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2korea의 등록된 링크

 net2korea로 등록된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 수는 166건입니다.

제국주의-제 Ⅲ장 3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3절 전쟁과 문예 군국주의자는 말한다. “철이 물과 불의 단련을 통해 예리한(犀利) 검이 되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한번 전쟁의 단련을 겪지 않으면 결코 위대한 국민이 될 수 없다. 미술과 과학, 제조 공업은 전쟁이라는 격려(鼓舞)와 자극 없이 능히 고상한 발달이 어렵다. 예로부터 문예가 크게 융성(隆興)한 시기는 다수가 이러한 전쟁을 겪은 이후에 속한다. 페리클레스(Pericles) 시대는 어떠하며, 단테(Dante Alighieri)의 시기는 어떠하며, 엘리자베스(Elizabeth I)의 시대는 어떠한가?” 나는 평화회의가 주창되던 당시(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 1899년-역자 주) -57- 영국의 군국주의자 가운데 유력한 한 인물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페리클레스, 단테, 엘리자베스 시대의 인민은 모두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고대 역사는 거의 전쟁으로 채워져(充塡) 있으니, 전쟁을 겪은 것은 특별히 이들 시대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시

제국주의-제 Ⅲ장 2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2절 머핸 대령 근래 군국의 사무에 정통하다 일컬어지는 인물로 머핸 대령(Alfred Thayer Mahan, 1840~1014)만 한 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대 저작(著作,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1890)-역자 주)은 영미 각국의 군국주의자, 제국주의자의 오소리티(Authority, 권위)로서, 낙양(洛陽)의 종잇값을 비싸게 만들기에 이르렀으니, 그래서 우리나라의 무사 역시 이 책을 애독하는 자가 많음은 저 번역서 광고가 잦은 것(頻繁)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군국주의를 논하는 자는 우선 그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할(便益) 뿐만 아니라 의무라고 믿는다. 군비와 징병의 공덕 머핸 대령이 군비와 징병의 긍정적 효과(功德)를 말하는 것은 심히 교묘하다. 그는 말한다. “군비가 경제적으로는 생산을 위축(萎靡)시키고, 사람의 생명과 시간에 세금을 부과(課稅)하는 등의 불이익이나 해독

제국주의-제 Ⅲ장 1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1절 군국주의의 세력 현재 군국주의 세력의 왕성함은 전례가 없으니 거의 극에 달했다. 각국이 군비 확장에 탕진한(竭盡) 정력(精力)과 소모한(消糜) 재력(財力)은 헤아릴(計量) 수 없을 정도이다. 대저 군비를 단지 일반적(尋常) 외환(外患)이나 내란을 방어하는 도구로 삼는다면 이에 그치지 않겠는가, 어찌 반드시 이렇게 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저들이 유형적 · 무형적으로 한 나라 전체를 군비 확장의 희생으로 삼아 소진하고도 오히려 반성함이 없으니, 그 원인과 목적은 방어 이외에 있음이 틀림없으며, 보호 이외에 있음이 틀림없다. 군비 확장의 이유 이처럼 군비 확장을 촉진하는 이유는 실제 달리 존재하고 있디. 이는 다름 아니라 일종의 광기(狂熱), 허영심, 호전적 애국심일 뿐이다. 단지 무인(武人)이 벌이기 좋아하는 일(好事)로서 -46- 많은 전쟁의 책략(韜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하는 것도 이유이며, 무기와 양식 등의 군수용품(軍需)을 제공하는 자

제국주의-제 Ⅱ장 7절 [내부링크]

제 Ⅱ장 애국심을 논한다 7절 애국심이란 이와 같다 나는 위에서 말한 바에 따라 소위 패트리어티즘 즉 애국주의 혹은 -42-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대략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야수적 천성이며, 미신이며, 광기(狂熱)이며, 허풍(虛誇)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니, 실로 이와 같다. 인류의 진보가 있는 까닭 말하지 말라,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性情)으로 애국심이 있음은 끝내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자연에서 발생해 온 모든 종류의 폐해((弊毒)를 막는 것(防遏)이 참으로 인류의 진보인 이유이지 않은가. 물이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고 오래되면 곧 썩어버리니, 이것이 자연이다. 만약 이를 움직이게(流動) 하고 소통케 함으로써 그 부패를 막는다면 이것을 가지고 자연스러움을 거스른다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노쇠하여 질병에 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에 따라 약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움을 거스른다고 힐책할 수 있을 것인가. 금수(禽獸)나 물고기와

제국주의-제 Ⅱ장 6절 [내부링크]

제 Ⅱ장 애국심을 논한다 6절 일본의 황제 일본의 황제는 독일의 어린(年少) 황제와는 다르다.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평화를 중히 여기시며, 압제를 좋아하지 않고 자유를 중히 여기시며, 한 나라를 위한 야만스러운 허영을 즐기지 않고 세계를 위한 문명의 복리(福利)를 바라신다. 결코 오늘날의 이른바 애국주의자, 제국주의자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일본 국민에 이르면 소위 애국주의자가 아닌 자는 쓸쓸한(寥寥) 새벽 별(晨星) -34- 과 같다. 나는 단언컨대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애국주의, 오직 적(敵人)을 토벌할 때에만 등장하는 바의 애국심을 찬미할 수 없는 까닭에 또한 일본 인민의 애국심을 배척하지 않을 수 없다. 고(故) 고토 백작(後藤伯) 사망한 고토 백작(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 1838~1897)는 일찍이 한번 일본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겨(煽揚) 보려고 나라가 “위급 존망(危急存亡)”의 중요한 시기라고 부르짖었다.(呼號) 천하의 애국지사가 일제히(翕然) 이를 따

제국주의-제 Ⅲ장 6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6절 왜 언제까지 서로 도발하나 오호, 세계 각국의 정치가와 국민이여, 왜 그렇게 다수의 군인, 병기, 전함을 비호하며 오랫동안 서로를 북돋우고 있는가? 왜 서둘러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상황, 여우(野狐)처럼 서로를 잡아먹는 상황, 병든 개와 같은 상황을 탈출하여, 더욱 고원한 문명 도덕의 단계(域)로 진입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저들은 전쟁이 범죄이자 해악이 되는 것임을 알아서, 가급적 이를 피하게 되는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저들은 평화와 박애가 정의임과 동시에 복리임을 알아서, 저들은 가급적 빨리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 -86- 않는다. 그런데도 왜 단호히 그 전쟁에 대한 준비를 그만두고, 이를 통해 평화와 박애의 복리를 누리지 않는가? 저들은 생산품이 싸길, 또 풍요(饒多)롭기를 바란다. 통상과 무역이 번영하고 융성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군비가 막대한 자본을 헛되이 소비(消磨) 하여 생산력이 손실(損耗) 됨을 안다. 전쟁이 통상과 무역을

제국주의-제 Ⅲ장 5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5절 결투와 전쟁 군국주의자는 더욱이 전쟁을 찬양하며 말한다. "국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니, 개인 간의 분분한 의론(紛議)이 결투에 따라 최후의 판정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국제적 분쟁의 최종 판정을 가하는 것은 전쟁이다. 지상(坤輿)에 국가별로 나뉘어 존재하는 한 전쟁은 그칠 수 없고, 전쟁이 있는 한 군비의 필요 또한 그칠 수 없다. 또 무릇 전쟁은 실로 우리의 강성한(强壯) 힘, 참고 견디는(堅忍) 마음, 굳센 의지(剛毅)를 서로 견주어(相較) 진정한 대장부의 의지와 기개(意氣)를 떨치는 원인(所以)이다. 만약 전쟁이 없다면 천하는 변하여 나약한 여인네(巾幗)의 천하가 되고 말 것이다. 어찌 -80- 그렇게 되어서야 하겠는가?" 나는 여기서 개인 간 결투의 옳고 그름이나 이해득실을 말할 겨를은 없다. 하지만 전쟁을 결투에 비교하는 것은 반인륜(不倫)의 정점임이라 단언한다. 서양의 이른바 결투나 일본의 하타시 아이(果合, 쌍방의 승인 아래

제국주의-제 Ⅲ장 4절 [내부링크]

제 Ⅲ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4절 군국주의의 폐해 군국주의와 전쟁은 단지 사회 문명의 진보에 이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손상(戕賊) 하고 해(殘害) 하니, 그 폐해를 실로 두려워할 만하다. 고대 문명 군국주의자는 말한다. “고대 문명이 역사에 출현한 때에는 모두 군사와 상업이 일치하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저들은 곧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경우를 들어 군비가 문명을 진보시키는 증거(證左)로 삼는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다. 나는 믿노니, 이집트가 능히 무력적 정복과 군비를 위한 생활로 국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번영이 수백 년은 더 지속하고, 그 명맥이 수천 년은 더 보존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그리스(希臘)는 한번 따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의 무장의 경우는 나라마다 같지 않았다. 스파르타(Sparta)는 철두철미하게 군국주의를 유지하여 그 생활은 훈련이요, 그 사업은 전쟁이 아닌 것이 없으니, 그 문명의 사물로 하나라도 볼

이십년래생계극변론(二十年來生計劇變論) pp.33~34. [내부링크]

오호(嗚呼)라 20년래로 생계 변동을 실로 고금(古今)에 미유(未有)ᄒᆞᆫ 바이라. 기(其) 변동의 범위ᄂᆞᆫ 비록 서양으로 위주(爲主)ᄒᆞ나 동양 제국(諸國)도 ᄯᅩ한 기(其) 여파(餘波)를 수(受)ᄒᆞᄂᆞᆫ지라. 대저(大抵) 기기(機器)의 -33- 창조 사용ᄒᆞᆷ이 근년에 지(至)ᄒᆞ야 극도(極度)에 달(達)ᄒᆞ고 피(彼) 동맹파공(同盟罷工)의 변(變)도 근년에 성행ᄒᆞ고 ᄯᅩ 사업 변동이 무상(無常)ᄒᆞ야 헐업(歇業) 파산ᄒᆞᄂᆞᆫ 자(者)가 상심(相尋) 부절(不絶)ᄒᆞ니 기(其) 문란(紊亂)의 특심(特甚)ᄒᆞᆫ 자(者)를 적(跡)컨ᄃᆡ 상(常)히 제일등국(第一等國)에 재(在)ᄒᆞ고 제2등국(第二等國)은 반(反)히 경멸(輕蔑)을 득(得)ᄒᆞᄂᆞᆫ 자(者)는 하(何)오. 개전(盖前)에 재(在)ᄒᆞᆫ 자(者)는 변동선(變動旋) 와중에 함(陷)ᄒᆞ야 기(其) 영향을 직접(直接)ᄒᆞᆷ이 속(速)ᄒᆞᆫ 고(故)로 독대(獨大)ᄒᆞ고 후에 재(在)ᄒᆞᆫ 자(者)는 기(其) 여파를 수(受)ᄒ

