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un_no_aka의 등록된 링크

 isun_no_aka로 등록된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 수는 44건입니다.

스물셋 [내부링크]

1. 스물셋 면도를 하는 횟수가 잦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쉬는 게 의무가 되고 여행을 하는 것조차 일이 되었다고 느낄 때, 새삼 미웠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이해할 때,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어. 성숙해진 것 만 같은 스스로가 대견하고 아주 조금 벅차올랐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뿌듯함도 잠시 한편으론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아서 두렵고, 내가 꿈꾸던 어른의 내가 겨우 이 정도였나 하는 마음에 허무하기도 했어. 그리도 원하던 곳에 막상 올라오니 앞길이 두렵기만 하네. 나는 이제 어리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은 이렇듯 불쑥 찾아왔어. 안개 낀 갈림길 앞에서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선택하게 될 때면, 그것의 책임이 이젠 오롯이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발을 내딛기 어렵게 만들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그 앞에서 우물쭈물 대는 나를 등 떠밀어 빠른 선택을 강요하지. 그렇게 아주 잠시 걸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 이런 감정들에 무뎌져 있네. 나는

맥거핀 [내부링크]

2. 맥거핀 미운 사람이 생긴다는 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보다 최악이긴 쉽지 않다. 내 행동반경 안에 미운 사람이 들어오면 내 신경은 온통 그 사람에게 쏠린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 하는 행동 숨을 쉰다는 사실까지 미워한다. 미워한다는 건 다른 말로 관심이 있다는 말이 된다. 나에게 써야 할 에너지들이 모조리 그놈에게 간다는 뜻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생활에 집중하기 어려워 어딘가 엉클어지게 되고, 또다시 그놈을 탓하며 미워한다. 끊임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녀석을 미워하는 나 자신이 그 녀석보다 나에게 더 많은 피해를 준다는 걸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다. 그 사람은 끽해봐야 눈꼴 시림만을 나에게 줄 뿐인데, 그것에 도발당해 갖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본인을 돌보지 못하는 자신이 본인에게 있어 더 큰 적임을 대다수가 인지하지 못한다. 서로가 미워하는 사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를 미워하는 저 녀석도 나와 같은 사

아직은요 [내부링크]

3. 아직은요 내가 알바 면접을 보러 다닐때면 공통적으로 들었던 질문이 있다. ‘뭐 궁금한건 없으세요?’ 그럼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궁금한게 없습니다.' 알아야 할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데 뭐가 궁금하겠는가? 첫 출근날에도 여지없이 묻는다. 질문이 있느냐고. 질문을 묻는 질문은, 그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가? 간혹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았을땐 나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질문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또다시 머리를 굴렸다. 이런 일이 여러번 반복 될 즈음에는 그냥 ‘없어요’ 해버렸다. 그러고 나니 일이 간단하게 흘러갔다. 다시 묻지 않았고, 그렇게 일을 하니 자연스레 모르는 부분이 생겼다. 그때 느꼈다. 이게 아는만큼 보인다는 거구나. 그제야 나에게 그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진짜 나를 탐탁치 않아

지치지 않는 법 [내부링크]

4. 지치지 않는 법 멋진 글씨체를 가지고 싶었다. 그 밖에도 내가 하는 것들이 모두 멋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던 참으로 애매한 내 재능. 모든 것을 평타 이상 하지만, 상타는 죽어도 못치는 애매한 능력. 다행히도 주제를 알아서 애매한 재능에 목 메다 시간을 버리진 않았다. 그냥 저냥 할 줄 아는거 하고 살며 목이 떨어져라 저 윗동네만 바라 보았지. 아직도 욕심을 버리진 못했다. 최선은 최고의 차선책이라는 생각은 항상 가슴 한켠에 웅크리고 있으니까. 근데 이거저거 깨닫다 보니 이 정도 할 줄 아는게 그래도 쉬운 일만은 아니지 싶더라. 아직 온 신경을 윗동네에 집중하지만, 그래도 이젠 목 정도는 편하게 내리고 산다. 디스크 오기 직전에 병원비라도 아꼈다.

너를 사랑하기 전에 [내부링크]

5. 너를 사랑하기 전에 사랑을 하는 데에는 마땅히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사랑은 구걸이다. 채워진 자 만이 사랑을 한다. 채워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만남은 채워진 자의 동정, 혹은 비어있는 자의 구걸 행위이다. 서로의 것을 나누는 것임이 사랑이기에, 그 둘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채워진 자의 희생이 된다. 채워지지 못한 자들의 사랑은 동병 상련의 이끌림일 뿐 사랑일 수도, 결말을 기대할 수도 없이 서로의 것을 축내며 여러 번 상처 주고 끝에 다다라서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에 따라서 그 아픔으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이가 사랑은 아픈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다는 건 참으로 웃프지 아니한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자.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먼저 채워야 한다. 그것이 타인을 사랑

눈치 [내부링크]

