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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했던 대우의 선견지명, 대우 DEV-5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최원준 님. 정확했던 대우의 선견지명, 대우 DEV-5 (1997) 도대체 '기술은 사 오면 된다'라는 무책임한 말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짧고 굵었던 90년대의 대우자동차를 대변하진 못한다. 로얄 시리즈의 흥행과 르망의 쏠쏠한 판매량으로 풍요로웠던 80년대를 마감하고 비로소 '기술 자립'을 목표로 홀로서기에 나선 90년대의 대우자동차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 기술 마련에 목숨을 걸었다. 당시 대우자동차가 관심을 가지던 분야는 다름 아닌 '전기 자동차'였다. 1991년 5월 2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0년대 초까지 과학 기술을 G7(선진 7개국)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라는 목표로 발표한 'G7 프로젝트'에 전기자동차가 사업 내용에 포함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현대, 기아를 비롯한 타 국내 제조사들도 반강제로 참여하게 되었지만, 대우는 1993년 2월 부평연구소에 13명의 EV 개발팀을 구성한 이후로 르망, 에스페로, 씨에로 기반의 'DEV' 시리즈

'코리안 카로체리아'의 태동, 프로토 PS-2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최원준 님. '코리안 카로체리아'의 태동, 프로토 PS-II (2001) 프로토 디자인/모터스는 주로 현대의 스트레치드 리무진과 모터쇼 콘셉트카를 제작하며 수익을 얻던 국내의 카로체리아다. 하지만 프로토 디자인/모터스는 IMF 사태가 일어나 자금 위기를 겪게 되는데, 결국 많은 용역처를 잃어버린 프로토 디자인은 부도를 맞으며 프로토모터스만 살아남아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력 생존 능력의 필요성을 체감한 프로토 모터스는 자신들의 독자 차종을 구상하게 된다. 당시 프로토가 구상하던 차량은 근거리 전기 시티카, NEV와 미드쉽 스포츠카였다. 처음엔 어려운 회사 사정과 DEV-5에 관여하며 쌓인 전기 기술력을 이용해 NEV를 개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시장의 주목이 하이브리드로 돌아가자 결국 2000년 초부터 미드쉽 스포츠카로 다시 가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토는 2001년 8월 17일, 자신들의 첫 결과물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센트럴시티 오토몰에서 공개한

이름값하는 별종 SUV, 대우 바다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필자 본인. 이름값하는 별종 SUV, 대우 바다 (2001) IMF 따윈 무서워하지 않았던, 적어도 겉으론 그렇게 보였던 대우는 쌍용을 인수한 후 SUV 라인업을 재편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대우는 쌍용이 인수 전에 개발하던 모든 프로젝트를 중지시키고, 개발 인력을 모두 대우로 이관시키며 자사의 입맛에 맞게 SUV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후에 렉스턴으로 출시된 Y-200, K-200 (뉴 코란도 후속 프로젝트, 이 차량은 후에 다뤄볼 예정.)이 있는데, 모두 초기 디자인엔 대우의 삼분할 그릴이 강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차량들은 대우 통합 이후에도 대부분 기존의 쌍용 인력들이 주도적으로 개발을 했다. 물론 대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바로 2001년에 대우 바다를 대중들에게 공개한 것. 대우의 인수 이전부터 FSO가 생산/판매했던 대우 혼커를 제외하면 비록 실내가 없는 목업 컨셉트카였지만 대우 최초의 SUV임이 분명했다. 바다는 영국의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

일그러진 현대의 기함, 현대 SLV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필자 본인. 현대의 일그러진 기함, 현대 SLV (1997) 1997년의 서울 모터쇼는 역대 한국 모터쇼에서 컨셉트카가 가장 많이 출품된 해였다. 물론 수입 브랜드가 한국에서 좀처럼 의미 있는 성적을 내지 못하던 시기라 대부분이 한국 브랜드의 컨셉트카로 메워졌다. 그중에선 자사의 해외 디자인센터에서 높은 완성도로 제작한 컨셉트카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 다룰 SLV처럼 괴랄한 디자인의 컨셉트카 역시 출품이 되었다. 1997년 4월 15일, 서울 모터쇼 개최 이전에 사전 공개한 SLV는 IMF 직전의 호황기와 급등하는 대형차 수요를 간파해 제작한 차량으로, 'SUPER LUXURY VEHICLE'에서 이름을 따 온 VIP 전용 최고급 세단이다. '실내의 거주 편의성 극대화'를 콘셉트로 2열 좌석 중심의 최첨단 차량을 만들려고 했던 현대차는 이 컨셉트카를 통해 자사의 기술력을 증명할 수 있었다. 21세기의 미래지향적인 스타일을 예상하며 디자인된 에어로 다이내믹의 유선형

비운의 마지막 '로얄', 대우 P-100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필자 본인. ※ 본 표지는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터의 초기 개발안을 일러스트화 시킴. 비운의 마지막 '로얄', 대우 P-100 (1998~2002)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미개발차일 것이다. 대우 브로엄의 후속으로 한때 대우의 '홈그라운드'였던 준대형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개발된 코드네임 'P-100'은 끝내 출시되지는 못했으나, 개발 단계에서 수년간 진척 없이 많은 정보를 남겨 지금까지 소수의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차량이다. 필자가 가장 애호하는 미개발차 이기도 한 P-100을 이번 포스트에 다뤄보도록 하겠다. 초기 개발은 당시 레간자의 후속으로 개발되던 V-200 (매그너스)이 중형차 시장을 담당하고, P-100이 브로엄을 교체해 준대형 시장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1998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대우의 신차 개발 요충지였던 영국의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터 (DWTC)에서 디자인과 함께 차량 개발이 진행되었는데, 한때 대형차로 개발되다

컨셉트카/미출시차 아카이브 3주년! [내부링크]

아카이브 프로젝트 3주년! 드디어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3주년을 맞았습니다. 2018년 8월 21일, 여행을 가서 한껏 들떠있던 제가 무심코 아카이브 포스트를 올린 지 벌써 3년이 되었네요 크크. 그땐 어줍잖게 위키백과와 꺼무위키 얘기가 진리인 마냥 그대로 내용을 퍼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보다 제 포스트가 컨셉트카 만큼은 정보의 질이 좋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ㅠㅠ.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전해지는 많은 정보들이 왜곡되고, 과장된 면모가 짙거든요. 아무튼, 이때까지 부족한 점 많은 포스트들 였음에도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고화질 일러스트와 공신력 있는 정보로찾아뵙겠습니다. 이 포스트에 국산 컨셉트카를 추천해 주시면 차기 포스트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5주년, 10주년을 맞을 때 까지 앞으로도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컨셉카 발굴 프로젝트' 시작 안녕하세요. 토미큐입니다. 이번엔 새로운 프로젝트인 '컨셉카 발