이십년래생계극변론(二十年來生計劇變論) pp.32~33. [내부링크]

기외(其外)에도 다시 무수(無數)ᄒᆞᆫ 이기(利器)가 유(有)ᄒᆞ니 개(皆) 이삼십년래(二三十年來)에 창조개량(創造改良)ᄒᆞᆫ 자(者)이라 전기(電氣) 일물(一物)로 언(言)ᄒᆞ야도 종전(從前)에ᄂᆞᆫ 다만 무형(無形)의 물(物)ᄋퟄ라 ᄒᆞ더니 금(今)엔 가(可)히 부장(缶藏)ᄒᆞ며 이동(移動)ᄒᆞ고 -32- ᄯᅩ 능(能)히 제조(製造)ᄒᆞ야 광물(磺物) 식물(植物)로 동시(同視)ᄒᆞ니 시(是)가 엇지 일대기사(一大奇事)가 아니리오. 증기력(蒸汽力)의 발명이 세계에 대유공(大有功)ᄒᆞ야 금(今)에 오히려 기용(其用)에 미실(未失)ᄒᆞ나 전력이 발명 이래로 사용의 도(道)가 점광(漸廣)ᄒᆞ야 금(今)에 비록 대기기(大機器)를 운전(運轉)치 못ᄒᆞ나, 이믜 소기기(小機器)를 운동(運動)ᄒᆞᄂᆞᆫ지라 영국 학술협회 보림위(普林威) 가 유언(有言)ᄒᆞ되 본회(本會) 백년(百年) 시기(視期)를 당(當)ᄒᆞᆫ 1930년에ᄂᆞᆫ 금일(今日) 기기(汽器)가 폐위(廢爲) 무용(無用)ᄒᆞ야 박람회 참

이십년래생계극변론(二十年來生計劇變論) pp.31~32. [내부링크]

1870년 이전에도 신학술과 신기예(新技藝)를 발명ᄒᆞ야 생민(生民)을 편익케 ᄒᆞ얏스나 당시엔 기구가 금일의 미비(美備)ᄒᆞᆷ만 갓지 못ᄒᆞ고 교육이 금일의 편급(遍及)ᄒᆞᆷ만 갓지 못ᄒᆞ야 세인(世人) -30- 의 견문이 심협(甚狹)ᄒᆞ고 지식 정도가 소한(所限)이 유(有)ᄒᆞᆫ 고(故)로 능히 학리(學理)를 장(將)ᄒᆞ야 실용의 시(施)치 못ᄒᆞ더니 금(今)엔 인교(人巧)가 천공(天工)을 탈(奪)ᄒᆞ야 조화(造化)로 쟁형(爭衡)ᄒᆞᄂᆞᆫ지라, 민지(民智) 대개(大開)ᄒᆞᆷ으로 진화(進化)가 무극(無極)ᄒᆞ니 어시(於是)에 상전(相傳) 상습(相習)ᄒᆞ야 유출유정(愈出愈精)ᄒᆞᆫ지라, 서양에셔 발명ᄒᆞᆫ바 자(者)가 불순월(不旬月)에 동양에 성행ᄒᆞ고 신세계에셔 창작ᄒᆞᆫ바 자(者)가 ᄯᅩᄒᆞᆫ 전순간(轉瞬間)에 구세계에 전파ᄒᆞ니 오인(吾人)이 금(今)에 물질 진보를 견(見)ᄒᆞ고 왕시(往時)를 회수(回首)컨ᄃᆡ 일몽(一夢)과 여(如)ᄒᆞ야, 다만 경괴(驚恠)ᄒᆞᆯᄲᅮᆫ이라. 시

제국주의-제 Ⅵ장 5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5절 영국 식민지의 결합 영국의 제국주의자는 또 말하길 내가 무비(武備)를 완전히 하고자 하는 것은 식민지 전체의 공고한 통일 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 말은 저 호전적 애국자의 더욱 기뻐할 바라. 그러나 참으로 가소롭다. 불리함과 위험 저들 영국민으로서 항상 그 방비를 온전히 하지 못함을 위구(危懼)하는 까닭은 -120- 사실 그 영토의 지나친 크기에 있다. 생각해보라, 저들 각 식민지의 인민은 모두 첫 삶을 모국에 의지하지 못하고, 자유를 얻기 위하여, 의식(衣食)을 구하기 위하여, 천리 이향(異鄕)으로 이주한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 각기 번영과 행복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무슨 고통을 얻으려 다시 대제국의 통일이라는 이름 아래 모국의 간섭과 질곡을 감수하겠으며, 모국을 위해 막대한 군자금과 병역을 부담하겠으며, 항상 모국과 함께 구미 열국과의 분쟁 와중(渦中)에 들어가려 하겠는가? 그 불리함과 위험은 대개 이보다 크지 않다. 작은

제국주의-제 Ⅵ장 4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4절 새로운 시장의 필요 제국주의자 모두가 일제히 소리쳐 말한다. “무역은 국기(國旗)에 버금”가니 영토의 확장은 실로 자신의 상품을 위한 시장을 구하는 것이니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나는 세계 교통이 더욱 편리해지는 것을 바란다, 국가 간 무역이 더욱 번영해 가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영국 물품의 시장이 반드시 영국 국기 아래에 있어야만 한다거나, 독일 물품의 시장이 반드시 독일 국기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의 무역은 무력과 폭력으로 강제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암흑시대의 경제 암흑시대의 영웅호걸은 자국의 부성(富盛) 함을 위하여 항상 다른 국가를 침략하고, 그 재부(財富)를 약탈하고, 그 공물과 조세를 징수하였다. 칭기즈칸(成吉士汗), 티무르(帖木兒)의 경제는 이와 같은 것이었다. 만약 제국주의자로서 오직 다른 만족(蠻族)을 압도하여 그 땅을 빼앗고, 그 사람을 신복(臣僕)으로 삼아 그들에

제국주의-제 Ⅵ장 3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3절 이민의 필요 영국 제국주의자가 대제국 건설이 필요하다 하는 첫 번째 논거는 이민(移民)에 있다. 그들은 소리쳐 말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는 해마다 늘고(繁殖), 빈민이 날로 증가하니. 판도 확장은 과잉된 인구 이주를 위해 그만둘 수 없다고. 일견 -106- 꽤나 타당한 듯하다. 인구 증가와 빈민 영국과 독일의 인구 증가는 사실이다. 빈민의 증가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빈민이 증가하는 원인(因由)을 전적으로 인구 증가로 돌릴 수 없다. 빈민의 구제는 해외 이주 외에 대책이 없는가? 이는 한번 생각해 볼 바이다. 저들의 말과 같다면 그 논리는 곧 인구가 많으면 재부(財富)가 궁핍해지고, 인구가 희소하면 재부가 넉넉하다고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습지 않은가? 이는 실로 사회 진보의 대법(大法)을 무시하는 것이다. 소셜 사이언스(social science)를 무시하는 것이다. 경제의 학문적 원리(學理)를 무시하는 것이다. 날짐승과 들짐승, 물고기

제국주의-제 Ⅵ장 2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2절 국민의 팽창인가 제국주의자는 말한다. 고대의 대제국 건설은 진실로 제국 정치가의 공명심과 이욕(利慾)으로 인한 것이지만, 현재 영토의 확장은 그 국민의 팽창을 그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고대의 제국주의는 개인적 제국주의이지만,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이름하여 '국민적 제국주의'라 칭할 만한 것이라고. 따라서 고대의 불의와 해악으로 행한 바를 가지고 결코 오늘날의 제국주의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참으로 그러한가? 오늘날 제국주의는 국민의 팽창 때문인가? 이는 소수 정치가와 -96- 군인의 공명심의 팽창이 아닌가? 이는 소수 자본가와 소수 투기꾼의 이욕 팽창이 아닌가? 보라, 저들이 소위 ‘국민의 팽창’이라 하는 일면에서는 그 국민 다수의 생활 전투(struggle)가 나날이 격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빈부는 더욱 현격해지고 있지 않은가? 빈부와 굶주림(飢餓)과 무정부당(anarchist) 및 이와 관련한 죄악은 더욱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데

제국주의-제 Ⅵ장 1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1절 야수가 먹이를 구하다 야수가 그 이빨을 갈고 그 발톱을 다듬어 포효하는 것은 먹이를 구하는 까닭이다. 야수적 천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들 애국자가 그 무력을 길러 군비를 확장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미신, 허풍(虛誇), 호전적인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희생물을 구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애국심과 군국주의의 열광이 정점에 달할 때에, 영토 확장 정책이 전성기의 극에 이르는 것은 원래 괴이하지 않은 바이다. 오늘날 소위 제국주의 정책의 유행은 곧 이런 까닭일 뿐이다. 영토 확장 그렇다, 이른바 제국주의는 곧 대제국 건설을 의미하니, 대제국 건설은 바로 종속(領屬) 판도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91- 종속 판도의 대 확장은 많은 부정과 불의를 의미함을, 많은 부패와 타락을 의미함을, 그리고 마침내 영락과 멸망을 의미함을 애처로워한다. 무엇으로 이를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무릇 대제국 건설이 오직 주인 없고 주민 없는 잡초 우거진 황무지

여성의 개주(Ⅲ-1) [내부링크]

Ⅲ. 서양 여전(女傳) 1880년대 중반에 출현한 여성 잡지에 실린 여전(女傳)에는 『본조열녀전(本朝列女傳)』으로 대표되는 개화기의 열녀전 계열 텍스트 군이 선행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은 잡지 상의 여전 가운데 ‘화한(和漢)’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예화와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이 에도시대에 출판된 ‘열녀전(列女傳)’의 번각 또는 초록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약간의 개정이나 개편을 가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지는 않았지만, ‘문명국’으로서 구미 국가의 여성 전기가 몇 가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1870년대의 선행 텍스트 가운데 여성 잡지 지상의 여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 편의 텍스트를 들어 검토하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서양 여성에 관한 전기적 기술의 번역 혹은 이들을 편찬한 읽을거리로, 여성 잡지가 게재한 ‘여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전기라는 언설이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기능과 그 변화에 공

여성의 개주(Ⅱ) [내부링크]

Ⅱ. 여성 잡지의 출현과 전기(傳記)란의 의미 1880년대 중반은 여성을 독자로 상정한 잡지가 연이어 발행된 시기였다. 그 선구가 된 『여학신지(女學新誌)』는 창간호(1984년 6월)부터 「열전(列傳)」란을 마련하고, 거의 매호에 여성의 전기를 게재하고 있다. 이듬해 7월 창간한 『여학잡지(女學雜誌)』에서는 특별히 칼럼의 이름까지는 짓지 않았지만, 메이지 유신의 혼란에 의한 빈궁 속에서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한 ‘가와시마 야에코(川島八重子)’라는 여성의 전기가 연재되어 있다. 이 잡지는 판형을 확대한 제11호(1885.12.20)부터는 『가전(佳傳)』이라는 이름의 난을 신설하고 매호 빠짐없이 ‘가인’의 전기를 게재하였다. 『여학잡지』보다 5개월 늦게 탄생한 『여학총지(女學叢誌)』 또한 「내외열녀전(內外列女傳)」이라 명명한 난을 마련하고, 그 이름대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여성의 전기를 발굴하여 게재하고 있었다. 『여학잡지(女學雜誌)』 창간호 표지 Image: wikipedia.org 여성