6. 눈치 내가 봐 온 아저씨들은 모두 낭만이 있었다. 요즘 SNS에서 죄다 낭만이라는 배를 타고 떠난다지만, 과연 그중 진짜 낭만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 시대는 보여지기를 좋아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 멋진 취미가 있는 사람,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 등등으로. 그들의 그대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거짓 이더라도 그들은 낭만이라는 배를 타고 떠난다. 우리의 낭만은 대부분 거짓이다. 반면 4~50대, 70~90년의 청춘을 겪어온 아저씨들의 낭만은 그 농도가 짙다. 그 시대를 살아온 그들은, 돈을 많이 벌었고, 여행을 자주 갔고, 멋진 취미가 있고, 깊은 생각을 가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들의 그대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안다. 우리의 시대는 보여주고, 그들의 시대는 보았다. 서로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며 알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앞다퉈 경쟁한다.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개인적인 공간이 전혀 개인적이

느긋이 [내부링크]

7. 느긋이 항상 밤이 되면 센티해져서 여러 가지 생각들에 잠 못 이루곤 한다. 이따금씩 글로 적어두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라도, 군대에선 힘든 일이니 바로 적어두지 못한 것들은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랬던 기억들이 당직 책상에 앉으면 다시 생각이 난다. 굳이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내려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시 까먹지 않도록 허겁지겁 종이에 옮겨 적는다. 어찌나 급하게 적었는지, 글이 뒤죽박죽 생각나는 대로 나열되어 있게 된다. 그 덕에 다시 정리하여 옮겨 쓰는데 매번 곤욕을 치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굳이 급하게 살 필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날 것은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적절한 때 다시 나타난다. 급할수록 원래의 형태대로 떠올리기 힘들다. 지나간 것에 얽매이는 것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대부분은 내 인생에 그리 중요한 대목이 아닐 거기 때문이다. 필사적이지 않았다면, 후회는 낭비다.

칼답 [내부링크]

8. 칼답 비루하고 길었던 삶이란 여행을 끝마치고 그 여행을 한 마디로 정리한 묘비가 된 나의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본 꿈을 꾼 적이 있다. 나의 할머니, 동생들, 아버지, 그리고 몇 안 되는 친구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과 연이 닿았던 사람들 중 일부. 내 장례식에 울고 있는 사람은 그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의 수보단 현저히 적었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스몰 장례식. 그리 길진 않았던 인생이지만 솔직히 좀 씁쓸하다. 사회를 살아내면서 가장 애썼던 부분이 인간관계였다.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 만나는 사람마다의 취향에 맞추며 한 명에게라도 더 사랑받기 위해 나를 깎았는데, 그들은 나와의 이별로 어떤 감흥도 느끼지 않는구나. 조금 씁쓸한 감정이 들다 이내 아쉬운 감정이 든다. 떠나보냈던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리에 속하기 위해 떠나보냈던 친구, 생활고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사이가 틀어졌던 형, 다투곤 자존심에 영영 잃어버린 친구 등등. 나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에겐 그

차분히 말하기 [내부링크]

9. 차분히 말하기 화를 잘 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느 한 계기로 감정이 동요해 흥분한 상태에서 내가 어째서 화가 났는지 지적하고, 어떻게 행동해 주었으면 하는지를 주문하며 감정싸움이 되지 않게 팩트만 조리 있게 전달하면서 화가 났음을 분명히 하고 재 화두 될 일이 없게 경각심까지 심어줘야 한다. 깊이 있는 화를 내는 일은 어렵다. 감정을 조절해 차분한 상태로 말하자니 화를 내는 것 같지 않고, 확실히 화를 내자니 감정이 끓어올라 신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꼭 화를 내야 하는 걸까? 그냥 조목조목 이야기하며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는 걸까? 경험상 그런 방식으로 해결되는 상대는 적지 않게 존재한다. 반대로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상대 역시 적지 않다. 확실히 각인되지 않아 몇 번이고 같은 누를 범하는 상대는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그렇기에 '화'라는 해결 방법의 사용법을 고민하게 된다. 가끔 그냥 나를 만만하게 보고 화를 내던 조목이 이야기를 하던 귓등으로도 듣지 않

X2 [내부링크]

10. X2 언젠가 '하늘'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 때가 온다면, 그 내용은 부디 긍정적인 내용이 되길 바랐다.누구에게나 희망을 주는 긍정의 화신이 아닌가.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은 것 같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보라지 않은가? 자주 우울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치켜들곤 한다. 기분이 나아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세 번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기에 의식적으로라도 행복해져보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울함에 상쇄되는 것일까, 좀체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기 위해 이런 속설에 기대어 고개를 치켜드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올려다 본 하늘은 대다수의 날들이 아름답지만, 그 빛 아래 고개를 올려든 내 얼굴엔 언제나 그림자가 져 있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의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따금 아주 신나거나 즐거울 때가 분명 있으니까. 그저 지금까지 불량하려 부단히 노력한 결과들이 모두 끝마쳐져 가고, 뒤를 돌아보며 살아오던 지금까지완

순간의 빨강 [내부링크]

11. 순간의 빨강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하는 순간은 정말 찰나의 시간이다. 서둘러 붙잡지 않으면 이미 멀어지고 있는 그 녀석의 뒤꽁무니만 쫓다 결국 놓쳐버리고 아쉬운 마음에 찰나 느낀 그것을 흉내 낸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영감은 낚아채려는 순간 자취를 감춰버리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 아른아른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눈을 질끈 감아본다. 밝은 빛 아래 눈을 질끈 감으면 주황빛이 도는 빨강이 내 앞을 꽉 채운다. 그리고 그 속을 헤집다 보면, 지나간 줄만 알았던 그것이 자신의 정체를 알려줄 힌트를 툭하니 내려놓는다. 내 모든 글은 그 순간의 빨강 속에서 비롯된다. --- 우연히 알게 된 가수가 있다. 어느 날 일본 노래에 꽂혀 이런저런 가수를 찾아보던 와중, Yama라는 가수를 아주 우연히 알게 됐다. 내 취향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도 그 가수의 노래 중 '순간의 빨강'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기막힌 우연이다. 나는 귀신