다시는 없을 기아의 도전, 기아 KMS-2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최원준 님. 다시는 없을 기아의 도전, 기아 KMS-II (1995) 기아는 보수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진보적인 회사였다. 당장 창업주의 아들인 김상문 전 회장부터 일찌감치 기아의 재벌 경영화를 뿌리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이를 통해 회장으로 발탁된 엔지니어 출신의 김선홍 전 회장은 '새로운 경영, 새로운 일터, 새로운 기술'이라는 모토로 부진에 허덕이던 기아차를 일으킨 신화적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은 듯 '회장'보다는 '대표 사원'으로 불리길 좋아했는데, 이런 그의 가치관에서 기아의 진보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기아의 진보적인 면을 자동차에도 투영시켰는데, 이는 기아의 연이은 스포츠카 시장 진입 시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초기엔 세피아의 개발 과정에서 SLC (스포츠 룩킹 카, 현대 스쿠프와 비슷한 맥락.) 버전을 염두 했었으나, 이 역시 현실적인 문제로 개발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스포츠카에 대한

이건희는 성공한 덕후일까? 삼성 SSC-1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최원준 님. 이건희는 성공한 덕후일까? 삼성 SSC-1 이야기. (1997) 이제는 고인이 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총수는 대한민국 재벌계의 대표적인 자동차 덕후였다. 대한민국 재계 1위 아니랄까 봐 이건희는 개인 명의로 124대, 현재 가치 450억 이상의 자동차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포르쉐 911 터보, 벤츠 SL65 AMG를 타고 서킷을 질주하는 이건희의 모습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건희는 아예 '덕업 일치'를 꿈꾸며 삼성자동차 출범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이번에 다룰 차량이 이건희의 직접적인 오더가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차량이 출시를 위해 연비 인증까지 마친 진지한 작품이란 것은 분명하다. 1997년 11월 29일, 삼성그룹 본관 1층 로비에서 한 스포츠카가 공개되었다. 이름은 SSC-1 (Samaung sports car-1), 삼성이 자체 개발한 독자 모델로 SM5가 정식 출시되기 이전이라 SM 네이밍은 적용하지

전기차도 '가전제품'처럼, 삼성 SEV-3 이야기. [내부링크]

표지 제작: 필자 본인. 전기차도 '가전제품'처럼, 삼성 SEV-III (1994) 삼성은 오래전부터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과 협상 테이블에 올랐었다. 그 시작은 1984년이었는데, 크라이슬러의 소형 승용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조건으로 합작 회사 (가칭 삼성 자동차)을 계획했지만 한국 정부가 끝내 허가를 내주지 않아 무산된다. 이후엔 부품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후퇴를 하는데 이마저도 1986년 크라이슬러가 등을 돌리며 삼성은 실패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삼성은 멈추지 않았다. 크라이슬러와의 부품 생산이 무산된 지 3년 만인 1989년부터 삼성은 다시 자동차 산업 진출을 꾀하게 된다. 이번엔 삼성이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정부의 부정적인 반응을 간파하고 있었던 삼성은 일찌감치 독자 법인이 아닌 '삼성중공업'의 개별 부서 (삼성물산의 협력도 포함.)로 자동차 개발을 진행시킨다. 물론 정식적인 '자동차 제조 사업 인가'를 받지 못했으므로 양

대우 P-100 프로토타입 발견!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부링크]

갑작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어제 올라갔어야 했는데..) 이로 인해 글의 질이 다소 낮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의 이웃분들은 대부분 다들 아실겁니다. 코드네임 P-100을 다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포스트에서 언급했던지라.. 상세한 내용은 밑에 제가 쓴 게시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비운의 마지막 '로얄', 대우 P-100 이야기. 비운의 마지막 '로얄', 대우 P-100 (1998~2002)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미개발차... m.blog.naver.com 다시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P-100은 브로엄의 후속 포지션이자 매그너스의 상위 모델로 개발되었으나 끝내 무산된 차량입니다. 대우그룹의 해체와 맞물려 수 차례 출시가 연기되고 급기야 개발 중단을 선언한 비운의 차량이죠. 하지만 다른 사례외 달리 P-100은 공도 테스트까지 진행했던 차량입니다. 1990년대 후반 부터 개발되어 상당히 많은 진척이 있었으며, 2000년 하반기엔 테스트뮬

환골탈태한 플래그쉽, 대우 부크레인. [내부링크]

이탈디자인이 디자인한 부크레인은 아카디아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 쿠페이다. Italdesign DAEWOO BUCRANE [Archive 009] 1995, Designed by Giugiaro's Italdesign. Dong Jin Kim '뷔크란', '부크레인', '뷔크랜' 등 여러 이름으로 표기되고 있는 대우 부크레인은 1995년 공개된 2+2 시터 스포츠 쿠페 콘셉트카이다. 당시 본격적인 유럽 진출을 앞두고 있던 대우자동차는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할 이미지 메이킹용 콘셉트카를 준비했다.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럽다. 이는 1993년 대전 엑스포에 내놓은 DACC-1, 이마고를 이은 대우의 3번째 콘셉트카였다. 주지아로가 다듬은 디자인은 60년대에서 힌트를 얻었다. 물론 디자인과 설계는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에게 외주를 주었다. 이탈디자인의 수장이자 디자인계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기존 콘셉트카의 장식적인 화려함을 지양하고, 기능성과 편의성을 중시한 60년대의

로터스가 미니밴을 만든다면? 아시아 네오 마티나. [내부링크]

네오 마티나는 상용차를 넘어 승용차를 넘보는 아시아자동차의 퓨전 카이다. Asia ASIA NEO MATTINA [Archive 010] 1995, Designed by Lotus Engineering. Dong Jin Kim 그간 군용 지프나 트럭, 버스 등의 상용차를 생산하던 아시아자동차에서 공개한 네오 마티나는 1995년 공개된 MRV 크로스오버 콘셉트카이다. 기아자동차의 영향 속에서도 승용시장에 본격적으로 재진출 하려 했던 아시아는 1990년 록스타를 이어 RV 브랜드로 향하는 두 번째 발걸음으로 이 차량을 선택했다. 아시아의 창립 3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1983년 '랜드 마스타' 이후로 오랜만에 아시아자동차에서 공개한 콘셉트카였다. 로터스는 90년대 기아와 지속적인 협력관계에 있었다. 이 차량은 본격적인 승용시장 진출을 위해 독립된 아시아 디자인실이 영국의 로터스 디자인에 디자인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시아 디자인실이 기본적인 컨셉 스타일링을 결정하면,

체어맨의 프롤로그, 쌍용 W-쿠페 [내부링크]

W-카와 W-쿠페는 같은 부품과 기술을 사용했지만 다른 지향점을 보여준다. Ssangyong SSANGYONG W-COUPE [Archive 012] 1997, Designed by Ssangyong. Dong Jin Kim 당시 쌍용에게 있어서 W-카는 미래 전략을 판가름하는 프로젝트였다. 쌍용은 이 차량을 통해 'RV 메이커'라는 허물을 성공적으로 벗어던져야 했으며 무쏘로 시작된 브랜드 고급화 전략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다. 쌍용그룹 역시 5년간 4,500억 원 (당시 경쟁차이던 뉴 그랜저가 4년간 1,500억 원을 투자했다.)에 달하는 개발비를 투자하면서 성공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W-쿠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매혹적인 쿠페는 프로젝트 'W-카'의 콘셉트카로 기획되었다. 모터쇼에서 전시된 W-쿠페와 레이싱 모델. W-카의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던 1996년, 제2회 서울 모터쇼가 수달 내로 다가온다. 모터쇼의 메인은 단연 W-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출시가