여성의 개주(Ⅰ) [내부링크]

Ⅰ. 여전(女傳)의 전사(前史) 1. 근세 이전 전한(BC.206년~AD.8년) 말에 성립된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은 중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일대로 파급되었다. 일본으로의 전파에 대해서는 9세기 말까지는 조대가(曺大家: 班昭)가 주석한 15권 본이 일본에 수입되었던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박재본(舶載本)은 희소하고 귀중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인 교양층(예외적인 여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남성이다)도 소수였기 때문에, 그 수용은 원전 혹은 사본을 통해서 극히 좁은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후 수백 년간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태에 변화가 일어난다. 『열녀전』은 『속(續) 열녀전』과 함께 수종의 화각본(和刻本)이 출판되었고(1653년에는 『속 열녀전』을 더한 북송의 8권 본 및 명대 만력(萬曆) 34년 본, , 이듬해인 1654년에는 명대에 편찬된 3책 본 『신속(新續) 열녀

여성의 개주-소개 [내부링크]

여 성 의 개 주 근대 일본의 ‘女傳’이라는 언설 저자: 히라타 유미(平田由美) 출처: 『대동문화연구』, 65권, 대동문화연구원, 2009. pp.111~150. 목차 Ⅰ. 여전(女傳)의 전사(前史) Ⅱ. 여성 잡지의 출현과 전기(傳記)란의 의미 Ⅲ. 서양 여전(女傳) Ⅳ. 미디어 속의 여성 표상 1, 본 논문의 번역에 대하여 이 글은 위의 출처에서 보이듯 본인이 번역하여 이미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따라서 각주가 달린 완역본은 PDF 파일로 자유롭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다시 여기에 번역한 이유는 자유롭게 사진 자료를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고, 일부 어려운 번역문을 다소나마 평이하게 풀어내 보고자 한 것이다. 2. 저자 히라타 유미 논저자 히라타 유미(平田由美)는 현재 일본 오사카 대학 문학연구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는 초기에는 메이지 시기 저널리즘과 근대 문학 생성 간의 문제, 새로운 어휘의 수용에 따른 언어문화의 변용 문제 등을 주로 연구하였다. 2000년

부인과 전쟁-러일전쟁기 어느 일본 지식인의 생각 [내부링크]

부 인 과 전 쟁 저자: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1871~1911) 출처: 『家庭雑誌』 第 2巻 第 2号 明治 37年(1904년) 2月2日. 일본과 러시아의 평화는 마침내 깨져 이제 양국은 방패와 창을 서로 주고받는 불행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때 내가 여성 사회에 대해 시비를 한번 따져볼 일은 여성과 전쟁의 관계라는 문제이다. 군인의 처로서 말하길 “남편이 떠나 있을 동안에 가능한 한 면밀하게 가사를 처리하고, 조금도 (남편이) 가정에 대해 근심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일반의 처 역시도 말하길 “저는 연금이라도 내서 다소나마 국가를 위해 진력하고 싶다. 간호사가 되어 불쌍한 부상병을 돌봐주고 싶다”고 한다. 전쟁에 대한 여성 사회의 동정(同情)과 각오는 이와 같아 지금은 오직 이 같은 감정에 머물러 있다. 현재 신문지상에서도 이를 칭찬하거나 이를 종용하느라 분주하다. 내 의견은 차라리 보통·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인생의 꽃이자 아름다움이어야 할 여성 사회에서는

제국주의-Ⅴ.결론 [내부링크]

Ⅴ. 결론 신천지 경영 오호라 20세기의 신천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이 신천지의 경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이를 교란(攪亂) 한다. 우리는 도덕의 융흥(隆興)을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이를 파괴한다. 우리는 생산 분배의 공평을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불공평을 격성(激成) 한다. 문명의 위험에 실로 이보다 큰 것은 없다. 20세기의 위험 이는 나 개인의 말이 아니니, 작년 『뉴욕 월드(New York World)』 신문이 「20세기의 위험」이라는 제하에 구미 여러 명사의 의견을 구하였는데, 이에 응답한 자는 군비주의(軍備主義), 제국주의가 두려워할 만하다고 하는 이가 매우 많았다. 프레데릭 해리슨(Frederic Harrison, 1831~1923)은 말하길, 장래 정치사의 위험은 구주 열국이 지나친 군대 병함(軍隊兵艦) -131- 및 군자금을 축적하는 데에 있으며, 그 결과는 바로 그들의 통치자 및 인민을 꾀어 주로

제국주의-제 Ⅵ장 6절 [내부링크]

제 Ⅵ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6절 제국주의의 현재와 미래 위와 같이 본다면 소위 제국주의의 현재와 장래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바로 경멸해야 할 애국심을 행하고, 미워해야 할 군국주의로써 행하는 정책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곧 타락과 멸망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제국의 건설은 필요가 아닌 욕망이요, 복리가 아닌 재해이며, 국민적 팽창이 아닌 소수의 공명(功名) 야심(野心)의 팽창이며, 무역이 아닌 투기이며, 생산이 아닌 강탈이며, 문명의 부식(扶植)이 아닌 문명의 파괴이다. 이것이 어찌 사회 문명의 목적이겠는가? 국가 경영의 본지(本旨)가 되겠는가? 이민(移民)을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라, 이민은 영토의 확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26- 무역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 말라. 무역은 결코 영토의 확장을 필요치 않는다. 영토의 확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군인과 정치가의 허영심일 뿐이며, 금광과 철도의 이익을 좇는 투기꾼일 뿐이며, 군수물자를 공급하

식민지 조선에서의 언어 운동 전개와 그 성격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내부링크]

식민지 조선에서의 언어 운동 전개와 그 성격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미쓰이 다카시(三ツ井 崇) 출처: 『歷史學硏究』 No.802, 역사학 연구회 편집, 2005.6. pp.19~29.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조선어의 「근대화」라는 시각 Ⅲ. 언어 운동의 「근대성」과 「식민지성」 Ⅳ. 결어를 대신하여 Ⅰ. 들어가며 「국(민)어」(이하 「국어」)의 형성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한 요건이었다. 어떤 언어가 「국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해당 언어가 서기언어(written language)로서 규범을 획득하고, 네이션을 대표하는 통일적인 표준형이 만들어지는 것에 의한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해당 언어의 화자에게 있어 모어(=속어)에 의한 언어 통일이며, 구체적으로는 철자법(정서법)의 정리, 「표준어」의 획정, 사전의 편찬이라고 하는 일련의 실제적 정비를 그 과정으로 겪게 된다.(이 과정을 본고에서는 「규범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언어와 국민국가 형성의 관계를 다루는

일본의 언론 법규 [내부링크]

일 본 의 언 론 법 규 저자: 카노 마사나오(鹿野政直) 출처: 『近代日本思想案內』, 岩波文庫, 1999, pp.351~376 목차 Ⅰ. 언론 법규의 기원 Ⅱ. 언론 탄압의 역사에 대한 연구들 Ⅲ. 출판법과 신문지법 Ⅳ. 총력전 체제하의 언론 규제 Ⅴ. 검열과 복자 Ⅵ. 편집자 미마사카 타로의 경우 Ⅶ. 점령과 검열 Ⅰ. 언론 법규의 기원 사상을 펼치다 보면 종종 필화(筆禍)나 설화(舌禍)를 초래합니다. 직접적으로 문제가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이를 감시하는 법 체제가 정비되어 있으면, 표현 활동은 그 틀을 의식하여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일본의 표현자들은-문필가들의 경우 한 행 한 행을, 영화감독은 한 컷 한 컷을, 연설자의 경우라면 목청마다, 편집자들의 경우에는 한 권 한 권마다-혹여 형사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염두에 두면서 사회를 향해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오늘날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표현이라는 행위와 동반했던 것이지요. 규제의 틀을 결정해 놓은 것이 언

참고문헌 [내부링크]

[1차 자료] 『東京曙新聞』, 『繪入自由新聞』, 『明六雜誌』, 『婦女鑑』, 『婦女雜誌』, 『女鑑』, 『女學生』, 『女學新誌』, 『女學雜誌』, 『女學叢誌』, 『日本之女學』, 『つぼみ』 宮崎嘉國 역, 『西洋列女傳』, 1879 白勢和一郞 초역, 『泰西列女傳』, 1876 田島象二 편, 『西國烈女傳』, 1881 [단행본] 와카쿠와 미도리 저, 건국대학교 역, 『황후의 초상―쇼켄 황태후의 표상과 여성의 국민화』, 소명출판, 2007 히라타 유미 저, 임경화 역, 『여성 표현의 일본 근대사』, 소명출판, 2008 高山一彦, 『ジャンヌ․ダルク―歷史を生き続ける 「聖女」』 , 岩波書店, 2005 文部省 편, 『學制百年史』, 帝國地方行政學會, 1972 小山静子, 『良妻賢母という思想』, 勁草書房, 1991 小山静子, 『家庭の生成と女性の国民化』, 勁草書房, 1999 若桑みどり, 『戰爭がつくる女性像―第二次世界大戰下の日本女性動員の視覺的プロパガンダ』, 筑摩書房, 1995 長澤規矩也‧阿部隆一 편, 『日本書目大成』

여성의 개주(Ⅳ) [내부링크]

Ⅳ. 미디어 속의 여성 표상 18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일본의 교육제도는 “인의충효(仁義忠孝)를 밝히고 도덕의 학(學)은 공자를 주”로 할 것을 선언한 「교학성지(敎學聖旨)」(1879)에 따라 메이지 초년의 계몽주의적 교육 체제로부터 유교주의적 체제로 대전환을 하고, 「교육칙어」(1890)의 포고를 결정판으로 “국민 도덕”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교육 체제가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얼핏 보면 근대주의적 교육관에서 보수주의적인 것으로 후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인의충효의 길”이 근세 유학과 같이 일부의 특권 계급에 한정되어 있어서는 국민 교육의 성취는 가망이 없다. ‘국민 도덕’의 형성과 보급은 모든 사람들이 ‘신민’으로서 동등하게 의무를 짐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설령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신분제도의 혁파와 사민평등이라는 근대의 이념이 거기에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근대의 여성 규범도 ‘현모양처’ 사상의 원천이라 일컬어지는 「선량한 어머니를 육성하