박미연 (1) [내부링크]

줄지어 켜져 있는 가로등 사이 제 혼자만 불이 꺼져있는 가로등이 있다. 그 아래 기대어 허리 숙인 미연은 하루를 게워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구애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제 자랑만을 늘어놓는 배불뚝이 아저씨와의 한 잔도, 옆 가게에서 미연과 같은 일을 하는 원빈이와의 한 잔도, 친구 손에 이끌려 뻣뻣하게 굳어있던 순진한 까까머리 군인 오빠와의 한 잔도. 미연은 남김없이 게워내려 출산 중인 산모의 그것과 같은 손으로 불 꺼진 가로등을 부여잡았다. 하루를 비워낸 미연은 언제나와 같이 구역질 후 느껴지는 이물감에 불쾌한 심정이다. 이미 흡수되어 버린 누군가와의 술 한 잔이 풍기는 시큰한 찡함. 오늘의 모든 흔적은 모두 뭉쳐 한곳에 버리고 싶지만, 남아 야만 한다면 차라리 순진한 오빠와의 한 잔이었다면 싶은 그녀이다. 짧은 숨을 뱉어내곤, 끈적하고 더러운 기억을 밟는다. 괜한 심술에 걸음을 떼는 그녀의 발목은 평소보다 아주 약간 더 힘이 들어가 있다. 움푹 팬 기분 나쁜 기억은 꺼진 가로등 아래

박미연 (2) [내부링크]

약속한 대로 빠르게 준비를 끝마치고 오 사장의 방으로 들어간 미연이 마주한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 어?" "생각보다 일찍 다녀왔네? 여자들 준비하는 거 오래 걸린다더니, 수아가 오빠 보고 싶어서 준비 빨리하고 왔구나?" 미연을 알아본 듯 어떠한 말을 꺼내려 하는 의외의 인물의 입을 배불뚝이 오 사장이 가로막는다. 그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미연은 오 사장의 그런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다. "수아는 이쪽으로 들어오고, 어 저기야, 여기 저번에 킵해둔 거랑 그거랑 똑같은 거로 한 병 갖다 줘~" 오 사장이 미연에게 자신의 옆으로 오라 손짓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세워 주문을 하곤 머뭇거리는 미연을 향해 재촉하듯 다시 손짓한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미연을 보고 그 이유를 짐작해낸 듯 옆의 인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한다. "아~ 여긴 오빠 거래처 직원! 오래 봐서 가까운 친군데 요즘 많이 힘들어하길래 내가 기분 풀어주려고 불렀어~ 잘생겼지? 수아 주변에 좋은 친구 있으

死刑囚 [내부링크]

死刑囚 열심히 땀 흘려 일하다 잠시 쉬는 시간의 일이었다. 때를 잘못 맞춰 찾아온 여름날의 봄. 땀에 젖은 상태임에도 내리쬐는 햇볕 아래로 자리를 정했다. 앉을 자리가 하필 그곳뿐만은 아니었다. 걸리면 한 소리를 듣긴 해도 담배만을 피우고 일어난다면, 뒷문 바로 앞 그늘에 앉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멀지만 널찍한 인공 그늘 아래 시원한 흡연장까지 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 모든 선택지 중 이곳을 선택한 건 고된 노동 중 짧은 휴식시간은 온전히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 덥긴 해도 그곳에 있었다고 혼나거나 멀리까지 갔다가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 날 일은 없을 테니까.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은 육체가 지치는 일보다 하루를 견디기 어렵게 한다. 땡볕 아래 약간의 컨테이너 그늘 쪽으로 한쪽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상당히 엉거주춤하고, 오묘한 온도차가 있는 자세였다. 손에 담배를 꽂아 불을 붙였다. 한 입 빨자, 담배가 끝에서 잠시 연기를 멈추며 타는

박미연 (3) [내부링크]

미연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다. 이자 없이 받았던 선불금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번에 오 사장님 기분 못 풀어드려서 우리 가게 다신 안 오시면, 가불이랍시고 빌려 간 돈에 이자 붙일 거야. 우리 가불 없는 거 알지? 그거 언니가 빌려준 거다~ 확실히 하라고.' 미연은 높은 월세의 집에 살면서 이사 가야지를 생각만 했던 게으른 과거의 자신이 미워졌다. 이러한 사정인지라, 미연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앞에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우선이었다. "오빠, 어제 일은 내가 정말 미안해. 백번 생각해도 예민했던 내 잘못인 거 다 아는데, 우리 그 얘기는 그만하자. 응? 별로 말하고 싶은 기억이 아니야." "애 학교는 보내니?" 미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 사장이 묻는다.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곧이어 그녀의 몸이 떨려왔다. 뒤이어 내뱉은 말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씨발." 오 사장은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미연을

진정성 [내부링크]