달걀을 본뜬 귀여운 로드스터, 대우 조이스터 [내부링크]

대우 조이스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보존되고 있는 극소수의 콘셉트카 중 하나이다. Daewoo DAEWOO JOYSTER [Archive 013] 1997, Designed by Daewoo Worthing Technical Center. Dong Jin Kim 1997년의 대우자동차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라노스를 시작으로 누비라, 레간자를 출시해 노후화된 라인업을 화려하게 쇄신하는 한편, 공격적인 기술자원 / 해외 브랜드 매수를 통해 기술 격차를 줄인 대우자동차의 기세는 기아차는 물론 현대차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런 대우가 제2회 서울 모터쇼를 그냥 지나갈 리 없었다. 대우자동차는 이때 무려 5종의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관람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부스 메인 스테이지에 전시된 조이스터는 작지만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일부에서는 양산 계획이 있었다고 서술하곤 하지만 산화를 준비한 적이 없는 순수 콘셉트카이다.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가 제공한 조이스터의 사진.

프랑스에서 온 미니밴, 아시아 F 프로젝트 [내부링크]

아시아자동차는 해외 모델을 들여와 라인업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Peugeot ASIA F [Archive 014] 1996, Designed by Peugeot. Dong Jin Kim 아시아자동차는 RV와 상용차 위주로 라인업을 재구성해 기아자동차와의 판매 간섭을 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중엔 '네오마티나'처럼 독자모델을 출시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상품성이 검증된 해외 브랜드의 차량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F-프로젝트'이다. 806은 PSA와 피아트의 합자회사인 '쉐벨'의 결과물이다. 아시아는 국내 RV시장 전망이 밝다고 분석하고 미니밴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1995년 말부터 크라이슬러, 푸조 등의 업체와 협상을 진행했다. 혐상 끝에 아시아는 푸조의 806을 국내 조립 생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윽고 1996년 초부터는 연간 5만 대 생산을 목표로 구체적인 제휴 협상에 들어갔다. 파워트레인은 기아 스포티지의 2.2 마그

아메리카 인베이전, 현대 HCD-1 [내부링크]

HCD-1은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콘셉트카이자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콘셉트카였다. Hyundai HYUNDAI HCD-1 [Archive 015] 1992, Designed by hyundai design north america. Dong Jin Kim 1986년, 현대자동차는 포니 엑셀로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엑셀은 그해 26,000여 대를 판매하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차량에 올랐다. 허나 이러한 호재는 곧 북미에서 발목을 잡는 불명예가 되었다. 이듬해부터 현대는 조악한 품질과 빈약한 AS망,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에서 '현대차는 가난한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현대는 이 인식을 어떻게든 뒤집어야 했다. 저가차 시장은 판매량의 한계가 분명했으며, 업계 최저 수준의 가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공개된 HCD-1은 '브랜드 이미지의 고급화'라는 특지를 콘셉트카의 가치 이상으로 이행해주었다. HCD-1

가솔린+태양열+전기=?,기아 KEV-4 [내부링크]

KEV-4는 한국에서 하이브리드에 태양열 발전 방식을 더한 최초의 차량이었다. Kia KIA KEV-4 [Archive 016] 1995,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기아와 현대, 그리고 대우자동차는 90년대부터 전기자동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비록 대부분의 연구는 자동차 배터리에 쓰이는 납축전지의 용량을 키우는 원시적인 수준에 그쳤지만 그 사이에서 현대에 실용화된 진보적인 발상이 나오기도 했다. 기아 KEV-4 (KEV-IV로 표기하기도 함.)도 그중 하나로, 가솔린과 전기, 그리고 태양열을 동력원으로 쓰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제시한 컨셉트카였다. KEV-4는 도심에서 출퇴근으로 사용하는 4인승 전륜구동 시티카로 개발되었다. 또한 미래를 위한 환경 보존과 에너지 절약을 목표로 해 차체를 섬유 강화 플라스틱 (FRP) 소재로 100% 적용하고, 마그네슘 재질의 휠을 장착하는 등 신소재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경량화를 이뤄 전기차로선 가벼운 편에 속하

포니 쿠페의 복원 소식이 2% 아쉬운 이유 [내부링크]

어제 정말 가슴이 설레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바로 50년 만에 ‘현대 포니 쿠페’가 복원이 완료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복원 계획을 발표한 지난해 11월 이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룬 성과였습니다. 포니 쿠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저번 게시글에서 총정리 해두었기에 궁금하신 부분 있으시면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사실 세밀하게 들어가면 이전의 포니 쿠페와는 다른 점이 몇몇 있습니다. 일단 베이스부터가 다르죠, 먼저 원작 시절에는 포니의 기반이 된 미쯔비시 랜서 모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포니 세단의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제작된 포니 쿠페는 포니 세단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센터패시아 패널을 비롯한 실내의 형상이 기존보다 부드러워졌습니다. 세세한 마감들 역시 원작에서 다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변변찮은 설계도마저 없이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율을 뽑아낸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그의 아들 파브리지오 주지아로의 장인 정신에

브리사의 복원 소식이 욕을 먹는 이유? [내부링크]

현대의 포니 쿠페 복원으로 마음이 들떠있던 가운데 겹경사까지 생겼습니다. 이번엔 기아자동차에서 브리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거든요. 다른 반응이 궁금해져서 다른 댓글을 여러 개 찾아봤습니다. 이게 웬걸, 대개 '마쓰다의 기술력으로 생산한 차량을 헤리티지랍시고 복원하는 게 옳은가?'라는 논지의 비판적인 댓글이 다수였습니다. 아무리 억까와 모두까기가 난무하는 네이버 댓글 창이라지만, 지난 포니 쿠페의 사례와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어째 일주일이 넘도록 공론화도 잘 안되고 있습니다. 저 조차도 어제서야 알게 되었고요. 이번 글에서는 이에 관련된 저의 생각과 여러분의 고견을 여쭤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본문을 읽어보시고 댓글로 의견을 서로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기아 브리사는 마쓰다의 패밀리아 2세대 (내수형)을 현지생산한 차량입니다. 1973년 픽업이 선행 출시된 이후 이듬해부터 세단과 왜건이 추가되었지요. 물론 엔지니어의 회사답게

적포도주를 곁들인 플레그쉽, 대우 쉬라츠 [내부링크]