여성의 개주(Ⅲ-4) [내부링크]

Ⅲ. 서양 여전(女傳) 4. 덕행의 ‘주체(subject)’―‘열녀(烈女)’라는 애국자 앞서 언급했듯이, 『女學雜誌』는 1885년 5월에 편집의 중심인물인 곤도 겐조와 이와모토 요시하루 두 인물을 잃고 일시 휴간에 들어갔다. 2개월 후에 간행된 24호(1885.7.30)는 제호만 있던 표지에 삽화를 넣고, 동시에 새로운 여전(女傳) 란을 마련하여 ‘새로 단장’한 인상을 풍겼다. 다지마(田島象二)가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나라의 도읍(奈良の都)」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여전 란의 취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본·중국·서양의 구별 없이, 여성으로서 용감한 행동을 한 자는 우리나라의 벚꽃에 해당할 터이다. 어찌 和漢洋을 구별하여 벚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난은 고금 각국의 정렬의용(貞烈義勇 ) 혹은 충효인애(忠孝仁愛)로 유명한 여성의 전기를 기술하여, 다소나마 가르침의 재료로 삼고자 한다. (강조점은 필자) 이 취지에 의거하여 연재된 「마거릿전」은 다지마의 『서국열녀전(西國烈女傳

여성의 개주(Ⅲ-3) [내부링크]

Ⅲ. 서양 여전(女傳) 3. ‘列女’에서 ‘烈女’로―다지마 쇼지 편 『서국열녀전(西國烈女傳)』 『서국열녀전(西國烈女傳)』의 겉표지 Image: kosho.or.jp 다지마(田島象二)의 『서국열녀전(西國烈女傳)』(1881)은 그 제목에서 명확히 알 수 있듯 ‘열녀(列女)의 전기'가 아니라 “열녀(烈女)”들의 전기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권말에는 『서국열녀전 제2편』의 근간 예고가 있는데, “멸망 직전의 프랑스 제국을 구하고” 자신의 몸은 “화형”에 처해진 잔 다르크나, “혁명당에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받다가 종국에는 웅변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이 된” 롤랑 부인 등, “정부(貞婦)와 효녀 그리고 용렬(勇烈)한 여성의 전기”를 게재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1개월여 안에 간행될 예정이었을 것으로 판단하면 원고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어떤 사정에서 출판되지 않았는지 제2편의 현존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광고문을 통해 보는 한 속편 역시 1

여성의 개주(Ⅲ-2) [내부링크]

Ⅲ. 서양 여전(女傳) 2. 적합한 텍스트의 선택―미야자키 요시쿠니 역 『서양열녀전(西洋列女傳)』 【그림 1】 『서양열녀전(西洋列女傳)』 Image: nijl.ac.jp 원전이나 간행 배경도 명확하지 않은 『태서열녀전(泰西列女傳)』에 비해 『서양열녀전(西洋列女傳)』(1879)의 경우 그 전거나 번역 사정이 매우 명확하다. 『부녀필독<婦女必讀> 서양열녀전』이라는 제목이 기재된 표지에는 표제의 우측에 “영국 엘리자베스 스털링(Elizabeth Stirling) 저”, 좌측에 “일본 미야자키 요시쿠니(宮崎嘉國) 역”이라고 쓰여 있고, 그 위에는 "Starling's Noble deeds of Women"이라고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림 1】 참조 ) 번역자 미야자키는 본서 이외에도 수종의 영어 학습서를 저술했는데, 경력 등에 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서언에 의하면 번역자 미야자키는 처음에는 경제 관련 서적의 번역을 기획했지만, 이를 상담했던 가타야마 준키치(片山淳吉)가 경제 서적은

제1장 색정의 에티카(3) [내부링크]

3. 민중의 망상력 페니스의 은혜가 부모보다 높다 菱川師宣의 대표작 <돌아보는 미인(見返り美人)> 에도 시대 풍속 회화의 조류를 이루어 일본 회화 역사상 가장 만개한 결실을 가져온 에도 중기의 풍속 화가가 바로 히시카와 모노로부다. 그의 필선은 우아하고 묘사는 치밀했다. 그는 정력적으로 활동하여 육필화, 병풍, 두루마기, 족자, 판각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회화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특히 위의 작품 <돌아보는 미인>과 같은 일인 입상(一人立像) 양식의 미인 화풍은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후대에 유행시켰다. Image:wikipedia.org 히시카와 모노로부(菱川師宣:1618~1694) 니시카와 스케노부(西天祐信)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1725~1770) 토리이 키요나가(鳥居淸長:1752~1815)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1753~1806) 우타가와 토요쿠니(歌天豊國:1769~1825)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 카츠시카 오이(葛飾應爲: 호쿠사이의 딸

제1장 색정의 에티카(2) [내부링크]

2. 색정의 사상 잇사의 성생활 하이쿠의 가객 잇사 잇사는 1777년 나가노현 시나노마치 카시하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삶은 고통과 역경의 연속이었으며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그는 빛나는 하이쿠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나지만 일찍 생모와 사별하고 계모와 배다른 형제와 함께 살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계모에 의해 거의 쫓기듯 에도로 나와야 했다. 아버지의 사망과 복잡한 재산상속권 문제가 해결돼 다시 고향인 카시하라에 돌아와 정주할 수 있게 된 때는 그의 나이 쉰하나였다. 만년에 키쿠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얻지만 이 역시 차례차례 모두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을 만큼 그의 삶은 항상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Image:sumida.tokyo.jp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1763~1827, 하이쿠 시인)가 집요하게 아내와의 성교 횟수를 자신의 일기에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잇사는 1814년(文化 11년) 52세가 되어 처음으로 부인을 두었다.

제1장 색정의 에티카(1.2) [내부링크]

1. 만개한 색 문화(2) 생산의 기관과 쾌락의 기관 신腎은 생명의 정수로서 신수腎水 즉 정액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섹스에 의해 신수를 낭비하여 ‘신기가 허하게 되면 일신의 근본이 쇠하게 된다’, 즉 신허(腎虛:한의학에서 과로나 지나친 성생활, 만성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병으로서 하초가 허약해지는 병이다. 병증은 식은땀이 나거나 허리가 시큰거리고 유정遺精 · 음위陰痿의 증상이 나타난다-역자 주)가 된다. 당시 이 신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었다. 따라서 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수양법을 가르치는 것은 양생론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음식양생감」에서는 정신의 숙소가 되는 신腎에 있어 ‘음사淫事를 과하게 좋아하는 자, 몸이 빨리 허약해짐을 알아야 한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과도한 섹스房事를 경계하고 있다. 「방사양생감」의 첫머리에는 ‘대체로 인간의 무병장수 문제는 먹고 마시는 것과 섹스에 있다. (중략) 이 그림에 있는 여성은 섹스에 대한 바를 묘사한

제1장 색정의 에티카(1.1) [내부링크]

1. 만개한 색 문화(1) 식색食色에 대한 관심 음식양생감 「음식양생감(飮食養生鑑)」과 「방사양생감(房事養生鑑)」이라는 제목의 흥미진진한 니시키에(錦繪)가 있다. 이 그림들은 1855년(安政 2)에 그려진 것이다. 화가는 이치유사이 쿠니요시(一勇齋國芳:1798~1861)의 문하생이었던 이쯔토사이 요시쯔나(一登齋芳網)이며, 그림에 들어간 문장은 게이사이 에이센(溪齋英泉)의 문인인 이쯔비쯔 안에이쥬(一筆庵英壽)이다. 이 그림은 19세기 중엽 에도시대 후기의 심신관(心身觀) · 인간관 · 질병관 그리고 사유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방사양생감 「음식양생감」은 일본풍(和風) 상투를 튼 모습에 술잔을 들이키는 건달인 듯 보이는 도시 상인풍의 남자가 주인공이며, 「방사양생감」은 장식용 빗, 비녀, 화잠을 꽂은 효고현(兵庫縣) 지방의 머리 올림을 한 모습으로 입에 장죽을 물고 있는 유곽의 창녀풍 여성으로 각각 당시의 남녀를 대표하고 있다 하겠다. 가라쿠리 인형에 대한 취향 때문일까? 남성과 여성

프롤로그(2) [내부링크]

序 기타무라 토코쿠, 처녀를 논하다(2) 근대가 낳은 섹슈얼리티 성적인 것이 범람하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그러나 토코쿠에게 있어서 ‘처녀의 순결’이 연애와 함께 담론화되는 순간, 욕정이나 육체적 사랑은 열등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것은 근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에 의해 잉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잊혀버린 이러한 근대가 낳은 섹슈얼리티, 이것을 수식하는 담론 discourse을 찾아내어 지금 한번 비교해 보자. 우선 미셀 푸코 M. Foucault의 「성性의 역사- 앎에의 의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적혀있는 언설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작해 보고자 한다. 16세기 이래 성의 담론화는 제약을 받기는커녕, 더욱 증대하는 선동의 메커니즘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성에 대하여 작동하는 권력의 기술은 엄밀한 선별 원칙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다형적 성 현상의 분산과 침투의 원칙을 따랐다는 것, 앎에의 의지는 폐지해서는 안 되는 금기(禁忌)의

프롤로그(1) [내부링크]

序 기타무라 토코쿠, 처녀를 논하다(1) 처녀란 무엇인가? 기타무라 토코쿠 Image:book.asahi,com 기타무라 토코쿠(北村透谷:1868~1894). 그는 장시(長詩) 「초수지시(楚囚之詩)」나 극시(劇詩) 「봉래곡(蓬萊曲)」, 평론 「인생과 관련한 것은 무엇인가?」, 「내부 생명론(內部生命論)」 등을 저술하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시인이다. 토코쿠는 「처녀의 순결을 논한다」(1892년(明治 25))라는 조금은 민망한 제목의 평론 한편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 문학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 문학의 선배는 처녀의 순결을 존중할 줄 몰랐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의 극작가는 물론이요, 과거의 가객(歌客) 그리고 그 영묘한 염세주의적 사상가들도 끝내 처녀의 순결을 찬양함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한없는 세월 속의 이 외로운 과객은 비평을 위한 벼루 앞에서 우선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구나. 아아, 처녀의 순결에 대하여 단연코 옷깃

목차 [내부링크]

서언 기타무라 토코쿠, “처녀”를 논하다 제1장 색정의 에티카 1. 활짝 핀 色문화 2. 색정의 사상 3. 민중의 망상력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 1. 일본식 성과학 「태내 10개월」 2. 범람하는 근대 성과학 3. 규범화되는 섹슈얼리티 4. 섹슈얼리티의 성기화 5. 자궁의 근대 제3장 성욕의 시대 1. 키워드로서의 성욕 2. 성욕의 계보 3. 「이불」의 충격 4. 성욕의 사회화와 의학화 제4장 성(性) 가족의 초상 1. 「세이토靑鞜」의 새로운 여성들 2. 성 가족의 비극 3. 신경병 시대의 성욕 4. 성 가족의 행방 제5장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신화 1. 성 생활을 위한 정보 2. 남성다움의 병 3. 여성스러움의 병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 1. 일본의 모성 2. 전쟁 속의 모성애 아이콘 3. 죽음을 가르치는 일본의 어머니 4. 국가에 사로잡힌 모성 참고문헌 후기