12. 진정성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는 상황은 정말 흔하게 생기는 것 같다. 그건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내 성질머리 탓이기도 하겠다만. 감성 글, 우울증, 위로. 팔리는 글. 잠시 인스타를 돌아보면 저런 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무게감 없이 따듯한 척하는, 글을 쓰는 자신에게 취해 평소 생각하지도 않던 괜찮아도 괜찮아 같은 어순으로 뱉어진 글들 말이다. '지랄 똥 싸네'라는 감상평이 절로 나온다. 충분한 생각을 거치고 쓴 깊이 있는 글은 누군가를 감화한다. 영감을 얻거나, 위로를 받고, 인사이트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야기란 이런 부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저런 것들까지 글이라는 위대한 범주에 들게 그냥 놔둘 수 있나 하는 고민이 있다. 그러다 문득, 내 글들을 보는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이것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해야 할

바당 [내부링크]

13.바당 행복은 우연히 다가온다. 그 우연은 아름답게 빛이 난다. 여러 갈래 선택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 행복이 되는 우연이 다가오는 것임이기에. 이 생각은 단순히 나 혼자만의 경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의 시작에선 '적어도 나는'이란 전제를 깔아본다. 나도 메마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까닭은,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계획치 않았던 여행에서 행복을 느낀 날이 있었다. 전의 나를 모르는 곳에서의 시작을 마음먹은 날이었다. (원래 계획을 하고 사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곳의 바다는 정말로 투명하고 맑았더라. 바닥이 보일 정도의 에메랄드 색으로 요동치더라. 그리고 멀리선 돌고래 울음소리가 들려왔었던 것 같아 그쪽을 바라보니 방금 전까지 보던 에메랄드의 너울만이 출렁. 그 모습도 아름다워 가만히 보고 서 있었다. 그랬더니 돌고래 세 마리가 파도위로 첨벙하더니 다시 첨벙하고 물보라를 튀긴다. 새로운 시작에 행운이 깃들 거라는

상비약 : 담배 [내부링크]

상비약 : 담배 '여기까지 걸어오시느라 일시적으로 혈압이 정상적인 수치로 돌아왔네요.' 83에 65라는 저혈압이 명백한 결과에 재검을 한 후 들은 말이다. 들어오기 전 담배를 피운 사실을 전하며 그것도 같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물음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는 담배를 피워야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그것들의 상관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이해한 결론을 묻자, 주변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 부끄러운 질문을 했단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 이후였다. 그것을 들키기 싫어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내 발길은 곧바로 흡연장으로 향했다. 금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그것이 눈앞을 가려 잠시 세상이 까매진다. 그 암흑 속에서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내 그 단어를 담배 끝과 함께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등바등 이것을 지키려고 했던 연유가 무엇인가. 고작 말린 잎을 태워

야행성 인격 [내부링크]

14. 야행성 인격 밤에 살고 싶다. 햇빛이 주는 영양분은 나를 과도히 크게 만든다. 말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웃을 수 있게 밝은 기분을 준다. 그것을 모조리 쏟을 때까지 실컷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른다. 시간이 지나 지구가 어느새 반바퀴를 돌면 밤이 찾아온다. 슬며시 빛을 내는 달을 볼 때가 나로 있어도 좋은 시간이다. 마음껏 우울해져도 좋다. 나는 켜진 가로등 사이에 꺼진 가로등 밑으로 들어가 있으니까. 햇빛 아래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 준 기억. 가벼운 사람으로 비치게 했을 행동. 나를 가렸던 다소 과장된 웃음. 이젠 푸른빛으로 내리쬐는 하늘 아래 실컷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가로등 불에 비치게 내뿜은 담배 연기가 죄의식을 더해준다. 밤의 연기는 낮의 그것보다 더 큰 몸짓을 가진다. 그 탓일 테다. 이미 다 써버린 호흡을 들이마시지 않는다. 조용히 노래한다. 노래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뱉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나에게조차도 말이다. 밤이 오면 기억을 되짚게된다.

무제 [내부링크]

무제 '너랑 나를 비유하자면... 이불이랑 베게 정도? 개념은 같지만 용도가 다른 거지. 베개는 머리와 항상 같이 있으니까 머리에서 하는 생각들이 소곤소곤... 난 그 사람의 베개야. 머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사람을 품어주는. 이불은 있잖아,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서 냄새나기 십상이야. 몸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데? 씻지 못해 잠들기라도 하면... 어휴... 너와 나의 차이가 이 정도라고.' 모진 말로 자신의 자랑을 하는 그녀의 말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그 사람의 치부이자 차마 버릴 수 없는 유품 정도 되는 이불이었다. 얼룩진 이불을 태웠던 날이 떠오른다. '...' 나의 침묵에 승리를 확신한 듯한 그녀가 다시 비수를 던져댔다. '너희 부모님이 남기고 간 유품이라고 네 신세는.' 이미 그리 생각하고 있는 나였지만,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은 불쾌감이 나의 가치를 깎는 일보다 더 깊숙이 박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있던 나를

I'll be yours for sure. [내부링크]