쉬라츠는 대우자동차의 플레그쉽으로 개발된 컨셉트카이다. Daewoo DAEWOO SHIRAZ [Archive 020] 1997, Designed by Daewoo Worthing Technical Center. Dong Jin Kim 대우자동차와 대형차의 인연은 1972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신진자동차는 GM과 'GMK'를 공동 설립하며 토요타 시절의 아성을 되찾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차량이 바로 오펠의 레코드를 현지화시킨 'GMK 레코드'. 그리고 한 차례의 풀체인지를 거친 1978년, 당시 2차 오일 쇼크의 여파로 대한민국 장관급 관용차가 모두 4 기통으로 제한된 적이 있었는데, 마침 동급에서 유일하게 4 기통을 장착하고 있던 로얄 레코드 (1975년부터 '로얄' 서브네임을 사용함.)가 이 빈틈을 노려 한동안 높은 판매고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기세는 배기량 제한이 풀린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이후 대우에서는 로얄 XQ, 로얄 듀크, 로얄 프린스, 로얄 살롱에 이르

전기차의 상용화,대우 DEV-4 [내부링크]

씨에로를 기반으로 제작된 DEV-4는 전기차의 상용화에 대한 고찰의 결과이다. Daewoo DAEWOO DEV-4 [Archive 021] 1996, Designed by Daewoo. Dong Jin Kim 1991년 5월 24일, 정부는 2000년까지 과학기술 선진 7개국 진입을 주 골자로 하는 'G7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TV, 반도체 등 미래산업을 대표할 7개 제품을 선정-개발해 기술의 질을 빨리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이 중에는 전기차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정부는 선정한 이유를 두고 '환경문제가 전 지구촌의 관심사항으로 부상하면서 저공해차 개발이 불가피해진 데다, 21세기에는 기존 자동차를 제치고 수송기기의 총아로 등장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 이면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해외의 자동차 배기 규제를 일찌감치 탈피하자는 실리적 측면도 내재되어 있었다. 주행 테스트를 진행하는 DEV-4. 정부가 전기차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올드 코란도의 마지막 숨결, 쌍용 아마오 [내부링크]

아마오는 뉴 코란도의 현대화를 시도한 흔적이다. tistory - ageratum SSANGYONG AMAO [Archive 023] 2002, Designed by Ssangyong. Dong Jin Kim 대한민국에 '2002년'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월드컵의 열기와 2차 연평해전 등 현대사에 획을 그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자동차 업계에서도 큰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바로 3년이 넘는 진통 끝에 극적으로 서울모터쇼가 다시 개최된 것이다. 그간 주최 측은 업체 간 차별대우를 이유로 불참 입장을 밝힌 수입차 업체와 대우자동차의 법정관리로 흥행이 어려워진 모터쇼 개최를 미루고 있었다. 극적으로 개최된 제4회 서울모터쇼는 여전히 수입차 업체의 공백이 있었으나 GM대우의 참가와 긴 개최기간으로 관람객 70만 명을 돌파해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이 사진에서는 스페어 휠 커버가 장착되지 않았다. 사실 쌍용자동차는 워크아웃에서 벗어나지 못한

렉스턴의 사이드 B, 쌍용 헤모스 [내부링크]

헤모스는 렉스턴의 B 사이드라고 여기면 편하다. Global Auto News SSANGYONG HEMOS [Archive 024] 2002, Designed by Ssangyong. Dong Jin Kim 렉스턴, 코드네임 Y-200은 무쏘의 후속으로 1995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대우자동차에 인수되어 본인들 입맛에 맞게 수정되는 치욕을 겪었으며, 워크아웃 막바지엔 프로젝트 자체가 고사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쌍용자동차는 기존 진행되던 신차 프로젝트를 모두 접고 렉스턴의 출시에만 몰두하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 2001년 8월 30일 성공적으로 출시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1%'라는 슬로건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체어맨에나 적용되던 내비게이션, 메모리시트, ECM 룸미러를 장착해 고급 SUV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그 결과 출시 26개월 만에 10만 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보여주며 쌍용의 홀로서기에 큰 공헌을 한 모델이다. 시트를 제외하면 렉스턴과 별반 다르

포니 쿠페의 미공개 필름을 공개합니다. [내부링크]

지난 7월에 저는 현대가 새로 복원한 포니 쿠페를 보고 왔습니다. 포니 쿠페 단 한 대만을 보기 위해 왕복 20여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기차푯값으로 태웠지만… (지방러의 서러움 엉엉)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오래된 컨셉트카에 매달려온 이래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본 전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훌쩍 넘은 지금 시점에서 진부하게 차량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고 싶진 않습니다. 사실 언제 또다시 보게 될지 몰라 차량의 양쪽 도어 단차까지 최대한 세세하게 찍어는 왔지만, 이미 다른 분들의 알찬 리뷰를 수도 없이 보셨을 테니까요. 대신 저는 색다른 것을 풀어볼까 합니다. 바로 행사에 전시되어 있던 원형 포니 쿠페의 필름 사진입니다.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포니의 시간’ 행사에서는 원형 포니 쿠페의 개발 모습과 프로토타입의 모습이 담긴 필름본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큰 조명이 들어간 데스크에 30여 종의 필름본을 관람했고, 그중 대다수가 그

실패한 리뉴얼, 기아 콩코드 왜건 [내부링크]

기아는 구형이 된 콩코드를 다른 형태로 판매하고자 했다. Kia KIA CONCORD WAGON [Archive 025] 1994,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기아자동차는 오랫동안 승용 시장을 떠나 있었다. 그 악명 높은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시행된 탓에 승용차는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7년 동안 봉고로 근근이 버틴 기아차는 조치 해제가 가시화된 1986년 초에야 승용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었다. 곧이어 판매량을 견인할 소형차와 고부가가치의 중형 세단이 시장 재진입을 위한 물망에 올랐고, 해제까지 1년 여가 남은 상황에서 기아차는 이번에도 마쓰다의 손을 빌렸다. 그렇게 마쓰다 카펠라 GC형을 기반으로 개발된 기아의 새 중형차는 1987년 10월 16일 '콩코드'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비록 판매량에서는 쏘나타가 절대적 우위를 점했으나 콩코드는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과 첨단장치로 쏘나타의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꽃피지 못한 리틀 갤로퍼, 현대 티롤 [내부링크]

티롤은 미쓰비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개발을 시작한 현대정공의 흔적이다. 뉴스투데이 HYUNDAI TIROL [Archive 026] 1999, Designed by Hyundai. Dong Jin Kim 현대정밀공업은 왜 갑자기 '자동차 생산사업부'를 출범한 것일까? 이미 차량 개발 능력과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 현대자동차가 굳건한데 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러한 행보는 불필요한 중복투자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정주영에게는 아들 정몽구가 장차 현대차의 회장이 되기 위한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정주영이 조선과 건설 분야에 주력할 때 그의 동생 정세영은 현대차를 전두지휘하며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주영은 동생에게 기업의 주력 분야인 자동차를 넘길 생각이 없었고, 현대정공을 통해 정몽구의 자동차 사업 경험을 쌓아주려 했다. 정주영의 지지를 업은 현대정공은 미쓰비시의 손을 빌려 갤로퍼와 싼타모를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현대정공이 현대차와 차별화된 'RV 중심 메이커'