책 소개 [내부링크]

講談社選書 metier:1996년 이 책은 1996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간되었다. 원제목은 [セクシュアリティの近代]. 이 책이 발해되던 그해 바로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관 신착 도서로 들어왔을 때, 제목에 꽂혀 단박에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번역을 하고 잊은지 또 이십 년 가까이 흘렀다. 그 시절에는 이 책을 잡고 모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제목 자체가 당시로선 꽤나 섹시했으니까. 카와무라 쿠니미츠 Image:google 저자 카와무라 쿠니미츠(川村邦光)는 1950년생으로 이제는 정년 퇴직을 했다. 도호쿠 대학을 졸업한 후 텐리 대학을 거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오사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전공 분야는 일본 국학 가운데 종교와 민속 문화에 관한 것이다. 특히 민중의 죽음, 성, 무속에 대한 관념이 일본 근대 이행 과정에서 어떻게 지속, 변용되어 가는지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본서는 이러한 그의 관심사 가운데 일본 색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5.2) [내부링크]

5. 자궁의 근대(2) <질병의 기관>으로서의 자궁 「통속조화기론」에서 여성은 신으로부터 ‘생산을 위한 성’으로서 자궁을 부여받았다고 하였다. 자궁의 ‘신비로움과 불가사의함은 뛰어난 지력의 인간도 알 수 없다’며 신비성을 부여하였던 곳이 이제 생리학적 작용과 메커니즘으로 명확히 설명되고 있다. 여성 신체의 메커니즘이 과학적 · 의학적 담론에 의해 포섭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월경의 메커니즘은 ‘달거리’, 또는 ‘월사(月事) · 월객(月客)’이라는 말로 표상화되었던 데에서 알 수 있듯 자연적 사이클에 의한 것이 아닌, 이미 내성기內性器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강조되는 것은 <질병의 기관>으로서 자궁이다. 난소에서 난자가 충분하게 성숙한 때에는 난소를 떠나 굴같이 기묘한 모양의 나팔관이라는 관을 따라 자궁으로 내려간다. 이 일은 건강한 부인에게는 28일마다 매번 일어난다. 이렇게 성숙한 난자가 난소를 떠나는 때에는 염증이 일어나, 월액(月液)과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5.1) [내부링크]

5. 자궁의 근대(1) ‘좋은 아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인간교육초」에서도, 「부모의 은혜를 가르치는 그림」에서도 ‘똑똑한 아이’ ‘건강한 아이’ ‘예쁜 아이’를 낳는 것이 남녀 서로에게 요구되었지만, 이 역시 <생산을 위한 기관>으로서의 여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위해 부차적으로 봄과 여름의 성교, 남녀의 화합, 신체의 건강함,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신체 건강한 자에게 건강한 자녀’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발동하여 정욕을 통해 서로 사랑함으로써 정精이 가득한 골수를 아기에게 전하여 뛰어난 자녀를 낳게 된’다는 말에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겠다. 특히 여성에 대하여 임신 중에는 ‘사악한 것은 절대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당시 여성들의 상황에서는 너무도 무리한 목가적 태교가 권장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통속조화기론」에서도 「인간교육초」 등과 같은 담론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세상에 뛰어난 호걸이라 불리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4) [내부링크]

4. 섹슈얼리티의 성기화 남성을 위한 <쾌락의 기관> 「조화기론」에서는 남성 가운데 ‘색정이 없는 자가 드문’것에 비하여 여성은 ‘음욕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가 적고 (중략) 시비를 분별하는 지혜가 결핍되어 있으며, 오로지 사랑받는 것만을 바라며 자신에게 친절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남자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생각 밖에 없’다고 남성과 여성의 성적 욕망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성적 욕망의 담백함을 강조하는 한편 여성이 수동적이며, 감정적 · 정서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윤리적으로 무능하여 컨트롤하기 쉬운 존재, 나아가 애완물인 ‘창부娼婦’와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원래 여자는 남자의 애정을 끌어내는 아름다운 자세와 교묘한 눈짓을 지니고 있어, 자연히 장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의 ‘색정’과 ‘음욕’에 의해 여자는 개발되고, 남자의 성적 욕망에 종속된다고 보고 있다. 즉 여성은 남성을 위한 쾌락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3) [내부링크]

3. 규범화되는 섹슈얼리티 올바른 섹스 「통속조화기론」에는 앞서 살펴본 니시키에와 마찬가지로 성애性愛를 둘러싼 담론 역시 엿보인다. 예를 들면 ‘섹스의 쾌락은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에서부터 발동하는 것이다. 이런 소통하는 느낌을 애정이라고 한다. 만약 부부간에 화목하지 않아 이 애정이 없을 때에는 서로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모든 일에 어긋남이 없는 듯 기운을 다스리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애정이 다시 생기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의 심적 융화와 화합 그리고 애정의 자연적 발로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교합이란 부부의 정신과 신체가 평안한 상태에서 서로에 애정을 느낄 때 성교하는 것을 말한다’면서 부부간의 정신과 신체의 조화, ‘정情’의 교섭, 애정에 관해서도 다시 한번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올바른 섹스’, 즉 <부부의 도(道)>라는 것이다. 이같이 남자의 여자에 대한 성교의 강요를 경계하고, 여성의 의사에 대한 존중을 역설하는 부분에서 근세적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2) [내부링크]

2. 범람하는 개화기 성과학 서양 문화의 유입 문명개화기가 되자 다양한 서양 문화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서양 성 과학과 관련한 서적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의외로 빨라서 1875년(明治 8)의 일이었다. 애쉬턴 제임스(Ashton, James, 善亞頓)가 저술하고 치바 시게루(千葉繁)가 역술한 「조화기론(造化機論)」(원제는「The Book of Nature」로 1870년 뉴욕에서 출판되었다-역자 주)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지개략(文明之槪略)」이 간행되었고, 또한 마쓰모토 료준 막부 말기 의사)이나 나가요 센사이(長与專齋:1838~1902, 의학자 · 정치가) 등에 의해 도쿄 의학회사가 설립되고 「의학잡지」가 창간된다. '개화문물'開化文物이라고 불리는 문명과 구폐舊弊를 대조하여 옛 폐단을 비웃는 서적들이 출판되고, 1874년에 창간된 「메이로쿠 잡지(明六雜誌)」를 통해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의한 계몽활동이 성행하였다. 또한 서양 의학이 국가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1.3) [내부링크]

1. 일본식 성과학 「태내 10개월」(3)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이자나기 · 이자나미 신화 「부모의 은혜를 가르치는 그림」 다음 「부모의 은혜를 가르치는 그림」(1882년)의 내용을 보자. 처음에 ‘석존께서 가라사대 한번 여자를 범하고 승려가 된 자는 삼세三世에 반드시 불구로 태어난다 말씀하셨으며, 공자는 더욱 편견으로 가득 차 여자와 함께 앉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중략) 이토록 완고하였으나 이제 개화의 시기에 이르러 이 같은 편견에 가득 찬 학자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면서 석가나 공자의 미망과 완고 몽매함을 비난하고, 개화의 세상에는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편향된 학자가 없다 말한다. 다음 말하고 있는 것은 이자나기 · 이자나미 신화이다. 옛날 우리 일본 아키츠쿠니(秋津國)에 음양陰陽의 두 신이 하늘에서 구름다리를 타고 내려와 거주하시었다. 서로 살펴보시면서 두 신이 말하길 음신이여, 두 다리 사이에 움푹한 곳에 명혈이 있고, 나 역시 그곳에 육신肉身이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1.2) [내부링크]

1. 일본식 성과학 「태내 10개월」(2) 여성의 태내胎內 순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인간 세태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던 문장가인 사이토 겟신(齋藤月岑:1804~1878)은 「무강연표(武江年表)」에는 ‘센소지(淺草寺) 오쿠야마(奧山)에 인형 제작가인 다케다 누이노스케(竹田縫之助)가 만든 살아있는 듯한 이키닝교(活偶人形)라는볼거리가 나왔다. 임신한 여인의 뱃속을 들어내 십 개월의 변화 과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놓았으며, 그 외에 인형의 움직임도 볼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막부 말기인 1864년(元治 원년) 3월의 일인데 19세기 말 후반에는 여성의 등신等身 모형 인형 안에 태아를 집어넣은 ‘태아시월(胎兒十月)’이라는 구경거리도 센소나 료코쿠(兩國) 등지에서 흥행하고 있었다. 자궁 안의 태아를 형상화한 인형 메이지 초기에도 이 같은 볼거리는 계속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오사카(大阪) 센니치마에(千日前)에 위치한 극장에 나체 여성의 복부를 열고, 자궁

제2장 문명개화의 Sexology(1.1) [내부링크]

1. 일본식 성과학 「태내 10개월」(1) 임신을 묘사한 니시키에 19세기 말 문명개화기에 서양의 성과학 sexology과 산부인과 의학 서적이 하나 둘 번역되어 들어왔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 성적인 문제, 즉 섹슈얼리티에 관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식과 신체 영역이 파고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남녀의 성기, 거기에 국한된 욕망을 둘러싼 지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된 인간이 탄생함을 의미한다. 여태까지의 색이나 색도의 영역은 남녀의 성기에 국한되지 않은 유희로서, 그 지식은 유희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문명개화기 서양의 산부인과학 · 성 과학은 지식의 계몽과 유포에 전념하는 한편, 여태까지의 근세적 산부인과학 · 양생론 역시 여전히 함께 혼재되어 있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근세적 산과학은 서양의 산부인과학에 의해 전면적으로 대체되었으며, 양생론은 서양의학과 성 과학에 압도되어 버렸다. 이 시기 성 과학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통속적 지식의 형태나 담론 속에서

제3장 성욕의 시대(3.2) [내부링크]

3. 소설 「이불(蒲團)」의 충격(2) 암울한 상상력 요시코의 귀향이 결정되자 토키오가 요시코를 생각하며 <번민>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토키오는 ‘요시코의 영혼과 육체’를 전부 빼앗겼다는 사실에 화가 나 이렇게 말한다. ‘처녀의 절개와 정조를 존중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나도 대담하게 손을 뻗어 성욕의 만족을 얻었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망상 속에서 요시코를 매춘부(賣女) 같이 취급하고는 번민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단지 성욕만을 채우기 위한 성행위는 창부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으로, 성욕 그 자체도 창부와 같이 저속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망상 속에서 성욕이 격렬하게 터져 나오게 된다. 여기서 ‘소녀가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격렬하게 울던 것을 쓰고 있다’라고 하는 모파상의 소설 「아버지」의 한 구절을 생각해 내고는 이 ‘암울한 망상’에 탐닉하는 한편, ‘암울한 상상에 저항하는 힘’ 이른바 이성이 나타나 투쟁하고 번민하며 고뇌하는 성욕을 둘러싼 갈등을 반복