I'll be yours for sure 땀이 흥건한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일이 익숙했다. 분명 악몽을 꿨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 짧은 시간 동안 거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매번 이불 속에서 잠시 동안의 안정을 취한 뒤 일어나곤 한다. 악몽으로 누적된 피로함이 눈 아래 축적된다. 다가가기 힘든 사람, 그것이 내 수식어였다. 운이 좋게도 나의 아픈 모습에 어떠한 감정을 느껴 다가와 준 사람이 있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에 초집중을 하여 단숨에 낚아챘다. 그 사람 곁에서 언제나 두려운 마음을 회복한다. 그곳은 나의 가장 안전한 안식처였다. 이제 난 그저 나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곳의 날씨가 이상하다.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이 계속되지만, 절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잠시 그곳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평소보다 따듯한 해가 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컨디션의 난조겠거니.. 하며 내 경험에 빗댄 나아지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겼기를. [내부링크]

15.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겼기를. 어느 학예회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많은 관객들이 낯설었는지, 아이의 표정이 연신 굳어 있었다. 무대를 끝마칠 때까지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순간을 동영상으로 담았기에 그 아이에게 추억이 될 것이다. 아이가 그때를 즐겼던, 영상에서처럼 낯설어 했던 말이다. 한편으론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추억이지만, 그 추억이 담은 내가 즐기는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이미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추게 되었겠지만. 나는 어땠는가. 지나온 모든 순간을 즐겼는가? 아쉽게도, 나에게 있어 추억거리들은 모두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것도 아주 흐릿하게. 나에게도 영상의 아이와 같이 순간을 담아 놓은 추억이 있었지만, 그 시절은 나에게 실패한 기억이었기에 모조리 지우고 말았다.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운 마음이다.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니까. 흐릿한 기억이 그것의 증거이다. 기억으로만 남은 추억의 파편

타문타답 [내부링크]

16. 타문타답 최고가 될 수 없는 종자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나는 어떤 심정이었나. 무너져 가는 모래성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흩어지고 있었던가. 총에 맞은 새의 뽑아져 나간 깃털과도 같았나. 무엇인가 내 몸에서 마구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식, 거짓, 가면같이 그릇된 것들. 나를 포장했던 것이 모조리 벗겨졌을 때. 나는 어떤 심정이었나.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나.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랑 정도로 많은 변명을 내뱉고 싶었었나. 끔찍이도 의식하던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스러기들을 주웠다. 떨어져 나간 자리에 오롯이 붙이기 위해서. 때로 맞지 않는 자리와 그것이었어도 손이 가는 대로.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속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남들에게 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여 눈을 감았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어떤 심정인가. 나 홀로의 무도회에서 온전히 벗어났는가. 그것에 안도하는가. 혹, 정신만은 벗어나지 못해 낯선 환경이 두려운가. 나는

20231223 [내부링크]

꿀같은 외출. 불러보았읍니다. 배터리 없어서 짤림

캐롤 [내부링크]

17. 캐롤 아빠, 난 당신처럼 외로울 사랑은 안 하려고. 받아본 적 없는걸 받으려고 죽을 똥 싸지 않으려고. 남들 다 하기에 하는 사랑 같은 건 안 하려고. 이젠 쓰린 상처에 차가운 얼음을 가져다 대는 일이 싫어졌어. 언젠가 녹을 걸 분명히 알면서도 차디찬 눈사람 같은 걸 꽉 안지 않으려고. 분명 그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데도, 이미 사라져 없어진 것에 정신 팔려서 다른 소중할 것들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눈사람은 세워둔 그 방향만을 멍하니 바라보곤 있으니까. 이젠 그 옆에서 세상 환한 표정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눈사람의 눈앞에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지나가길 바라려고. 나처럼 외롭지 않게. 아빠, 난 당신처럼 살아남기 위한 사랑은 안 하려고. 준비한 적 없던 이별에 서둘러 다른 방법을 마련하진 않으려고. 얼굴을 얼게 할 만큼 두껍고 차가운 가면을 쓰진 않으려고. 얼은 얼굴 때문에 슬퍼도 울지 못하는 기구한 인생은 못 살 거 같아서. 그렇게 살다간 어떻게 우는 건지 어

애증의 여름 [내부링크]

18. 애증의 여름 무더위 속, 달리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열어 더운 바람을 맞는 일. 내가 첫 번째 자유를 박탈당한 그날들에. 나는 항상 저 상상을 하며 여름을 기다렸다. 그곳으로 가는 날은 너무나도 하얬던 기억이 난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해 보이는 나무 위에, 소복이 올라간 눈들이 패딩 같아 따듯해 보이기도 한 광경이었다. 분명히도 암울한 길이었음일 텐데, 가는 길이 어찌도 그리 따듯해 보였는지. 청소년기의 6개월은 상당히도 긴 시간이다. 학교로 따지면 한 학년의 반이나 되는 시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나이이기에, 당시 나에겐 몹시도 짧게 느껴졌다. (물론 그리 느낀 건 나갈 때가 다 되어서지만.) 어느덧 스스로 박탈한 자유를 다시금 찾은 날이 되었다.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들을 뒤로하곤 차에 올라탔다. 뜨거운 시트에 붙은 허벅지 아래가 아려왔다. 곧바로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윽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상상 속의

Sunrayz (3rd) [내부링크]