한국식 리디자인, 프로토 엘란. eks [내부링크]

eks라는 서브네임의 뜻은 알려진 바 없지만 차량의 신비로움을 한 층 더하는 효과를 준다. Proto PROTO ELAN. eks [Archive 027] 1999, Designed by Proto. Dong Jin Kim 1990년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카로체리아들의 '황혼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지금은 사라진 '베르토네'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탈디자인은 자동차에서 종합 제품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외에도 이데아, 자가토, 피닌파리나 등 실력 있는 카로체라아들이 자동차 제조사들의 간택을 받아 명성을 떨쳤다. 이 즈음 한국에서도 카로체리아의 새싹이 싹트기 시작한다, 김한철이 1994년 설립한 '프로토 자동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록 국내에서 카로체리아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디자인 용역을 따내는가 하면 본인들만의 독자 모델을 제작하기도 하는 유일무이한 카로체리아였다. 서울모터쇼에 출품된 eks. 프로토는 제2회 서울

빅딜의 불발탄,삼성 PX 프로젝트 [내부링크]

SM5의 각진 외관은 찾아볼 수 없다. Samsung SAMSUNG PX PROJECT [Archive 029] 1999, Designed by Samsung. Dong Jin Kim 1999년 1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이 발표회는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곳에는 차량의 출시를 자축하는 임원단도, 플래시라이트를 터뜨리는 기자들도 없었다. 그저 회사를 지키고자 하는 3,000명의 임직원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들이 서울역으로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과 대우그룹 간 '빅딜'이 있다. IMF 사태 이후 대기업들은 법정관리의 두려움에 사업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이로 인한 대규모 실업자 발생과 국가 경쟁력 감소를 우려한 정부는 기업과 기업 간 사업부를 통합-교환하는 형태의 '빅딜' 매각을 추진한다. 머지않아 현대전자-LG반도체, 현대정유-한화에너지와 같은 전력 사업부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복자를 꿈꾸는 티코, 대우 티코 칸 [내부링크]

서울모터쇼 당시 촬영된 티코 칸. Daewoo DAEWOO TICO KHAN [Archive 030] 1995, Designed by Daewoo Design Forum. Dong Jin Kim 대한민국 최초로 경차라는 개념을 소개한 티코는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 되었다. 비록 출시 초기에는 수요 부족으로 주춤했지만 뛰어난 연비와 저렴한 가격이 곧 빛을 발하면서 당초의 개발 의도처럼 대한민국의 '국민차'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티코의 인기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여겨졌다, 독일의 트라반트 유머를 각색한 이른바 '티코 유머'가 PC 통신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티코의 영향은 해외에서도 여전했다. 한때 국내 생산분의 2/3이 해외로 수출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프 향을 가미한 앞모습. 대우자동차는 화제의 티코를 서울모터쇼에 출품시켰다. 물론 양산형의 모습은 아니었다. 몽골의 군주 '칸'을 서브네임으로 명명한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차량의 테마는 야생을 누비는 지프였다. 이 나

매끈한 도시형 SUV, 현대 HRV-21 [내부링크]

HRV-21은 갤로퍼의 허물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Hyundai HYUNDAI HRV-21 [Archive 032] 1995, Designed by Studio UST. Dong Jin Kim 1995년, 현대정공은 'RV 중심 브랜드'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4,800억을 2000년까지 투자한다는 계획과 함께 2개의 신차 프로젝트를 착수한다. 그 대상은 갤로퍼의 후속 모델 'HP'와 미니밴 'DS-2'로, 모두 1998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브랜드 '세대교체'를 목전에 둔 현대정공은 기존 갤로퍼의 투박하고 늙은 디자인과 결별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지형에서의 웅장한 여행자'라는 거창한 테마로 개발된 HRV-21은 이러한 의도가 한껏 반영된 컨셉트카이다. 덕분에 당시 한국에서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매끈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 공로는 전적으로 일본의 '스튜디오 UST'이 몫이다. 스튜디오 UST는 일본에 소재한 카로체리아로 선박 디자인과 자동차 튜닝파

코리안 머슬카, 기아 KMS-3 [내부링크]

세피아의 언더바디를 기반으로 미국의 디자인을 적용한 KMS-3. @ Kia KIA KMS-3 [Archive 033] 1997, Designed by Kia LA Design Center. Dong Jin Kim 1992년 9월 23일 공개된 세피아는 일명 '기술의 기아'로 대변되는 회사관이 고스란히 담긴 모델이었다. 기아차는 마쓰다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세피아의 전륜구동 플랫폼과 가솔린 파워 트레인을 자체 개발했는데, 특히 뉴 세피아부터 적용된 T8D 엔진은 기존 마쓰다의 고회전 성향은 남기되 피스톤에 그래파이트 코팅을 적용하고 핀을 풀타입 동식으로 고정하면서 내구성과 고속주행에 유리했다. 그렇게 엔지니어 출신 경영진의 입김은 평범한 세단에 경쾌한 주행성을 부여했다. 이런 세피아는 모터쇼 들러리용 컨셉트카의 테스트배드로도 적격이었다, 기아차는 세피아 기반의 2+2 쿠페를 두 대 제작했는데, 그중 1996년부터 LA 디자인 센터에서 제작된 KMS-3은 근육질이지만 컨셉트카답지 않

재팬 클래식 카피캣, 아시아 제노비아 [내부링크]

아시아자동차는 제노비아를 '네오 클래식'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 All Car Index ASIA ZENOVIA [Archive 034] 1997, Designed by Asia. Dong Jin Kim 세기말을 맞은 자동차 업게는 전성의 연속이었다.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쐐기꼴 에지 디자인이 에어로다이내믹의 흐름에 퇴출당하면서 업계는 자연스럽게 '유선형'을 새로운 유행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선형을 야심 차게 접목한 급진적 시도들이 정작 소비자들에게는 시기상조로 여겨지며 호응을 크게 이끌어내지 못했는데, 이때 업계가 꺼낸 카드가 '레트로'였다. 에지 시대 이전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은 유선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캐릭터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니즈와 맞아떨어졌다. 유럽에서 촉발된 열풍은 미국과 아시아에 퍼져 곧 업계 전반의 유행이 되었다. 1995년 출시된 스바루 비비오 비스트로. 물론 일본도 유행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레트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

한국에서 가장 작은 '지프', 현대 경형 지프 프로젝트 [내부링크]

현대정공은 상품성이 입증된 파제로 미니를 들여오고자 했다. Mitsubishi HYUNDAI COMPACT JEEP [Archive 035] 1998, Designed by Mitsubishi. Dong Jin Kim SUV 전문 제조사인 현대정공은 왜 갑자기 경차를 출시하려 한 것일까? 사실 당시의 특수한 사회상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고 자동차업계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부채의 늪에 빠진 사내 사정도 문제였지만 바깥 사정은 더 처참했다. 1998년에 접어들자 차량 판매량은 전년의 30% 수준으로 감소했고, 당연히 야심 차게 출시한 신차 (EF 쏘나타, SM5 등)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웃는 자가 있었다. 당해 4월 출시된 대우 마티즈는 ‘저렴한 가격‘과 ’ 세재혜택‘이라는 경차의 이점을 살려 외환위기 속 소비자의 니즈를 꿰뚫었다. 그렇게 대우차는 주춤한 현대차를 꺾고 업계 판매량 1위를 탈환하는 ‘