제3장 성욕의 시대(3.1) [내부링크]

3. 소설 「이불(蒲團)」의 충격(1) 자연주의 문학의 출현 인간의 본능을 지적하는 말로서 성욕은 그다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1907년경을 기점으로 <성적인 본능이나 욕망>을 표현하는 말로서 급격하게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카타이의 「이불」(1907년 작)을 시작으로 ‘자연주의’라고 하는 문학 사조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이 자연주의의 출현이라는 사회적 사건, 말하자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됨으로써 성욕이라는 말이 세간에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야마 카타이 Image:wikipedia.org 당시 세간에 떠도는 평가에 의하면 자연주의(혹은 자연주의 문학)라는 것은 애욕愛慾의 고백, 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문예 운동이었다. 그 대표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 바로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의 소설 「이불」이었다. 「이불」을 가장 먼저 평가한 것은 문예 평론가이자 극작가인 시마무라 호게쯔(島村抱月;1871~1918)였다. 그는 1907년 잡지

제3장 성욕의 시대(2) [내부링크]

2. 성욕의 계보 “성욕”이라는 말 ‘성욕’이라는 말은 요즘 그다지 통용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섹스, 또는 정력의 강약 정도만이 직접적으로 이야기될 뿐, 성욕은 진부한 섹스 지침서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느낌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정력 강화제 광고는 여전히 세상을 떠돌고, 청년층의 섹스리스 sexless나 노인의 섹스가 화제가 되거나, 성희롱 강간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정력의 유무가 개인의 정신적 고통으로 회자되는 것처럼, 성욕은 여전히 민감한 문제로서 건재하고 있는 것 또한 확실하다. 성욕에 딱 맞는 단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굳이 사전을 들어 찾아보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이 말의 의미를 찾으려 해도 이미 답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1960년대 전반만 해도, 성욕이란 말은 그다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하물며 일상적 언어로써 사용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어

제3장 성욕의 시대(1) [내부링크]

1. 키워드로서의 성욕 성욕과 근대 가족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담론에서 급작스레 특권적 지위를 점하게 되는 개념이 출현한다. 그것이 바로 ‘성욕性欲’이다. 인간의 전 존재(全存在), 인간의 본질, 나아가 내면적 본질을 규정하는 의미로 성욕은 확실히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성욕이라는 말은 1910년대 즈음부터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20년대가 되자 이른바 유행어로서 시대의 지시어가 된다. 1910년대는 남녀의 연애나 ‘성’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세이토(靑鞜)」의 발간, 또한 히라츠카 라이쵸(平塚らいてう:1886~1971)를 시작으로 <세이토사(靑鞜社)> 멤버들과 요사노 아키코(与謝野晶子:1878~1942)의 활약은 이 커다란 변화의 계기 가운데 한 축이었다.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담론이 사회적으로 급격하게 부상하게 된다. 그 담론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성욕>이었으며, 따라서 1910년대를 <성욕의 시대>의 개막이라 볼 수 있는

제3장 성욕의 시대(4.2) [내부링크]

4. 성욕의 사회화와 의학화(2) 청년들의 번민 이 &#60;성욕의 문학화&#62;와 &#60;성욕의 사회화&#62;라는 두 가지 양상을 동시에 체현한 듯한 사건이 데바카메사건과 동시에 일어났다. 히라츠카 라이쵸(平塚らいてう:1886~1971)와 모리타 소헤이(森田草平:1881~1949, 메이지 시기 소설가)의 정사(情死) 사건, 이른바 ‘시오바라(塩原)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성욕이라는 말은 사회에 완전히 정착한다. 이 당시, 두 사람의 사건을 예고한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났다. &#60;번민&#62;에 의한 자살이 그것이다. 1903년(明治 36)에 일어난 철학적 청년 후지무라 미사오(藤村操:1886~1903)의 케곤 폭포華嚴瀧에서의 투신자살을 시작으로, 학생.......

제3장 성욕의 시대(4.1) [내부링크]

4. 성욕의 사회화와 의학화(1) 「이불」이 나온 그해에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1864~1909)도 그의 작품 「평범(平凡)」에서 성욕이라는 말을 같은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메이는 ‘우리들 연애의 본체는 성욕이다. 성욕은 고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열등한 것도 아닌 중성적인 것이다. indifferent-무심하고 중성적인-한 것이다. 우리들 연애가 열등하게 보이는 이유는 열등한 인격이 반영된 까닭이지, 본래 성욕이 열등한 이유가 아니다’라고 기술하면서 「이불」의 카타이가 전개하였던 것과 같은, 당시 모두가 야유를 보내던 연애론과 성욕론에 대하여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시메이에 의하면 성욕이라는 관념이 생기기 시작할.......

제3장 성욕의 시대(4.3) [내부링크]

4. 성욕의 사회화와 의학화(3) 끝 모를 욕망 &#60;성욕&#62;이라는 말이 통속화되어가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지 자연주의 소설이나 문학적 · 엽기적 추문과 사건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또 하나 바로 성과학서나 의학서, 특히 산과 및 부인과와 관련한 통속적인 의학 서적의 유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 오가타 마사키요(緖方正淸:1864~1919)가 저술한 「부인 가정위생학(婦人家庭衛生學)」(초판 1907년, 증보판 1916년 발행)은 그중 하나였다. 오가타의 「부인 가정위생학」은 그가 신문 지상에 기고한 「부인 가정위생 및 부인문제에 관한 이야기」와 강연 원고를 모아 만든 책이었다. 활자는 모두 한.......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1.2) [내부링크]

1. 「세이토」의 신여성들(2) 순결-순혈 이데올로기 자칭 성 심리학(性欲學)의 대가 사와다 준지로(澤田順次郞)는 「성욕에 관하여 청년 남녀에게 답하는 글」(1919년)에서 오스트리아의 의사인 발트슈타인과 에크렐이 혈청 진단법에 의하여 ‘성교에 의해 여성의 혈액 중에 남성의 정자에 대한 반응 효소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의해 &#60;처녀&#62;와 &#60;비非처녀&#62;의 구별, 기혼 여성의 간통 사실 여부에 대한 감별이 가능하게 되었다면서 도덕상 위대한 발견이라고 상찬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록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남자와 간통을 했을 때 임신은 되지 않더라도, 그 정자는 여자의 몸속.......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1.1) [내부링크]

1. 「세이토」의 신여성들(1) 처녀성을 언제 버릴 것인가? 1911년 뛰어난 지성들이 모여 만든 「세이토(靑鞜)」의 창간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획기적인 의의는 &#60;신여성&#62;들의 행동 양식이 사회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면서 여성의 사회적 출현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사회 내부에 각인시킨 점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성 이미지는 「세이토」를 통해 완전히 혁신되었다. &#60;신여성&#62; 가운데 한 명이었던 라이쵸가 1917년 무렵에 대한 회상에서처럼 ‘머리는 여배우처럼 말아 올리고 몸에는 망토를 걸친 채 항상 카페에 출입하면서 빛깔 고운 술을 마시며 요시와라(吉原)에 놀러 다니는’(「모던 걸이 갖추어야만.......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3.1) [내부링크]

3. 신경병(神經病) 시대의 성욕(1) &#60;크로이첼 소나타&#62; 성욕이나 성을 금기시하면서 불결하게 생각하는 담론은 뿌리 깊게 지속되었다. 하지만 자유연애나 연애결혼이 이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자 &#60;성욕&#62;은 그렇다 치더라도 &#60;성&#62;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신비한 것이라는 담론이 출현하고 있다. 「근대의 연애관」(1922년)에서 ‘사랑이 최고 Love is best’라고 주장한 쿠리야가와 하쿠손(廚川白村:1880~1923, 작가)과 같이 영육일치가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 논의되면서, &#60;성욕&#62;을 관념적으로 고상하게 여기고 사랑과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거의 드문 상황이었다. 상징적으로 말한다면, &#60;성욕&#62;이나.......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2.2) [내부링크]

2. 성가족의 비극(2) 처녀의 무지 다음으로 두 번째 요코하마 사건은 처녀의 비극이란 면에서 신문과 잡지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1923년 「부인세계」 5월 호의 특집명은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여성」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잡지의 내부 목차에서 「고쿠라 시즈노스케(小倉鎭之助) 부녀가 능욕 사실을 알았던 그날 밤 상황-죽음보다 더한 눈물의 한밤」(주동생洲東生), 「군마 전력 주식회사 사장 고쿠라의 사랑하는 딸의 능욕에 번민하는 부친의 눈물의 고백-불행한 딸을 순결하게 하기까지」(고쿠라 시즈노스케)라는 기사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한 기사로서는 우키타 가즈타미(浮田和民:1859~1946, 「타이요우太陽」의 편집주.......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2.1) [내부링크]

2. 성가족의 비극(1) 정조인가, 죽음인가?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60;성욕의 시대&#62; 속에서 부상한 것은 여성, 그것도 &#60;처녀와 정조&#62;였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60;영과 육&#62; 두 부분에 말이다. 부르주아지 가정 속에서 &#60;처녀&#62;와 &#60;정조&#62;는 특권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른바 희소가치를 지닌 상품으로서 말이다. &#60;처녀&#62; &#60;정조&#62;라는 이름과 함께 미혼 · 기혼 여성은 몸소 자신을 규율함과 동시에 멍에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1920년대가 되자 매우 추잡하고도 의심스러운 성욕학이 유행하여 앞서 언급한 하부토, 사와다 준지로(澤田順次郞), 다나카 코가이(田中香涯:1874~1944)로.......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3.2) [내부링크]

3. 신경병(神經病) 시대의 성욕(2) 1,000명이 넘은 상담자 사와다의 경우 1918년 출간한 임신에 관한 책을 쓰던 당시부터 독자의 질문을 받기 시작한 이후, 상담자는 매일 수 명에서 십여 명 가까이까지 이르러 근 1년간 총 358명이 그에게 상담을 받게 된다. 사와다가 성욕과 관련한 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대략 천명이 넘는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과장 섞어 적고 있다. 질문 내용의 순위는 차례대로 피임법, 불임 상담, 생식기 기능장애, 부인병, 신경쇠약 순이었다. 질문은 임신에 관한 것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질문 범위를 확장해 보면 생식기 기능장애나 신경쇠약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와다의 느낌이었다. 이.......