19. Sunrayz (3rd) 나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단순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미운 짓을 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을 보아도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자연스레 말을 걸고 장난을 친다.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지만 몇 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실실 웃고 다닌다. 암울한 기분은 세 발자국을 채 가질 못한다. 그래서 그리 느꼈나 보다. 이런 곳에 갇혀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수복하려 무던히 애를 써야 하니, 나는 내 생각만치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 없이 뱉는 말들이 물 잔에 침전물이 되어 가라앉는다. 상처를 주는데 거리낌 없는 행동이 그 농도를 더욱 탁하게 만든다. 어떠한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내가 이것을 마셔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보면, 그들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또 다른 상처를 주는 모습이 물 잔을 목구멍에 들이붓게 한다. 굉장히 텁텁하고 불쾌한 맛이 느껴지지만, 금방의 갈증은 어느 정도 가신 기분이다. 금

흔한 노래 [내부링크]

20. 흔한 노래 당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인가 봐요. 그렇기에 그리도 구슬프게 노래하나 봐요. 그렇지만 어째서 상처 주고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건가요. 무슨 탓에 그리 슬퍼하는 건가요. 당신들은 모두 사랑받는 사람인가 봐요.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당신들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도 잠시 붕 뜨는 느낌이에요. 귓가에 들어오는 음들을 따라 노래하네요. 그 마음까지 따라 부를 순 없게지만요. 당신들은 모두 상처 입힌 적이 없는가 봐요. 상처 주는 일만 했던 나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요. 당신들의 노래를 듣는 것조차 마음을 무겁게 만드네요. 그렇게만 알았어요. 그런데요, 타인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곳에서 당신들을 보았어요.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죠. 하지만 당신들이 나온 장면에 아무런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누구도 웃질 않네요. 노래 가사 대신 누군가가 당신을 읽어줘요.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비겁하게 가로챘다네요. 당신보다 약한 누군가를 괴롭혔었대요.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식으

잡념 [내부링크]

21. 잡념 나는 존나 말하는 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누군가를 내게 찾는 물음에 간단히 대답한다.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면, 생각하는 돌이 된다. 나는 무엇인가. 기분이 좋았다가, 우울했다가, 신났다가, 조용해진다.조울증에 걸린 돌이다. 이런 내가 석회암인지 화강암인지 하며 무슨 종류의 돌일까를 생각하다가 결국에 생각을 쓰는 돌이 된다. 아무런 영양가 없이 종이만 버리는 그런 거. 돌대가리에서 나온 게 아니랄까 봐 돌과 같은 그런 걸 쓴다. 죽어서는 묘비가 되어야겠다. 돌로 만든 묘비가 되는 게 내 마지막 변화인가 보다.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선 그 돌 위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글을 새겨야 하나. 멋진 이별을 위해선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생각을 빌려야 하나. 내 생각은 과연 나의 마지막을 꾸며줄 수 있는가.

스스로 두려움을 만드는 일 [내부링크]

22. 스스로 두려움을 만드는 일 대부분의 사람은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절대로 미워하는 일에 무뎌지지 말자. 그것은 대물림 되기에, 언제고 반드시 나에게까지 돌아온다. 미워하는 일에 경각심을 가져 그것을 자제한다면, 우린 자제한 만큼은 덜 두려워할 수 있다. 미움받는 일이 이 생에 없을 수는 없겠으나, 스스로 두려워할 일을 만드는 멍청한 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지 않겠나?

첫 번째 건배 [내부링크]

23. 첫 번째 건배 누나, 우리가 그때 했었던 건 사랑이 아닌 거야. 술에 취해 나를 찾지 말아 줘. 나는 이제 누나가 원하는 걸 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어. 그러지 못함에도 어떻게든 주려 혼자 고통받았어. 본의아니게 애타게 기다렸을 누나를 기만했어. 나를 용서해. 우린 마실 게 없는 빈 잔만을 끝없이 부딪힌 거야. 그 부딪히는 소리에 매료되어 사랑이란 걸 한다고 착각한 거야. 서로가 비었다는 걸 알면서도 채워줄 수 없었어. 우리에겐 채워줄 게 없었는걸. 우린 그저 깨질 때까지 애꿎은 서로를 부딪혔던 거야. 마실게 없었기에 잔을 입에 댈수가 없었지. 그렇게 부딪히다 우리는 깨지고 만 거야. 우리에게 이별은 정전기가 오를 걸 아는 기계를 만지는 일이었던 거야. 사소한 아픔이지만 이게 더 큰 아픔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우린 서로에게 이별을 전하지 못했던 거야. 우리는 이미 깨져버렸네. 더 이상 사랑이란 걸 하지는 못할 것 같아. 우리가

복귀 유저 [내부링크]

24. 복귀 유저 글 쓰는 것도 어느새 질렸어. 또다시 꾸준하지 못할 핑계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네. 난 대체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이걸 하고만 있으면 뭔가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아주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런 내 모습이 좋았던 거야. 그런데 어느새 질려버렸네. 나는 나은 사람이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 이건 오랜만에 다시 한 게임 탓이야. 먼저 질렸던 그 게임을 다시 하게 된 탓이야. 이걸 눈에 들인 이유는 그걸 했던 때의 추억 때문일까. 화면엔 떠났던 때의 내 캐릭터가 서 있네. 떠나며 남겨둔 그 모습 그대로 말을 걸어. '마왕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여주러 가자!' 게임 속 나는 끝판왕 바로 직전에 그만뒀었구나. 글을 쓸 때와 똑같이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을 눌렀어. 그 떨림은 과연 한창때의 실력이 그대로 남아있을까 하는 불확신 탓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반긴 회색화면이 그나마 남아있던 동앗줄을 끊어버렸어. 자리를 비웠던 공백의 시

