다. 딱히 해결책도 방법도 없는 생각들입니다. 단지 내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는 자각합니다. 나는 생각의 주인으로서 내가 내 생각에 치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윽고 나는 나를 응시합니다. 생각을 만들어야 된다고 부하가 걸린 나의 육체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자각합니다. 나는 이 육체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끊임없이 생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육체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육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나는 자각합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생각으로 부터 벗어난, 육체로 부터 벗어난 나입니다. 내 마음이 고요한 정적에 쌓여 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산책을 했습니다. 오늘 산책은 여기까지 입니다. -대팔- 문경공님의 깨달음

나를 본다. [내부링크]

나를 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유이다. 나는 창조주다.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나는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왜 왔는가? 나는 물질계를 경험하러 왔다. 나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 물질계에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이용하여 물질계에서 창조와 변형의 경험을 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나는 오랜동안의 경험에서 나의 생각에 노예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의 생각에 안주하여 주인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노병사를 겪에 되었고, 윤회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다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다시 주인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본다. 나는 무슨 생각을 만들고, 무슨 생각에 집착하고, 무슨 생각에 중독이 되어 그것에 안주하여 노예가 된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권태로움을 느끼며 활기찬 생활 보다는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향락에 젖어 욕망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자각의 연금술 -문경공-저, 편집자 후기 [내부링크]

안녕하세요. 101캔들 편집부장입니다. 백한번째촛불명상센터의 101캔들 출판사에서 문경공님의 새로운 책 『자각의 연금술』을 펴냈습니다. 자각의 연금술 원고를 읽고 편집을 하면서, 내가 이 책과 인연이 닿았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자각이라는 단어가 생소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어느듯 자각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자각이란 나 자신을 안다는 말인데...글쎄요, 철학에서도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서 한번 놀랐고, 나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고,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또 놀랐습니다. 문경공님은 이렇게 인간 각자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시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자각을 알리기 위해서 즉, 인간 자신들의 정신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말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직시하자!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책소개] 자각의 연금술 [내부링크]

자각의 연금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알지 못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1만년이 넘었지만 누구도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진정한 정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육체 뿐만이 아니라 정신의 나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육체적인 삶에 젖어 나의 본성을 망각하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행과 도(道)를 추구하고 명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진정 내가 누구인지 자각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경공님의 사후세계에 대한 경험으로 명쾌하게 나의 정체성이 ... www.bookk.co.kr 저자 소개 문경공(門俓公) 1960년 서울 출생, 구도자(求道者) 목차 프롤로그 12 1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현재의 삶과 의식 사라지는 것들 16 삶의 현실 18 무책임한 생명경시 19 육체와 영혼의 생각 22 생각의 세계에서의 자각 25 고래등으로부터의 자유 31 물질 경험을 위한 지구 34 삶

101캔들 도서 출판사 공식홈페이지 [내부링크]

101캔들 출판사 공식홈페이지 주소입니다. 출판문의 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https://www.facebook.com/book101candle 김도경 김도경님은 Facebook 회원입니다. Facebook에 가입하여 김도경님 등 다른 친구들을 만나세요. Facebook은 활발한 정보 공유를 통해 보다 친밀하고 열린 세상을 만듭니다. www.facebook.com 홍보 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 출판문의 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https://www.facebook.com/101candlebook 문경공님의 신간 『자각의 연금술』이 출간되었습니다.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의 아름다움 [내부링크]

백한번째촛불명상센터는 자각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나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깨우치고자 마음에 대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일체유심조를 설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 달려있다 마음은 온 세상을 이루는 기초적인 질료입니다.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인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을 먹는 것에 따라서 모든 현상들이 창조됩니다. 우리 자신들 또한 그러한 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 마음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인입니다. 내 마음이 아름다우면 온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내부링크]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자신이 믿던 종교적 신앙의 환경으로 갈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생각속으로 간답니다. 인류의 대부분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금 이 현실과 비슷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옭아매 버립니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그러합니다. 이런 반복된 삶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이런 반복된 삶은 더더욱 중력으로 나를 당길 뿐입니다.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인류의 정신을 위해서 이제는 자각을 공부해야 합니다. 일체유심조 내 마음먹기 달려 있습니다. book 자각의 연금술 -문경공-