대전엑스포의 숨겨진 주인공, 대우 이마고 [내부링크]

DAEWOO IMAGO [Archive 036] 1993, Designed by Bertone. Dong Jin Kim 1993년 8월 7일부터 93일 동안 개최된 대전 엑스포에서 대우그룹은 '인간과 과학관'을 개관해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전시관의 핵심 볼거리는 대우전자가 개발한 입체 아이맥스 영화와 HDTV 같은 당대 최첨단 가전제품들이었지만,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우자동차도 2대의 컨셉트카를 출품하면서 화력을 보탰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이마고와 DACC-1인데 이번 포스트에서는 컴팩트 2시터 로드스터인 이마고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마고의 개발은 전적으로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에 의해 이루어졌다. 참고로 베르토네는 1990년 에스페로로 대우차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마음으론 해방감을 몸으로는 쾌적함을' 이라는 테마로 1년 6개월 동안 제작되었다. 프론트 그릴에는 대우차 로고 대신 대전엑스포의 태극 로고로 대신했다. 르망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축거 역시

비치버기의 재해석, 현대 길라 [내부링크]

노란색 차체의 부드러운 유선형 디자인을 보여준다. Hyundai HYUNDAI GILA [Archive 037] 1995, Designed by hyundai design north america. Dong Jin Kim 1990년대 중후반, 현대자동차는 사내 캘리포니아 디자인 센터에서 제작한 콘셉트카들을 'HCD (Hyundai California Design)'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면서 모터쇼 부스를 다채롭게 채웠다. 이들은 존재 목적에 충실한 듯 사람의 이목을 끄는 비현실적인 기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리즈의 기원이 된 HCD-1과 HCD-2는 실제로 현대 티뷰론으로, HCD-4는 현대 싼타페 SM형으로서 양산화의 꿈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HCD-3, 일명 '길라'는 참신한 콘셉트가 엿보이지만 미처 양산화의 문턱을 밟지 못했다. 폭스바겐의 비치버기를 상기시킨다. 현대차는 1년여의 개발 기간 동안 길라를 쿠페와 픽업, 그리고 비치 버기를 몽땅 녹여낸 크로스

솔라 하이브리드의 선구자, 기아 프라이드 전기차 [내부링크]

KIA PRIDE ELECTRIC [Archive 038] 1993,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기아자동차는 1993년 11월 프라이드 전기차를 출시해 국내 최초로 전기차의 민간 판매에 나섰다. 프라이드 전기차는 배터리의 전기 에너지를 기반으로 보닛과 루프의 태양광 에너지를 보조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솔라-하이브리드'의 선구자였다. 놀랍게도 출시는 어렵지 않았다. 기아는 1992년 6월부터 차량 개발에 착수해 1993년 5월에 4호차의 형식승인을 받고, 6월 1일 교통안전진흥공단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확인검사에 합격해 출시를 위한 인증 절차를 마쳤다. 불과 1년도 채 안된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배터리와 컨트롤러가 들어가 있는 엔진룸. 프라이드 전기차는 3 도어 사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2열 시트와 엔진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납축전지를 각각 8개, 2개씩 장착했다. 차량에 장착된 145Ah/12V 규격의 납축전지는 1,071개의 축전지를 지니

윈치를 품은 다목적 SUV, 기아 KMX-3 [내부링크]

부풀린 휀더와 루프가 풍선을 연상시킨다. Kia KIA KMX-3 [Archive 039] 1995,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기아는 제1회 서울모터쇼를 위해 2대의 컨셉트카를 제작했다. 한 대는 전기차 기술을 과시하는 KEV-4, 다른 한 대는 이번에 다룰 KMX-3였다. 평소에는 출퇴근용 비즈니스카로 사용하다 주말에는 레저카로 활약하는 다목적 SUV를 지향한 KMX-3는 기아 RV 라인업 확장의 예고편이었다. ‘지금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끌고 있다’라는 개발 테마에서 알 수 있다시피 KMX-3는 온전함을 거부하고, 유선형의 터프하고 공격적인 디자인으로 개성을 뽐낸다. 하지만 SUV로서의 유용성을 버리진 않았다. 대표적인 요소가 프런트 범퍼 속에 위치한 윈치이다. 범퍼가 탈착식으로 설계되어 험로 주파 시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이곳에 윈치를 적용해 비상상황 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험로 주파를 보조하는 초광폭 타이어는 덤이다. 인

SUT에 화려함을 더하다, 쌍용 크로슈트 [내부링크]

새빨간 차체의 크로슈트는 쌍용자동차가 준비한 한국 픽업트럭의 대안이었다. SSANGYONG CROSSUT [Archive 041] 2002, Designed by Ssanyong. Dong Jin Kim 본인은 그동안 2002년 서울모터쇼에서 쌍용이 공개한 컨셉트카(아마오, 헤모스)를 다룬 바 있다. 그리고 크로슈트를 마지막으로 트리오 포스트의 끝을 내고자 한다. 회사 사정이 급박했던 쌍용자동차는 타사의 관행처럼 외부 디자인업체에 용역을 맡겨 컨셉트카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양산차를 기반으로 외판을 꾸민 쇼카 격 컨셉트카로 모터쇼를 채우고자 했다. 이번에 소개할 크로슈트는 이러한 기색이 더욱 짙은 차량으로, 누가봐도 무쏘 스포츠를 급하게 개조한 습작이었다. 무쏘 스포츠의 외장 파츠를 그대로 사용했다. 크로슈트 (Crossut)라는 이름은 ‘Cross Over SUT’의 합성어다. 이 차량의 특징은 바로 데크부분이 승용공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체형 바디이다. 트럭을

투명 보닛 속 배터리, 기아 세피아 전기차 [내부링크]

대전엑스포에 앞서 심포지엄에 출품된 세피아 전기차. Kia KIA SEPHIA ELECTRIC [Archive 042] 1993,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기아그룹은 대전엑스포를 몇 달 앞둔 1993년 중반 '환경위원회'를 신설했다. 환경위원회는 저공해 자동차의 대체 냉매를 개발하는 '환경기술위원회'와 사업장의 자원 재활용을 연구하는 '환경관리위원회'를 산하로 둔 일종의 혁신 부서였다. 물론 언론을 의식하고 환경친화적인 행보를 겉치레 삼아 보여주는 건 이 시기에도 여전했지만, 당시 기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93 대한민국 환경문화상'을 수상할 만큼 나름 그룹차원에서 친환경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동년 6월 3일에 업계 최초로 '환경을 위한 저공해자동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진심의 산물을 공개했다. 세피아 전기차의 보닛. 이날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앞선 1992년에 공개한 태양광 자동차와 CNG 자동차, 그리고 앞서 다룬 프라이드 전기차와 세피아 전기차를

[하드털이] 대우 티코 테스트카 [내부링크]