내달리다 [내부링크]

25. 내달리다 두 손과 발에 무거운 나무틀을 차고서 바닷가를 지나친 적이 있어요. 얼마나 걸었는지 발엔 물집이 잡혔고, 나무틀에 쓸린 손목과 발목은 온통 살갗이 벗겨져있었죠. 그런데, 그런 것들에 지치고 괴로워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음이 분명한데도, 빛나는 바닷가와 모래사장, 달빛에 비쳐 검은 보석처럼 빛나는 물에 젖은 아스팔트 길이 눈에 들어왔죠. 어찌나 아름답던지. 실오라기 하나만큼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거닐고 싶은 충동이 몰아쳤어요.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몸통만큼 커다란 나무틀을 메고 있었거든요. 하고자 하면 반드시 할 수야 있었지만, 조금 참기로 했어요. 왜인지 그곳을 거닐 때엔 아무런 방해를 받고 싶지가 않았으니까요. 그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을 걸어갔지만, 눈앞엔 아직 그곳이 아른거려요. 그럴 만큼 가득히 채워 담았거든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이날과 똑같은 밤에 이곳을 찾아오리라고요.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 속에 내 발자

한편의 사랑 [내부링크]

26. 한편의 사랑 편지지를 산 건 정말 오랜만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당신께 이 마음 전하렵니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도 바뀌었어요. 오래 걸리는 귀찮을만한 일들을 간편히 처리할 수 있죠. 그대에게 전할 말도 역시 손쉽게 타닥타닥 전할 수 있었어요. 아까운 편지지 여러 장 버리지 않고 전하고픈 말을 전부 적을 수 있을 테죠. 그럼에도 편지지를 산 건, 손글씨 쓰는 일을 좋아해서만 은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들과 표현하고 싶은 것 모든 게 담겨있길 바랐습니다. 이리 말하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당신을 향해 뛰는 심장이 어떤 속도로 뛰고 있는지, 펜에 녹아들어 그 끝에서 진한 농도로 쓰여지길 바랐던 겁니다. 키보드로 옮긴 마음엔 좀체 그것을 담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벌써 몇 장째 새 편지지를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건 모자란 제 글 솜씨와 떨리는 이 마음탓이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그대에게 가닿을 이 편지가 당신이 느끼기에 과도히 뜨겁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죠

마피아 게임 (1) [내부링크]

왜인지 그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건 그 나름의 해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옳진 못하지만). 그가 화를 내는 일은 캔을 따는 것보다 쉽고, 곧바로 입에 가져다 대는 것만큼 당연했다. 그런 그가 입에 머금은 음료를 뿜어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만든 또 다른 화였다. 그는 고립됐다. 주변의 모두가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마저도 등을 돌려 지금 그의 화는 일생 중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이번의 그것은 앞서 말했듯 너무나도 거대했다. 항상 화가 나 있는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의 행동에 이골이 나면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자잘한 화 정도는 듣고 흘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친구니까, 지인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어떠한 방패도 두르지 않고 그 열기를 받았던 그들은 이제 절교라는 검과 함께 두꺼운 방패를 둘렀다. 그의 화에 열심히 담금질 되었던 탓인

마피아 게임 (2) [내부링크]

그는 몸에 들어찬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그 열기에 한쪽이 후끈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만 둔다면 그는 오늘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의 과오를 돌아볼 수 있었을 터이다. 배신을 했다고 여긴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인정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이 녀석의 걱정을 덜어줘볼까 하며 화를 낸 일을 다시 한번씩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다툼은 여기서 마무리되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심장에 다시 한번 불길이 타올랐다. "거짓말쟁이 앨런이었어. 그는 마치 거대한 산소호흡기 같았지. 그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불길이 거세어졌어.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걸 내가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네. 그건 그가 거짓말쟁이라서 인가." 거짓말쟁이 앨런, 그는 서양 사람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인생에 들어오기 시작한 외지인이었다. 시작은 친구의 전 직장동료였다. 앨런은 그와 친구가 만나는 자리에 때때로 참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피아 게임 (3) [내부링크]

골목 안 속은 볕이 들진 않았지만, 대낮의 반사광 덕분에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냉랭한 분위기는 없어지지 못했다. 그 분위기에 앨런은 입이 얼어버린 듯했다. 그건 앞에 서 있는 그의 험상궂은 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지금은 너무 긴장해서 말실수를 할 것만 같으니 나에게 대답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겠어? 피차 궁금한 이야기에 대한 대화만 하는 게 쉬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유감이지만... 내 말은 결코 너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건방진 뜻이 아니야.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잠시만 생각할 시간이라도 줘." 두려움에 떠는 앨런의 모습이 애처로웠던 건지, 아니면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건지 그는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앨런은 한시름 놓은 듯 잔뜩 움츠린 어깨를 내려놓았다. "나를 따돌리려 했던 이유가 뭐지 앨런? 이전에 당한 수모에 대한 복수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 아니야. 내가 그 자리에 도착한 건

마피아 게임 (4) [내부링크]