백한번째 촛불 [내부링크]

내가 1개의 촛불로 존재할 때 나는 촛불 1개의 광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100개의 촛불과 함께하게 되면 밝음을 공유하여 나는 101개 촛불의 광도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100개의 촛불 역시 1개의 촛불이 더해짐으로 해서 101개의 밝음을 가지게 됩니다. 백한번째촛불명상센터는 이처럼 명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깨달음과 체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공동체입니다.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 [내부링크]

백한번째촛불명상센터의 메시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는 것이며 이승이 있기에 저승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탄생이 진실이듯 죽음 또한 진실이며 탄생 후의 삶이 진실이듯 죽음 후의 삶 또한 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 그리고 죽음 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나의 인생은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깨우침의 시간과 공간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문경공

죽음의 경험- 백한번째 촛불 [내부링크]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혼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가 눈길에 미끌어져서 사고가 난 것이다. 달리는 차가 갑자기 옆으로 비스듬히 돌기 시작했다. 핸들을 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핸들을 살짝 틀어 보았으나 차는 그대로 직선으로 미끌어졌다. 서서히 고속도로 갓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갓길에 부딪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엑셀을 다 놓았지만 그 속도로 쭉 나가버렸다. 다행히 갓길 넘어는 산비탈이 버티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냥 콱하고 쳐박았다. 그런데 그 반대로 차가 꺾이면서 다시 중앙분리대 쪽으로 순식간에 달려가서 쳐박았고 차는 반대방향으로 섰다. 뒤에서 달려오던 차들을 볼 수 있었다. 다들 비상등을 켜고 멈추는 듯 했다. 나는 재빨리 안전밸트를 풀고 내렸다. 그리고 갓길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과정이 또렷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죽는구나... 그냥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마음 편하게 죽을까? 아니면 최소한 발버둥을 쳐서 살

자각의 연금술-문경공 지음- [내부링크]

자각의 연금술은 문경공님께서 제자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내용은 깨달음에 관한 내용이지만 상당히 심도 깊은 강의 내용들로 꾸며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떠한 형태로 사후를 경험하게 되며 그러한 경험 후에 또다시 이 곳으로 태어나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였고 이러한 윤회가 이루어 지는 이유인 카르마에 대한 설명도 있으며 그러한 윤회의 사슬을 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만 가능한지를 명쾌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각은 이러한 윤회의 사슬을 끊는 유일한 길이며, 자각이라는 것 말 자체가 나의 본질을 알아간다는 말로서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의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말이 내 마음을 알아간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며, 이는 깨달음의 말과도 같은 것임을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사들의 가르침과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서술해 놓았으며 이제까지 보고 듣지 못했던 깨달음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총 336페이지로 구성되

101캔들 -출판사- [내부링크]

101캔들 출판사는 깨달음과 인문학을 전문으로 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출판문의 하실 분들은 언제나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홈페이지로 연락을 주시면 발간상담을 해 드리겠습니다. 공식홈페이지 주소 https://www.facebook.com/101candlebook

죽음의 과정(1) [내부링크]