제5장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신화(3.1) [내부링크]

3. 여성스러움의 병(1) 남성의 성적 위기 「처녀와 아내와 어머니를 위한 위생 독본」이 출판된 것은 중일전쟁에 돌입했던 1937년 7월이다. 다이쇼 시기보다 더 많은 여성이 직업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위생 독본」은 ‘여성이 밖에 나가 일하는 현상은 독일의 나치 정부가 탐탁잖게 여기더라도, 몇몇 일본의 복고주의자들이 싫어한다 해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기세로 사회에 성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추세입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내와 여성의 경제력은 ‘부부 생활에서 불화를 발생시키는 커다란 원인’이 되고 ‘남편에 대하여 복종적이지 않게 되는 경.......

제5장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신화(2) [내부링크]

2. 남성다움의 병 남성의 능동성 위의 「위생 독본」은 통속적 여성용 의학서이면서도 남성에 관한 내용 역시 적지 않았다. 남성의 이미지로서는 ‘부부 생활에서 남편이 항상 능동적이므로, 아내보다 훨씬 신체에 영향이 크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남성은 능동적이므로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부분에서는 아내가 부부 생활에 마음 내켜 하지 않는다면 큰일이지만, 남편이 부부 생활에 그런 현상을 보인다면 ‘원래 수동적이었던 아내에게는 큰 고통이 없으며, 따라서 문제도 간단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남성/남편에게 중대한 고통의 씨앗이 되며 자기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문제시.......

제5장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신화(1) [내부링크]

1. 성생활을 위한 정보 출판 자본주의의 문화 다이쇼· 쇼와 시기는 메이지 말기에 창간되기 시작한 여성 잡지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 시기이다. 이러한 잡지들은 일반 잡지라고 하지만 남성만을 독자로 한정하는 시사평론 위주의 잡지와는 달리 요리나 재봉 등의 소책자를 부록으로 함께 끼워주고 있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가정 의학 관련 소책자나 별책 부록이다. 첫 월경에서 결혼 그리고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는 여성의 라이프 사이클과 관련한 지식을 가득 싣고, 여성의 고통이나 질병에 관하여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별책 부록을 통해 여성 독자들 사이에 여성 특유의 질병이나 위생이라는 담론 공간이 공유되.......

제4장 성가족(性家族)의 초상(4) [내부링크]

4. 성가족의 행방 영육일치의 연애 「이불」이나 「신경병 시대」 양자는 모두 자유연애를 통해 성립된 가정이었다. 그러나 자녀가 개입되는 가정생활의 성립·지속과 함께 갑자기 사랑은 안개처럼 사라진다. 단란한 가정이라는 화기애애한 이상적 가정의 분위기조차 문자 그대로 공허한 꿈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건 남편/남성은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는 아내에게 염증이 나게 된다. 위의 작품은 분명히 남성 작가가 묘사한 부부생활과 가정상이다. 거기에서 아버지 혹은 남편상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묘하게도 아내/어머니에 의해 조정됨으로써 사업에 매진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 결국 가정에서 삶의 위안을 발견할 수밖에 없음.......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1) [내부링크]

1. 일본의 모성 전쟁과 여성 잡지 「처녀와 아내와 어머니를 위한 위생 독본」이 「주부지우」 8월 호의 부록으로 나온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성욕은 자본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른바 &#60;성욕 자본주의론&#62;이 전개되고 있다. 부부에 의한 성욕, 자본의 건전한 투자와 회수를 통하여 &#60;성가족&#62;을 무대로 한 재생산 체제가 유지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무대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남성다움 즉 능동성의 외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성이다. 한편 종속되는 것은 여성스러움 즉 수동성의 외피에 겹겹이 싸여있는 여성이다. &#60;성욕 자본주의&#62;에서 남성은 자본가이며 여성은 노동자이다. 남성은 성욕 즉.......

제5장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신화(3.2) [내부링크]

3. 여성스러움의 병(2) 여성스러움이란 그물망 자위에 의한 여성 질환으로는 일반적으로 부인병(자궁병)의 범위 속에 포함되는 불감증과 불임증이 있다. 남성의 임포텐츠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이 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불감증은 성적 결함으로 치료하기 힘들어 보통 ‘의사를 울리는 질병’이라고 여겨졌다. 불감증은 가성 불감증과 진성 불감증으로 나뉜다. 진성 불감증은 절대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이며, 가성 불감증의 경우에는 적당한 방법으로 바로 치료가 가능했다. ‘진성’ 즉 절대 불감증은 일종의 성격이상자나 정신병자의 질병으로서 치유나 교정이 불가능하다. ‘가성’의 경우에는 치유와 교정이 가능하여 의학적 치료라고 하는.......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2.1) [내부링크]

2. 전쟁 속의 모성애 아이콘 「주부지우」의 모자(母子) 아이콘 「주부지우↑의 표제 그림이나 삽화 등은 당대의 이상화된 미인상 또는 주부상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다. 연구자 키무라 료코(木村涼子)는 「부인공론」이 신 여성 Modern Girl을 묘사한 것에 반하여 「주부지우」는 가정의 태양으로서 건강하고 견실하며 명랑함을 구비한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은 가정적인 젊은 주부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분명히 두 잡지에는 세련된 도시풍의 근대적인 첨단의 여성 이미지와 가정의 행복에 안주하는 전통적 · 보수적 여성 이미지가 선명하게 대조되어 있다. 여성사학자 와카쿠와 미도리(若桑みどり:1935~)는 「전쟁.......

동아시아 소농 사회의 형성 [내부링크]

1. 동아시아 사회의 공통성 유교&#x3D;주자학을 둘러싼 논의 1970년대 이후 한국과 타이완의 급속한 자본...

책 소개 [내부링크]

1, 본서의 제목에 대하여 1985년~1996년까지 진행된 중점연구 『지역성의 형성에 있어 인구·환경 요인의 작...

목차 [내부링크]

들어가는 말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언 - 통합체로서의 분지 1. 거처 2. 삶 3. ...

들어가는 말 [내부링크]

발생·성장하는 중국을 묘사한다는 것 다른 사회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해한다 하더...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서) [내부링크]

서언 - 통합체로서의 분지 제기 분지 우리가 제기 분지를 방문한다고 할 때 두 가지 행로를 고려해 볼 수 ...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1.1) [내부링크]

1. 거처(1) 월(越)에서 한(漢)으로 「중국이 생성」되는 과정을 본서에서는 「경관이 생성」되는 과정을 밝...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1.2) [내부링크]

1. 거처(2) 생태학적 조건과 이주 이주는 무인지경의 환경을 향해 진행된 것이 아니다. 사료에 의거해서는 ...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2.1) [내부링크]

2. 삶(1) 사(死)에서 생(生)을 보다 인간은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자신이 생태 시스템의 일부를 구성...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2.2) [내부링크]

2. 삶(2) 사망한 달 우선 【삽도 1】을 보자. 이는 『주씨보』의 행전에서 동족 구성원이 사망한 달을 분석...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3.1) [내부링크]

3. 연중행사-일상생활(1) 의례와 제사 17세기 이전 제기 분지에서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계절 변동에 시...

제1장 제기 분지의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3.2) [내부링크]

3. 연중행사-일상생활(2) 촌락의 행사 농가 레벨을 넘어 촌락을 단위로 실시된 행사는 &lt;두묘(杜廟)&gt;...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서 1) [내부링크]

서언. 친족 관계의 생성 과정(1) 「부모」와 「자식」 제기 분지에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축조해낸...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서 2) [내부링크]

서언. 친족 관계의 생성 과정(2) 근세 일본의 친족 관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반이 상호적 행위에 의...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1.1) [내부링크]

1. 유대 관계를 만들다(1) 지역 리니지의 형성 과정 형용사적 친족 관계는 한족에게 공통된 관념이다. 이 ...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1.2) [내부링크]

1. 유대 관계를 만들다(2) 지역 리니지의 물적 기반 「&lt;종족&gt;의 정립 요소 the tripod elements of k...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2.1) [내부링크]

2. 유대 관계를 넓히다(1) &lt;호전&gt; 관리 시스템의 변용 건륭 30년(1765) 제기 분지는 큰 비로 물난리...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2.2) [내부링크]

2. 유대 관계를 넓히다(2) &lt;행제&gt;의 통합 과정 &lt;행제(行第)&gt;를 구성하는 &lt;배행자(排行字:항...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3.1) [내부링크]

3. 유대 관계를 뛰어넘다(1) &lt;고사&gt;에 나타난 여성 서사(Narrative)로 구조화된 과거, 즉 「역사」...

제2장 부자 관계는 종족을 어떻게 생성해냈는가(3.2) [내부링크]

3. 유대 관계를 뛰어넘다(2) 리니지와 여성 【삽도 1】 제기 지역 기혼 여성의 약전 위의 아홉 여성의 인생...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서문 1) [내부링크]

서문 - 지배되는 측의 논리(1) 피지배의 습득 인간은 왜 지배를 수용하는가. 자신의 재산을 불사르거나, 자...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서문 2) [내부링크]

서문 - 지배되는 측의 논리(2) 명사적 사회 관계에서의 유력자 앰브리(J. F. Embree)는 타이 사회와 달...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1.1) [내부링크]

1절 질서를 만들다(1) 백문(白門) 방씨(方氏)와 송(宋)의 남하 제기 분지 중심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1.2) [내부링크]

1절 질서를 만들다(2) 송렴과 포강 의문(義門) 정(鄭) 씨 만약 주원장이 절동 분지 지구로 들이닥치지 않았...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2.1) [내부링크]

2절 질서를 보호하다(1) 제기현의 지현(知縣) 유광복(劉光復) 제기현에서는 다음과 같은 &lt;고사&gt;가 전...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2.2) [내부링크]

2절 질서를 보호하다(2) 현 행정의 에고이즘 국가를 대신해 징세의 책임을 떠안은 지현은 현의 주민으로부...

3장 분지와 중국 왕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3) [내부링크]

3절 질서를 넘어서다 동안의군통령(東安義軍統領) 포립신 1851년 중국 남부 광서성에서 결성된 태평천국군...

끝마치며 [내부링크]

시스템적 관련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단지 한 곳의 분지에 시야를 한정해도 여러 가지 요소가 서로 얽히면서...

참고 문헌·후기 [내부링크]

참고 문헌 【일본어】 赤木 攻, 『タイの政治文化 : 剛と柔』, 東京 : 勁草書房, 1989.8. 網野善彦, 『無縁...

책 소개 - 세계화 속의 현대 중국 [내부링크]

원제: 現代中國 グロ―バル化のなかで 저자: 코로기 이치로(興梠一郞) 서지 사항: 岩波新書 新赤版 797. 20...

목차 [내부링크]

서장-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중국 공산당의 노선 투쟁|계획경제의 시대|시장경제화로 제1장 도시와 농촌...