사진 촬영 - 1990.07.12 올 연말 첫선을 보일 경승용차의 탄생을 앞두고 5백여 명의 (대우) 기술진과 기능공들이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대우의 경승용차는 일본 스즈키의 알토 660cc를 800cc로 늘리고 외형상 약간의 변화를 부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속성의 측면에서 기아 프라이드에 뒤지지 않으며 전자식 에어 컨트롤러를 부칙 ,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도 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전체 공정의 80%가 진척된 공장 설비는 도로정비 등 부대 작업만이 남아 경차 공장은 제모습을 거의 드러낸 상태, 지금까지 모두 20여 대의 시제품이 성능 주행 등 각종 테스트를 거쳐 최종 모델이 확정 단계에 와 있다. (대우) 그룹이 이번 경승용차 사업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김우중 회장이 한 달에 두세 번씩 전용 헬기로 직접 창원에 들려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시판에 들어갈 내년 초부터는 아예 창원공장에서 상주할 예정이다. 이는 대우 그룹이 이번 경승용차 사업을 최근

SM5의 다음 타자는? 삼성 프리메라 [내부링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제작한 예상도. Tom SAMSUNG COMPACT SEDAN [Archive 043] 2000, Designed by Nissan. Dong Jin Kim 삼성자동차는 승용차부문 진출 이전부터 쌍용자동차,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물밑추진하면서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기성 브랜드의 매서운 견제를 피할 필요가 있었던 삼성차는 언론을 통해서 인수 의사가 없음을 매번 발표했다. 오히려 삼성차만의 독자적인 로드맵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홀로서기를 시사했다. 삼성차는 상용차로 제한한 닛산과의 기술 협약을 승용차로 확장하고 프로젝트 KPQ (SM5)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SM5의 다음 타자로 소형차를 준비했다. 삼성차는 KPQ 개발이 막 착수된 1995년부터 소형차의 생산을 계획했다. 물망에 오른 모델은 닛산 프리메라로 출시 시기를 염두하면 1995년 출시된 2세대로 추측된다. 임경춘 삼성그룹 자동차부문 부회장은 KPQ의 다음 프로젝트로 '많은 양을 팔아 이익을 남

GM을 벗어나라, 대우 어코드 [내부링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제작한 예상도. Tom DAEWOO ACCORD [Archive 044] 1993, Designed by Honda. Dong Jin Kim 김우중은 1993년 10월 26일 돌연 일본행을 택했다. 그가 일본으로 간 배경을 두고 언론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대우자동차는 GM과의 결별을 선언한 이후 뚜렷한 후속 행보를 보여주고 있지 않았다. 이와중에 김우중의 대선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재계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도 생겨났다. 대우차의 임직원들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김우중이 만성적인 노사분규와 매년 1천여억에 이르는 적자에 시달리던 대우차를 일본 제조사나 마침 자동차 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삼성에 매각할 것이라는 찌라시가 사내에 돌았기 때문이다. 일련의 헤프닝은 그가 귀국한 이후로 차차 진정되었다. 그가 일본에 다녀온 이유는 바로 혼다와 '레전드'의 현지 생산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대우차는 80년대 후반부터 GM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이탈리아 감성의 고급세단, 대우 카파 [내부링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제작한 예상도. Tom DAEWOO-LANCIA KAPPA [Archive 045] 1995, Designed by Lancia. Dong Jin Kim 대우자동차는 90년대 중반까지도 노후화된 오펠의 파워트래인을 받아쓰고 있었다. 그 결과 2.0리터와 3.2리터 사이의 큰 파워트래인 공백이 생겼는데, 날이 갈수록 경쟁이 가열되는 중형차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우차는 어김없이 해외 브랜드의 손을 빌렸다. 대우차는 앞서 혼다 어코드의 국내 생산을 면밀하게 검토했으나 로열티 문제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결국 대우차는 독자기술로 중형차를 개발해 1997년 레간자를 출시하게 되었으나, 사실 대우차는 레간자의 초기 개발이 진행되던 시점까지 해외 브랜드의 차량을 도입하는 방안을 계속 추진했다. 이번엔 피아트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피아트와의 협상은 어코드 도입이 무산된 1994년 말 시작되었다. 대우차는 'F-카 프로젝트'의 개발에 착수했다. 'F'는 피아트

슈퍼미니 르망, 대우 컬투스 [내부링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제작한 예상도. Tom DAEWOO-SUZUKI CULTUS [Archive 046] 1994, Designed by Suzuki. Dong Jin Kim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대 초부터 국민차 사업을 검토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 '도시 중산층을 위해 500~800cc 소형차를 출시하겠다'라고 공언한 것이 그 시작. 그러나 정책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정책 부재로 무산된 바 있다. 이윽고 정부는 세제 혜택을 비롯한 특혜 정책을 정비한 이후 자동차 브랜드의 참여를 독려했다. 국민차 사업을 두고 기아와 현대차 측에서는 기준 배기량을 1,100 cc로 상향할 것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했다. 하지만 대우차는 달랐다, 대우차는 1991년 '대우조선공업 경형자동차사업부' (약어 '대우국민차')를 출범하고 796cc의 티코와 다마스, 라보를 순차적으로 출시하여 재빠르게 시장을 선점했다. 기아와 현대차가 여전히 시장 진입을 주저하고 있을 때, 대우국민차는 출범 16개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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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으로 남은 브리티시 슈퍼카, 팬서 솔로 (상) [내부링크]

김영철의 야망은 끝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미완으로 끝나버렸다. Ssangyong PANTHER SOLO [Archive 040] 1984-1990, Designed by Ken Greenley. Dong Jin Kim 1972년 창립된 '팬서 웨스트윈즈'는 자본가들의 차고를 메울 클래식카를 제작하는 소규모 공방에 불과했다. 주 수익원은 재규어 SS 100를 본뜬 리마 (칼리스타의 전신). 백야드빌더가 주목받는 슈퍼카 브랜드로 탈바꿈한 것은 1980년이었다. 제계에서 손꼽히는 진성 차덕 중 하나였던 진도그룹 김영철 회장은 로버트 얀켈 (Robert Yankel)로부터 팬서를 인수하고 본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장으로 삼았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건 저렴한 미드쉽 스포츠카였다. 그는 동일 포지션의 피아트 X1/9가 이미 8년 넘게 판매한 노령차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 블루오션을 신모델로 장악하려 했다. 팬서 본사 앞에 서 있는 솔로와 솔로 2. 연간 수백만 대를 생산하는 대기업과

[하드털이] SM5 (KPQ) 테스트용 닛산 세피로 [내부링크]

사진 촬영 - 1997.05.28 안녕하세요, 자칭 미출시차 덕후 Tom이라고 합니다. 아카이브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뒤지다 보면 본의아니게 요상한 사진들을 종종 건지게 되는데요, 저만 보기 좀 아까운거 같은 사진들은 눈요기하시라고 블로그에다 하드털이 겸으로 올려보겠습니다 :) 사진 촬영 - 1997.05.28 이 차량이 다른 KPQ 테스트카와 다른 점은... 원형 차량인 세피로의 껍데기를 그대로 씌웠다는 점이겠지요. 시기상으로는 이미 국내외에 100여대의 완성형 SM5 테스트카가 돌아다니고 있던 참이라, 개발 극초기 시절 테스트카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을 위한 백업 (대피소)* 브런치로 이동합니다.