사람은 언젠가는 죽음에 이른다. 사고사를 당할 수도 있고, 질병이나 노화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육체가 죽음에 이르면 그 이후 어떻게 될까? 바로 말을 하자면 사람마다 다 다르다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대다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자. 한 사람이 누워있다. 육체는 움직이지 않고 숨도 쉬지 않는다. 이윽고 그의 영혼은 몸으로부터 빠져나간다. 그리고 죽을 때의 충격 때문이거나 몸에 적응을 했던 상태에서 갑자기 빠져나가게 되어 우선은 영혼들은 잠을 자는 상태이다. 육체가 있을 때 처럼 인식을 하기 때문에 육체가 죽어 잠을 자는 것 처럼 되버려서 영혼 또한 일시적으로 잠을 잔다. 이런 것을 영혼이 육체와 동일시 한다라고 말을 한다. 좀더 깊은 잠에 빠진 영혼도 있는데, 혼수상태일 것이다. 그런 잠을 자다가 영혼마다 다르지만 수분에서 수일 후에 잠에서 깬다. 그리고는 이런 인식을 한다. '응 일어났군. 오늘은 뭐하지? 아까는 내가 병에 걸려서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네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 - 탄생의 과정 [내부링크]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 - 탄생의 과정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이자 대자유인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내가 굳이 부자유스러운 육체에 머물며 까지 물질 세상을 살아가는 까닭이 어디에 있었던가요. 그 이유는 바로 물질세계를 물질 수준에서 경험해 보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최초의 존재계 탄생에서부터 물질계까지 생성된 데에는 부분적인 시행착오와 수차례의 수정이란 복잡한 과정을 겪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소요된 기간은 상당히 길었습니다. 나라는 것은 창조 이전부터 창조가 시작된 이래로 현재의 물질계에 이르기까지 창조의 모든 과정을 주관하고 경험한 집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존재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현재 존재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물질계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육신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며 이 육신이란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물질의 속성과 구체성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존재계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물질계로 하강해 오기까지 나는

노치마을, 주촌리, 덕치리, 주촌면, 운봉읍 도보산행 [내부링크]

인월은 잘 알지만 운봉읍은 잘 모르는 분이 많다. 남원시내와 인월의 중간에 운봉읍이 있다. 원래는 인월보다 더 컸었는데 인월이 관광지로 발달한 나머지 운봉은 농촌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400~600고지의 고산마을이다. 그래서 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서 살기에는 딱 좋다. 덕치리를 지나 노치마을로 들어서면 사람하나 안보인다. 그렇게 다리를 아파가며 한참을 걸으며 구룡계곡이 나온다. 물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산세가 매우 깊어서 웅장하다. 물에 얼굴을 씻고 정령치 쪽으로 올라갔다. 고기댐을 가보았다. 오...여기 이런 곳이? 멋진 장관이다. 다시 내려와서 이번에는 운봉쪽으로 다시 되돌아 갔다. 가는 길에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라는 곳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명상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럽다. 고개댐 노치마을 백한번째촛불 명상센터

宇宙が存在する以前から来た究極の存在 [내부링크]

宇宙と魂に関するこれまでの概念が覆ってしまった興味深い話し。  色も空も真実ではない、 その概念を持たせたのは 自分だと自覚することが 大事です。 マスターゲート 月刊アネモネ 3月号 https://anemone.net/?mode=cate&cbid=2178739&csid=0 月刊アネモネの最新号 スピリチャアル&ヒーリングマガジン「アネモネ」 anemone.net

101キャンドルライトのマスターゲート  [내부링크]

マスターゲートが話す魂に対する驚くべき概念と真の私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 すべてを選択するのが自分だという自覚について話します。 月刊アネモネ 3月号 https://anemone.net/?mode=cate&cbid=2178739&csid=0 月刊アネモネの最新号 スピリチャアル&ヒーリングマガジン「アネモネ」 anemone.net

月刊アネモネと真の覚醒者マスターゲートの出会い [내부링크]

宇宙の神秘がわかるマスターキー! すべての元である私について話す。 真の覚醒者マスターゲートとの対話 月刊アネモネ 3月号 https://anemone.net/?mode=cate&cbid=2178739&csid=0 月刊アネモネの最新号 スピリチャアル&ヒーリングマガジン「アネモネ」 anemone.net

백한번째촛불의 밤 [내부링크]

백한번째촛불로의 초대 여기 한 개의 촛불이 있습니다. 한 개의 촛불은 한 개의 광도가 있습니다. 100개의 촛불은 100개의 광도가 됩니다. 100개의 촛불에 1개의 촛불이 더해지면 101개의 광도가 됩니다. 1개의 촛불은 101의 광도를 공유하게 됩니다. 이처럼 나 하나의 촛불은 한 개의 광도를 가질 뿐이지만 101개의 촛불과 함께하면 101의 광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라북도 운봉읍 운봉로 24 백한번째촛불명상센터에서는 자각을 공유합니다.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자각공부는 나 하나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자각과 함께하면 나의 자각은 더욱더 빛날 것입니다. 101candle.com -문경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