서장-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내부링크]

중국 공산당의 노선 투쟁 현재 세계의 시선은 중국을 향해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된 이후,...

제1장 도시와 농촌의 변화(1) [내부링크]

1. 고뇌하는 농민들 증가하는 부담 근래 중국에서는 급속한 시장경제화 속에 과중한 세금으로 인한 농민의 ...

제1장 도시와 농촌의 변화(2) [내부링크]

2. 『민공차오(民工潮)』-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드는 유동 인구 증가하는 이주 노동자의 범죄 2000년 9월 14...

제1장 도시와 농촌의 변화(3) [내부링크]

3. 계층 분화와 경제적 격차 집중하는 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 도시민의 소득격차...

제1장 도시와 농촌의 변화(4) [내부링크]

4. 표류하는 도시 개혁의 성과 경제개혁은 중국의 도시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과거 20년간 도...

제2장 흔들리는 질서-권력과 폭력(1) [내부링크]

1. 부패의 고리 공직 부패의 구조-선양시 시장의 경우 급속한 시장경제화로 인하여 모든 것이 시장 가치로 ...

제2장 흔들리는 질서-권력과 폭력(2) [내부링크]

2. 〈흑사회〉 세력의 부활 시장 경제화와 폭력단의 출현 중국에서는 근래 ‘흑사회(黑社會)’, 즉 폭력조...

제2장 흔들리는 질서-권력과 폭력(3) [내부링크]

3. 떠오르는 미디어 습격당하는 기자들 근래 들어 중국 미디어의 활발한 취재 활동에 의하여 다양한 특종 ...

제3장 고속 성장의 딜레마-1 [내부링크]

1. 밀려드는 고령화의 파도 「선로후부(先老後富)」-급속한 노령화 &lt;베이징 사회과학원&gt;의 조사에 의...

제3장 고속 성장의 딜레마-2 [내부링크]

2. 뒤처진 사회보장 실업보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보장이 충실하게 행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

제3장 고속 성장의 딜레마-3 [내부링크]

3. 생태 환경의 악화 진행되는 사막화 2000년 봄, 서북부 지역으로부터 베이징에 불어닥친 황사는 근래 들...

제3장 고속 성장의 딜레마-4 [내부링크]

4. 높아가는 진학열 의무교육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소학교 및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다. 따라서 아이들...

제4장 정부가 직면한 시련-1 [내부링크]

1. 국유기업의 개혁은 가능할까? 시급한 개혁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국유기업도 시장경제화의...

제4장 정부가 직면한 시련-2 [내부링크]

2. 흔들리는 공산당 정권 혁명당의 변모 2001년 7월 1일, 장쩌민 총서기는 &lt;중국공산당 창립 80주년 기...

제4장 정부가 직면한 시련-3 [내부링크]

3. 중국식 「행정개혁」의 장래 정부 기능의 전환 WTO 가입을 이룬 중국에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 시장경...

종장 - 중국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내부링크]

어떻게 해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무리 없이 완성하고, 장년층의 바람이었던 민주화된 부강한...

후기·참고문헌 [내부링크]

후기 본서의 집필을 마치고, 새삼스레 무력감에 빠져 있다. 중국이라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대상을 제대로 ...

『페미니즘과 조선』 번역 후기 [내부링크]

이 책의 번역은 아마 2003년 경 끝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로 몇 번인가 더 매만지는 작업을 했었는데, ...

『페미니즘과 조선』-목차 [내부링크]

책머리에 서장 여성과 식민지-식민지 개발·해외 팽창과 카라유키상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 Ⅰ. 조선 식민지...

책머리에 [내부링크]

전후 일본의 혁신 운동 세력과 민초들에 의해 부지런히 축조되어 온 평화 운동은 끝끝내 일본의 자위대 해...

서장: 여성과 식민지-식민지개발·해외팽창과 카라유키상(1) [내부링크]

성(性)을 발판으로 한 식민지 지배 근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일본 여성은 자신의 성을 억압당했다. 가부장...

서장: 여성과 식민지-식민지개발·해외팽창과 카라유키상(2) [내부링크]

식민지 개발의 노동력 확보를 위하여 한편 영국과 미국 등 서구의 식민지 본국이 지배하고 있던 동남아시아...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Ⅰ(1) [내부링크]

Ⅰ. 조선 식민지 지배와 여성 1.침략의 系譜-오쿠무라 이호코·후치자와 노오에·츠다 세츠코 닌텐케이(任展...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Ⅰ(2) [내부링크]

Ⅰ. 조선 식민지 지배와 여성 2. 한일병합과 여성-『부녀신문』을 읽다 「건국 이래의 성사(盛事)」 『부녀...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Ⅱ(1) [내부링크]

Ⅱ. 야마가와 기쿠에와 조선 &lt;일본 기독교 부인 교풍회&gt;(1886년 창립)를 별도로 한다면, 근대 일본에...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Ⅱ(2) [내부링크]

Ⅱ. 야마가와 기쿠에와 조선 2. 야마가와 기쿠에와 조선 조선 여자 유학생과의 만남 도쿄에 있으면서 삼일...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Ⅲ(1) [내부링크]

Ⅲ.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조선 1. 일본의 여성 운동과 부인 교풍회 &lt;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gt;는...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Ⅲ(2) [내부링크]

Ⅲ.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조선 2.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성(性) 침략 조선의 개항과 일본인 창...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Ⅲ(3) [내부링크]

Ⅲ.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조선 3. 조선 교풍회 지부의 결성과 활동 이미 살펴보았듯이 청일전쟁과 ...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Ⅲ(4) [내부링크]

Ⅲ.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조선 4. 교풍회의 조선관·조선 인식 그러면 여기서 나타나는 교풍회 여성 ...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Ⅳ(1) [내부링크]

Ⅳ. 「부녀금매」(婦女禁賣)조약과 조선 1. 공창 제도의 확립과 조선인 창부 조선인 여성의 성적 노예화 조...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Ⅳ(2) [내부링크]

Ⅳ. 「부녀금매」(婦女禁賣)조약과 조선 2. 『부녀매매 금지 조약』 비준과 조선 문제의 경위 1925년 12월 ...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Ⅳ(3) [내부링크]

Ⅳ. 「부녀금매」(婦女禁賣)조약과 조선 3. &lt;부인 교풍회&gt;와 『부녀금매』 조약 이제 &lt;일본 기독...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Ⅳ(4) [내부링크]

Ⅳ. 「부녀금매」(婦女禁賣)조약과 조선 4. 존슨 조사단과 조선 존슨 조사단의 파견 1929년 4월 19일부터 2...

제1장 페미니즘과 조선-Ⅴ [내부링크]

Ⅴ. 전시체제 하의《부인 교풍회》와 순결 보국 운동 1. 순결 보국 운동의 전개 1931년 9월 18일 류타오후(...

제2장 여성과 천황제 -Ⅰ(1) [내부링크]

Ⅰ. 히로히토와 쇼와사(昭和史) 그리고 여성 1. 황손 전하·대역 사건 ·간노 스가(管野 須賀子) 1989년 1월 ...

제2장 여성과 천황제 -Ⅰ(2) [내부링크]

4. 히로히토의 즉위식·3․15 사건·특고 경찰 히로히토 씨가 부친 요시히토의 병사로 왕위를 계승한 것은 19...

제2장 여성과 천황제 -Ⅰ(3) [내부링크]

Ⅰ. 히로히토와 쇼와사(昭和史) 그리고 여성 8. 히로히토 씨의 죽음-여성과 소수자 배제의 쇼와 시대의 역...

제2장 여성과 천황제 -Ⅱ·Ⅲ [내부링크]

Ⅱ. 천황가 - 여성차별의 상징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왜 천황과 천황가 사람들만이 특별한 존칭으로 불리며...

제2장 여성과 천황제 -Ⅳ [내부링크]

Ⅳ. 헌법의 평등 원리와 황실 전범 초 헌법적 천황과 천황 일족 1993년 6월 9일 황태자의 결혼식이 끝나면...

제3장 전쟁·전후 책임과 여성-Ⅰ(2) [내부링크]

5. 국체 의식과 중일 친선 다음 두 개의 문장은 어느 설문조사에 대한 요시오카의 답변이다. 짧은 문장이지...

제3장 전쟁·전후 책임과 여성-Ⅰ(1) [내부링크]

Ⅰ. 요시오카 야요이에 관한 메모-전쟁 시기 활동을 중심으로 요시오카 야요이(吉岡彌生:1871년~1959년)로 ...

제3장 전쟁 ·전후 책임과 여성-Ⅱ(2) [내부링크]

5. 히라츠카 라이쵸의 평화와 여성․모성관 한편 여기서 전후 라이쵸 사상의 중핵인 평화와 여성 그리고 모...

제3장 전쟁 ·전후 책임과 여성-Ⅱ(1) [내부링크]

Ⅱ. 전후 히라츠카 라이쵸의 평화사상과 「모성」 “태초(元始), 여성은 태양이었다.”라는 페미니스트 선...

제3장 전쟁 ·전후 책임과 여성-Ⅲ [내부링크]

Ⅲ. 카미사카 후유코의 망언을 비난한다-『생각하니 화가 치민다』를 읽고 일찍이 나는 작가 가미사카 후유...

제3장 전쟁 ․ 전후 책임과 여성-Ⅳ [내부링크]

Ⅳ. 책임자 처벌론과 전후 보상 1. 전후 50년 패전 50년을 앞두고 여러 가지 말들로 시끄럽다. 우리에게 ‘...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2.2) [내부링크]

2. 전쟁 속의 모성애 아이콘 치유의 모성애 상징 1942년에는 표지 3장, 표제 그림 4장이 모성애 상징이다. ...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3) [내부링크]

3. 죽음을 가르치는 일본의 어머니 다카무라 코타로가 말하는 모성애 1945년 패전이 임박하자 다카무라 코...

제6장 전쟁과 모성애의 시대(4) [내부링크]

4. 국가에 사로잡힌 모성 모성 ․ 모성애는 변질되어버린 것인가? 전시 하에서 모성·모성애에 대한 찬미와 ...

참고문헌 [내부링크]

序 北村透谷, 「處女の純潔を論ず」, 『透谷全集2』, 岩波書店, 1950년. M. Foucault, 『性의 역사 - 앎...

후기 [내부링크]

이전에 [처녀의 기도](1993), [처녀의 신체](1994)라는 제목의 책을 각각 출간하였다. 근대 일본의 여성사(...

[이두집성-1] 서문 [내부링크]

서(序) 근래에 들어 문운(文運)의 진전과 함께, 조선에 관한 연구도 역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을 진실로 ...

[이두집성-프롤로그] 번역에 대하여 [내부링크]

본 번역의 저본은 쇼와 12년(1937) 3월 25일 인쇄하여 동년 3월 30일 당시 경성 장곡천정(현재 소공동 일대...