매너리즘 칼리스타, 쌍용 CRS [내부링크]

팬더를 인수한 쌍용그룹과 김석원 전 회장의 선택은 명백한 실패였다. Ssangyong SSANGYONG CRS [Archive 031] 1995, Designed by Ssangyong. Dong Jin Kim 쌍용그룹의 김석원 전 회장은 삼성그룹의 이건희와 더불어 재계에서 제일가는 '차덕'으로 꼽힌다. 그의 차덕기질은 어릴 적부터 지독해 아버지 김성곤의 벤츠를 몰래 분해해 조립했다고 하며 미국 유학 시절에는 레이싱 스쿨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는 운전 이야기가 나오면 '레이서들과 겨룰 자신이 있다'라고 장담하곤 했다. 그는 1975년 경영권을 승계받은 뒤 동아자동차를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며 '덕업일치'를 이뤘다. 그는 인수직후 동아자동차의 사명을 '쌍용자동차'로 변경하고, 야심 차게 개발해 온 프로젝트 'X카',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서서히 늘려갔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로 만족하지 않았다. 쌍용그룹은 동아차 인수 이듬해인 1987년 갑작스레 영국의 '팬더

언제나, 아무 때나, 대우 무시로 [내부링크]

대우 무시로는 워딩 테크니컬 센터의 황혼을 장식한 콘셉트카이다. GTplenet DAEWOO MUSIRO [Archive 022] 2000, Designed by Daewoo Worthing Technical Center. Dong Jin Kim 새천년을 맞은 대우자동차를 반기는 것은 찬란한 햇빛 대신 암담한 먹구름이었다. 모그룹이 최종적 부도를 표명하며 대우자동차 역시 워크아웃 상황에 빠진 것이다. 대우차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량 감축을 자구책으로 내놓았으나 18조에 이르는 부채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대우차는 최종 부도 처리된 2000년 11월까지 무수한 잡음과 함께 무너져갔다. T자 디자인룩을 전후면에 걸쳐 구현했다. 사내 개발 본부로 활약해 온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터 (DWTC)도 이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일찌감치 1998년 8월 독일 뮌헨 테크니컬 센터를 폐쇄한 대우차는 다음 희생양으로 워딩 테크니컬 센터를 점쳐두었다. 2000년에 이르러선 직원 수

갈매기를 닮은 전기차,쌍용 CCR-1 [내부링크]

양산화와 동떨어진 과장된 디자인은 컨셉트카만의 매력이다. Ssangyong SSANGYONG CCR-1 [Archive 028] 1995, Designed by Ssangyong. Dong Jin Kim 자동차 제조사들은 매년 수십대의 컨셉트카를 쏟아낸다. 수개월 단위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컨셉트카를 보고 혹자는 제조사 입장에서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컨셉트카는 수개월 간 자사의 디자인 인력을 동원해 수억 원을 들여 만들어지는 '사치'의 산물이다. 그러면 제조사들은 왜 컨셉트카를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자사가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차량의 디자인 큐를 보여주기 위함'과 '자사의 각종 기술을 과시하기 위함'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전적으로 양산을 가정하기에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적절한 과장이 들어가게 된다. 반면 후자는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우선시 되기에 보다 전위적인 모습을 띄는 경우가 많다. 프랑크푸르트 모터

퓨처리스틱 카니발,기아 KMX-4 [내부링크]

KMV-4는 카니발과 사뭇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디. @ Kia KIA KMX-4 [Archive 017] 1997,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세기말의 기아자동차는 다채로운 RV라인업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매번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에 밀려 시장 점유율 3위에 그친 기아가 세단을 통한 '정면 승부'보단 미래가 유망한 RV를 통한 '측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불어온 '레저 바람'에 편승해 시장 선점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U자 라디에이터 그릴. 기아는 90년대 초 코드네임 KV-II의 개발을 착수하며 RV라인업의 첫 삽을 뜬다. 아마도 우리에겐 KV-2보단 '카니발'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할 이 차량은 기아그룹이 법정관리 수순에 접어든 1998년 1월 출시되었다. 기아자동차는 카니발을 통해 존폐의 위기에 서있었던 사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기아자동차는 본래 카니발의 출시를 1997년 말로 목표했다. 그리

한 세기를 앞선 '박스카', 아시아 ARV [내부링크]

작지만 여유로운 실내공간과 실용성을 겸비한 ARV는 시대를 앞선 '박스카'였다. Asia ASIA ARV [Archive 018] 1997, Designed by Bertone. Dong Jin Kim 세기말의 아시아자동차는 새로운 유형의 차량들을 고안하고 있었다. 록스타와 같은 기존 상용차 라인업으로는 판매량 증진에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아시아는 승용시장을 개척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아자동차와의 라인업 간섭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페널티는 아시아에게 큰 장애물이 되었다.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은 '국내에는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크로스오버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 첫 결실로 1995년 아시아는 RV와 MPV의 개념을 접목한 네오마티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수천억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일종의 '도박'은 모기업인 기아그룹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시아는 후년에 다시 열린 서울모터쇼에서 ARV를 출품하며 회사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한국 최초의 '본격' 경차,기아 M·CAR / 모닝 [내부링크]

'M·CAR' 혹은 '모닝'으로 불리우는 이 차량은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경차이다. Kia KIA M·CAR / MORNING [Archive 019] 1993, Designed by kia. Dong Jin Kim 정부는 오래전부터 국민차 사업을 검토해 왔다. 합리적인 가격의 국민차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 대형차 위주의 기형적인 시장 구조를 타파함과 동시에 차량 보급률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한동안 시행 방법에 대해 난항을 겪었으나. 1980년대 말부터 이를 뒷받침할 세제 혜택이 꾸려지며 본격적으로 사업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에 현대, 대우, 그리고 기아는 경차 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하지만 규모도 미처 확인되지 않은 세그먼트에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대우와 아시아는 각각 스즈키와 다이하츠의 경형 모델을 OEM 생산하는 방법으로 1991년 티코, 라보/다마스, 1992년 타우너를 출시했다. 현대차 역시 미쯔비시의 경형 모델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

조랑말은 달리고 싶었다, 현대 포니 쿠페 [내부링크]

현대자동차, 아니 이탈디자인이 선보인 '아소 디 피오리'는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콘셉트카로 평가받게 된다. Hyundai HYUNDAI PONY COUPE (Asso Di Fiori) [Archive 009] 1974, Designed by Giugiaro's Italdesign. Dong Jin Kim 한국에 '콘셉트카'란 존재는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존재였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문화를 탓하기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가 아직 생소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아소 디 피오리'를 공개하며 우리나라에 콘셉트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었다. 1974년 공개된 이 차량은 같이 공개된 일반형 포니와 달리 매끄러운 쐐기형 스타일의 2 도어 쿠페의 모습을 지녀 외신의 관심을 톡톡히 끌 수 있었다. 원형 4구 헤드램프는 이후 사각형으로 교체되었다. 시작은 1973년으로 올라간다.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첫 독자모델, '110' 프로젝트를 착수하게 된다. 그간 포드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