머그잔의 손잡이가 따듯한 커피의 온도에 전도되어 따듯해졌다. 종일 긴장해 있던 알폰스는 커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늘 하던 루틴대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후끈한 상태로 앉아있는데도 좀처럼 몸이 달아오르지 못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알폰스는 자신이 감기몸살에 걸렸다는 걸 알아챘다. 원체 아픈 일이 적던 그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것은 아픔이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세가 몹시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정체도 모르는 마피아가 언제까지고 그의 곁에 있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병에 걸린 건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언제고 화만 내는 그를 보며 그의 주변 사람들은 질병이 그의 화에 놀라 달아나서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에게 화는 해결 방법이자, 약이며, 약사였다). 그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몇 시간 전 통화에 실패한 로빈에게 전화를 걸기

마피아 게임 (5) [내부링크]

로빈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로빈은 평소에 그곳에 앉을 때면 아주 우아한 차림으로 귀티를 내고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한지 연신 사방을 돌아보며 사색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는 로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어이." 그의 부름에 로빈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로빈은 놀란 표정을 감추려 노력하며 태연한 척 그를 맞이했다. "왔군...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말을 하는 로빈의 목소리가 사뭇 떨려왔다. 역시 사업을 하는 녀석이라 제법 감정을 숨길 줄 안다고 생각한 그였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 않아도 돼 로빈. 아무리 가려도 불탄 자국은 희미하게 남기 마련이지. 탄 냄새는 물론이고. 난 감정에 충실한 녀석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누구보다 이성적이기도 해. 자네가 하는 대답 여하에 따라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토록 하지. 그래, 나를 욕하기 시작한 건 로빈 자네가 맞나?" "...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앨런의 말

마피아 게임 (6) [내부링크]

"이번엔 내 차례다, 왼쪽을 맞을지 오른쪽을 맞을지 고르도록 해. 어차피 전부 맞을 테지만 말이야." 잠에서 깬 그의 눈앞에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년들이 무리를 이루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잠에 들었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소년들은 정신을 채 차리지도 못한 그를 마구 밟아댔다. 그는 이럴 거면 고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직 잠결이라 뒤엣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군, 어째 하나도 늙지 않았네. 그렇다면 이건 꿈이겠구나.' 지금 보이는 이 광경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일을 보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그는 왜 자신이 꾸는 꿈들은 항상 이 모양인지가 불만스러웠다. 언제나처럼 조금만 지나면 잠에서 깨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우쭐대지 마, 네 녀석도 우리들처럼 버려진 거야. 다시 돌아갈 곳 따윈 없다고. 그러니 조용히 찌그

마피아 게임 (7) [내부링크]

그는 줄곧 정신을 차린 채였다.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과 부딪혀 자리에 주저앉을 때도, 커다란 거인이 얼굴을 연신 주물럭대는 듯한 압박감을 느껴 한참 동안을 버스정류장 유리에 기대어 쓰러져 있을 때도, 누군가가 호출한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해서 온몸을 덜컹거리게 하는 싸구려 들것에 몸을 올렸을 때에도. 의사들이 부산하게 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대며 자신을 귀찮게 했을 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어떠한 말을 할 수 없을 것 만 같으면서도 당장이라도 어떠한 말을 뱉어버릴 것만 같아 가만히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소동이 가시고 그가 위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 의사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커튼 건너편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도 그리 심각한 부상이 아닌 듯 가족들의 안도 섞인 한탄을 뱉고 있었다. 그는 몹시 외로워졌다. 차라리 죽을 병이라면 어떠한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아서 귀찮지만 계속 의사들이 자신을 괴롭혀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마피아 게임 (8) [내부링크]

그는 잠시 어떠한 곳에 갇혀버렸다. 살면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주 끔찍한 기억 속에. 사방에서 총성이 들려왔고, 그 앞으로는 총을 들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잔혹한 그 광경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롭다 못해 따분해서 잠이 올 지경인 그의 집 TV 위에 그려졌다. 그의 시선은 그 장면 속 어느 한 군인에 꽂혀 있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는 언제나 예상외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한참을 찾아도 갈피조차 잡을 수 없던 아버지의 생사를, 죽었다고 받아들이려던 지금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는 야속한 우연의 갈래에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테이프가 끝이 날 때까지 그는 한 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총에 맞은 그가 바닥에 엎어져 팔다리를 거세게 휘두르고 있을 때에도 그는 군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이 검어져 그 눈이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 "자네는 영웅이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그

마피아 게임 (-) [내부링크]

"사실 그날 그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건 나였어. 자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져서 나 같은 꼴을 당할 자네의 안위를 걱정했기 때문이었지. 그저 조금의 안정을 바랐을 뿐인데, 그것이 자네를 향한 확인 사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난 여전히 오만하더군. 내 말에 대체 어떤 힘이 있다고 그런 발상을 한 건지 모르겠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점을 사과하고 싶었다네. 미안하군, 알폰스." 그는 오스틴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를 따라 오스틴의 고개도 고꾸라졌다. 그 탓에 그 얼굴에 그려진 미소를 보진 못했다. "본의 아니게 애가 탔기 때문이겠지, 스스로를 과대평가 해서가 아니라. 자네 말대로 그때의 자네처럼 될 내 모습이 걱정됐을 테지? 그러다 보니 조급한 마음에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다소 얄팍한 술수였다만, 자네를 원망하지 않네. 오히려 내 문제에 대해 직면할 계기를 만들어줘서 아주 감사하게 생각해. 고개를 들어 오스틴, 자넨 아무런 잘못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